2020년 12월 출시된 사이버펑크2077는 여러 모로 화제가 된 작품이다. 최고의 기대작으로 손꼽혔으나 출시 후에 버그 및 여러 미흡한 점이 발견되기도 하는 등 굴곡이 있었다. 그러나 '사이버펑크'라는 장르의 느낌을 살려낸 세계관과 퀘스트는 팬들의 호평을 얻었다.

여기에 'Chippin in'. 'Never Fade Away' 등 명곡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 카오디오, 갑작스런 전투씬의 긴박한 사운드 등 여러 음악으로 장르 그 자체의 느낌을 살린 사이버펑크2077.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런 사운드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CDPR의 마르친 쉬비워비츠 음악 디렉터와 P.T 아담칙 선임 작곡가는 GDC 2021에서 사이버펑크2077의 음악을 어떻게 설계해나갔나 소개했다.

▲ CDPR P.T 아담칙 선임 작곡가(좌), 마르친 쉬비워비츠 음악 디렉터(우)

사이버펑크2077 내에서 사용된 음악을 쓰임새별로 나눠보면 오리지널 악곡, 소스 큐/내재적 음악, 라디오 트랙, 미디어에서 나오는 음악 네 종류로 나뉜다. 그렇게 분류한 뒤, 어떻게 사이버펑크2077의 스타일을 살려낼 것인지 고민해야했다.

'사이버펑크'라는 장르는 80년대에 흥행했던 장르였다. 블레이드러너, 데우스 엑스 등 영화부터 시작해 90년대에 와서 공각기동대까지 그 계보가 이어졌고, 그때 주로 사용된 사운드는 80년대를 연상시키는 사운드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사이버펑크2077에서는 의도적으로 80년대 느낌이 들 만한 사운드는 최대한 배제해야했다. 사이버펑크2077이 사이버펑크라는 장르는 맞지만, 80년대풍 사운드에 의존하면 자칫 다른 사이버펑크 게임 및 미디어와 비슷하게 느껴질 여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 게임 내에 쓰인 음악의 종류를 네 가지로 구분하고

▲ 그에 맞는 스타일을 찾아야 했다. 80년대풍은 다른 사이버펑크물과 느낌이 겹칠 여지가 있어 피했다

그래서 그들이 찾아낸 대안이 90년대의 음악이었다. 마침 사이버펑크2077 음악팀 다수가 RATM, 나인 인치 네일스, 프로디지, 비스티 보이즈 등 90년대의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였기 때문에 그 느낌을 충실히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이버펑크2077이 그전까지의 사이버펑크처럼 축축하게 비오는 날 네온 사인 아래의 경관만 조명하는 유형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운드 선택도 문제가 없었다. 90년대 테크노가 울려퍼지던 클럽의 느낌, 레이브 파티도 사이버펑크2077에선 주요한 느낌 중 하나였다.

스타일을 정한 뒤에는 음악의 비중을 어떻게 둘 것인가 결정하는 일이 남았다. 사이버펑크2077에서는 모든 것을 '스토리'에 집중했다.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몰입감을 살릴 수 있도록 보조하고, 다소 일반적이지 않을 컷신에 유저들이 빠져들 수 있게끔 음악이 분위기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게끔 설계한 것이다.

▲ 90년대풍 등, 스타일을 정한 뒤에는

▲ 스토리 중심으로 음악을 설계하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사운드팀은 컷신에서 V의 동선과 카메라 워크, 그로 인해 보이는 화면의 느낌을 하나하나 표로 작성하고 그에 맞춰서 사운드를 배치했다. 이와 같은 업무는 상당히 방대했다 퍼스트 테스트가 끝나고 나서 사운드를 다시 확인하고, QA가 끝날 때마다 다시 한 번씩 재생해서 정상적인 타이밍에 나오나 확인해야했기 때문이다. 만일 디자인이 바뀌었다고 하면, 그에 맞춰서 곡이 재생되는 타이밍을 바꾸거나 심지어 곡을 다시 만들어야 하기도 했다.

사이버펑크2077 음악에 핵심이 될 오리지널 악곡은 등장인물과 세력의 테마에 맞춰서 우선적으로 제작됐다. V, 조니 실버핸드를 필두로 해서 아라사카 등 작중에서 등장하는 여러 세력들을 분류하고, 그들에게 맞는 음악을 여러 개의 긴 사운드트랙뿐만 아니라 짧은 리프 정도로도 추가로 작업을 해두었다. 아울러 길거리에서도 들려올 여러 음악들도 같이 설계했다.

그렇게 여러 단계에 나눠서 작업한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리 현실적인 오픈월드라고 해도, 게임 내에서 '음악'이 아예 배제되면 몰입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나이트시티의 길거리를 V가 돌아다니는데 음악 하나 없이 사람들이 주변에서 떠들어대는 소리만 들렸다고 가정해보면, 나이트시티의 그 복잡하면서도 퇴폐한 느낌이 살아날 수 있었을까? 쉬비워비츠 음악 디렉터의 답은 '아니오'였다. 그것이 그들이 복잡 다단하게, 몇 개의 긴 악곡 외에도 각 진영의 테마를 나타내줄 수 있는 자잘한 사운드까지 다 작업하고 길거리에 들려올 음악까지 설계한 이유였다.

▲ 스토리와 씬을 분석, 음악이 나와야 할 타이밍을 하나하나 다 쪼개서 거기에 맞게 음악을 배치했다

전투에서 음악이 들려오는 건 현실적이진 않지만, 마찬가지 이유에서 전투 때 들려오는 BGM에도 이들은 신경을 썼다. 우선 전투 BGM 설계는 V가 맞서게 될 적의 세력에 맞춰서 테마곡을 작곡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아라사카, 밀리테크 등 분류가 끝나면 전투가 어떤 단계에 걸쳐서 진행될지 동선을 체크하고, 그에 맞춰 어레인지했다. 사이버펑크2077의 전투 대부분이 한 지역에서만 줄창 진행하기보다는 계속 이동하고, 페이즈가 바뀌면서 전투가 진행되기 때문에 비슷한 톤의 다른 곡을 넣는 대신에 톤에도 계속 변화를 줬다.

여기에 90년대 느낌을 가미하기 위해 CDPR의 사운드팀은 카세트테이프를 활용했다. 4트랙의 카세트테이프 장비를 활용해 큐 속도도 낮춰보고 4트랙의 리버브, 딜레이, EQ, 플레이백 속도를 각기 다르게 해서 계속 새로 녹음해보는 식으로 사운드에 변화를 줬다. 그런 노력 끝에 사이버펑크2077만의 느낌이 드는 사운드가 완성될 수 있었다.

▲ 레트로, 그리고 새로운 느낌을 가미하기 위해 카세트테이프까지 동원했다

사이버펑크2077에 사용된 음악을 다시 중요도에 따라 배열하자면, 퀘스트가 최우선이고 그 다음이 전투, 라디오, 그리고 주변 사운드 순으로 중요도가 꼽혔다. 그런 만큼 앞서 언급했던 주변 사운드 제작 기법들이 퀘스트에 사용될 주요 악곡들에도 사용됐고, 여기에 더 나아가서 음악과 함께 몰입해나가는 뮤지컬 내러티브를 구축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해야 했다.

아울러 '조니 실버핸드'가 있는 만큼 제 4의 벽을 넘나드는 그만의 톤을 어떻게 잡아가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Chippin In, Never Fade Away라는 명곡을 완성하긴 했지만, 조니 실버핸드의 테마를 처음 잡아갈 당시에는 스토리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자연히 사운드팀에서 조니 실버핸드가 어떤 인물인가, 확실하게 짚고 나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들은 당시 설정에 있던 락 밴드 '사무라이'의 테마는 살리는 한편, 간단한 예시만 갖고 그걸로 어떤 식으로 톤을 잡아갈지 고민하기를 반복했다. 기타 리프를 처음에 짧게 잡아두고, 여기에 살을 붙이기를 반복하면서 조니 실버핸드가 등장한 씬에 맞는 톤을 찾았다. 그런 뒤에 그 느낌을 짜집기해보거나 여러 번 샘플링해보면서 전체 곡을 설계했다.

▲ 짤막한 예시 리프부터 시작, 이를 반복하고 발전시키면서 테마를 완성해나갔다

이렇게 중요한 메인 음악 외에도, 사이버펑크2077에서는 더욱 방대하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필요로 했다. 라디오, 클럽, 식당 등 다양한 공간에서 어울리는 사운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 세계와 연관성을 너무 띄게 되면 사이버펑크2077만의 느낌이 사라진다고 여겼기에 되도록이면 기존에 있는 곡을 넣기보다는 새로 제작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팝, 힙합, 테크노, 재즈, 락, 블랙메탈, 라틴 등 다양한 사운드를 CDPR에서 자체로 제작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여러 아티스트들을 초청했다. 아울러 그들에게 작업할 때, 2010년~2020년의 자신이 아닌 지금 막 2077년에 간 자신의 새로운 자아를 떠올리며 작업해달라고 주문했다. 캐릭터 테마곡과 관련됐을 때에는 캐릭터의 테마를 떠올릴 수 있는 간단한 키워드들을 주기도 했다.

▲ 기존 곡을 사용하기보다는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통해 사이버펑크2077을 위한 새로운 곡을 만들었다

이처럼 CDPR은 사이버펑크2077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작곡뿐만 아니라, 게임 전체를 훑어보고 그에 맞춰 곡을 재배치하고 다시 샘플링하거나 편집하는 과정을 반복해서 거쳐왔다. 결국 반복하고, 애셋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서 사용해보는 게 왕도였을까.

여기에 CDPR은 한 가지를 더했다. 자신이 만든 음악 애셋을 섞어보는 것에 주저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러 차례 믹스하고, 새로운 기기를 활용해서 편집했을 때 기존에 만든 것과는 색다르면서도, 새로 작업할 필요 없이 좋은 음악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은 기존 씬에서 이어지면서도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사운드 연계가 가능하니 다소의 잡음은 신경쓰지 말고 과감히 작업할 것을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