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였을까? 아니면 원래 의도였을까?


“클래식 게임 디자인의 연속과 유저들 수 유지”라는 강연 제목은 들어 오던 손님이 그냥 나가버릴 정도로 딱딱하기 그지 없었지만 현 스트리트 파이터4의 프로듀서 오노 요시노리라는 이름값 때문인지 규모급 강의실은 장인의 노하우를 듣기 위한 청중으로 가득 찼다.


이번 강연의 진정한 목적은 클래식 게임이 어떻게 성공적으로 부활할 수 있는 지를 오노 PD가 스트리트 파이터4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것.



오노PD는 처음 스트리트 파이터4를 기획하기 시작할 때를 회상하며 “원점 회귀”라는 키워드를 꺼내 들었다. 2D에서 3D로의 변화를 가져가지만 최대한 유저들이 부담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유저들이 간직하고 있는 스트리트 파이터의 추억을 어떻게 지금의 시대로 다시 가져올 것인가를 무척이나 고민했다고 한다.


오노PD는 동창회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사람, 첫 사랑을 지금 사회인이 돼서 만났을 때의 느낌, 어여쁜 상태로 있어주길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의 좌절감을 언급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고 오노 PD는 부활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센스”에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오래전 기억 속에 한 가지를 끄집어냈다.






그것은 바로 일러스트와 같은 그림들이 움직이는 느낌. 실사와 거의 흡사한 컴퓨터 그래픽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린 것 같은 혹은 다른 누군가가 그린 것 같은 한 폭의 그림이 살아서 움직이는 느낌을 살려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오노 PD는 이것이야 말로 오래전 기억이 진화해서 현실에 구현되어 있는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트리트 파이터4 프로젝트에 소속된 100명이 넘는 개발자들 모두에게 이런 느낌을 전달하기가 쉽지가 않았을 터. 이런 이유로 스트리트 파이터4를 깜짝 발표하던 날 마치 수묵화로 그려진 듯한 트레일러가 함께 공개된 것이다.


그 결과 “우리의 목표는 수묵화의 느낌”이라는 것을 함께 하는 개발자들끼리 공유할 수 있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하면서도 목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게임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노PD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 때도 무수히 많은 고민을 했다고 밝혔다. 슬라이드에는 스트리트 파이터4의 캐릭터가 기존 다른 게임들의 캐릭터와 유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저작권에 걸릴 것을 각오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유사성을 추구한 것은 의도였다고 했다.


정식 넘버링 “4”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작과는 다른 분명 뭔가 새로운 것이 포함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유저들이 상상한 범위 내에 존재하지 않는, 유저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는 것이라면 절대로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까치발을 들어야 볼 수 있는 정도는 되지만 절대로 점프를 해야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앞서 가면 안된다는 것.






선배들이 남겨준 훌륭한 클래식 게임을 부활시키는 작업에서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게임의 훌륭한 부분, 오노PD가 “뿌리”라고 표현하는 그 부분을 정말 제대로 이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뿌리”를 제대로 보고 파악하고 있다면 아주 오래전의 클래식 게임을 가지고도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 게임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유저들의 의견을 수렴할 때의 주의점도 언급했다. 유저들의 의견은 다양한 통로를 통해서 적극적인 자세로 들어야 하지만 참고는 참고로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의견들은 뿌리를 제대로 살리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정도로 참고를 해야지 오직 유저들의 의견만으로 나뭇 가지 전체를 흔드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스트리트 파이터4는 그래픽, 게임플레이적인 요소 뿐 아니라 유저들이 간직하고 있는 “아케이드” 시절의 추억을 살리는 데도 신경을 썼다. 그래서 나온 것이 온라인 난입 시스템이며, 가상 토너먼트 시스템이다.

난입시스템을 통해 상대와 겨루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가상 토너먼트 시스템을 통해 언제라도 토너먼트의 우승자가 될 수 있도록 해 오래전 아케이드장을 지금의 거실 속으로 구현해 냈다.


다른 유저들의 훌륭한 경기들을 리플레이를 통해 볼 수 있는 ‘리플레이 채널’도 마찬가지. 아케이드장에서 고수의 경기를 구경하기 위해 잔뜩 모여있던 장면에서 착안한 시스템이다.



오노PD는 이런 역발상을 통해 아케이드의 추억을 되살리는 한편, 유저들의 현대적인 취향을 고려, 틈새 시간을 최소화하고 함께 언제라도 스트리트 파이터4를 손쉽게 즐길 수 있다는 선순환을 만들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오노 PD는 강연을 끝난 후 질답 시간을 통해 “다소 건방지게 혹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한국에서만 제대로 된 김치를 만들 수 있듯이 이런 대전격투게임은 아직까지는 일본에서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는 의미심장한 멘트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