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 콘텐츠 산업의 꽃은 무엇일까? 각자의 자부심이야 남다르겠지만 일반적인 대중의 인식은 최근 가장 많이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한류, 음악과 영화 혹은 드라마 정도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일본, 내일은 동남아, 세계 각국에서 한국의 음악과 영화가 흥행하고 있다면서 매스컴의 칭찬이 이어지고, 한국을 세계에 알렸다는 국위선양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영화나 음악의 흥행은 당연히 칭찬받을만한 일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면서 문화 콘텐츠로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니까. 같은 한국인의 입장에서라도 기꺼이 그들의 활동을 응원하고 있다. 그런데 음악과 영화에 쏟아지는 대중과 매스컴의 관심을 지켜보고 있자면 아쉬운 마음이 들 수 밖에 없다.


한국 문화 콘텐츠 산업의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는, 매스컴이 칭찬하는 영화나 음악이 아니라 게임 산업이다. 근거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현실적인 규모만 따져봐도 한국의 게임 산업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콘텐츠 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 2010년 통계, 한국 콘텐츠 산업 수출액의 49.8%가 게임이다 ]



그럼 국위선양의 타이틀은 음악이나 영화가 아니라 게임 산업이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게임 산업에 대한 매스컴과 대중의 인식은 비난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다. 똑같은 문화 콘텐츠 산업의 갈래일진대 왜 게임만 이렇게 취급받아야 하는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저런 반론을 펼쳐봐도 게임 산업이 앞으로 헤쳐나가야할 고난의 길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게임도 영화나 음악 못지않은 당당한 대한민국 대표 문화 콘텐츠인데, 긍정적인 가치를 외면하고 그냥 '나쁜 것'으로만 몰아가는 한국 사회의 인식이 안타까워 게임 업계 현장의 목소리를 대중들에게 꼭 전달하고 싶었다는 '게임앤사운드' 김은일 대표. 김은일 대표는 과거 인벤과도 한차례 인터뷰를 거친 바 있어 더욱 반가운 업계의 유명인이다.

◎ [인터뷰] 게임사운드 전문 집단, 게임앤사운드 김은일 대표


게임앤사운드의 설립은 2003년이지만 그 이전부터 게임 음악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하면서 벌써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게임 음악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김은일 대표는, 최근 매스컴에서 칭송받는 한류 이상으로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게임과 게임 관련 콘텐츠들마저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점이 가장 안타까웠다고 한다.


영화 '해리 포터'나 미국 드라마 '24시' 등 해외 유명 작품에 참여했던 세계적인 실력의 믹싱 엔지니어가 국내 게임 '뮤2'에 삽입되는 음악에 함께 참여할 정도로 활발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게임 음악이라는 이유로 매스컴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


심지어 게임 산업이 성장하면서 게임 음악에 투자되는 비용이 영화나 드라마에 사용되는 음악의 비용을 뛰어넘을 정도로 원화와 음악 등 게임 관련 콘텐츠들 역시 성장하고 있는 추세이고, 한국의 경우 게임 음악에 투자되는 비용 및 콘텐츠의 수준이 다른 문화 콘텐츠들을 압도하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 게임앤사운드의 녹음이 진행되는 스튜디오 내부의 모습. ]




[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게임 음악 전문가 집단! 게임앤사운드 '김은일' 대표 ]




"게임 산업이 문화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원화나 음악같이 게임과 함께 성장하는 콘텐츠들 역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합니다. 극히 일부의 단점을 예로 들어 게임 산업의 모든 것들을 통제하려 들거나 매도하는 분위기로 몰아가는 것은 일본과 미국 등 문화 콘텐츠 선진국들의 행보와 정반대로 향하는 일입니다. 미국은 게임이 예술의 일종이라는 법적 판결까지 나왔으니까요.

한국의 영화나 음악이 한류라고 불리면서 해외에서 인정받는 건 칭찬해야죠. 그런데 해외 수출액이나 영향력을 따져보면 게임이 훨씬 더 강력한 콘텐츠입니다. 한국 게임뿐만 아니라 그래픽과 디자인, 사운드 등 게임의 콘텐츠들 역시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같은 문화 산업인데 왜 게임만 인정받지 못하는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을텐데 유독 게임만 마약 취급을 받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김은일 대표의 말마따나 게임이 한국 문화 산업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

'2011 콘텐츠 산업 통계'에 의하면 국내 콘텐츠 산업의 수출 1위는 16억 610만 달러를 차지한 게임 분야이며, 비중은 전체 문화 산업 수출액의 절반인 49.8%에 달한다. 한류라 칭송받는 음악은 2.6%, 영화는 0.4%에 불과한 수준. 대중의 부정적인 인식과 달리 한국 게임은 세계에서 당당히 인정받고 있는 수출 1위의 문화 콘텐츠이다.




[ 출처: 2011 콘텐츠 산업 통계에서 발췌 ]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김은일 대표는 가장 먼저 대중의 사회적인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꼽았다. 게임 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때문에 게임과 관련된 모든 콘텐츠 산업이 저평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 스스로도 주변 사람들과 콘텐츠를 공유하기 어렵다는 것.

특히 게임을 마약, 혹은 사회악의 근원으로 몰아가는 부정적인 인식 아래에서는 게임과 관련된 문화 콘텐츠들마저 당당한 취미나 예술의 한 갈래로 인정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소녀시대같은 연예인 사진을 바탕화면으로 하는건 괜찮습니다. 삼촌팬이라는 말도 있죠. 그런데 게임 일러스트를 바탕화면으로 해놓으면 오타쿠라고 안좋은 취급을 받습니다. 대중들의 인식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결국 주변 사람들과 거리낌없이 게임에 대해 논하거나 콘텐츠를 공유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게임 음악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외에서는 게임 음악만으로 앨범을 발매하거나 콘서트를 개최하고 공연을 보러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취미인데, 한국에서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취미 생활의 실제 비중으로 보면 영화 못지않은 게임이 이렇게 취급받는 것은 결국 사회적인 인식의 차이가 크죠."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사회적인 인식이 게임 음악 분야까지 이어질까? 김은일 대표의 답변은 '그렇다' 였다. 특히 문화라는 것은 널리 퍼질 수 있어야 대중에게 쉽게 받아들여지고 정착되는데,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때문에 산업의 규모나 잠재력 등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제가 유명한 걸그룹의 음반에 참여했다고 하면, 크게 뜨지 못한 노래라 해도 아마 '우와~' 그럴겁니다. 그런데 유명한 게임 음악에 참여했다고 하면 '그게 뭐?'라고 하거든요. 시장의 규모나 업계 돌아가는 사정, 음악에 대한 대우같은 것을 따져보면 오히려 게임쪽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인식이 그렇습니다.

미국 대중음악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그래미상에 게임 음악이 선정되고, 일본의 오리콘 차트는 게임 음악이 1위를 차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POP음악을 듣는건 괜찮은데 게임 음악을 들으면 안되는 걸까요? 결국 게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나쁘다보니 게임에 사용된 음악이나 미술까지 저평가되고 있습니다."





[ 게임 음악 최초로 그래미상을 수상했던 문명 IV의 바바 예투 ]







한국의 게임 산업에서 음악이 중요해진 것도 불과 5~6년. 단순한 효과음 정도로만 여겨지다가 점차 게임 콘텐츠의 하나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게임앤사운드 역시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는데, 게임 자체를 사회악으로 바라보는 최근의 분위기는 지금까지의 노력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게임을 예술로 인정하면 게임에 사용되는 미술과 음악도 모두 예술로 인정받게 됩니다. 그런데 게임을 마약이라고 매도하면 게임에 사용된 콘텐츠들도 비슷하게 취급받거든요. 오히려 초창기에는 한국 게임 발전에 일조한다는 자부심이라도 있었지, 요즘은 일거리는 많은데 기운이 없달까요? 게임 관련 종사자들의 의욕이 이런 편견때문에 흔들리고 있다는게 가장 힘듭니다.

그래서 배용준씨가 일본에서 인정받으면서 한국에서 한번 더 화제가 되었듯이 미국과 일본 등에서 먼저 인정받고 이를 한국에 알리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인식이 단기간에 바뀔수 있는건 아니니 앞으로 한 5년? 게임 콘텐츠에 대한 선입견이 바뀔려면 그 정도 기간은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봅니다."



해외의 사례처럼 게임앤사운드와 함께 한국에서 게임 음악만으로 콘서트를 열어보자는 제의가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김은일 대표 역시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결국 고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게임 음악 콘서트를 바라보는 주변의 분위기. 오히려 대중 예술의 가장 큰 고민인 수익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이미 몇번 게임 음악 콘서트가 열린 적이 있었고 대부분 매진되었습니다. 수익적인 측면은 소비자층이 많은 만큼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한국에도 좋은 게임 음악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런데 게임 음악 콘서트가 열린다고 주변에 반응을 살펴보니 '고작 게임 음악이 무슨 콘서트씩이나...'라는 느낌이었죠.

연예인의 콘서트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취급을 받는 상황에 홍보부터 대관까지 힘들어서 결국 고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임 음악도 대중 예술 못지않은 노력과 열정의 결과물이고 소비자층도 충분한데 정말 아쉬웠죠. 먼저 자리잡은 선배의 입장에서 총대를 메고 작게라도 꾸준히 알리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홍대 소극장에서 게임 음악을 인디 밴드로 연주한다던가 하는 활동으로... (웃음)"





[ 한국에서도 판매된 적 있는 유명 게임 OST 앨범 ]




김은일 대표 역시 음악에 종사하는 예술인이다보니 타고난 끼를 감출 수 없어 '타이'라는 이름으로 인디 뮤지션 활동을 하고 있고 꾸준히 주변의 대중 예술가들과도 음악적인 교류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 와중에 후배들과 함께 작업을 하거나 게임 음악쪽으로 길을 알려주는 경우도 많다고.

그런데 게임과 관련된 음악이나 미술 등 한국의 게임 관련 콘텐츠가 정말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을까? 게임이 인기가 있어 수출의 규모는 크다고 하지만, 한국의 게임 음악이나 미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외부로 드러난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게임앤사운드에서 작업했던 '뮤 2' 음악의 경우 영국 출신의 믹싱 엔지니어와 함께 작업했습니다. 영화 해리 포터나 미드 24시 등의 음악을 담당하는 등 세계적인 수준의 스튜디오에 소속되었던 친구인데,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때문에 다른 곳과의 협력을 꺼리는 편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작업된 게임 음악 샘플을 보내줬더니 한국 게임 음악의 수준에 놀라더군요. 바로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받아들였습니다.

저희 스튜디오 뿐만 아니라 각 게임 회사들마다 전문적인 음악 인력들이 상주하는 곳이 많습니다. 한국의 게임 음악 분야는 벌써 세계적인 수준의 투자와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게임음악의 진출과 발전이 한류라고 따로 불러주는 K-POP 못지않은 상황인데 한국에서만 몰라주니 안타깝죠. (웃음)

일본도 자국 내의 인프라가 뛰어나지만 온라인의 발전 이후로 한국에 와서 전문가를 찾습니다. ESTi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작곡가 박진배님의 경우 실제로 유명한 일본 음악 게임의 작업에도 참여했다고 들었습니다. 중국은 한국에 와서 비용을 물어보고 놀라는 편이긴 하지만 요청이 많습니다. K-POP과 한국 게임의 성공때문에 음악적인 역량을 함께 인정받고 있죠."



김은일 대표는 게임이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 몰입에 대해서도 규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남겼다. 음악이나 미술 등 이른바 콘텐츠가 갖고 있는 몰입의 요소는 당연한 부분인데 단점에 대한 개선책을 찾아야지 아예 금지시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중독이던 과몰입이던 단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게임 뿐만 아니라 모든 콘텐츠들은 몰입할 수 있는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가수의 음악이 좋으면 모든 앨범을 구매하게 되고, 드라마가 재미있으면 몇번이고 반복해서 보죠. 몰입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사회악으로 몰아가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요즘 매스컴에서 사생팬이 문제라고 하던데, 그렇다고 아이돌의 활동을 금지시킬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유독 게임에 대해서만은 이게 당연한 일이라고 합니다. 청소년들이 게임에 빠지는 것은 그만큼 청소년들에게 게임 외에 즐길만한 문화가 없다는 뜻이지 게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게임 규제의 논리대로라면 아이돌 활동을 셧다운시켜야...? ]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현재 한국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이 쉽게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업계 종사자의 입장에서 김은일 대표에게 부정적인 사회의 인식을 개선해나갈 수 있는 해결책은 없을지 물어보니 의외로 정면 돌파에 가까운 답변이 나왔다.

"게임 일러스트가 전시회에 걸리고 게임 음악으로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사회적인 인식을 바꾸고 대중들에게 알리려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규제의 허점이나 잘못된 점을 반박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간접적인 방법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거든요. 그래서 엔씨소프트의 야구단 창단같은 활동이 장기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퍼스널 마케팅이라는 책에 보면 개인에 주목하라는 내용이 있는데, 한류 아이돌들은 개인이라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한류를 시작한 배용준이나 애플의 잡스, 저패니메이션의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김택진, 김학규, 송재경, 김형태 등 게임업계의 리더분들을 부각시키고 자꾸 대중들의 앞에 나와서 게임을 알리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 역시 처음부터 대중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고, CF가 영상 예술의 한 갈래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김은일 대표는 편견과 오해때문에 게임 산업이 힘든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당당한 문화 예술의 하나로 인정받기 위하여 게임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꾸준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영화, 음악, 아이돌, 만화, 소설... 모든 콘텐츠는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일부의 사례로 산업 전부를 매도할 수는 없는 것인데, 현재 게임에 가해지는 일련의 규제들은 방법론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긋나지 않도록 지켜만 봐도 충분한데 너무 한쪽으로만 몰아간다면 결국 반발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게임앤사운드도 벌써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국내 게임 산업의 발전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고 있다고 자긍심을 느끼면서 함께 성장해왔습니다. 이제는 중국과 일본, 미국 등 해외의 유명 개발사들에서조차 한국의 게임 음악을 높이 평가하고 있고, 게임도 한류 못지않은 세계적인 문화 콘텐츠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으니 애정을 갖고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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