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일이란 건 이미 예상했었습니다. E3 일정이 끝난 후 시애틀로 넘어가 길드워2의 개발사, 아레나넷을 탐방하기로 했을 때부터였죠. 현지 가이드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둘 다 초행이었기에 하루 전날부터 인터넷 지도를 열어 아래와 같이 나름 철두철미한 계획을 짰습니다.

1. E3 취재가 끝난 후 LA 국제공항으로 이동, 3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로 넘어간다.
2.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에서 시애틀 도심까지 전철을 탄다. 차이나타운 앞에서 하차.
3. 광역버스로 갈아타고 아레나넷이 있는 벨뷰 대학 근처까지 이동한다.
4. 맛있는 저녁을 먹고 다음 날 일정을 위해 포근한 이불 속에서 푹 잔다.


하차, 승차 지점과 전철과 버스 시각까지 미리 알아두고 나니 이 정도면 초등학생도 충분히 해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모 잇몸 약 CF처럼 "타고 내리고~ 타고 내리고~" 입에서 흥겨운 노랫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 ▲ LA에서 시애틀로 가는 비행기, 미국 국내선은 처음 타봤습니다.
만 킬로미터 상공에서 와이파이(Wi-Fi)가 잡히더군요. ]




하지만.....현실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일단 반팔, 반바지 차림의 복장부터 에러였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시애틀에 도착해보니 완전 초겨울 날씨였습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싸늘한 한기가 전해져오는데 주변에는 다들 두꺼운 "XX페이스" 점퍼를 입은 현지인뿐. 갈아입을 옷도 전혀 없었는데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멘탈붕괴가 시작됐습니다.

공항에서 시애틀 도심지까지는 전철을 타고 이동했습니다. 전철에서 내릴 때까지 옆에서 어떤 흑인이 저를 쳐다보며 소리 내 랩을 읊은 건 크게 신경 쓸 일도 아니었습니다. 환승 지점인 시애틀 차이나타운에 도착해보니 온 사방이 깜깜한데 중국인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팔자걸음을 하고 어슬렁거리는 흑인들만 보였습니다. 매우 춥고 배고팠지만 함부로 어디 들어갔다가는 갱스터 영화의 희생양이 될 것만 같았습니다.


[ ▲ 시애틀 차이나타운 입구, 이상하게 중국인보다 흑인이 더 많았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실제로도 밤에는 약간 위험한 곳이라고 하더군요. ]



거의 40분을 기다려서 겨우겨우 버스를 갈아타고 아레나넷 근처 호텔에 도착, 끼니를 해결할 곳을 찾았으나 시간이 시간인 만큼 전부 문 닫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호텔 1층 매점에서 라면 등 인스턴스 요리를 몇 개 사와 겨우 굶주린 배를 채우기로 했는데 젓가락이나 포크가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아...

면발을 지탱하기에는 너무나도 허약한 일회용 커피 스틱 두 개로 북미판 랍스타맛 컵라면을 떠먹고 있으니 아까의 매몰찬 추위가 또 생각나며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떠먹으려고 하면 자꾸 힘없이 구부려지는 스틱 때문에 너무 짜증이나 '에이씨'하며 컵라면을 벽에 던져버릴까도 했지만 결국은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그릇을 비운 후에야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간밤에 배 터지게 족발 뜯는 꿈을 꿨다는 건 우리만의 비밀입니다.


[ ▲ '랍스터 라면'이라는 것을 팔더군요. 실제 맛은 새우탕이었습니다. ]



아무튼 그렇게 시애틀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가고드디어 아레나넷을 본격적으로 탐방하는 바로 그날이 왔습니다.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 여행사에 '아레나넷' 근처의 숙소면 어디든 괜찮다며 예약을 부탁했었습니다. 그래서 대략 '가까운 곳'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아이폰 네비게이션으로 검색해보니 도보로 '2분 거리'라고 나오는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호텔을 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헐!' 바로 옆 건물 벽면에 아레나넷 로고가 보였습니다.


※ 참고로 사진이 거의 100장가량 첨부되어 스크롤의 압박이 상당합니다. 천천히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도착할 때는 밤이어서 몰랐는데 이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 건물이었습니다. ]



[ ▲ 인텔렉추얼 벤쳐스와 티-모바일 등 유명한 회사와 같은 건물을 쓰고 있었습니다. ]



[ ▲ 여기가 바로 아레나넷의 입구, 상당히 정돈된 모습입니다. ]




전화를 한 후 아레나넷에 들어서니 엔씨소프트 웨스트에서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홍지연' 씨와 아레나넷에서 인터내셔녈 PM을 맡은 '앤디 홍' 씨가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두 분 모두 한국분이고 어릴 적에 이민 와서 시애틀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아레나넷 탐방부터 개발자 인터뷰, 그리고 길드워2 베타버전 플레이까지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요,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안내를 받아 아레나넷에 들어서자마자 어디서 반가운 얼굴을 만나게 됩니다. 다름 아닌 아레나넷의 마이크 오브라이언 대표이사였는데요, 그날이 바로 길드워2 두 번째 주말 베타가 시작되는 날이었기 때문에 먹을 것을 챙기기 위해 중앙 홀로 잠시 나왔던 것이었습니다. 기자들과 기념사진까지 찍고 개발팀 옆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점심과 함께 길드워2를 즐기는 모습은 한 회사의 대표이사라기보다는 영락없는 '게이머'였습니다.



[ ▲ 한국어로 '감사합니다.~', 일행을 반겨주었던 마이크 오브라이언 대표이사
기자와 어깨동무하고 '김치'하며 찍은 매우 친근한 사진도 있는데 머리 크기 차이 때문에 뺐습니다. ]




마이크 오브라이언 대표이사와 헤어진 후 본격적인 탐방이 시작됐습니다. 아레나넷 직원들이 근무하는 공간으로 가는 길에는 유저들이 보내준 팬레터들이 한쪽 벽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 ▲ 아레나넷과 길드워 시리즈에 대한 팬들의 사랑과 열정이 정말이지 대단했습니다. ]




첫 번째로 탐방할 구역은 아레나넷의 홍보, 재무, 마케팅팀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앞으로도 쭉 보시겠지만, 각각 구역의 입구에서 해당 팀만의 강한 개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입구' 장식을 두고 팀별로 경쟁하는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 ▲ "헐, 이게 뭐지?" 보는 순간 얼었습니다. ]



[ ▲ 말로만 듣던 '양키 센스'(?) 작렬 ]




[ ▲ 사무실 입구, 길드워2 한정판 패키지에 들어갈 '리틀락' 피규어, 퀄리티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



[ ▲ 아레나넷에서 업무를 보는 공간은 다른 곳보다 조금씩 위로 올라와 있는데요,
컴퓨터나 조명 등 여러 가지 배선을 바닥 아래 설치해 보이지 않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래야 자유롭게 자리를 이동할 수 있고 팀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도 더욱 원활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



[ ▲ 더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도록, 업무공간도 일부러 좁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대신, 업무공간이 아닌 중앙 휴식 공간은 엄청나게 넓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MMO를 만드는 게임회사의 철학이 느껴집니다. ]



[ ▲ '나머지는 일반 회사랑 비슷하네!'라며 뒤를 돌아보는 순간 발견하고 깜짝 놀랐던...
재무/마케팅 부서 전원을 스타트렉의 등장인물 컨셉으로 그려놓은 거라고 합니다. ]



[ ▲ '아레나 트렉'은 뒤로 돌아앉은, 머리가 짧은 분의 작품인데 정작 카메라를 들이대도 본인은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마케팅팀을 지나 조금 옆으로 가면 조그마한 휴게실이 있었습니다. 한쪽 벽에는 다양한 서적과 각종 게임의 한정판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요, 아레나넷 관계자의 말을 빌리자면 길드워2의 한정판 퀄리티를 최고로 끌어올리려고 일부러 타사 게임의 한정판을 구입해 벤치마킹했다고 하네요.







휴게실 바로 옆문을 열고 나가니 조그만 발코니가 있습니다. 전망이 아주 끝내줬는데요. 시애틀 특성상 나무가 많아 공기가 정말 좋다고 합니다. 하늘의 구름도 슈퍼마리오가 뛰어다닐 것만 같습니다.


[ ▲ 왼쪽 저 멀리 시애틀 도심지가 보이고요, 오른쪽 끝에는 벨뷰 도심지가 보입니다. ]



[ ▲ 진짜 이런 업무환경에서는 저절로 기사가 써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








[ ▲ 복도 사이마다 길드워2의 컨셉 원화가 멋지게 걸려있었습니다.
아레나넷 전체가 마치 길드워2 전용 미술관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




멋진 미술품에 정신이 팔려 걷다 보니 어느샌가 '길드워2' 개발팀이 있는 곳에 다다랐습니다. 기자가 아레나넷을 방문했던 그날이 마침 길드워2의 두 번째 주말 베타가 시작됐던 터라 대부분 개발자가 길드워2를 플레이하며 게임 내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모니터링에 그치지 않고 유저들과 함께 채팅하면서 플레이도 하고, 다양한 피드백들을 바로바로 처리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하고 말이죠.



[ ▲ 곳곳에 숨어있는 길드워2 개발자들의 센스들 ]





[ ▲ PC방의 유저 아닙니다. 아레나넷의 개발자입니다. ]



[ ▲ 다들 손에 맥주 내지는 음료수 한 병을 들고 있는데요,
개발실 전체가 일을 한다기보다는 유저들과 즐기는 분위기였습니다. ]





[ ▲ 길드워2 프로그래머실의 분위기 ]





[ ▲ 길드워2 리드 컨텐츠 디자이너 콜린 요한슨니다.
조금 있다가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살짝 인사만 하고 지나갔습니다.
책상에 '스카이림' 한정판 드래곤 피규어가 보이네요. ]



[ ▲ 벽마다 이런 멋진 컨셉원화가 걸려 있습니다. ]



[ ▲ 길드워2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던 여성 개발자분.]



개발실 다음에 안내받은 곳은 길드워2의 스토리를 창조해내는 '작가'(Writer)분들의 영역이었는데요, 도착하자마자 깜짝 놀랐습니다. 이유는 아래 사진을 보시죠.




외부 탐방이 온다고 연락받은 작가분들이 스포일러 유출 때문에 화이트 보드를 종이로 전부 감춰놓았습니다.


[ ▲ 저만 보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저분이 안된다고 하시더라고요. ]



이제는 아레나넷의 휴식 공간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아레나넷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업무 공간은 최대한 좁게 사용하지만, 그 대신 사무실 공간의 대부분을 휴식 공간에 할애할 정도로 정말 광활합니다.






[ ▲ 시리얼부터 각종 스낵, 사탕들이 무제한 제공됩니다. ]



[ ▲ 일명 '사탕 셔틀' ]





[ ▲ 음료수도 없는 게 없습니다. 심지어는 맥주도 가득 차 있었습니다. ]



[ ▲ '컵 누들', 라면도 역시나 무제한 제공됩니다.]









[ ▲ 오렌지, 사과 등 제철 과일까지 먹기 좋게 그릇에 담겨 있었습니다. ]








[ ▲ 아레나넷은 전체 사무실이 두 층을 사용하는데 이렇게 계단으로 오르내릴 수 있습니다. ]




이제는 아레나넷 개발자들이 여가를 즐기는 곳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여기도 첫인상이 역시나 광활합니다.




[ ▲ 철권, 스트리트파이터 없는 개발회사는 잘 없죠.]



[ ▲ 명작 게임들은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가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좋은 게임들은 회사에서 직원들이 플레이할 수 있도록 일부러 구입해준다고 합니다. ]





[ ▲ 고전게임, 고전게임기도 한가득 ]





[ ▲ 보드게임, 카드게임도 없는 게 없었습니다. 거의 게임 박물관 수준이더라고요. ]



[ ▲ 고기 구워먹는 석쇠인 줄 알았는데 축구게임이라고 설명해줬습니다. 어쩐지 너무 깨끗해서... ]



[ ▲ 휴게실 입구에 있는 거대하고 엄청난 퀄리티의 차르 모형. 팬들이 손수 제작해서 보내줬다고 합니다. ]



[ ▲ http://gw.purplellama.ca/project/ 로 가면 제작과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 ▲ 엔씨소프트 홍지연 씨의 도움으로 함께 찍어보았습니다. 대략 크기가 짐작 가시죠? ]



[ ▲ 한쪽에는 탁구대가 널찌하게 놓여있었는데요, 점심내기 대회가 활발하게 이뤄진다고 하네요. ]



그다음 안내받는 곳은 길드워2의 사운드 효과를 만들어내는 자체 스튜디오였습니다. 바닥에는 온갖 종류의 회초리(?)가 놓여 있고 음산한 분위기가 들어 '혹시 개발자 고문하는 곳?"이라는 농담도 했었는데요, 실감 나는 사운드 효과를 위해 직접 다양한 도구로 직접 사운드를 제작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 ▲ 뭔가 심오한 컬렉션입니다. ]



[ ▲ 여기에 기름을 묻혀 불을 낸 다음 빙빙 돌려 게임 내 "파이어볼" 같은 화염 마법의 효과음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



[ ▲ 길드워2 사운드 효과를 책임지는 감독님, 사진찍기 부끄러워하셨지만 결국은... ]



드디어, 캐릭터와 애니메이션팀입니다. 역시나 분위기가 남달랐는데요, 참고로 길드워2 캐릭터팀 핵심멤버들은 작년 지스타 때 방한해서 '동양적 캐릭터'를 배우기 위해 엔씨소프트 본사에서 1달간 합숙 훈련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실제 게임 속 캐릭터나 컨셉 원화들이 한국 유저들이 봐도 단번에 반할 만큼 상당히 동양적으로 변했습니다.






[ ▲ 수북이 쌓여있는 차르 봉제인형들. 저 중에 2개를 선물로 주셨고 지금은 인벤 사무실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



[ ▲ 길드워2 캐릭터 팀장님, 상당히 미남이셨습니다. 쳐다보기 부끄러워서 사진이 흔들린 건 아니고요. ]







이제는 외부 환경 그래픽팀, 길드워1 라이브팀, 컨셉아트팀의 차례입니다.








[ ▲ 컨셉원화팀이라 그런지 역시 센스가 대박입니다. ]





[ ▲ 자리 뒤에 블레이드&소울과 삼국지를 품다 원화 포스터가 있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개인적으로 완전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답하셨습니다. ]







[ ▲ 동양적인 분위기의 캐릭터들. 역시 한국인 컨셉원화가의 작품입니다. ]



[ ▲ 직접 손으로 한 땀 한 땀 배경 이미지를 완성하고 있는 미모의 여성 개발자 ]



[ ▲ 시네마틱팀은 입구에 아예 시네마틱 영상의 콘티를 그려놓았습니다. ]



[ ▲ 아레나넷 탐방이 끝난 뒤에는 바로 랜달 L. 프라이스 수석부사장과
길드워2 드 컨텐츠 디자이너 콜린 요한슨과의 인터뷰가 진행되었습니다. ]



▶ [특집 2부] "개발 막바지 길드워2, MMO의 혁신 보여줄 것" 아레나넷 개발자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