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오픈월드 게임을 디자인하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성능 좋은 툴(Tool), 능력있는 개발자, 꼼꼼하고 명확한 기획... 모두 빠짐없이 중요한 요소들이지만, 스콧 필립스(Scott Phillips)는 다른 것을 먼저 꼽았다. '세인츠 로우: 더 서드'의 디자인 디렉터인 그는 '만들고자 하는 게임의 컨셉을 팀원들이 모두 이해하고 수긍하는 것'을 최우선 요소로 꼽았다.

오픈월드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그 방대한 크기만큼이나 많은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특히 '세인츠 로우' 시리즈의 게임세계는 실제 플레이 이상의 높은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스콧은 이전까지 공개하지 않았던 '세인츠 로우'의 초기 표본과 내부 동영상 자료를 토대로 그가 오픈월드 게임을 개발하면서 깨달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구체적으로는 '톤 세팅하기', '퀄리티 수준 높이기', '피처 조절'의 세 가지 과정을 언급했으며, 이에 대해 자신의 팀이 직면했던 어려움과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게임 개발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청중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 '세인츠 로우: 더 서드'의 디자인 디렉터 스콧 필립스(Scott Phillips)]



■ Setting the Tone - '톤'을 먼저 확립하라

스콧은 '세인츠 로우: 더 서드'에서 톤 세팅이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외국 개발사에서 말하는 '톤(Tone)'은 한국어로 전달하기 어려운 개념 중 하나인데, 스콧은 이를 캐릭터의 스타일 또는 작가(개발자)가 청중(유저들)이나 자기자신을 대하는 태도로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보죠. 만약 당신이 '배트맨'을 떠올린다면, 수많은 시리즈에서 등장했던 배트맨 중 어떤 것을 떠올리시겠습니까? 당신이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를 상상하듯, 누군가가 어떤 캐릭터에 대해 갖고 있는 느낌 자체가 곧 '톤'입니다. 즉, 톤이란 대한 무언가에 대한 느낌(이미지)을 정하는 기준이 되는 거죠."

그는 '세인츠 로우: 더 서드'에서 보다 일관되고 정교한 톤을 보다 효율적으로 제공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발에 참여하는 모든 팀원들로 하여금 그것을 일관되게 이해하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게임을 하는 유저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고자 하는지에 대해 만드는 사람들이 먼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그는 팀 인원의 20%만이 이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경험을 갖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새 프로젝트의 톤을 설정하고 전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컨셉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자칫 오류가 발생하면 이전까지 설명했던 내용에 대해 혼란이 발생하곤 했으며 전체 느낌부터 디테일한 부분까지 다시 설명하는 일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도입했습니다. 먼저, 브레인스토밍 미팅을 통해 '최상의 재미를 추구하자'라는 결론을 도출하고, 그것을 개발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선별하는 캐치프레이즈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팀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서로의 의견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피드백을 주면서 팀원들 개개인이 비판에 직면하도록 했죠. 또, 휴식의 차원에서 팀 단위로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습니다.

그 중 가장 효율적이었던 방법은 '톤 비디오'였습니다. 음악이나 영상물 중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톤을 잘 나타냈다고 여기는 것을 샘플로 가져와 모두에게 보여주는 방식이죠."


그는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 세팅된 톤이 곧 게임의 비전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팀원 모두가 전체적인 톤을 이해하게 되면 이미 작업의 상당 부분이 끝난 셈이라는 것이 스콧의 설명. 물론, 모든 팀원이 그 결과에 대해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 '톤'은 게임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전체적인 느낌이라고 보면 적절할 것이라는 설명]



■ Raising the Quality bar - 퀄리티 수준을 높여라

스콧은 게임 안의 모든 요소가 플레이어로 하여금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러기 위해서 요소 하나하나를 만들더라도 전체적인 톤에 부합하도록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디어 하나라도 제대로 된 게임 요소로 완성하려면 '사전 가시화(Pre-Visualation)'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비록 완성된 결과물은 아니지만, 지금 논의되고 있는 요소가 처음 설정했던 전체적 톤에 부합한다는 것을 설명하는데 매우 효과적이죠.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시각화된 자료를 제시해주는 것이 훨씬 직관적이니 말입니다."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는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다. 스콧은 전작인 '세인츠 로우2'를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궁극적인 콘텐츠가 게임 안에 뚜렷이 제시되지 않으면 유저들이 비슷한 플레이를 반복하다가 쉽게 지루함을 느낀다는 것.

"확실한 목표를 제공한다는 것은 게임에 대한 플레이어의 흥미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주는 것과 직결됩니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요소와 다소 덜 긴장되는 요소를 적절히 섞어 배치함으로써 플레이하는 사람의 흥미를 조절해줄 수 있어야 하죠."

유저에게 제공되는 긴장감은 크고 작음이 적절히 배치됨으로써 물결치는 형태의 페이스를 만들어낸다는 것. 그가 제시한 페이스 조절 원리는 Rising Action, Crisis, Climax, Pay-off, Reversal 순으로 진행되어 다시 Rising Action으로 이어지는 순환구조를 띤다. 문학에서 설명하는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5단 구조처럼, 전달하고자 하는 특정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 파도치듯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이 유저가 느끼는 긴장감과 흥미를 개발자의 의도대로 이끄는 방법]



■ Scope Control - 피처(Feature)는 적당히 조절하라

스콧은 게임을 개발하는 스튜디오가 할 일은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개발 과정에서 팀원들이 내는 수많은 아이디어들에 대해 어느 정도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톤이 잡힌 후 첫 아이디어 회의에서 나오는 것들은 거의 모두가 필요하다고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그와 그의 팀은 정기적으로 '아이디어를 잘라내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최초 설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과감히 추려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드는 게임에 추가되는 모든 피처(Feature)들이 충분히 멋지게 구현되기를 원하지만, 사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죠. 결과물의 관점에서 봤을 때 너무 많거나 크다는 판단이 들면 그것들을 과감히 잘라낼 줄도 알아야 합니다. 보다 원활한 재미를 위해서 말이죠. 어떤 이유에서든 그것이 하나의 완전한 콘텐츠가 될 수 없다면 배제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그는 '세인츠 로우: 더 서드'는 전작에 비해 훨씬 다양한 스타일의 미션을 갖췄다고 자신했다. 높은 다양성을 추구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오랫동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의도했다는 것이다.

강연 내용을 정리하면서 스콧은 이 모든 과정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게임의 톤을 빨리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또한 모든 팀원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선행되어야함을 역설하며 발표를 마쳤다.

[▲ 과유불급! 완벽하게 디자인된 콘텐츠가 아니라면 차라리 잘라내라]


[▲ 그가 작업을 진행하며 마주쳤던 어려움들과 그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디자인 노하우를 공유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