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Assassin), 그들의 신념(Creed)에 매료되다.

전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거느린 유비소프트의 '어쌔신 크리드'는 '페르시아 왕자'의 스핀 오프(Spin-off)에서 시작된 타이틀이다. 현재 1편, 2편, 그리고 브라더후드(Brotherhood)와 레벨레이션(Revelations)까지, 메인 시리즈만 벌써 4개 타이틀이 발매됐다. 또한, 각종 휴대 가능한 플랫폼용으로도 빠짐없이 출시되어 전세계적으로 3,600만 카피의 판매고를 올렸다.

게다가 만화나 영화, 소설,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로도 다루어졌다는 것으로부터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수많은 마니아들에게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천차만별의 대답이 나올테지만, 그 중에서 '역사적 리얼리티''역동성 있는 액션'은 빠뜨릴 수 없는 매력이다.

유비소프트 싱가폴 스튜디오의 이안(Ian) 프로덕션 매니저와 프랑소와(Francois) 레벨 디자인 TD는 '어쌔신 크리드: 레벨레이션'의 아트와 디자인 필러에 대해 이 두 가지를 매우 비중있게 고려했다고 전했다.

[▲ 유비소프트 싱가폴 스튜디오의 이안 매니저(좌)와 프랑소와 디자인 TD(우)]


'어쌔신 크리드: 레벨레이션', 전세계 6개 스튜디오의 특급 콜라보레이션


유비소프트는 전세계 26개 지사를 가지고 있는 글로벌 개발사다. '어쌔신 크리드: 레벨레이션'은 그 중 6개의 스튜디오가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로, 이안과 프랑소와가 속해있는 싱가폴 스튜디오에서는 스토리의 핵심 지역으로 볼 수 있는 '콘스탄티노플'과 '카파도키아' 작업을 맡았다고 한다.

이안은 유비소프트의 모든 스튜디오가 게임 제작에 있어 일관적인 개발 과정을 공유한다고 전했다. 컨셉션(Conception), 프리 프로덕션(Pre-Production), 프로덕션(Production), 테스트, 스트리트 릴리즈(Street Release)가 그것.

'컨셉션'은 실제 장소를 방문하고 현장 회의를 진행하며 그것을 토대로 프로토타입을 작성하는 단계이며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는 구체적인 제작 계획과 스케줄, 예상 규모를 설정하고 마케팅 계획을 세워 그에 따른 예산을 잡는다. 실질적 과정인 '프로덕션'에서는 플레이 테스트와 피드백 수렴, 로컬라이제이션 등을 포함하며, 알파-베타로 이어지는 테스트도 대개 이 단계에 포함된다.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 스튜디오에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었을까? 이안은 다수 스튜디오 간의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와 '의사소통'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개발 과정은 365일 24시간 내내 누군가가 관리하며 각 스튜디오마다 작업을 확실히 분담해 간섭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한다는 것.

"단 하나의 정보라도 혼란을 일으키면 모든 스튜디오의 작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확실한 분담과 철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또한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프로젝트 초반에 다른 스튜디오를 방문해 관계자들과 안면을 익혀둠으로써 이후 과정에서 필요한 관계를 구축하는 바탕으로 삼는다고 한다. 프로젝트 진행 중에는 메신저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항상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도 포인트.

이어서 마이크를 넘겨받은 프랑소와가 레벨레이션의 '디자인 필러' 작업 과정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 '어쌔신 크리드: 레벨레이션'은 유비소프트의 6개 스튜디오가 참여한 멀티 콜라보레이션 타이틀.
싱가폴 스튜디오에서는 게임의 핵심 지역인 콘스탄티노플과 카파도키아를 디자인했다고]


'필러(Pillar)'란 무엇이며, '어쌔신 크리드: 레벨레이션'의 컨셉는 어떻게 잡았나


'필러(Pillar)'란 사전적으로는 '기둥'을 의미한다. 프랑소와는 역사에 실제 존재했던 지명과 사건을 활용한 오픈월드 게임을 디자인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필러'는 그 과정에서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개념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

'어쌔신 크리드: 레벨레이션'의 컨셉을 잡는데 기준이 된 '필러'는 크게 네 가지다. '역사적 장소와 이벤트', '어쌔신과 템플러 집단 사이의 음모와 갈등', '애니머스 장비를 통한 DNA 동기화 기술', '기나긴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메타 스토리(Meta-Story : 커다란 스토리 안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스토리)'가 그들이다.

최대한의 리얼리티를 구현하라, 역사적 장소와 이벤트

프랑소와는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 등장하는 모든 장소나 사건들은 모두 실제 역사 내용에 기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약간의 변형을 가하기는 하지만 최대한 사실과 근접하게 보이도록 작업하는 것.

"모든 콘텐츠는 30초 룰에 입각해 만들어집니다. 역사적 사실이 조금이나마 왜곡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사실을 기반으로 한 것인지 알아보려면 적어도 30초 정도는 집중해야 한다는 거죠."

암살자 vs 템플러, 두 집단의 충돌하는 신념과 음모

시리즈 전체에서 다루고 있는 스토리는 물론 게임 내 배경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은 암살자 집단과 템플 기사단의 대립을 구현하고 있다. 실제 플레이를 진행하게 되는 에지오의 이야기는 물론 시리즈 전체의 핵심 인물인 데스몬드와 그를 잡으려 하는 앱스테르고 조직까지 모두 두 세력 간의 갈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

프랑소와는 자유로운 의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어쌔신들과 지배자의 위치에 서서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자 하는 템플 기사단 세력은 '자유 의지'와 '지배 권력'이라는 각자의 신념을 따르기 때문에 필히 충돌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선조의 기억에 접속하라, 최첨단 기술 장비 '애니머스'

어쌔신 크리드는 시리즈별로 알테어와 에지오라는 메인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실질적으로 전체 배경이 되는 스토리의 주인공은 그들의 후손 격인 데스몬드다.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 각각의 이야기들은 데스몬드가 선조의 DNA에 접속해 동기화한다는 설정으로 진행되는데, 이런 스토리 진행방식의 핵심이 되는 개념이 바로 최첨단 기술 장비인 '애니머스'다.

데스몬드는 애니머스를 통해 알테어와 에지오의 기억에 접속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삶 그대로를 재현하고 실제로 그들이 경험했던 것을 체험함으로써 동기화를 이루게 된다.

거대한 스토리 속 또다른 이야기, 메타 스토리

다양한 플랫폼으로 게임화됐고, 여러 콘텐츠 형태로 발매된 바 있는 '어쌔신 크리드'에는 여러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시리즈의 히어로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수천 년에 이르는 역사 곳곳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이 기나긴 시간을 아우르는 동안 각각의 인물들의 이야기가 개별로 존재하며, 어쌔신과 템플러의 대립이라는 포괄적인 요소가 그 모든 이야기들을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는 것이 프랑소와가 말하는 '메타 스토리'의 개념이다.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많은 이야기들이 이 거대한 스토리 안에 묶여 있습니다. 각각의 시리즈에서 모두 자유와 권력의 대립을 구현해왔으며, 레벨레이션에서는 러시아 제국주의를 소재로 다뤘습니다."



자연스러운 느낌을 창조하라, 디자인 필러 3가지


자유로운 달리기(Run)와 파쿠르(Parkour)

파쿠르(Parkour)란 도심의 구조물을 오르고 뛰어다니는 활동을 지칭하는 말로, '어쌔신 크리드: 레벨레이션'의 모든 애니메이션은 자유로운 달리기와 파쿠르에 기반을 뒀다는 것이 프랑소와의 설명이다.

항상 빠른 속도로 액션을 펼칠 수 있어야 하는 시리즈의 특성상 땅에서 건물, 건물 위에서 다시 땅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가급적 속도가 줄어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

"모든 건물은 기어오를 수 있는 구조물이며, 그 위에서도 땅에서와 동등한 수준의 액션을 펼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컨셉 단계부터 모든 건물 디자인이나 공간 배치 등을 미리 고려했죠."

생동감 있는 세계, 소셜 스텔스(Social Stealth)

프랑소와는 메인 스토리에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존재해야할 요소가 바로 '군중(Crowd)'이라고 말했다. 게임 속 세계를 생동감 있게 구현해내기 위해서는 플레이어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일반 군중들의 모습이 필수라는 것이다.

여기에 생동감을 더욱 살려주는 요소로 서브 퀘스트나 이벤트가 더해진다. 개인적인 부탁을 해오는 시민이라든지 플레이어의 소지품을 소매치기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도시 자체와의 상호작용(interaction)을 표현한 것.

이러한 요소들을 가리켜 프랑소와는 '소셜 스텔스'라고 칭했으며, 이는 도시에 존재하는 군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도시 내부를 순찰하는 보통의 가드들부터, 플레이어와 적대 관계에 놓이게 되는 군사 유닛들도 이런 상호작용의 일부인 셈입니다."

Assassins vs. Templars, 대립과 갈등의 축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팬이라면 게임의 주요 스토리가 암살자 집단과 템플 기사단의 대립과 맞닿아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두 집단 사이의 갈등 관계가 플레이어들에게는 가장 뚜렷한 목표의식을 제공하며 동시에 전체 스토리 흐름에 녹아들어 있는 셈이다.

"오해하지 말아야할 부분은, 암살자 집단과 템플 기사단이 선(善)과 악(惡)으로 명확히 나누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서 각각의 가치관과 신념에 따라 살았고, 플레이어들은 단지 그들의 세계에 암살자 집단의 일원으로 초대됐을 뿐이라는 걸 분명히 이해했으면 합니다."

개발자에 의한 플레이어 컨트롤, 비밀 지역(Secret Location)

액션 어드벤처 게임을 즐길 때 보통은, 도시를 종횡무진 누비는 통쾌한 액션을 선호하는 플레이어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게임의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지는 경향이 있다는 의견이 개발팀 내부에서 있었다고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프랑소와는 게임 내 비밀 지역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보통의 넓은 도시 공간 외에도 비좁은 지하 던전이라든가 숨겨져 있는 유적, 방문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랜드마크 등 특정 환경을 배치함으로써 게임의 진행 속도를 개발자가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기존과는 별개의 미션이 부여되고 그것을 수행하는 방법과 그에 따른 보상체계까지 별도로 지정된다는 것은 게임 전체로 봤을 때 커다란 의미를 지닙니다."


역사적 현실감, 더 역동적인 전투를 지향하는 아트 디렉션


다시 마이크를 넘겨받은 이안은 아트 디렉션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언뜻 보면 디자인과 유사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며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필러'의 개념을 사용해 설명하겠다고 했다.

그는 어쌔신 크리드가 새로운 시리즈를 내놓을 때마다 이전작과 다른 게임이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레벨레이션 작업에서 이전작들과의 유사성과 연관성을 주는 방향으로 필러를 잡았다고 밝혔다.

역사 속 의미있는 장소를 직접 찾아가다

레벨레이션의 주요 지역 중 하나는 현재 터키의 수도인 이스탄불, 즉 '콘스탄티노플'이다. 이 지역을 구현하기 위해 이안과 그의 동료들은 실제 이스탄불을 방문해 수많은 사진을 찍었으며 가급적 현실성 있는 영감을 얻고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역사적인 랜드마크들을 게임 속에서도 실제로 재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실제 그 장소를 방문했던 유저들이 게임 이미지로부터 그와 같은 느낌을 있도록 말이죠.

[▲ 실제 현장에서 찍은 사진(좌)과 그것을 바탕으로 구현한 게임 내 이미지(우)]


보다 화려한 액션을 즐겨라, 후크 블레이드(Hook Blade)

이안은 레벨레이션에서 새롭게 추가된 요소로 '후크 블레이드'를 강조했다. 알테어나 에지오의 소매 속에 감춰진 암살용 검과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이 새로운 갈고리형 무기가 전투와 이동 등 모든 액션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는 설명이다.

"갈고리를 이용함으로써 달려가던 속도 그대로 뛰어올라 벽을 기어오를 수도 있고, 도시 한복판 건물과 건물 사이에 설치된 로프를 타고 빠르게 활강할 수도 있습니다. 전투를 할 때 이 갈고리를 사용해 적을 뛰어넘으면서 공격할 수도 있고, 만약 싸우기를 원치 않는다면 도망치는데도 활용할 수 있겠죠."

[▲ 보다 역동적인 액션에 초점을 두고 디자인된 후크 블레이드]


어쌔신을 상징하는 이미지, 독수리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 일관되게 지켜왔던 아트 필러는 '독수리'였다고 한다. 독수리의 날카로운 이미지를 이용해 '조용한 암살자(Silent Assassin)'의 이미지를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다. 게임 내에서 숨겨진 요소를 조사하는데 사용되는 '이글 비전'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한글판에서 '매의 눈'으로 나타나는 것은 의도치 않은 부분)

확 달라진 건물 고도, 더 좁아진 거리

이안은 콘스탄티노플은 언덕 위에 있다는 지형적 특성상 건물들의 고도가 급격한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2편에 등장했던 베네치아의 스카이뷰 스크린샷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최초로 등장하는 지하도시 '카파도키아' 또한 싱가폴 스튜디오에서 제작을 맡았다. 카파도키아는 지하도시라는 컨셉 자체만으로도 건물들이 일정한 고도를 유지한다는 설정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그래서 높은 건물과 낮은 건물이 크게는 10층 가량의 고도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도시 내 거리도 마찬가지다. 1편과 2편에서 도시의 거리에서 큰 길의 비중이 높았지만 콘스탄티노플의 길들은 대개 6미터, 심지어 3미터 폭의 좁은 골목길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 카파도키아 역시 지하도시이기 때문에 좁은 길 위주로 구현됐다.

[▲ 콘스탄티노플은 가파른 지붕의 건물들과 좁은 길이 특징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 콜라보레이션과 필러!


대규모 스토리에 대규모 콜라보레이션으로 진행된 '어쌔신 크리드: 레벨레이션'. 이 프로젝트의 키워드로 이안과 프랑소와는 '콜라보레이션'과 '필러'를 꼽았다.

디자인 부문과 아트 부문 담당자가 프로젝트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협력함으로써 대규모 멀티 스튜디오 프로젝트임에도 수월하게 진행됐고, 필러를 명확하게 설정함으로써 혼란없이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끝으로 그들은 10월 31일 출시를 앞두고 있는 '어쌔신 크리드3'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하며 강연을 마쳤다.

[▲ 에지오와 알테어, 데스몬드의 의상은 후드에 포인트를 둠으로써 유사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


[▲ 암살용 검과 같은 원리로 사용하게끔 만들어진 후크 블레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