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께 질문하겠다. 3년 정도 지속해야 하는 목표가 있다. 여러분이 스스로 세운 목표이기도 하다. 자, 그럼 여러분. 이 목표를 완수할 자신이 있는가?

자신있게 '그렇다' 라고 말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바로 며칠 동안 지속되는 임무도 버거운데, 한 목표를 향해 3년이나 달리는 것은 절대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이 달려온 길은 값지다. 피처폰 시절부터 지금까지 3년에 걸쳐, 그렇게 대중적이지도 않은 '탈출'방식의 게임을 3부작으로 연구와 보완을 거듭 거쳐왔다. 결국 결말까지 자신들이 하고 싶던 모든 이야기들을 완성해냈다. 아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으나, 이미 꽤 큰 규모의 매니아층까지 확보한 '하얀섬' 시리즈의 '비주얼샤워' 가 그 주인공이다.

시나리오가 주가 되는 게임은 모바일시장에서는 크게 인기있진 않다. 모바일게임은 일단 간단해야하고 쉬워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시리즈물이라면 전편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스토리를 모른다는 제약으로 꺼려하는 경향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착실히 목표를 위해 달려왔다. 피처폰부터 터치폰이라 불리는 과도기를 거쳐, 지금의 스마트폰에 걸맞는 어드벤처 장르를 계속 찾아온 그들의 끈기는 얼마나 놀라운가.

하얀섬시리즈의 마지막 '하얀섬 3' 을 지난 10월 중순 출시하며 스스로의 목표를 완수한 '비주얼샤워'. 피처폰 시절때부터 하얀섬을 플레이하던 한 팬으로서 그들의 여정을 칭찬해주고 싶었다. 3년 간의 이야기와 함께 그 홀가분하고도 섭섭한 표정을 보고 싶었다.



솔직히 얘기하겠다. 하얀섬 시리즈는 어둡다. 색감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물론 색감도 색감이거니와, 스토리도 그렇다. 등장인물이 막 죽어나가고 온갖 음모가 판을 친다. 부와 명예를 위해, 혹은 소중한 사람을 위해 배신도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세계에서 "ENJOY" 할 사람이 어딨겠는가.

어떤 사상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가도 궁금할 뿐더러 어떤 곳에서 이런 게임을 만드는 지도 궁금했다. 서울 충정로에 위치한 '비주얼샤워' 스튜디오를 찾아가보니 웬걸, 깔끔하다못해 포근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사무실에서 웬 젊은 신사 두 명이 인벤을 맞이했다. 시나리오와 아트를 맡고 있다는 두 사람의 소개를 먼저 들어보자.


▲ 유쾌한 두 남자, 김울 시나리오 팀장(좌), 김종국 스튜디오 파트장


김울 :
시나리오, 정확히 말하면 샌드박스 팀장 '김울' 입니다. 샌드박스라는 말이 팀 명칭으로는 좀 생소하게 들리실 거 같은데요. 어린이들에게 모래를 가득 채운 상자를 주면 그 안에서 성도 쌓고, 그림도 그리고, 물을 부어 찰흙놀이도 할 수 있는 것처럼 샌드박스 팀에서는 게임의 전반적인 모든 것을 다 해볼 수 있습니다. 어느 게임의 최초 구상부터 기획, 시나리오, 크리에이터 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팀이죠.

김종국 :
비주얼샤워 스튜디오 파트장을 맡고 있는 김종국입니다. 아트디렉터도 겸하고 있습니다. '하얀섬' 같은 어드벤처 타이틀 외에도 여러 게임들의 아트를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트디렉터는 뭐 다들 아실테니 전 저희 회사인 '비주얼샤워' 를 소개하겠습니다. 비주얼샤워 중 비주얼은 '비주얼 컴퓨팅(Visual Computing)' 이라는 분야에서 따온 겁니다. 외모를 뜻하는 게 아니라요(웃음). 비주얼에 소나기라는 뜻의 '샤워' 를 붙여, 비주얼컴퓨팅 계에 소나기처럼 확실히 영향력을 뿌릴 수 있는 업체가 되겠다는 각오가 회사 명칭에 담겨 있습니다.

비주얼 컴퓨팅은 그래픽, 비디오, 디지털 이미징 기술 등 시각적으로 사용자들에게 보다 직관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사업의 한 분야로,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게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주얼샤워에서는 비단 게임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엔진, ERP시스템이라 불리는 기업 경영의 효율을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주얼컴퓨팅 분야에서 역시나 가장 주목할 만 하고, 또 중요한 것은 바로 게임이지 않습니까? 저희도 게임업계에서 우뚝 서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중입니다.


그래, 겉은 말끔한 신사일지 모르겠으나 속은 시꺼멀지도 모른다. 이런 어둡기 그지없는 컨셉의 게임을 시리즈물로 3년간이나 만들어왔으니 말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게임을 만든 것일까? 개발 초기의 이야기와 하얀섬 시리즈의 제작 의도를 물어봤다.


김종국 :
'원숭이섬의 비밀' 이라는 게임을 들어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어드벤처 게임으로 지금 플레이해도 참 재미있는 게임입니다. 실제로도 출시된 90년대에 큰 판매량을 기록했고요. 그 게임을 보며 가능성을 점쳐봤습니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밀실탈출게임이 크게 알려져있진 않지만 충분히 시장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또 하나 크게 매력적이었던건 '논리성' 이었습니다. 관찰이나 추리를 통해 얻은 단서를 바탕으로 가야할 길을 찾는 어드벤처 게임을 통해, 우리가 세워놓은 논리를 게임 유저들에게 설득시키는 재미와 더불어 더 발전된 노하우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비주얼샤워가 어드벤처게임 분야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될거라 생각했습니다.

김울 :
모바일게임 시장에서는 아직 마이너하지만, 콘솔게임쪽에서는 '하얀섬' 과 비슷한 시나리오 중점의 어드벤처게임이 꽤 인기있는 편입니다. 콘솔게임은 패키지 형식으로 처음부터 모든 콘텐츠를 싹 마련해놓기 때문에 시나리오가 들어갈 여지도 많죠. 거기다 기기까지 살 정도의 매니아도 많아 이런 장르의 게임이라도 익숙하게 플레이합니다.

현재 모바일게임 시장은 점차 커지고 있어요. 모바일게임을 이용하는 유저층도 그만큼 늘어났다는 얘기가 되겠죠. 그렇게 늘어난 유저층 중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분들도 그만큼 더 늘어났으리라 생각합니다.



'원숭이섬의 비밀' 이라면 알고 있다. 그러고보니 비슷하다. 단서를 찾고 그를 토대로 이어질 게임 진행의 갈피를 잡는 방식은 닮았다. 근데 기자가 기억하는 '원숭이섬의 비밀'은 활발하고 경쾌한 스토리에 유머까지 겸비된 게임이다. 스릴러물이라 할 수 있는 하얀섬과는 다른데...?

▲ 포스터조차 피가 보인다. 등장인물도 자주 삭제되는 무서운 게임

김울 :
피처폰시절, 생각보다 밀실탈출 방식의 게임이 상당히 많이 출시되었습니다. 스릴러 성격의 스토리도 상당히 인기가 있었구요. 스릴러에 탈출 어드벤처, 상당히 잘 어울리잖습니까. 그간 패키지게임을 해오던 유저분들께도 참 익숙한 스토리의 게임이기도 했습니다.

단서를 찾아 진행하는 어드벤처의 원조는 역시 '원숭이섬의 비밀' 이라 할 수 있겠지만, 시대가 좀 변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저들이 좀 더 좋아할만한 장르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해 이런 컨셉을 잡은 거지요.

김종국 :
저희 멘탈도 찢어집니다(웃음). 하얀섬 초기 기획부터 3부작으로 계획했고, 시리즈의 마지막이 바로 최근 출시된 '하얀섬3' 였습니다. 피처폰부터 스마트폰까지, 참 긴 시간이었죠. 길팀장님이 말씀드린 것처럼 그 당시 유저들이 원할만한 새로운 컨셉이 필요했었고, 그게 바로 스릴러물이었습니다.

비록 정신은 피폐해졌지만 2부작까지 내놓은 마당에 끝은 봐야겠다 싶어서 3부작까지 책임지고 출시했습니다. 책임감. 그게 또 다른 어드벤처 게임인 '화이트아일랜드' 의 후속작보다 먼저 내놓은 이유입니다. 중간에 너무도 탁해진 마음을 어느 정도 정화시켜야겠다 싶어 비슷한 방식으로 플레이하지만 컨셉만큼은 밝고 코믹한 '비욘드 더 바운즈' 라는 게임도 내놓긴 했습니다.

▲ 멘붕당한 정신을 정화하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 비욘드 더 바운즈



이들도 보통 사람들이었다. 하긴, 3년 동안 어두운 게임만 생각하고 있었을테니 피폐해졌을만 하다. 그런데 또 하나 궁금한 점이 생겼다. 평범한 개발자들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하얀섬' 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을 너무나도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람간의 그 미묘한 갈등을 다룬 스릴러물이라면 응당 '사람' 의 특성을 잘 묘사해야 한다. 악인도 등급이 있지 않는가. 그 등급을 구분하려면 말투부터 외모, 대사 양까지 다 달라야 한다. '하얀섬' 은 그런 '사람' 을 잘 표현했다. 착한 이가 서서히 악인으로 변모하는 과정부터 각각 인물들의 성격 차이까지 잘 구사한 것이다. 비법이 뭘까?


김울 :
음, 제가 작문을 시작할 때였습니다. 최초로 썼던 소설을 지인들에게 보여줬는데 참 혹평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 내용인즉, '다 니 성격같다. 다 똑같다' 라는 거였지요. 그 이후 캐릭터가 뭔지 진지하게 연구해보고 여러 사람들을 관찰했습니다. 드라마나 만화 등을 보면서 캐릭터성이 돋보이는 인물들을 눈여겨봤죠.

하얀섬 시나리오를 쓰면서 각 캐릭터별 더 세부적인 성격을 많이 드러내고 싶었습니다...만 못했습니다. 콘텐츠 용량의 제약도 있고, 게임이 스토리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다보니 무산된 에피소드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캐릭터성을 더 드러내기 위해 대사가 조금 길어졌죠. 유저의 의견이 반영되어 원래의 성격이 좀 달라진 캐릭터도 있고요.



거듭 강조하지만 3년 동안 3부작을 완성해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에는 어려운 점이 꽤 많지 않았을까? 그 사이 시대도 변했고 디바이스도 그만큼 발전했기 때문에 변화에 적응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김울 :
스토리가 중심이 된 게임이다보니, 모바일 안에서 시나리오팀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보자 싶었습니다. 모바일 게임은 들고 할 수 있는 휴대성이 돋보이죠.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와 비슷한 공간을 게임 속에 배경으로 이용해, 현실에도 있을 법한 세상 속에서 힌트를 조합하고 시나리오를 풀어가며 스스로의 이야기를 완성 짓는 듯한 현실성을 주고 싶었습니다.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아까 얘기했던 각 캐릭터별 성격을 비롯해 게임 속 세상의 콘셉, 사건과 사건간의 연계성 등 고려할 게 너무 많죠. 유저들의 세계를 확장시키기고 더 몰입감을 주기 위해 많은 스토리를 요구했습니다. (김종국파트장을 돌아보며)그 결과 아트팀이 피곤하게 됐죠. 크리에이터라면 그래픽팀을 내 손발처럼 생각하라는데, 그 손발을 너무 피곤하게 다룬거 같아요(웃음).

김종국 :
엄청 많이 다툽니다. 아트팀과 시나리오팀이 생각하는 게 참 많이 다릅니다. 시나리오팀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부 풀어가지만, 아트팀 입장에서 이 기획서를 받으면 '이 많은 걸 어떻게 그리란 말이냐' 라고 생각하며 눈 앞이 깜깜해집니다. 특히 시나리오팀은 컨셉을 위해 요구하는 삽화가 불과 한 컷만에 지나가는 경우도 있곤 합니다. 허무하죠.

또 피처폰 시절이었을 때 용량제약이 많았습니다. 그림을 다 그려놓고도 용량때문에 빼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하나하나 다 그려서 리사이징하다보니 손도 매우 많이 갔구요. 다행히도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했네요. 이젠 용량때문에 슬퍼질 일이 없어서 너무 기쁩니다.



하얀섬은 기본적으로 유저들의 선택을 따른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어떤 엔딩을 보느냐도 달라진다. 예상치 못하게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고,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별 것 아니라고 넘겼던 과정이 사실 엄청난 영향을 주기도 한다. '멀티엔딩' 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 개의 선택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만 그에 맞춰 진행되는 스토리를 표현하기는 굉장히 복잡한 일이다. 도형으로 표현하는 다이어그램을 보면 알 수 있다. 두 개의 선택이 네 개의 스토리가 되고, 8개가 된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혹은 들어는 봤던)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런 복잡한 멀티엔딩을 왜 설정했는지, 어렵진 않았는지 질문을 던졌다.


▲ 말하자면, 이런 식? 이야기의 줄기가 무한대로 늘어난다

김종국 :
그 자체가 어렵습니다. 제일 큰 문제요? 분량이 늘어나는 겁니다. 그릴 것도 많아지고요. 선택지가 추가되면 어떤 질문을 먼저 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흐름이 아예 달라지고 그에 따라 그릴 장면이 매우, 매우 많아집니다.

김울 :
'화이트 아일랜드' 라는 저희 회사의 또다른 어드벤처 게임이 있습니다. 거기 보면 멀티엔딩 전에 주인공이 취조 받는 장면이 있는데, 유저들에게 여러 정보를 제공해야 하다보니 대사가 길어졌습니다. 얼마나 길어졌냐 하면, 음... 모바일 화면에서 봤을 때 약 수천 라인이었습니다. 절대 다 못넣죠. 예.

멀티엔딩을 도입하느냐 마느냐에 대해 갈등이 많았습니다. 1편에서는 게임오버라는 것이 없었지만 후에 멀티엔딩을 추가하면서 문제도 발생했구요. 어떤 엔딩을 봤느냐에 따라 다음 시리즈에서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모바일 게임에서 시나리오를 살리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였고, 유저분들에게 더 다양한 만족도를 주고 싶다는 생각에 멀티엔딩시스템을 넣기로 했습니다. 모든 개발진이 힘들었지만 앞으로 저희가 나아가야 할 방향적인 면에서는 큰 도움이 되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얀섬' 은 혼자서는 절대 깰 수 없는 게임이었다. 인터넷으로 꼭 공략을 찾아봐야 할 정도였다. 변명을 하자면 '하얀섬' 시리즈는 자체의 난이도가 상당한 편이다. 본인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동굴 공략 올려주실 용자분 ㅠㅠ' 하면서 공략을 구걸했던 것을 기억한다. 어려우면 사람들도 포기하기 쉽다. 유저층을 유지하려니까 회사 차원에서 공략 유출은 어느 정도 하지 않았을까?

▲ 이런 구조를… (※ 출처 : 네이버 블로그)

▲ 이렇게 해놨으니 알리가 있나요

김종국, 김울 :

절대, 절대 아닙니다!


김울 :
절대 회사에서 공략을 유출하지 않습니다. 공들여 만든 게임인데 금방 끝나면 허무하잖아요. 사실 전 디아블로 출시 이후 4시간만인가에 잡혔을때도 그럴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저분들은 우리 상상 이상이에요. 몇 달도 안되서 우리 게임의 공략이 여기저기 퍼지니까 후속작을 제작할 때 유저분들에게 괜히 도전의식이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적정선을 지키기 위해 개발자의 욕심을 자제중입니다.

김종국 :
'하얀섬' 을 비롯해서 저희 게임을 즐겨주시는 분들은 보통 매니아층이 많습니다. 보면요, 다운받자마자 일부러 이런저런 선택지를 골라서 다양한 엔딩이나 루트를 파헤치시는 박사님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저희가 마련한 하얀섬 게시판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바일게임 커뮤니티에서 엄청나게 많은 공략들이 불쑥불쑥 쏟아져나옵니다. 사실, 저는 유저분들이 저희가 준비한 모든 엔딩을 다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히든엔딩까지요. 유저분들을 위해 만들었으니까 말입니다.



사실 이 두 사람을 모두 처음 본 건 아니었다. 인벤에서도 취재한 KGC(한국국제컨퍼런스) 현장에서 김종국 파트장은 '그렇게 그리면 자네는 레벨링을 잃게되겠지...' 라는 비범한 제목의 강연을 펼친 적이 있다. 어떻게 그려야 유저들에게 직관적으로 보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강연으로, 자신들이 겪었던 과정과 시행 착오를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 미리 만났었다는 증거. KGC에서 강연 중인 김종국 파트장


듣다보니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고, 많이 실패도 해야 그만큼 발전한다는 것. 하긴, 하얀섬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퀄리티가 좋아지긴 했다. 얼마나 많은 역경을 거치고 얼마나 많이 보완해야 했는지 궁금했다.


김종국 :
야, 역사를 읊을 시간인가요?(웃음) 처음 만들다보니 온갖 것이 실수투성이었습니다. 그래픽이라 하면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어야 하는데 목적달성 실패였습니다. 뭐 예를 들면, 단서를 줍잖습니까. 그걸 유저분들이 한눈에 봐야하겠죠. 하지만 처음엔 이걸 주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못 줍습니다. 아예 활성화 되지 않는 것도 있고, 이야기 흐름 상 그 도구를 쓸 때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은 주울수 없어!' 처럼 굉장히 얄미운 멘트만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시행착오를 여러번 거치고, 유저분들에게 혼쭐도 나면서 어드벤처 게임을 많이 만들다보니 좀 더 세세한 부분까지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이젠 스토리진행때문에 줍지 못하는 것도 없이 유저분들의 판단에 맡깁니다. 선택을 존중하는 겁니다. '게임의 주인공은 유저' 라고 언제나 명심하면서 개발에 임하고 있습니다.

김울 :
말도 마세요. 텍스트가 많은 게임이다보니까 어느 정도의 양이 읽기 편한지, 어느 정도 스토리를 짜야하는지 갈피도 못잡았습니다. '하얀섬' 은 두 주인공이 각각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면서 추리해가며 점차 공통된 '사실' 을 찾아 가는 스토리입니다. 근데 말입니다, 저흰 기획당시에 5명의 주인공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 했습니다. 그대로 갔으면 정말... 단 두명의 주인공에 맞춘 시나리오 짜는 것도 이렇게 힘든 것을 감히 다섯개로 쪼갤 생각을 하다니, 어휴.

뭐 본론으로 넘어가서,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정말 많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큰 공은 역시 유저분들의 몫이죠. 시나리오든, 그래픽이든 유저분들의 의견은 굉장히 좋은 지침서가 됩니다.

고정팬들이 원하는 결말이 있습니다. A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던가, 주인공 모두가 목숨을 부지했음 좋겠다던가... 그런 유저들에게 끝까지 결말을 보여주고 싶어 하얀섬3을 출시한 겁니다. 뭐, 일종의 팬서비스긴 하지만 후속작에 전작의 히든엔딩을 최초로 풀었던 유저분의 이름을 등장인물에 붙여주기도 했습니다. 이미 쓰러져 있거나...뭐 그런 등장인물이긴 한데, 쨌든 등장시켰으니 팬서비스라고 인정해주세요!



비주얼샤워의 게임이 '하얀섬' 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이 나왔던 '비욘드 더 바운즈' 라는 게임도 있고, '화이트아일랜드' 라는 시리즈물도 1편은 이미 나와있다. 그런데 '하얀섬' 을 영어로 하면 결국 '화이트아일랜드' 아닌가? 거기다가 위키백과의 '하얀섬' 카테고리에도 화이트아일랜드 1은 스마트폰 용 '하얀섬1' 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설명을 들어보니 '하얀섬'과 '화이트아일랜드' 는 아예 다른 게임이었다.

▲ 화이트아일랜드는 하얀섬과 다르다! 하얀섬과는!

김종국 :
굉장히 헷갈려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하얀섬, 화이트아일랜드. 한글과 영어라는 무려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말이죠. 시나리오의 양이 많아 일부분이 삭제되면 가슴아픈 건 비단 시나리오팀만이 아닙니다. 아트팀도 그래요. 그리고 싶은 건데 효율성을 고려해야하니까 못 넣은 것이 많습니다.

하얀섬을 플레이하던 유저분들의 불만도 매우 컸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걸 일일이 다 그리고 그걸 용량에 맞춰서 몇몇 씬을 삭제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쭉 진행되는 이야기의 흐름 중에 몇몇 부분을 턱 하고 덜어낸 셈입니다. 전체적인 내용 상 스토리의 진행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소소한 부분이지만, 세부적으로 봤을 때는 이야기의 흐름이 매우 부자연스럽지요. 유저분들은 또 단박에 이런 걸 알아내시더라고요. 크게 혼쭐났습니다.

개발 중에도 모바일 디바이스는 계속 진화해 왔고, 그에 따라 그래픽 제한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우리의 기술을 최대한 풀어 집약시킬' 작품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희의 염원을 가득 담기 위해, 유저분들에게도 만족감을 드리기 위해 비슷하지만 다른 게임 '화이트아일랜드' 를 출시하게 된 겁니다.

김울 :
진짜 한이 엄청 많았습니다. 복선을 비롯해서 풀어서 쓰고 싶은 이야기는 한보따린데 그걸 못하니까요. 화이트아일랜드에서는 죄다 해봤습니다. 하얀섬과는 달라요, 하얀섬과는! 단지 리메이크 정도가 아니라 하얀섬의 세계관 속에서 거의 모든 것을 뜯어 고친 일종의 리부트(reboot)입니다.

아마 하얀섬의 이야기가 진행될거라 여기고 화이트아일랜드를 접하신 유저분들은 진짜 당황했을거에요. 경상도 사나이가 전라도 청년이 되거나, 하얀섬에서는 존재감이 한없이 0에 수렴했던 등장인물이 화이트아일랜드에서는 엄청 많이 등장한다던가, 신규캐릭터도 들어가 있고.

편하게 얘기하자면, 하얀섬과 화이트아일랜드는 평행세계입니다. 내가 선택했던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그로 인해 진행된 사건이나 선택받지 못해 펼쳐지지 않은 이야기. 아마 시나리오의 난해함으로 치면 화이트아일랜드쪽이 훨씬 우세할겁니다. 화이트아일랜드에서는 하고 싶은 걸 참 많이 했습니다. 후속작으로 나올 '화이트아일랜드 2' 역시 욕심내고 있습니다.



또 있다. 이름하여 감독판. 성인 등급을 달고 좀 더 잔인하게, 좀 더 악랄하게 좀 더 바람직한 원화 스토리를 묘사해 놓은 다른 버전도 있다. 도대체 비슷한 게임을 왜 이렇게 많이 만들어 놓은 걸까?

▲ 이것이 일반판과 감독판의 차이. 어떤게 감독판인지는 말 안해도 아시리라

김종국 :
화이트아일랜드를 만든 것과 거의 비슷한 이유때문입니다. 하얀섬에서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화이트아일랜드를 출시했지만, 어떻게보면 전혀 다른 게임이지 않습니까. 하얀섬 역시 더 발전시키고 싶었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렇고 말고요.

연령 등급, 이게 꽤 컸습니다. 모바일 디바이스도 발전했겠다, 제약도 어느 정도 줄었겠다, 등급 때문에 못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좀 더 실감나게 묘사해야 하잖아요. 스릴러 장르에 걸맞는 좀 더 섬세한 묘사, 자극적인 씬을 담은 성인버전으로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김울 :
저 뿐만 아니라 하얀섬 개발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미련이 있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당연 시나리오에 대한 미련이겠죠. 복선이나 트릭 등 좀 더 다양한 기믹도 추가하고 싶었고, 좀 더 이야기를 많이 풀어낼 수 있는 모바일 환경이 서서히 갖춰지다보니 제 이야기를 더 많이 펼치고 싶었습니다.

유저분들의 피드백은 여기서도 중요한 포인트가 됐습니다. 하얀섬 1, 풀어낼 게 많았지만 이것저것 곁가지를 쳐버린 그 게임의 뭔가 석연찮은 엔딩은 유저분들을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했습니다. 후속작에서도 스토리를 이어나가려면 어쩔 수 없이 하얀섬의 큰 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오래 플레이해주신 유저분들을 위해 감독판에서는 꽤 만족스런 엔딩을 내고 싶었습니다.



한 우물만 계속 팠다. 끝까지 팠다. 하지만 지하수는 아직도 곳곳에 많이 묻혀 있다. 아직도 더 팔 것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다음에 이들이 파게 될 다른 우물은 무엇일까? 차기작에 관해서 질문해 보았다.

김종국 :
'아직은 이런 스토리의 이러이러한 게임이 나올거야!' 라고 딱 말씀드리기는 힘드네요. 말할 수 있는 건, 밝은 콘셉이라는 겁니다. 하얀섬 3으로 하얀섬시리즈를 완결해내고 나니, 굉장히 피폐한 정신과 약해진 멘탈층이 남았습니다. 좀 달래야죠.

김울 :
뭐, 머지 않아 볼 수 있으실 겁니다. 그 뿐만 아니라, 완결 낼 건 내야겠죠. 화이트아일랜드 2도 준비중이긴 합니다. 또 이것저것 여러 이야기를 많이 담을 겁니다 (김종국파트장의 한숨소리). 이야기를 많이 담은 만큼, 그리실 것도 많겠지요. 하하.



인터뷰 전 생각했던 어두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유쾌하고 즐거운, 자신들의 일이 너무나 즐거운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만남을 마무리지어야 할 시간. 유저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와 각오를 부탁했다.


김종국 :
기자님과 처음 만났던 KGC강연에서 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저희가 지나온 부족한 점들이었고, 그걸 개선하기 위해 저희가 거쳐간 노력이었습니다. 강연을 진행하면서 저 역시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구요.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또 그 배움을 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유저분들, 하얀섬의 완결까지 오래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여러분들께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저희 대신 공략도 내 주시고, 홍보도 해주시는 유저 여러분에게 언제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여러분을 보면서 더 저희가 부족한 점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점점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김울 :
지금은 게임 시나리오를 담당하지만, 원래는 게임을 잘 하던 사람이 아니었어요. 남는 것이 없다고, 부질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직접 만들어보니까 그게 아니네요. 게임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도 이젠 알았습니다. 제가 게임을 통해 달라진 만큼, 유저분들도 좋은 영향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이왕이면, 제가 참여한 게임으로요.

요즘 게임에 대한 인식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어려운 상황이죠. 개발진에게는. 하지만 여기서 풀죽어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만드는 사람일수록, 그럴수록 더 욕심내서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유저분들에게 선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지금처럼 많이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시고, 혼내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