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슨 법무팀 김정만 대리


어떤 게임이 있었다. 얼마 후 또다른 게임이 출시됐다. 두 게임의 스크린샷을 나란히 놓고 보니 상당히 비슷했다. 우리는 그 게임에 대해 표절이다 , 저작권 침해다 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왜 표절일까?

넥슨 법무팀에서 계약검토와 법률검토를 담당하고 있는 김정만 대리의 강연은 최근 게임업계에서 화두로 올라섰던 표절과 저작권 침해에 관한 내용으로 꾸며졌다.

김정만 대리는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두 가지 게임이 비슷하다고 했을 때, 저작권 침해인지 아닌지를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일견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저작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와는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컨텐츠가 저작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지, 또 유사하다고 의심되는 부분이 저작권으로 보호될 수 있는 부분인지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 유사한 부분 자체가 게임 장르 자체의 특성은 아닌지, 양자 모두가 일정 게임을 카피한 것은 아닌지...등 여러 가지 고민을 해보지 않고서는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특히 게임의 경우 프로그램부터 동영상, 시나리오, 미술, 음악, 캐릭터, 편집까지 너무나 다양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저작권 침해나 표절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것. 김정만 대리는 어떤 게임이 표절이냐 아니냐, 혹은 저작권 침해냐 아니냐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하며, 표절과 저작권 침해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만 대리의 강연은 표절과 저작권 침해에 대한 개념 정리에 이어, 실제로 어떤 컨텐츠가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하기 위해 두 컨텐츠 사이의 유사성을 어떻게 판단하게 되는지에 대해 미국의 판례를 통해 분석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 표절과 저작권 침해의 구분

표절과 저작권 침해. 흡사한 개념으로 들린다. 하지만 두 개념은 공통점도 많지만 차이점도 많아 저작권 침해에 대해 언급하기 이전에 이 두 가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표절이란 '고의로 타인의 지적 산물을 카피하여 별개의 컨텐츠를 만들면서 출처를 감추는 등으로 하여 자신의 지적 산물인 것처럼 꾸미는 행위'를 뜻한다. 이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위이기는 하지만, 사실 불법은 아니다. 어떤 컨텐츠가 표절을 통해 생산되었다 할지라도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저작권 침해와는 뭐가 다를까? 먼저 저작물이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뜻한다. 단순히 기능이나 요소가 아닌 표현의 개념이 들어 있어야 하며, 아이디어 자체로서는 저작물이라고 할 수 없고 창작성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저작물을 생산한 저작자가 절차 없이 취득하는 권리가 바로 저작권이다.


▲ 저작권의 3가지 분류


저작권은 위의 3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 중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이 저작재산권 부문의 '복제권'과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이다. 복제권과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은 비록 복제이기는 하지만 뭔가를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에 단순히 저작물을 이용하는 행위인 공연권과 공중 송신권, 전시권과는 달리 이 두 가지 권리를 침해했는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해당 저작물 두 가지의 유사성 부분을 비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표절과 저작권 침해의 가장 확실한 기준은 고의성이 있었는가의 여부다. 표절은 고의적인 행위지만 침해는 고의를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논란이 있긴 하지만 무의식중에 다른 저작물을 베낀 경우에도 저작물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 즉 표절은 윤리적으로 비난을 받을 만한 행위지만 저작권 침해는 법률적 개념으로서의 행위인 것이다.


▶ 저작권 보호의 범위

▲ 저작권 침해와 표절의 범위


이렇듯 겹치는 부분도 분명 있기는 하나, 저작권 침해와 표절은 서로 의미하는 바가 다르므로 범위 자체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저작물이 표절로 판명되더라도 표현물이 아닌 아이디어를 카피해 온 것이라면 저작권 침해는 아니라는 것. 저작권의 보호 범위에 아이디어 그 자체는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개념이나 해법, 프로세스, 어떤 사실이나 제목, 낱개의 단어나 일반적인 구성 등도 표절했다고 할지라도 저작권 침해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대상이 아이디어일 뿐 표현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지적 산물을 카피한 것도 잘못된 행위인 것은 분명한데, 왜 이러한 부분은 저작권 침해로 인정되지 않을까? 창작성 있는 표현만이 보호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저작권의 보호 범위, 빨간색으로 표시된 D부분이 보호되는 구간이다


"창작성 있는 표현만을 보호하는 것은 저작권의 기본 이념에 의거합니다. 저작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죠. 경제적일 수도 있고, 직업이 될 수도 있는 일종의 인센티브입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도 존재합니다. 어떤 창작을 하려면 사실 전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지는 않죠. 즉 창작의 인센티브는 저작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서도 나오지만, 공정하게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해당 요소를 사용하는 데서도 나온다는 겁니다."

하지만 아이디어와 표현을 구별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미국 법원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90년대 초반, 플레이보이 지의 이미지를 무단도용하는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저작권 침해 관련 소송이 있어 직접 침해로 판결됐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이후 인터넷사업과 인터넷을 통한 상업 등이 발전해 가면서 이러한 이미지에 대한 사용이 간접 침해로 판결되었는데, 이는 시대와 정책의 변화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 것으로 시대적 요구에 맞추어 역발상으로 이를 해결한 셈이다.


▲ 표현과 아이디어의 구별



그러나 표현이라고 할지라도 저작권 침해로 규정되지 않는 사례 역시 존재한다. 흔히 쿼티(Qwerty)라고 부르는 키보드의 자판 배열은 하나의 표현 방식이지만 이에 독점권을 부여할 경우 사회적 비용이 너무 커진다. 또한 서부 영화에서 흔히 쓰이는 사막과 카우보이 등의 표현 역시 너무나 전형적인 요소들이기 때문에 저작권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런 전형적인 요소들은 게임에서도 자주 등장하는데, 이를 저작권으로 인정한다면 대부분의 게임들이 저작권 침해의 족쇄를 차게 될 것이다.


▶ 지적재산권 침해의 요건

지적재산권 침해의 요건은 주관적 요건과 객관적 요건의 두 가지로 분류된다. 주관적 요건으로는 의거성이 있었는가의 여부를 따지게 되고, 객관적 요건으로는 부당한 이용인가? 보호받는 표현을 이용했는가? 실질적으로 유사성이 있었는가?의 세가지 요건을 따지게 된다.

먼저 주관적 요건에 해당하는 의거성이란 기존 저작물의 표현 내용을 인식하고 이를 이용하려는 의사를 의미한다. 이러한 주관적 요건의 입증은 직접적인 증거 혹은 접근과 유사성을 통한 추정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게임에 세계지도가 나왔다고 하자. 세계지도의 지명 표기가 틀린 부분이 있었는데, 다른 게임에서 이 지도의 틀린 부분을 그대로 표기했다. 이러한 공통된 실수가 나올 경우 접근이 입증되지 않아도 강한 의거성을 띠게 된다. 이처럼 공통된 오류는 의거성을 입증하는 좋은 증거가 된다.

하지만 이 오류가 발생한 영역이 저작권 보호범위가 아닐 경우에는 저작권 침해라고 보기 힘들어진다. 해당 지도가 전의 게임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전혀 새로운 지도일 경우에는 저작권 침해라고 볼 수 있지만, 단순히 같은 세계지도를 썼다고 해서 그것을 저작권 침해 대상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즉 주관적 요건인 의거성과 객관적 요건인 실질적 유사성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객관적 요건에 해당하는 유사성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유사성을 판단하는 기준에는 세 가지 학설이 존재한다.



게임 두 개를 나란히 놓고 봤을때 일반적인 유저들이 혼동을 느낄 정도로 유사하다면 유사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혼동설이며, 이 때 전체적인 판단방법 즉 외관이론에 적용된다. 즉 비전문가가 저작권으로 보호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한 구분 없이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간단한 시각적 저작물이나 음악, 편집 저작물과 관련된 판단에 유용하게 사용되는데 게임의 경우 상당히 많은 요소들이 합쳐져 만들어지므로 이러한 전체적 판단방법을 주로 사용하게 된다.

김정만 대리는 이외에도 전문가가 순수한 창작 내용을 가려내고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창작설, 즉 분해적 접근방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시장에서 원작 수요를 대체하는 정도에 의해 판단하는 시장수요대체설도 존재하나 이에 대해서는 이견도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 실제 사례들

실제 게임 관련 저작권 침해 사례 역시 다양한 유형이 존재했다. 경쟁업체간 도용부터 시작해 캐릭터나 아바타의 도용, 이용자들의 불법복제부터 시작해 게임 개발 시 연예인 등의 초상권 침해, 원저작물의 2차창작인 경우 원저작물의 저작권 귀속 분쟁까지 다양한 사례를 만나볼 수 있었다.

"게임컨텐츠의 경우 다양한 요소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너무나도 복잡한 컨텐츠이므로, 유사한 요소들을 먼저 확정한 다음 보호적격이 있는 대상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미리 저작권에 보호되지 않는 요소들을 제거할 경우 편집저작권 침해에 대한 판단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