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개발 선임 부사장 크리스 멧젠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모든 프로젝트 스토리에는 그가 있다. 바로 크리스 멧젠(Chris Metzen). 그는 블리자드에서 스토리 & 개발 부문 선임 부사장을 맡고 있다. 블리자드가 내놓은 프랜차이즈들의 세계관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워크래프트 세계관을 총괄했기 때문에 하스스톤 개발에도 깊게 관여하고 있다.

굵직한 중저음의 보이스가 인상적인 크리스 멧젠은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대표적 영웅 스랄의 성우를 맡기도 했다. 물론 게임 속 목소리와는 조금 다르긴 했지만,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니 마치 눈 앞에 위대한 주술사가 서있는 듯한 착각도 든다.

제법 오랜 역사를 가진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선보인 하스스톤과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기나긴 딜레이를 거쳐 드디어 구체적인 계획에 한 발짝 더 다가선 워크래프트 영화까지, '블리자드식 스토리'를 만들어낸 장본인의 입으로 들어보았다.



워크래프트 영화의 진행 상황은 정확히 어느 정도인가?

= 기술적으로 준비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본격적인 촬영은 2014년 1월부터 시작될 예정이며, 현재는 캐스팅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15년 12월 18일로 개봉일을 발표했는데, 겨울 크리스마스에 근접해 있고 휴가를 내는 사람들도 많을 거라는 판단 하에 그렇게 했다. 18일 자체에 특별한 의미를 둔 것은 아니다.


블리자드 세계관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타락'이라는 컨셉은 영화에서도 볼 수 있을까?

= 물론이다. 어제 패널 토론을 통해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번 영화는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오크가 아제로스를 침공했을 때, 그리고 얼라이언스가 모여 호드와의 첫 대립을 이루게 되는 시절의 이야기. 아마도 불타는 군단이 오크들을 타락시키는 부분에서 방금 질문한 익숙한 키워드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워크래프트 1편인지 2편인지를 구분짓기 보다는, 로서와 듀로탄이라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두고 그에 맞는 스토리가 그려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번 WoW의 확장팩에서도, 영화에서도, '과거'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것이 나중을 위한 포석인가, 아니면 세계관을 재정립하려는 시도인가

= 영화와 WoW의 6.0 확장팩이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우선, 영화는 WoW 6.0을 거론하기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계획하던 것이다. 과거의 이야기를 채택한 것은 얼라이언스와 호드 양쪽 진영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기 위해 고민해온 결과물이다.

WoW 확장팩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컨셉을 택한 것은 WoW의 유저 중 워크래프트 원작을 해봤던 사람과 해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모두 관심을 가질 수 있을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메랄드 드림'이라는 공간을 게임이나 다른 형태로 다룰 생각이 있나?

= 에메랄드 드림은 현재 개발팀 내부에서도 매우 매력적인 공간으로 여기고 있으며, 공식적인 확장팩으로 내볼까도 생각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하자면 새로운 지역을 만들어야 하는데, 에메랄드 드림의 컨셉 상 다양한 분위기의 공간으로 나누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를테면, 초록 계통 일색의 배경으로 다소 지루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독립된 지역으로 내놓기 보다는 부차적인 인스턴스 공간 등으로 구현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스토리 영감은 대개 어떤 것에서 얻나?

= 모든 예술이 그렇듯, 어딘가에서는 영감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책이나 영화 등을 즐겨보는 편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이 바라보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곧 예술이라고 보는데, 스토리도 이와 비슷하다. 자신이 보는 관점에서 소재들을 버무려서 표현하는 것이다.

내가 무의 상태에서 곧바로 스토리나 소재를 떠올릴 수 있는 천재였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않기 때문에 다른 게임이나 스토리 등을 보면서 영감을 얻는 편이다.


여러 작품들의 제각각인 세계관을 모두 기억하려다보면 헷갈릴 때도 있지 않나

= 모든 세계관을 머리에 담고 있는 것이 어렵긴 하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 같다(웃음). 하지만 세계관들 사이에 공통된 부분들이 많아 생각보다 헷갈리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던, 인물들의 타락 및 정화와 같은 식으로 유사한 키워드들이 꽤 있으니까. 물론 어떤 사람들은 타락 에피소드에만 전문적이지 않냐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순록 멧젠 구하기'와 같은 퀘스트에 이름이 등장한 것에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나?

= 사실 내 이름이 게임 안에 쓰인다고 하면 용이라거나 거인 같은 종류에 사용될 거라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누군가 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순록에 쓰인 것도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귀여운 것을 좋아하기도 하니까.


세계관을 담당하는 입장에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은 굉장히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게임의 캐릭터들이 한 공간에서 만난다는 것은 스토리 상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하다. 또, 개막식에서 선보였던 트레일러에 등장하는 여섯 캐릭터는 어떻게 선택된 것인가.

=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넥서스라는 초차원적인 폭풍이 각 프랜차이즈의 영웅들을 끌어들인다는 설정이다. 사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의 스토리를 짜는 것에 대해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많이 갈라졌다. 결론적으로는, 어차피 '말이 안 되는' 설정이니까, 기왕이면 보다 가벼운 느낌으로 가자고 결정했다.

트레일러에 등장한 영웅들에 관해서는 약간 비하인드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모두 기존 작품들의 시네마틱 영상에 활용된 적이 있는 캐릭터들이다. 한 번 사용된 바가 있다보니 다소 작업하기도 간편했고, 익숙하게 느껴지는 영웅들을 선택하려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워크래프트 시리즈에 등장하는 영웅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좀 아쉽다.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차기작 세계관에 대해 어느 정도 구상을 해놓은 부분이 있나?

= 좋은 질문이다. 지금까지 워크래프트의 스토리는 WoW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물론 하스스톤처럼 아예 독특한 방향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스타크래프트 프랜차이즈에 온 신경을 집중하려고 계획 중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워크래프트4'에 대한 공식적인 계획은 없다. 다만, 스토리 아이디어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지 튀어나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스토리를 보다보면 플레이어들이 쓰러뜨려야하는 악역들의 스토리가 매력적이고 탄탄한 경우가 많다. 악당들에게 좀 더 공을 들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있나?

= 훌륭하면서도 색다른 질문이다. 물론 우리의 세계관에는 멋지고 선의를 가진 캐릭터도 많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의견이지만.

사실상 개발진에서는 악역 캐릭터들을 표현하기 위해 가급적 시각적 부분에 집중하는 편이었고, 착한 컨셉의 캐릭터보다는 악당 컨셉의 캐릭터들이 사실상 구현하기 더 쉬웠다.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경우, 악역들을 너무 빠르게 소비했다는 평도 많았다. 예를 들자면 '가로쉬'가 그렇다.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이면서 그때마다 '비중 있는 악역'을 만들려다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


제이나라든가 스랄 등과 같은 영웅들은 이제는 지나간 세대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 안에는 다음 세대를 이어나갈 듯한 영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우리가 주목해야할 만한 새로운 영웅이 있다면.

= 수석작가는 검은 용의 후손 래시온이 진영에 상관없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얼라이언스 진영에서는 안두인 린을 꼽을 수 있다. 앞으로 점점 성장하는, 그리고 나이가 든 모습을 선보일 것이며, 언젠가는 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부친인 바리안 린은 그리 평화로운 최후를 맞이하지는 못할 거라고 본다. 호드 진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스랄이 아이를 얻었기 때문에 그로부터 미래를 점쳐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