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작은 나라다. 그만큼 게임 개발 환경, 시장도 작고 척박하다. 특히 VR 게임은 더욱 그렇다. 지난 10일 개최된 '성남 VR 커넥트 세미나'에서도 강연자들은 어려운 VR 시장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크로아티아도 작은 나라다. 이탈리아 옆에 위치한 인구 450만 명의 나라. '시리어스 샘' 시리즈의 개발사 크로팀(Croteam)의 안테 브르돌리아(Ante Vrdelja) PD 겸 CMO는 VR 세미나를 위해 보낸 초청장에 'YES'라고 답장을 보내주었고, 크로아티아에서 흔쾌히 비행기로 14시간이 걸리는 한국까지 와주었다. 한국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김치조차 잘 모르더라) 안테PD와 크로아티아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기자는 컨퍼런스가 끝나고 짧은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시리어스 샘' 시리즈 및 '탈로스의 법칙'으로 유명한 크로팀의 마케팅 및 비즈니스, 프로듀서까지 도맡아 하고 있는 안테PD는 크로팀뿐만 아니라 크로아티아 개발자 협회(CGDA)에서도 자문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만큼 크로아티아 게임 개발 환경에 대해서는 물론, 그리고 세계 곳곳 그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본 IT 업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안테 브르돌리아 PD


허재민 기자 (이하 허재민) : 한국에 온건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안테 : 다음에 꼭 다시 돌아올 거에요(웃음)! 먼저 초대해준 인벤에게 감사합니다. 한국의 모습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특히 사람들, 오늘 강연에 와준 분들이 정말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저곳을 돌아볼 시간은 내일 하루뿐이라서, 다시 한국에 와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지스타'라는 큰 게임쇼가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그때쯤 와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같은 시기에 'Reboot Infogamer'이라는 게임 컨퍼런스가 열려서, 잘은 모르겠네요.


허재민 : 인벤은 물론,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 상태에서 저희의 요청을 수락하신 건데, 사실 조금 놀랐습니다.

안테 : 이메일에서 아주 설득적이시더라고요(웃음). 아, 그거 빼고요? 말했듯이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게 중요해요. 게임, 그리고 사업을 알리기 위해서는 말이죠. 그리고 게임은 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이 하고 있어요. 물론 각자 다를 수는 있겠지만. 한국도 그런 면에서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기회가 있다면, 갑니다. 그런 만큼 기회를 줘서 고마워요.


허재민 : 저희가 감사하죠. 크로팀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신가요?

안테 : 마케팅이 주요 업무고, 비즈니스, 프로듀서. 작은 팀인 만큼 한 사람당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허재민 : 산하 스튜디오를 지원, 협업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규모는 어떻고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테 : 저희가 처음 게임 개발을 시작했을 땐 창고에서 시작했어요. 인프라가 없었죠. 어려웠고, 힘들었어요.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20년이 걸렸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이때의 어려움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 만큼 작은 개발사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뭐든 하고 싶습니다.

인큐베이터 프로젝트는 최근 시작된 거에요. 1년 정도? 5개의 스튜디오에게 IP부터 오피스, 자금 등 지원을 해주고 있지요. 시리어스 샘 IP를 이용하는 스튜디오도 있고 전혀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팀도 있어요.


허재민 : 마케팅을 담당하시는 만큼 사업적인 부분에서도 지원을 해주시나요?

안테 : 다른 작은 스튜디오도 그렇겠지만 제가 아는 건 크로아티아니까 한정시켜 이야기해보자면, 크로아티아의 작은 스튜디오들은 게임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마케팅에는 많은 수고를 할애하지 않죠.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치부하기도 하고요. 물론 마케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에셋준비는 뭘해야 하는지 퍼블리셔를 가지면 편하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게임이잖아요. 본인 게임의 모든 부분이 제대로 되고 있는 걸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임 개발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하실지는 모르겠지만요.


허재민 :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개발사마다 사정은 다르지만요. 그럼 이제 시리어스 샘 시리즈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어요. 시리어스 샘 IP가 가지는 힘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안테 : 음, 참 난감하긴 하지만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일단 러시아에 팬들이 참 많아요. 그들이 시리어스 샘을 사랑하는 이유는 게임 내에 들어가 있는 유머 코드라고 생각해요. 근데 이번 차이나조이를 다녀와 보니 중국의 게이머들도 다르지 않더라고요. 그들도 시리어스 샘의 유머를 좋아해 주고 있었어요. 뭐, 재밌는 게임이고, 플레이하기 재밌어서... 안 좋아할 이유가 있나요(웃음)?


허재민 : 명료하네요. 강연에서 유저들이 게임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발자들이 개발과정에서 즐거운 것도 중요하다고 하신 게 기억에 남습니다.

안테 : 맞아요, 맞아요. 왜냐면 그게 다 보이거든요. 크런치모드니, 데드라인이니, 개발과정이 힘든 건 맞아요. 특히 큰 스튜디오라면 더욱 힘들죠. 음, 다시 인큐베이터 이야기로 돌아오게 됐는데, 우리가 지원하고 있는 5개의 스튜디오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어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누군가 자신의 아이디어에 정말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팀을 꾸려서 진행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그냥 모여서 진행할 수있도록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엔진이나 다양한 부분에서 서포트를 해주고 있고요. 자신의 시간에 자신만의 게임 개발에 집중할 수 있지요.


허재민 : 하지만 강연에서 짧은 기간 동안 너무 많은 게임을 출시해서 혼동이 왔다고 하셨는데요. 하나의 타이틀에 집중하는 게 중요할 수도 있지 않나요?

안테 : 음, 누구에게 물어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 같네요. 우리가 모든 걸 그만두고 '시리어스 샘4'에 집중한다고 말하면 많은 팬들이 좋아할 거에요. 하지만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해왔다면 '탈로스의 법칙'은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 우연히 나온 게임이니까요. 우리는 정말 다양한 것을 해보고 싶고, 더 할 겁니다.

우리는 고어한 FPS게임인 '시리어스 샘'을 개발한 팀이지만 동시에 철학적인 퍼즐게임인 '탈로스의 법칙'을 개발한 팀이기도 하니까요. 팬들은 같은 개발사에서 나온 게임이란 걸 알고 놀라기도 하지요. 한 게임만으로 알려지지 않는다는 게 좋아요. 전혀 다른 게임을 똑같이 잘해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럴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뿌듯하고요.


▲'탈로스의 법칙'은 '시리어스 샘4' 개발 도중 퍼즐 요소를 고민하다가 나온 게임이다

허재민 : 자부심과 기쁨이 느껴져서 멋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시리어스 샘4'가 궁금한 건 사실이거든요. 개발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안테 : 우리의 핵심 프로젝트인 것은 맞아요. 하지만 '시리어스 샘4'는 정말 우리 팀에게는 데드라인없이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에요. 음, 그 기회를 마음껏 누리고 있지요.


허재민 : 그래도 많은 분들이 기다리고 계신 데요!

안테 : 저희도 기다리고 있어요(웃음). 우리도 게이머니까 어떤지 알아요. 하지만 이런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게 아주 좋거든요. 믿어주세요.


허재민 : 탈로스의 법칙은 시리어스 샘4의 퍼즐 요소를 고민하다가 나온 작품이잖아요? 이렇게 '시리어스 샘4'에서 만나볼 수 있을 새로운 요소에는 무엇이 있나요?

안테 : 물론 있지요. 하지만 비밀입니다. 재밌는 게 무엇을 공개하고 하면 안 될지 정하는 건 저라서, 제가 말하는걸 제한해야 한다는 거죠(웃음). 이해는 하시죠?


허재민 : 물론이죠(웃음). 그럼 다른 질문을 드릴게요. '시리어스 샘 VR: 라스트 호프'는 현재 얼리억세스 단계인데, 정식 출시는 언제쯤으로 예정되어있나요?

안테 : 다음 달 말에 정식 출시할 예정입니다. 아직 오피셜한건 아닌데 공개하셔도 됩니다. 독점 뉴스를 가져가셨네요.

▲'시리어스 샘VR: 라스트 호프'의 정식 출시는 다음 달 말!

허재민 : 아이코, 감사합니다! 빨갛게 강조해둘게요! '탈로스의 법칙2'에대해서 언급이 된 적이 있었는데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나요?

안테 : 음, 사실 '탈로스의 법칙2'는 공식적으로 언급된 건 아니라서요. 우리의 CTO가 게임 컨퍼런스에서 "물론 탈로스의 법칙2를 만들어야죠!"라고 언급한 거라서. 아이디어보다는 좀 더 발전한 상태지만 '시리어스 샘4' 이후에나 나올 겁니다.


허재민 : '탈로스의 법칙' 속 한국어 번역이 다소 아쉽다는 말이 많았는데요, 앞으로 다른 작품에서는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합니다.

안테 :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서요. 전문가가 한 게 아니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알게 되었으니까 한번 확인해봐야겠네요. 여러 나라에 돌아다니면 이런 게 좋아요. 다양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거든요.


허재민 : 크로아티아의 게임 개발 환경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어요. 그리고 크로아티아 정부는 게임 산업에 어떤 지원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고요.

안테 : 크로아티아에서는 크로팀을 제외하고 VR 개발사는 두 군데 정도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일반 비디오 게임 개발사는 좀 더 많지만요.

정부 지원에 대해서 말하자면 전혀 없어요. 물론 크로아티아에 게이머는 있지만 작은 나라다 보니 구매력은 확실하지 않아요. 그만큼 99.99%는 국외로, 특히 유럽, 러시아로 진출하죠. 스튜디오마다 다르기는 하지만요. 최근에 중국 시장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지기도 했습니다.


허재민 : 크로아티아에서 열리는 게임 컨퍼런스도 있는데요. 아름다운 나라인 만큼 궁금하네요!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안테 : 4월 두브로브니크(Dubrovnik)에서 열리는 'Reboot Develop' 컨퍼런스가 있는데요, 이곳은 '왕좌의 게임' 속 배경인 '킹스랜딩'으로 유명한 곳이에요. 도시의 골목골목이 촬영지죠. 바닷가가 옆에 있는 만큼 개발자들은 요트를 타고 오기도 하고요. 그리고 다른 컨퍼런스에 비해 비싸지 않아요. 누구든 올 수 있죠.

누구든 편안하게 올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GDC에 가보니 규칙을 명시해놨더라고요. '스토킹하면 안 된다' 이런 것도 있던데. 여기서는 아주 편안한 환경이라서 그런 일은 없을 거에요(웃음). 요트 타고, 킹스랜딩도 구경하고, 게임에 대한 열정을 나누기도 하죠.


▲킹스랜딩의 촬영지!

허재민 : 와, 킹스랜딩이라니. 거긴 제가 꼭 가겠습니다(웃음). 크로팀의 멤버기도 하지만 CGDA(크로아티아 게임 개발자 협회)의 최고자문위원이기도 하시잖아요. CGDA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안테 : 크로아티아에서는 게임 개발자들이 서로 잘 모르더라고요. 처음 시작했을 때 취지는 함께 일하고 서로 나누어서 모두가 이득을 보는 제로섬(Zero-sum) 게임을 목표로 시작한 거에요. 물론 인재는 나눌 수 없지만! 크로아티아는 작고, 척박한 개발환경이에요. 그만큼 서로 경쟁하는 것보다는 같이 협력하는 게 중요하죠. 많은 부분이 달라졌고, 이젠 함께 쇼도 하고 세계 컨퍼런스에서 크로아티아 부스도 생기고. 게임 개발에서 크로아티아라는 이름을 알리고 있는것 같아요.


허재민 : 게임 개발환경, 특히 VR 개발환경은 한국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의 VR 개발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안테 : 제가요? 조언을? 어우, 어려운 질문이네요. 먼저, 재밌게 하세요. 하지만 물론 돈이 부족하면 즐거울 수 없겠지요. 지원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할수 있다면 진행하세요. 하지만 어려운 상황이라면 시장이 크기를 기다리는 게 낫습니다. 저는 VR 시장을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흥미로운 기술이고. 물론 게임 시장을 섭렵한다든가 하는건 아니지만, 산업이 돌아갈 만큼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재민 : 강연에서 '일단 게임을 출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는데요. 다소 리스크가 큰 조언이 아닐까요?

안테 : 맞아요. 리스크가 크죠. 근데 게임 개발하는 것 자체가 리스크가 커요. 지금은 더욱 그렇습니다. 트랜드는 계속 바뀌고 유저 성향도 바뀌고, 모바일 시장도 커졌고요.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이런 변화 속에서 어떤 것이든, VR게임은 물론 PC, 모바일게임까지 위험 요소가 없는 것은 없어요. 다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세요.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있는 것보다 빠르게 하는게 나아요. 많은 작은 회사들이 타이틀 하나 출시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보셨을 거에요. 뭐든지 결과물을 내야합니다. 실패하더라도 뭐라도 배울 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