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성전 클래식이 올해 출시된다"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불타는 성전이 공식적으로 출시를 예고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인기를 구사했던 때가 바로 불타는 성전인 만큼 그 시절을 즐겼던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소식일 것이다. 하지만 오리지널 클래식 때와 마찬가지로 또타는 성전이란 비아냥을 받고 있다. 보통 와우의 역사를 논할 때 대격변 전후로 세대를 나눠 리치왕의 분노까지를 구세대라 칭하는데, 어둠땅이 주력인 세대는 최신 확장팩이 아닌 클래식에 열광하는 구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이다.

리니지, 리니지2, 뮤를 비롯한 여러 국산 RPG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처음으로 외산 MMORPG가 PC방 점유율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한 때가 바로 불타는 성전이다. 보통 리치왕의 분노를 국내 와우 최전성기라 알고 있으나 블리자드를 통해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불타는 성전이 더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

당시 출시 2주 만에 약 100만 명의 유저들이 불타는 성전을 다운받았고 최대 15만 명이 동시 접속했다. 전 세계 유로 가입자 수가 800만을 막 돌파하던 시기였으니 불타는 성전의 국내 실적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유의미한 결과이기도 하다.

판다리아의 안개와 군단 시절을 거쳐 와우를 접한 이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현재에 이르러 다양하게 공개된 지표가 불타는 성전의 성적을 알려주고 있다. 누군가 오그리마 공성전투와 천둥의 왕좌, 살게라스의 무덤과 안토러스에서 인생 레이드를 했었던 것처럼 또 다른 누군가에는 검은 사원과 태양샘 레이드가 인생 레이드이므로 그 시절을 겪은 세대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게임 업계에서 이러한 클래식류의 성공은 여러 사례를 통해 흥행을 보장해 왔다. 오리지널을 그대로 재현한 클래식 서버야 두말하면 잔소리고, 리니지2 클래식 서버와 가장 최근에 출시한 아이온 클래식 서버의 인기가 이를 증명한다. 레지던트 이블 리부트도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창세기전 2와 3는 회색의 잔영이란 리메이크 프로젝트로 큰 기대를 받고 있다. 디아블로2 리저렉션 또한 많은 아재 게이머의 마음을 움직이는 중이다.



게임뿐만 아니라 가요, 드라마, 영화 등 여러 문화 활동 영역에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거나 이어 가려는 이른바 추억팔이, 재탕 콘텐츠는 아직도 매우 잘 먹히는 소재다. 추억에 대한 감수성은 공감하기 쉽고 나누기 쉬운 감정이니 말이다. 몇 년 전 무한도전의 토토가 방영 이후 전국적으로 인산인해였던 백 투 더 90's 클럽과 슈가맨을 통한 옛날 음악의 차트 역주행을 두고, 신세대가 기성세대를 손가락질하지 않는 것처럼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비난으로 승화되는 분위기는 경계해야 한다.

어둠땅에 유입된 와린이가 데나트리우스에서 '이것이 와우의 레이드구나'고 느꼈듯 우리보다 앞선 세대는 캘타스의 투 머치 토커 레이드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와우를 통해 최고의 경험을 했던 순간이 각자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런 경험과 즐거움에 우열이 있다고 보기 어렵지 않나 싶다.

대중음악은 메탈과 락이 인기였다가 사랑 타령 발라드로 넘어가더니 어느덧 아이돌이 차트를 점령하고 힙합이 대중화되는 과정을 거치며 서로를 물어뜯었다. 락은 발라드를, 발라드는 후쿠송을, 힙합은 락을 비판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트로트가 음악 방송을 점령하고 있다. 결국 돌고 도는 것이다. 요즘은 과거에 재미없다고 폐지된 예능 프로그램이 유튜브를 통해 재평가되는 시대다. 잘나갔던 영화는 수시로 재개봉하며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은다. 클래식에 많은 게이머가 모인 이유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최근에 있었던 래퍼들의 디스전만 봐도 그렇다. 속사포 랩을 퇴물이라며 디스하던 가오가이가 경솔했다고 인정한 배경에에는 대중적으로 힙합의 인지도를 높였던 아웃사이더를 인정한 옛 세대 리스너들이 있기 때문이다. 불타는 성전 또한 게임 역사에 있어 한 획을 그은 게임인 만큼, 그 시절을 즐긴 게이머들이 지지하고 있기에 출시되는 것이다.

아마 또타는 성전이라 비난하는 이들 또한 과거에 열정적으로 즐겼던 세대에 속하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사실 그 누구보다 불타는 성전을 열정적으로 즐겼기 때문에 그 추억이 훼손될까 걱정이 앞서 그런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그들도 불타는 성전의 성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까.

MMORPG라는 장르 자체가 주류에서 멀어지고 있는 요즘 시대에 과거에 흥행했던 게임이 리마스터 되거나 재출시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다. 누군가는 지겹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모험이 될 수도 있다. 우리 모두 줄기는 달라도 워크래프트라는 같은 뿌리로 시작된 게임을 즐기고 있다. 같은 근본이거늘 서로 표현의 수위를 높히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결국 문화는 돌고 도는 것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