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람항로'는 중국의 용스 인터넷기술 유한공사와 만지우 인터넷과학기술 유한공사가 공동 개발한 모에화 RPG입니다. 한자대로 읽으면 '벽람항선'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항선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국내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항선'을 '항로'로 번역해서 지칭했고, 그것이 정식 명칭으로 굳어지게 되었죠. 20세기 초중반에 활약한 군함을 의인화했다는 점에서 일본의 웹게임 '함대 콜렉션(艦隊これくしょん, 이하 칸코레)'와 유사하지만 해전을 횡스크롤 슈팅으로 묘사한 독특한 전투 시스템과 2차 세계대전을 모티브로 한 독자적인 시나리오로 차별화를 꾀한 작품입니다.

지난 5월 24일 중국에서 출시됐으며 그로부터 약 4개월 뒤인 9월 14일 '아주르 레인(アズール レーン)'이라는 명칭으로 일본에서도 정식 서비스가 되었습니다. 미소녀 게임의 본산지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2017년 12월 일본 앱스토어 1위를 달성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죠. 국내에서는 X.D 글로벌이 퍼블리싱을 맡았으며, 지난 3월 27일 양대마켓에 정식으로 출시됐습니다.

국내 출시 이전부터 일부 유저들은 '벽람항로'가 일본에서 거둔 성과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습니다. 그 중에는 출시 이전부터 일본 서버를 플레이하기도 하고, 커뮤니티 등을 만들면서 사전에 정보를 교류한 유저들도 있죠. 서브컬쳐 유저들의 특성상 커뮤니티에서 각종 정보들이 사전에 오갔고, '벽람항로'에 대해 초반에는 긍정적으로 평가를 했었지만 국내 출시 직전에는 다양한 이슈 등으로 인해서 호의적이지만은 않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일본 서버를 플레이해보았고, 이번에 한국 서버를 다시 플레이해본 입장에서 '벽람항로'에 대해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인게임 재화의 최대 활용, 그리고 확정 구매
그러나 확률형 아이템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수집형 RPG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캐릭터 획득 방법에 대한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수집형 RPG의 정체성이 다양한 캐릭터를 수집하고 육성하는 데에 있으니까요. 그리고 유저들이 다수의 게임에서 가장 많이 질타를 가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다수의 수집형 RPG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을 통해서 캐릭터를 획득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소비되는 재화 또한 유료 재화이기도 했습니다.

'벽람항로'는 확률형 아이템과 달리 게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인 '코인'과 '큐브'로 함선을 제조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제작 메뉴에는 소형함, 대형함, 특수함 세 가지로 분류되어있고, 각 카테고리별로 다른 종류의 함선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조 방식은 자신이 원하는 종류의 함선이 있는 카테고리를 선택해서 제조하면 카테고리에 포함된 종류의 함선이 무작위로 제조되는 방식이죠.


'코인'과 '큐브'는 게임 내에서 다양하게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코인을 모을 수 있으며, 혹은 '원정'을 보내서 수급할 수도 있죠. 또한 레어급 이상의 함선 퇴역시에 획득할 수 있는 훈장을 모아서 SSR급의 함선을 수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를 얻기 위해서 소모되는 비용이 비교적 적죠. 또한 확률도 비교적 높은 편입니다.


일부 게임에서 문제가 되는 스킨은 확정 구매가 가능한 단품 판매 형식입니다. 유료 재화인 다이아로 구매가 가능하지만, 다이아의 종류가 유료/무료 다이아 같은 식으로 구분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업적 달성 등으로 얻은 다이아를 모아서 마음에 드는 스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죠.


다만 '벽람항로' 역시도 확률형 아이템에서 완벽하게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우선 자신이 얻고자 하는 함선을 확률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한계가 있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장비는 확률형 아이템인 상자에서 나온다는 점이죠. 거기다가 장비 상자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의 등급마저도 확률이 적용됩니다. 즉 상자보다 한 등급 낮은 아이템이 주로 나오고, 낮은 확률로 상자와 동일 등급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이죠.


▲ 상자에선 동급 장비보다 한 단계 아래 장비가 더 높은 확률로 나옵니다

이런 점을 보면 벽람항로에서도 확률형 아이템은 있지만,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도입하면서 기존 확률형 아이템에 유저들이 가진 반감을 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서버에서 언급되고 있는 부분 중에 특정 함선을 일정 기간 동안만 획득 가능한 한정건조는 우리나라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전투의 손맛을 살린 횡스크롤 슈팅과 시스템
순수 슈팅 게임으로서의 완성도는 아쉽다


앞서 말했듯, '벽람항로'의 기반은 수집형 RPG입니다. 다양한 종류의 함선을 모아서 편대를 짜고, 그 함선들이 각자 다른 역할을 수행하면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것이 주 콘텐츠죠. '벽람항로'에서는 진형을 구분해서 전열에는 실제로 움직이면서 적의 공격을 능동적으로 피하고 공격하는 함선들이, 후열에는 직접 조작은 제한되어있지만 스킬 등으로 지원사격하는 함선들이 배치됩니다. 전열과 후열에 배치될 수 있는 함선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이에 맞춰서 다양한 함선을 고루 수집하고, 육성할 필요가 있죠.

함선의 종류가 9종류나 되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함선이 어느 위치에 서고,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파악하는 데에는 비교적 시간이 걸리는 편입니다. 처음 접했을 때는 편성 창에서 전열과 후열을 누르고 나서야 어떤 종류의 함선이 그 자리에 올 수 있는지 알 수 있거든요. 캐릭터 아이콘이 있긴 하지만 어떤 아이콘이 어떤 종류의 함선을 가리키는 것인지 확실하게 알기까지 조금 걸리는 편입니다.

▲ 함선의 종류는 다양하고

▲ 전열에 배치되는 함선과

▲ 후열에 배치되는 함선 종류가 나뉘어있습니다

횡스크롤 슈팅 방식으로 구현한 전투는 슈팅 게임으로서의 기본기를 살려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기본 공격은 자동으로 발사되지만 회피 및 스킬 사용을 플레이어가 직접 해야 하죠. 적탄을 회피하고, 탄막이 펼쳐질 때 공중지원으로 패턴을 상쇄하면서 적에게 강력한 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등 슈팅 게임의 기본적인 요소를 잘 녹여낸 구성도 인상깊었습니다.

다만 슈팅 게임으로서 더 깊이 파고들면, 부족한 점도 엿보입니다. 어뢰는 피할 수 있지만, 아군 함선의 이동속도와 적의 탄속이 상당히 차이가 나서 탄을 다 피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거든요. 이 부분은 캐릭터 육성을 통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캐릭터의 능력치에 따라 피탄되어도 데미지가 경감되고, 혹은 확률적으로 회피가 뜨기 때문이죠. 아울러 가면 갈수록 피하기 어려운 공격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컨트롤보다는 육성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편입니다.


자동전투는 슈팅 게임으로서의 정체성을 훼손했다고 보기엔 어려웠습니다. 자동전투 시에는 적에게 최대한 데미지를 넣는 데에 집중하기 때문에, 적의 집중포화 지역으로 들어가거나 어뢰 경로에서 사격할 때가 많아 대단히 비효율적이거든요. 또 캐릭터를 직접 이동해서 적과 대면하는 과정은 플레이어가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오토의존도는 높지 않은 편입니다. 다만 PVP 콘텐츠에 해당하는 '연습'이 자동으로만 진행된다는 점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죠.



가볍게 하기엔 좋지만 진득하게 하기엔 제한된 구성
숙소, 군사임무로 레벨업은 쉽지만 장비와 기름 보급은 문제


서브컬쳐 스타일 게임에서 대부분 채택하고 있는 숙소 시스템은 '벽람항로'에도 있습니다. 단순히 꾸미기 용도뿐만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그와 유사하죠. '벽람항로'에서 숙소는 함선들의 컨디션을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식량을 보급하면 식량을 소모하면서 경험치를 주는 시스템으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즉 플레이어가 직접 함선을 전장에 투입하지 않아도 육성할 수 있는 것이죠.

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군사임무에서도 경험치가 주어지기 때문에, 플레이할 시간이 많지 않더라도 비교적 쉽게 함선을 육성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은 인상깊었습니다. 일부 장시간 파견보내는 군사 임무는 경험치 효율이 상당히 높고 숙소에서 올라가는 경험치까지 포함하면, 흔히들 가는 3-4 스테이지를 원활히 돌 수 있는 레벨까지 육성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거든요.


함선을 강화하고 돌파하는 것 또한 비교적 쉬운 편입니다. 강화는 스테이지를 돌면서 자신이 사용하지 않을 노멀 등급의 함선 등을 투입해서 할 수 있고, 돌파는 동일 함선 외에도 퀘스트 보상으로 지급되는 범용형 부린이나 시제형 부린 MK2로도 가능하기 때문이죠. 다만 돌파를 하게 되면 그만큼 기름 소비가 많아지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늦추고 제한 레벨까지 육성하기도 합니다.

▲ SSR급에 구축함이라고 써있지만 전투용이 아닙니다

육성 과정에서 레벨 업 자체는 그리 어려운 편이 아니지만, 함선의 종류가 9종류인 만큼, 그만큼 장비의 종류도 상당히 다양한 편입니다. 기본적으로 몇 가지 분류가 되어있긴 하지만, 함선별로 장비할 수 있는 장착 가능한 장비가 다르기도 합니다.

이런 장비를 얻기 위해서는 보급상점에서 게임 재화로 상자를 사는 것 외에도 스테이지를 돌아서 상자와 설계도를 얻는 방법이 있는데, 상자에서는 그 다양한 장비 중에서 원하는 파트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세력의 물자가 나오기 때문에 원하는 종류의 장비를 획득하기 어렵습니다. 여기다가 전열과 후열에 배치되는 함선 종류도 다른데다가 전후열 다 합쳐서 6척이 배치되기 때문에 후반 스테이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장비를 고루 갖출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런 점은 가면 갈수록 스트레스로 다가오죠.

장비의 능력치는 단순하게 착용 시 올라가는 스테이터스가 숫자로만 표기되는 것이 아니라 사속 및 탄종, 사각 등 기타 요소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한 눈에 파악하기 어렵죠. 더군다나 장비의 성능은 단순히 스탯의 차로 결정나는 것이 아니라, 소위 '옵션'이라고 부르는 이 부분도 꽤 크게 작용합니다. 이런 부분까지 고려하면서 장비를 수집하다보면 유저의 피로도가 상당히 높아집니다. 장비를 얻는 방법은 앞서 말씀드렸듯 확률형 아이템인 상자에서 나오거나, 혹은 스테이지를 돌면서 모은 설계도로 교환하는 방식이거든요.

▲ 스테이터스에 영향을 미치는 것 외에 다른 사항들도 고려해봐야 합니다

타 게임의 활동력에 해당하는 기름은 초반에는 소모량이 적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하지만, 플레이하면 할수록 코어하게 플레이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함선을 돌파하면서 기름을 많이 소모하는 것도 있지만, 기름이 단순히 활동력일 뿐만 아니라 자원이나 시스템을 활용하기 위한 재화로도 사용되거든요. 숙소의 식량을 구매할 때 사용되기도 하고, 장기적으로 파견보내는 군사임무는 대부분 기름을 소모하기 때문이죠.

기름을 다이아몬드로 구매할 수 있지만, 그 효율이 그렇게 좋지 못한 편입니다. 자연회복 외에도 군사임무로 기름을 얻을 수 있지만, 그 양이 턱없이 부족하죠. 그래서 어느 정도 캐릭터 육성 단계가 지나고 나면 기름이 부족해져서 진득하게 게임을 붙잡고 플레이할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 기름은 생각보다 다양한 곳에서 쓰이고, 하드하게 플레이하면 상당히 부족해집니다

이런 부분은 하드하게 파고드는 성향의 유저들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입니다. 원하는 장비를 얻기 위해서는 스테이지를 반복적으로 돌아서 설계도나 상자를 모아야 하는데, 기름이 부족해져서 플레이어가 타의로 플레이를 중단해야 하기도 하죠.

레벨 디자인적으로 봤을 때 초반에는 이런 부분을 굳이 파고들지 않더라도 슈팅 게임의 느낌으로 단순히 피하면서 스킬을 쓰는 식으로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스테이지가 지나면 지날수록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캐릭터 및 장비의 육성이 필요하게 되죠. 횡스크롤 슈팅 요소를 넣었지만, 수집형 RPG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현란한 컨트롤로 피하는 것보다는 몇 번 피탄될 때 데미지를 얼마나 경감하느냐, 혹은 적에게 얼마나 데미지를 넣을 수 있느냐에 따라서 클리어 여부가 갈리게 됩니다. 캐릭터 육성은 그나마 다른 대책이라도 있지만, 장비에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하드하게 플레이하는 유저 입장에서는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성이었습니다.


장르상의 한계는 어쩔 수 없다
모에화, 로리 캐릭터 비중 등 일부 유저층은 완벽히 배제한 구성

사실 서브컬쳐에 익숙한 유저라면 모에화는 특별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냥 일러스트레이터나, 기획자가 그런 식으로 디자인했다고 넘어가죠. 하지만 모든 유저가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왜 굳이 여자아이로 표현한 거야?"라고 묻기도 하거든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여기서 다룰 부분은 아니기 때문에 자세히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의문을 가질 유저들을 위해서 모에화 게임들은 나름의 설정이나, 설명을 통해서 이러한 맥락을 최소한으로나마 이해를 시키려고 합니다. 일부에서는 모에화된 것이 아니라, 코드네임으로 해당 사물의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죠. 혹은 시나리오나 스토리를 통해서 그렇게 된 경위를 설명하기도 합니다.

'벽람항로'에서는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은 크게 없습니다. 스토리상에서는 인류의 적인 '세이렌'이 바다를 장악했으며, 이에 저항하기 위해서 인류는 군사조직인 '벽람항로'를 조직하게 되었다고 나오긴 합니다. 그렇지만 함선소녀들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죠. 초반 스토리 진행에서도 연합국을 모티브로 한 벽람항로와 추축국을 모티브로 한 적색중축의 갈등이 생기게 된 이유를 설명하긴 했지만, 그 이후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이야기를 하진 않습니다.

▲ 연합국을 모티브로 한 '벽람항로'와

▲ 추축국이 모티브가 된 '적색중축'

즉 모에화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 유저들은 애초에 배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브컬쳐에 대해 극심하게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주로 언급하는 부분인 로리 캐릭터의 비중이 벽람항로에는 체감상 높은 편입니다. 함선소녀를 전부 살펴보았을 때는 그 비중이 조금 높은 수준이지만, 로리 스타일의 함선소녀들이 낮은 등급에서는 상당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거든요. 그리고 접하는 빈도도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푸트, 얼릭, 스펜스, 다운즈, 랭글리 등 스테이지를 돌다보면 흔히 보게 될 노멀급의 함선소녀들이 대부분 그런 캐릭터거든요.


다행히(?) 모에화 미소녀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애시뮬레이션적인 요소는 크게 없는 편입니다. 서약 등 시스템이 있긴 하지만 여타 서브컬쳐 게임이 그렇듯 능력치가 오르고, 상호작용 대사가 추가되는 것 외에 큰 변화는 없거든요. 또한 시나리오 부분에서도 연애시뮬레이션적인 요소는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연합국과 추축국을 언급했듯, '벽람항로'의 메인 시나리오는 2차 세계대전의 해전을 모티브로 진행되고 있거든요. 여기에 세이렌이라는 제 3의 세력이 개입하면서, 독자적인 시나리오를 만들어가고 있죠.

▲ 인류의 적으로 등장하는 세이렌

▲ 2차 세계대전을 모티브로 한 것은 챕터 이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런 부분을 감안하고 보아도 서브컬쳐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들에게는 비교적 하드한 구성임을 부인하기는 어려워보입니다. 일본 성우의 마성도 특히나 더 심한 편이죠. 초반에 들려오는 롱 아일랜드의 기묘한 전투개시 음성은 일본 성우에 익숙한 사람이 들어도 호불호가 꽤나 갈리는 편이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다면 초반부터 그런 압박을 느끼기 쉽습니다.

원래 서브컬쳐풍 게임 자체가 일부 유저층을 배제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긴 합니다. 그 중에서 벽람항로는 그런 유저들이 기피하는 요소들의 비중이 꽤 큰 편이고, 그런 만큼 다양한 유저층에 어필할 여지가 보다 적은 편이죠. 다만 타 군함 모에화 게임와 달리 우익 요소는 배제되어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다음은 어떻게 되죠?
캐릭터, 스토리, 세계관의 3대 요소 중 한 축이 부족하다

서브컬쳐풍의 작품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캐릭터와 세계관, 그리고 시나리오입니다. 서브컬쳐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게임이나 작품을 접할 때 이 분야에 중점을 두고 보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이런 부분에 대한 애착이 지나친 나머지 자신의 애정캐만 믿고 게임한다, 라는 말이 나올 때도 많지만요.

보통 그런 스타일의 작품에서는 유저층의 이런 애착에서 비롯된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돕는 캐릭터별 시나리오나 팬서비스 차원의 이벤트 스테이지 등을 따로 마련해두곤 합니다. 유저가 캐릭터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고 재창조할 수 있는 여지를 주면서, 유저가 더욱 게임 속 세계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혹은 유저가 캐릭터의 반전매력이나 숨은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그 캐릭터의 팬이 되도록 유도하거나 하기도 합니다.

'벽람항로'에서도 그런 콘텐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롱 아일랜드의 항시 임무인 '유령 씨는 노력하지 않아'가 있죠. 만사태평하고 느긋한 데다가 소파족 기질이 있는 롱 아일랜드의 특징을 잘 풀어낸 에피소드로, 각종 패러디를 더해서 소소한 재미를 이끌어내기도 했죠.

▲ 롱 아일랜드의 에피소드를 다룬 '유령 씨는 노력하지 않아' 임무

그렇지만 정작 문제는 작품을 이끌어갈 메인 스토리가 적다는 점입니다. 3-4 이후에는 메인 스토리가 이어지지 않거든요. 2차 세계대전을 모티브로 한 만큼, 스테이지에 붙은 주요 격전지를 통해서 이를 대강 유추해낼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런 부분은 아직 서비스 초기임을 감안할 때, 앞으로 지켜봐야 할 부분입니다. 다만 '벽람항로'는 여러 면에서 유저가 이 게임을 붙들고 있게 할 요소가 적은 편입니다. 활동력이 부족한 데다가 연습전투나 데일리도 횟수가 제한되어있거든요. 뿐만 아니라 함선소녀들은 반복사냥 외에도 다양한 시스템을 활용해서 육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보니 진득하게 붙잡아둘 이유가 딱히 없는 편이죠.


시스템은 갖췄지만 예고된 콘텐츠가 적은 '벽람항로'
앞으로 닥쳐올 역경을 이겨내고 순항할 수 있을까


모에화나 로리 캐릭터 등의 요소들을 제외하고 본 '벽람항로'는 나름 괜찮은 게임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플레이어가 직접 캐릭터를 조작해서 회피하고 스킬을 사용하는 맛을 살려냈으며, 캐릭터의 육성을 보조하기 위한 시스템도 나름 잘 갖췄거든요.

경쟁 요소를 담지 않는 미소녀 게임 중에서 드물게 PVP 콘텐츠인 연습을 추가했지만, 그로 인해서 과열된 양상을 보이지 않게끔 체계를 갖췄습니다. 일반적으로 PVP에서 채택하는 패배 시 감점되는 제도를 없앤데다가, PVP 콘텐츠로 주어지는 보상이 유료 재화가 아니거든요. 또한 일정 수준의 PVP 재화만 모으면 누구나 최상등급 보상을 얻을 수 있게 구성했기 때문에 초보 유저들이나 라이트 유저들도 가볍게 보상을 얻기 위해 참여할 수 있도록 했죠

▲ PVP에서 패배시 페널티를 없애고

▲ 보상을 인게임 재화로 한정해 과열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렇지만 '벽람항로'는 하드하게 플레이하기 어려운 데다가, 쉽게 나가떨어지도록 구성이 되어있다는 것이 치명적인 단점입니다. 앞서 말했듯 활동력이 그리 넉넉하게 주어지는 편이 아니고, 활동력을 보급받을 방법도 그렇게 크진 않거든요.

거기다가 메인 시나리오 부분은 타 서버에서도 이는 계속해서 단점으로 지적됐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시나리오가 중간에 끊겨버리기 때문에 더 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이죠. 서브컬쳐 유저들이 중요시하는 요소인 캐릭터, 스토리, 세계관 중 두 축과 연관된 부분이 부실하다는 것이니까요.

▲ 3장 이후의 스테이지는 시나리오 없이 전투만 진행됩니다

'벽람항로'는 다른 수집형 RPG가 그러하듯, 어느 정도 시점이 지나면 캐릭터를 더 강하게 육성하기 위해서 반복사냥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반복사냥을 하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다음에 추가되는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뒷이야기를 보기 위한 것도 있습니다. 그 부분에서 '벽람항로'는 상당히 아쉬운 편이죠. 거기다가 국내 서버에서는 초반부터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명량, 노량 서버의 보상 지급 실수나 무한 로딩 버그, 잦은 렉 등으로 인해서 유저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했죠.

국내에서 흔히 말하는 '오타쿠 게임'에 대한 인지도 및 인식은 현재까지도 그리 좋지만은 않습니다. 유저 간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고, 캐릭터를 성상품화한다고 비판을 받거나 일부 유저들이 해당 게임을 경멸적인 단어로 표현하기도 하죠. 다만 이와 같은 게임들은 어느 정도 이상의 게임성과 캐릭터성, 몰입하기 위한 다양한 요소를 갖추면 충성도 높은 구매층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대신 이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다른 대체제에 유저를 빼앗기기 쉽다는 리스크가 있죠. 과연 '벽람항로'가 국내에 안착해서 긴 여정을 이어갈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