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제2의 도시이자, 러시아에서 가장 예술이 발달한 도시입니다. 핀란드에서 기차로 당일치기 여행이 될 정도로 가깝다 보니 구소련 시절에도 문화적 개방이 빨랐고, 많은 명곡을 남긴 '키노'의 보컬이자 한국계 소련인 '빅토르 최'도 상트 페테르부르크 출신입니다. 그리고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는, 다소 생소한 박물관이 하나 있습니다. 구소련 시절의 전자오락 기기들을 모아둔 '소비에트 아케이드 박물관'이죠.

구소련과 아케이드 게임장 하면 뭔가 안 어울리는 것 같지만 사람들은 어떻게든 놉니다. 10여년 전 훈련병 시절엔 속옷 포장용 종이를 잘라 화투를 만든 기억이 납니다. 1주일간 총 20시간밖에 못잤던 해외출장에서는 밥먹으면서 모바일 게임이라도 했습니다. 어떻게든 놀긴 논다는 거죠.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요람인 소련에서 전자오락이라니 어떤 느낌일까 싶지만, 사실 소련은 의외의 게임 강국(?)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인 '테트리스'가 구소련의 프로그래머인 '알렉세이 파지노프'의 작품이니까요.

하여튼,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내를 잘 뒤지다 보면 이 '소비에트 아케이드 뮤지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워낙 골목 깊이 숨어있는데다 대문은 생소한 키릴 문자로 적혀 있어 저희는 미리 검색을 해서 주변을 뒤진 끝에야 찾아낼 수 있었죠. 그러니까 지금부터 족히 30년 전입니다. 구소련이 그냥 '소련'이었던 시절, 그들은 어떤 게임을 하고 놀았을까요?

※ 기기의 모습을 담다 보니 세로 사진이 많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무슨 공장 찾아가듯 골목 속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소비에트 아케이드 뮤지엄'

▲ 입구 옆에는 30년 전 음료 자판기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아직 작동합니다.

▲ 내부에 들어서면 가이드가 설명을 해줍니다.

위 사진에도 보이는 이 음료 자판기는 따로 컵 홀더가 있어 마실 사람은 바로 컵을 가져다 먹는 식인데, 지금은 컵을 따로 주지만 30년 전에는 감염이고 위생이고 신경도 쓰지 않아 하나의 컵으로 불특정 다수가 이용했습니다. 나오는 음료는 '크바스(квас)'라는 전통 음료인데, 시음해본 네덜란드 친구는 탄산수에 흑빵을 절여둔 채 3주쯤 숙성시킨 것 같은 맛이라는 평을 남겼습니다.

▲ 고대적 오락용 포토부스입니다. 무려 아날로그 흑백 사진이 나옵니다.

▲ 지옥에서 온 것 같은 아동용 로데오. 타려다가 직원의 러시아어와 영어가 섞인 고함을 들었습니다. 7세 미만만 됩니다.

▲ 무지막지한 순발력이 필요한 게임

▲ 공 떨어지는 순간 바닥문이 열리면서 떨어진 후 저 광대 아저씨가 기다릴 것 같은 핀볼

▲ 그다지 비싸지 않은 돈을 주고 코인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저렇게 성냥갑에 담아 주는데 성냥갑은 그냥 가져도 됩니다. 안 쓴 코인은 반환해야 하지만요.

▲ 묵직한 주석 체스입니다. 훈수두는 얄미운 녀석을 응징하기 좋습니다.

▲ 이건 꽤 재밌습니다. 순발력을 겨루는 농구 게임

▲ 막대로 막대를 치는... 자치기 같은건데 잘 모르겠습니다. 아시는분 제보좀...

▲ 그리고 그 자치기를 전자오락으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 고대의 월드오브탱크

▲ 고대의 월드오브워쉽

▲ 고대의 e스포츠(물리)

▲ 나..나도 도전..!

▲ 고대의... 아 이건 그냥 스포츠네요.

▲ 군사 장비나 무기를 소재로 한 게임이 많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탱크, 전함 등 군사 장비를 테마로 한 게임이 많습니다. 가이드의 말로는 당시 소련이 집중적으로 투자하던 부분이 이 부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종간도 군용 장비의 그것을 따라가게 되고, 소재들도 그쪽으로 몰리게 되었답니다.

▲ 갤러그를 몰래 들여다가 하는 소련인들도 제법 있었다더군요.

▲ 위에 e스포츠라고 올린 게임입니다. 펀치머신과 비슷하게 힘에 따라 점수가 나오고, 점수에 따라 등급이 나뉩니다.

▲ 누카 캔디가 나올 것 같아요...

▲ 박물관 앞에 주차되어 있던 클래식 카. 묘하게 배틀그라운드 느낌이 납니다.

▲ 한 시간 30분 정도면 넉넉하게 놀 수 있습니다. 입구로 나오니 '피의 성당(Храм Спаса на Крови) '이 살짝 보이네요.

▲ 그날 저녁 찾아갔던 다른 박물관입니다. 러시아의 박물관은 다 체험형이더군요.
두 발로 들어갔다가 네 발로 나올뻔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