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그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단어다. 인간이 극복하지 못하는 필연적인 한계를 아무렇지 않은 듯 넘어버리는 '마법'. 현실에서의 족쇄를 잊고자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유명한 상상의 결정체일 것이다.

어릴 적 참 많이 상상했다. 내 두 다리에 바람의 힘이 휘감겨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불과 얼음을 자유롭게 다루는 대마법사와 같은 나의 모습을. 비록 현실에선 두 다리 다 성실하게 땅을 디디고 있고, 불이라고는 가스레인지 밖에 다룰 줄 모르지만 그런 덧없는 상상이 날 즐겁게 만들곤 했다.

J.K. 롤링의 유명 소설 해리포터에서는 머글이란 표현이 나왔다. 마법을 쓰지 못하는 자들을 일컫는 단어다. 해리포터가 유명세를 타면서 다양한 매체에서 머글이란 표현이 사용됐다. 일반적이고, 세상의 이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 우리는 모두 머글이다.

최근 인디 게임 개발사 프롤레타리아에서 개발한 스펠브레이크(Spellbreak)는 머글만의 상상력을 한껏 담아낸 게임이다. 불을 다루고, 얼음을 다루며 각종 속성을 조합해 다채로운 마법 대전을 펼치는 스펠브레이크. 우리가 지금까지 만나왔던 그 어떤 배틀로얄과도 다른, 반란을 꿈꾸는 머글들을 위한 유쾌한 생존 활극이다.






초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앳된 얼굴과 신장, 눈썹을 살짝 가리는 후드 차림, 스펠브레이크에 마주한 캐릭터의 인상은 얼핏 '젤다의 전설 : 야생의 숨결'을 연상시켰다. 깔끔하고 동화 같은 느낌을 풍기는 파스텔톤 그래픽 역시 여타 배틀로얄 게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색다른 감각이었다.

이러한 감각은 전장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동화의 한 장면 같은 토네이도와 밝게 타오르는 화염,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뭉게뭉게 퍼지는 독 구름 등 흡사 동화책 속으로 들어온 느낌마저 들곤 한다. 여기에 다양한 마법이 곁들여지니 그야말로 '신난다'.

게임의 규칙은 간단하다. 고립된 섬에서 30명의 마법사들과 전투를 펼치며 최후의 1인 혹은 스쿼드로 살아남으면 된다. 그저 총 대신 마법 건틀릿이, 붕대 대신 포션이 놓여있을 뿐이다. 맵을 점차 좁혀오는 원형의 장막 역시 그대로 존재한다.

하지만, 스펠브레이크는 캐릭터에 강렬한 개성을 부여했다. 플레이어는 전장에 진입하자마자 2종의 직업을 골라 색다른 특성을 지니고 시작하게 된다. 11종의 직업 중 2개를 골라 다양한 패시브 스킬을 배울 수 있으며, 해당 패시브 스킬은 게임 내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템페스트와 파이로맨서를 선택해 공중 전투에서의 유리함과 회복 능력을 동시에 갖출 수도 있으며, 스캐빈저와 크랙 샷으로 아이템 발견, 적 타겟팅 등 다양한 유틸리티를 챙길 수도 있다.

▲ 부활, 회복 등 강력한 효과를 갖춘 조건부 패시브 스킬

직업은 액티브 공격 스킬을 별도로 포함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공격과 액티브 스킬은 캐릭터가 장착한 건틀릿을 따라간다. 불을 다루는 파이로맨서가 얼음 건틀릿과 바람 건틀릿을 착용했다면 별다른 어드밴티지를 받지 못한다.

이처럼, 본인의 직업을 선택한 후 해당 직업에게 유리한 속성의 건틀릿을 발견해 착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서브 건틀릿은 메인 건틀릿과 유리한 시너지를 발생시켜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날 수 있게끔 조합을 중시해야 한다.

스펠브레이크는 독특하게도 마법 간의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토네이도 마법에 불꽃 공격을 하면, 불꽃 토네이도가, 독공격을 하면 독 토네이도가 되는 방식이다. 이 외에도 독 구름에 얼음 공격을 해 독 구름 자체를 얼릴 수도 있고, 불꽃 공격으로 폭파시키거나 바람 공격으로 날려버릴 수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속성과 스킬의 조합으로 창출되는 변수는 스펠브레이크만의 이색적인 특징으로 단순한 에임 싸움이 아닌, 창의력의 대결로 이어진다.

▲ 다양한 조합이 가능한 스펠브레이크의 마법

▲ '불'과 '독'의 조합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현재 스펠브레이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창의성을 활용할 의미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상대방과의 숨 막히는 싸움 중 구태여 마법을 조합하느니 재빠른 평타가 훨씬 효율적이고 강력하다. 솔직히, 조합 마법을 제대로 활용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아주 근본적인 문제 탓에 직업과 건틀릿을 신중히 고른다 해도, 그 성능을 십분 활용하기가 어렵다. 사실상 좋은 사거리와 탄속을 지닌 라이트닝 건틀릿과 체공 기능을 가진 윈드 건틀릿 위주로만 사용되는 게 사실이다.

또한, 직업의 활용도가 무작위로 획득하는 건틀릿에 좌우된다는 점 역시 치명적인 단점이다. 예를 들어, 얼음 건틀릿을 주무기로 삼고, 파밍을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 프로스트 본과 스캐빈저를 직업으로 선택했다면 패시브 스킬의 활용을 위해 반드시 얼음 건틀릿을 얻어야만 한다. 모든 직업은 패시브만을 보유하고 있기에 얼음 건틀릿을 획득하지 못하면 사실상 맨몸으로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배틀로얄 장르에서 파밍 단계는 어느 정도 운에 좌우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나, 게임의 가장 큰 정체성인 직업의 존재 의미 자체가 흔들리는 건 문제가 있다. 핵심 시스템이라기엔 너무나 수동적이다.

아울러 또 한 가지의 아쉬움은 배틀로얄의 문법을 그대로 따라갔다는 점이다. 11가지의 직업과 마법의 조합이라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곁들였음에도, 배틀로얄의 문법만큼은 너무 충실히 구현했다. 솔직히 말해 이제는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수준이다.

굳이 하늘에서 낙하할 필요가 있는지, 굳이 주기적으로 그리고 꼭 원형으로 존을 좁혀와야 하는지, 파밍은 꼭 무작위로 흩뿌려진 아이템을 주워야만 하는건지, 참 의문이다.

물론, 이러한 문법을 지키면 유저들이 게임에 금방 적응한다는 강점이 있다. 하지만, 색다르지 않다. 봐도 너무 많이 봤다.

이번 알파 테스트는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긴 것이 사실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넘쳐났고, 전세계 게이머에게 크게 어필할 가능성도 엿보였지만 게임 내에 이를 제대로 녹여내지 못한 점, 배틀로얄 장르로서의 문법과 그에 따른 한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점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하지만 개선의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한다. 향후 마법의 조합이 다채로워지고, 활용성이 강화되면 색다른 재미가 창출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직업 체계와 밸런스가 보다 제대로 잡히고, 스펠브레이크만의 생존 시스템이 추가되면 남다른 차별성을 지닌 독보적인 배틀로얄 게임으로 재탄생할 것으로 기대한다.

머글들의 유쾌한 반란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