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노스 가스퍼 PD(우)와 파웰 워즈 AD(좌)

  • 주제: 전장의 낭만, '토탈워: 삼국'의 정수를 만들다
  • 강연자 : 야노스 가스퍼, 파웰 워즈 - Creative Assembly / PD, AD
  • 발표분야 : 포스트모템
  • 강연시간 : 2019.11.14(목) 13:00 ~ 13:50

  • 2019년 11월 14일, 부산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진행된 'IGCXG-CON' 1일차에서 올 한해를 뜨겁게 달군 대전략 시뮬레이션인 CA(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 Creative Assembly) '토탈워: 삼국'의 개발 과정을 되짚는 강연이 진행되었다. 연단에는 토탈워: 삼국의 디렉터인 '야노스 가스퍼(Janos Gasper)'와 아트 디렉터인 '파웰 워즈(Pawel Wojs)'가 자리했으며, 토탈워: 삼국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맞이한 과제와 이를 해결한 과정을 하나씩 천천히 풀어냈다.

    '토탈워: 삼국'은 동양권에서 수없이 많은 미디어로 재탄생된 '삼국지'를 서구권 메이저 게임사가 다룬 최초의 게임이자, 동시에 큰 흥행을 거둔 흥행작이다. 토탈워: 삼국 이전에 동양권을 조명한 토탈워 시리즈는 일본의 개항기를 다룬 '쇼군' 시리즈가 존재하지만, 이마저도 서구 열강이 개입한 시기를 그려 완전한 동양권의 역사를 담아내지는 않았다.

    강연에 앞서 개발사인 CA와 토탈워 프렌차이즈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진행되었으며, 이내 이들이 '삼국지'를 토탈워로 녹여내기로 결정하게 된 계기를 시작으로 강연이 진행되었다.


    ■ 중국 고대사를 접한 서양인 - 이들은 어째서 '삼국지'를 소재로 삼았는가?

    CA는 언제나 중국을 포함한 다른 동양권의 역사적 혼란기를 소재로 삼아달라는 피드백을 받아 왔고, 이 양은 말 그대로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쉽사리 이를 결정할 수는 없었다. 먼저, CA는 영국에 위치한 개발사이며, 이들은 대체로 서구 문화권의 역사에는 박식했지만, 동양권 역사에 대한 이해도는 썩 높지 않았다. 또한, 삼국지는 굉장히 오래 된 이야깃거리이지만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맹위를 보일 뿐, 전 세계적 인지도가 있는 소재가 아니었다. CA에게는 소재가 될 배경 시대를 정하는 일종의 기준이 있었는데, 비록 낯설더라도,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직원들과 함께 모여 영화를 시청하던 중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영문명 Red Cliff)'을 시청한 후, 이들은 후한 말기의 삼국시대가 토탈워의 소재로 굉장히 매력적일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화를 본 후 삼국지와 관련된 여러 미디어를 수집하면서, 이들은 삼국지라는 이야기 안에 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여러 코드가 녹아있음을 깨달았다. 우정, 충성, 경쟁, 가족, 그리고 야망과 인간의 이중성에 이르기까지, 삼국시대라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모습은 너무나 다채로웠다.

    ▲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

    CA에게 삼국 시대는 굉장히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었다. 정해진 길을 걸어가 영웅이 되는 서구권 신화의 영웅들과 다르게 삼국지의 영웅들은 완벽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야망에 취해 도의를 져버리고, 또 누군가는 모두에게 관대하지만 동시에 이들의 시선을 의식한다. 이렇듯, 인간의 많은 부분을 여러 각도에서 비추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CA에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다가왔고, 이들은 끝내 '토탈워: 삼국'의 개발을 결정하게 되었다.




    ■ 삼국지 '정독'의 시작 - 극도의 동양적 색채를, 세계인들에게 어필하려면?

    개발 과정은 쉽지 않았다. 게임을 개발할 이들에게조차 생소한 동양의 고대 역사를, 이들은 아무런 소양이 없는 전 세계의 게이머들을 상대로 어필해야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시절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금 삼국지를 받아들이는 동양권의 무수한 팬층을 존중하면서 이를 해내야 했다. 서구권 개발사가 동양을 다룰 때 자주 실수하는 '왜곡된 시선'을 걷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 왜곡된 시선을 걷어내야 했다.

    이들은 곧, 엄청난 양의 자료 수집과 공부를 시작했다. 100여 권 이상의 관련 서적을 수집해 정독했으며, 이 중에는 단순히 삼국지연의와 정사 삼국지만이 아닌 당시의 건축 양식, 문화, 당시 출판되었던 고서적과 경전, 나아가 이 시기를 연구한 역사학자들의 저서들이 포함되었다. 또한, 서구권 최고의 고대 중국사 교수의 자문을 얻고, 삼국 시대와 관련된 팟캐스트를 일상적으로 들었다. 아트 디렉터인 파웰 워즈는 이에 대해 "일하는 시간 외에도, 개인 시간 중이나 운동을 할 때에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삼국 시대와 관련된 팟캐스트를 들었다"라고 회고했다.

    동시에, 역사와 허구의 중심을 잡아야 했다. 삼국시대의 기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소설인 '연의'는 꽤 많은 점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둘 중 하나도 도태되지 않고 현대에 이르렀다. CA는 연의를 바라보는 게이머의 기대와 정사를 바라보는 게이머의 엄격함을 모두 채워주어야 했다. 이는 나관중의 오리지널 연의가 아닌, 오늘날 가해지는 수많은 재해석들도 포함되었다. 어느 한 게이머의 취향을 맞춤으로 맞출 수는 없겠지만, 대다수 게이머가 수용할 수 있는 현대적 감성의 삼국지를 표현해야 했다. 당연히 동양권에서 개발되는 수많은 삼국지 관련 미디어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통적 색채는 세계의 게이머들에게 동양 고대사의 환상을 심으면서도, 과하지 않게 게임을 꾸며낼 수 있는 좋은 소재였다. 이들은 비주얼 측면에서 삼국 시대를 낭만적으로 표현하고, 모든 게이머가 거부감 없이 수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했는데, 이 중 하나가 전통적 동양의 색채를 살려내는 것이었다. 이들은 게임의 많은 부분에 주사(朱沙)의 붉은색과 황금색을 사용했다. 도장의 염료로 사용되던 주사의 색상은 동양적 신비함을, 그리고 오랫동안 권위의 상징이 되었던 황금색은 게임 내에서 권력과 힘의 상징으로 쓰였다.

    게임 내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쓰인 '수묵화 기법'도 이런 연구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CA는 먹이 물을 만나 번질 때의 무작위함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그라데이션을 매우 동양적인 코드로 해석했고, 게임 곧곧에 먹을 이용한 비주얼 요소를 도입했다. 당장, 로딩 화면에서 보이는 일러스트 아트와 트레일러 영상에서도 수묵의 활용은 아주 잘 드러난다.

    ▲ 수묵 활용의 극치였던 테크 트리

    '오행'을 기반으로 한 게임의 핵심 시스템들도 이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CA는 동양권 문화에서 '오행'이 가진 상징성을 게임 내 시스템에 맞춰 해석했는데, 병종 간의 상성은 물론, 장수들의 특성과 연구에도 이를 녹여내었다. 각각의 원소에 상징성을 부여하고, 이에 맞춰 디자인된 게임은 동양권 게이머들에게는 친숙함을, 서구권 게이머들에게는 진한 동양적 색채와 참신함을 보여주었다.




    ■ '몰입'을 이끌어내라. - 토탈워: 삼국의 흥행 비결, 수많은 영웅의 인간적 이야기.

    자료 수집이나 아트 스타일과 별개로, CA는 '토탈워: 삼국'을 개발하면서 게임 내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가장 중요한 게임의 열쇠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동양적 문화와 정서, 그리고 멋진 배경을 연출해내는 것으로 게임의 틀은 잡을 수 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그려갈, 그리고 게임 속에 등장하는 이들이 만들어갈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CA는 삼국지의 등장인물들을 공부하고, 역사적 사실과 현재의 미디어가 비추는 영웅들의 모습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여기서, 다양한 캐릭터메이킹 기법이 들어갔다. 인물의 자세, 소품, 그리고 표정과 색채가 모두 인물의 성향을 말하기 위해 쓰였으며, 때로는 게임 내 시스템도 이에 투입되었다. 예를 들어 '유비'의 경우, 모두의 존경을 받고, 민중의 믿음을 받는다는 설정이 있지만, 동시에 대중의 평판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면모도 보인다. 때문에 유비의 경우 부하 장수의 충성도에 따라 버프를 받는 식으로 캐릭터 메이킹이 이뤄졌다.

    ▲ 캐릭터 메이킹은 가장 심도있게 고민한 부분 중 하나

    토탈워: 삼국 내에서 고평가를 받은 인물 간의 성향과 우호, 적대 관계도 이런 기조를 따라 만들어졌다. CA는 플레이어가 삼국지 세계의 방문객이 아닌, 또 하나의 삼국시대 인물로서 몰입하길 원했고, 플레이어가 선택한 행동이, 앞으로의 게임 구도를 변하게끔 만들고자 했다. 물론 이에 따라 친우를 모두 잃고 복수귀가 되어 포로를 모조리 사형하는 유비라던가, 적을 관대하게 풀어주는 여포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그 플레이어만의 이야기이면 생명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CA는, 게임 전반에 걸쳐 플레이어의 '몰입'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들은 게이머가 단순히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 아닌, 삼국 시대의 군벌이 되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길 바랐으며, 이 의도의 결과는 토탈워: 삼국의 좋은 평가로 이어졌다.

    ▲ 인물 관계 시스템은 게임의 깊이를 더했다.



    ■ 타국의 문화를 접한 개발자의 자세 - 개발자가 몰입해야, 게이머도 몰입한다.

    50분 간 이어진 '토탈워: 삼국'의 개발기는 전혀 모르는 역사를 공부하고, 이를 재해석하기까지 이르는 수 년간의 공부의 발표와 같았다. 야노스 가스퍼와 파웰 워즈는 강연의 마무리에, 자신들이 삼국지에 대해 배우고, 이를 게임으로 만든 과정에서 얻을 수 있었던 교훈을 압축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발자 스스로의 몰입이다. 몰입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면, 개발자 스스로 몰입해야 한다. 어떠한 소재를 하나의 미디어로 재해석하기 위해서는 일반 소비자층 이상의 전문적 지식과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이들은 삼국지를 여러 번 정독한 동양인보다 훨씬 전문적이고, 심도있게 삼국지를 공부했으며, 수백 년 전 기록에 담긴 단 한 줄의 언급에서 힌트를 얻어 이를 게임에 반영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이들은 하루 종일 삼국지에 대해 토론할 수도 있다고 자부했다.)


    또한, 동시에 모든 문화와 그들의 역사를 존중하고, 해당 문화권의 구성원들이 갖고 있던 역사에 대한 인식과 경애를 모욕해서는 안된다. '서양인이 바라보는 삼국지가 그럴 줄 알았다'라고 여겨지지 않게끔, 우리와 같은 동양 문화권 구성원들의 인식을 파악하고, 같은 선에서 공감할 수 있으며, 때로는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수준의 문화 이해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게임의 그 어떤 부분에서도 해당 문화에 대한 폄하나, 모욕적인 연출이 들어가서는 안된다.

    그리고, 끈기를 가진 채 그간의 게임 개발 노하우와 새로운 배움을 엮어나갈 때, 모든 개발자는 또 하나의 '토탈워: 삼국'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11월 14일부터 11월 15일까지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진행되는 인벤게임컨퍼런스(IGC X G-CON) 취재 기사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IGC X G-CON 2019 뉴스센터: http://bit.ly/33N9v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