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무과금 모바일 게임 하나로 몇 달을 즐겁게 보내는 분들이 계십니다. 가히 게이머계의 경제대통령이죠. 반대로, 적어도 1주일에 한 번씩 새 게임을 하지 않으면 지독한 불감증에 시달리는 분들도 계십니다. 저도 사실 이 쪽에 가깝습니다. 연말연시에 이르러 신작 가뭄이 시작되는 시즌이면, 컴퓨터를 켜놓고도 뭘 해야 할지 고민할 때가 많죠. 허나, 이는 극도의 하드코어 게이머들이나 겪는 고통일 뿐, 보통은 코어 게이머들이라 해도 한 달에 한 편 정도면 충분히 즐거운 게임 라이프를 즐길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본인이 슈퍼 하드코어 게이머가 아닌지 되돌아보시길 바랍니다.

2020년 한 해는, 하드코어 게이머든, 코어 게이머든 넉넉하게 행복할 수 있는 한 해입니다. 다양한 신작과 리메이크, 그리고 끊어진 줄 알았던 프렌차이즈의 뒤를 잇는 후속작들까지 출시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죠. 이제 저희를 막을 것은 빨간 날이 역대급으로 적은 2020년 그 자체밖에 없습니다. 연차가 매우 소중해지는 한 해라 할 수 있죠.

딱 12종, 월 1회 구매로 1년이 행복해질 게임들을 모아봤습니다. 고르기 꽤 힘들었습니다. 올해 출시되는 게임 중 적당히 굵은 녀석들만 골라내도 50종에 가깝거든요. 오늘 소개드릴 게임들은 그 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2020년을 수놓을 예비 GOTY 후보들입니다.

1. 파이널 판타지7 리메이크
말해 무엇하랴. 전설의 귀환


장르: RPG
개발사: 스퀘어에닉스
출시일: 2020년 3월 3일
플랫폼: PS4

어린 세대 게이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파이널 판타지7은 수많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중에서도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게임입니다. 오죽하면 PC방이 생기던 90년대 후반에는 PC방에서 이 게임을 하는 게이머들을 볼 수도 있었어요. 제가 직접 봤습니다. 그렇다고 일본과 한국에서만 유행했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게임을 안 해본 사람들도 어디선가 티파 록하트의 아트 한 장 정도는 봤을 겁니다. 오죽하면 2015년 E3에서 첫 발표 당시, 스퀘어에닉스의 시가총액은 한 시간만에 143억 엔만큼 증가했습니다. 원작이 워낙 오래된 게임이다보니 걱정되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지금까지 발표된것만 보면 썩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 같습니다.


2. 인왕2
세키로... 너만 아니었어도...


장르: ARPG
개발사: 코에이테크모(팀 닌자)
출시일: 2020년 3월 12일
플랫폼: PS4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소울류 액션 게임'으로 강하게 인상을 남겼던 '인왕'의 후속작이 돌아옵니다. 비록 앞선 타이틀은 '세키로'에게 빼았겼지만, 그쪽은 애초에 소울 시리즈를 개발한 프롬소프트웨어의 작품이니 뭐 어쩔수 없다 칩시다. 그리고 애초에, 인왕은 소울류하고는 좀 다른 느낌의 게임입니다. 소울류의 탈을 쓴 디아블로에 가깝달까요? 아쉬운 점이라면, 여성 캐릭터의 디자인 빼고 다른 부분에서 닌자 가이덴 시절 '팀 닌자'의 느낌을 크게 느낄수 없었다는 겁니다. 2편에서는 호쾌함과 속도감으로 대표되는 팀 닌자의 액션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3. 둠 이터널
아직 찢고 부술 악마가 많이 남았다


장르: FPS
개발사: 이드소프트웨어
출시일: 2020년 3월 20일
플랫폼: PC, PS4, XBOX ONE, 닌텐도 스위치, 구글 스태디아

2016년 멋지게 리부트에 성공한 '둠' 시리즈의 최신작이자, 악마들의 악몽, 지옥의 지옥인도자, 명쾌한 대화의 달인인 리부트 둠가이의 두번째 무대입니다. 사실, 게임 디자인에서 둠 이터널은 큰 변화가 없습니다. 리부트 작인 둠(2016)부터 고전이 된 원작의 디자인을 그대로 따르고 있죠. 제한된 맵에서 키 아이템을 찾아 통로를 개척하고, 그 와중에 등장하는 악마들을 죄다 찢고 부수는게 이 게임의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 그래서 이드소프트웨어는 굳이 무리해서 게임 내적인 무언가를 변화시키려보다는 그들이 가장 잘 하는걸 더 잘하기로 했습니다. 더 많은 악마를 더 처참하게 박살낼 수 있는 수많은 무기들을 추가한거죠. 화염방사기와 접이식 칼날을 비롯해 수많은 무기와 모드가 이번 작품에 추가되었습니다. 모든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찢고 부수기.


4. 하프 라이프 알릭스
VR로 돌아오긴 했는데 결국 '3'은 아니네


장르: FPS
개발사: 밸브
출시일: 2020년 3월
플랫폼: PC(VR 대응)

하프라이프2: 에피소드2 이후 13년만에 이어지는 시리즈 후속작입니다. 3편은 언제 나오냐는 팬덤의 수많은 물음에 내놓은 답 치고는 변명같은 느낌이지만, 어쨌거나 하프라이프 시리즈가 아예 죽지는 않았음을 반증하는 타이틀이죠. 그래서인지 여러모로 실험적이면서 비대중적인 부분들이 많습니다. 일단 VR 헤드셋이 필수로 요구되고, 게임 내 매커니즘의 많은 부분을 이 VR 헤드셋과 연결해두었죠. 하지만 2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시퀄이 아닌 1편과 2편 사이의 내용을 담은데다 주인공도 말없는 공돌이 고든 빠루맨이 아닌 '알릭스 벤스'입니다. 여러모로 팬들에게는 기념비적인 작품이지만, 아쉬움은 어쩔수 없습니다.


5. 사이버펑크 2077
4월엔 컴퓨터 꼭 바꿔야지


장르: ARPG
개발사: CD프로젝드 RED
출시일: 2020년 4월 16일
플랫폼: PS4, PC, XBOX

아마,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기대를 받고 있는 타이틀일겁니다. '위쳐3: 와일드 헌트'의 기념비적인 성공 이후, 폴란드의 작은 개발사였던 CDPR은 전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개발사로 거듭났죠. 그런 CDPR이 있는대로 힘을 주면서 뽑아내고 있는 타이틀이 바로 '사이버펑크 2077'입니다.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만 보면, 과장이 없는 한 GOTY는 이미 예약해둔 게임이기도 합니다. 물론 게임씬 특유의 과장된 연출이 없진 않을테니 어느 정도 감안은 해야겠지만, '위쳐3' 당시 보여준 CDPR의 성실함 덕분에 사이버펑크 2077은 기대감을 유지하고 있죠. 마침 2020년은 이 게임의 원작이 되는 TRPG인 '사이버펑크 2020'의 배경이기도 합니다. 나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6. 마블 어벤저스
아캄버스에 질 수 없다


장르: 액션 어드벤처
개발사: 크리스탈 다이나믹스, 에이도스 몬트리올
출시일: 2020년 5월 15일
플랫폼: PS4, XBOX ONE, PC, 구글 스태디아

툼레이더 리부트 시리즈를 개발해온 크리스탈 다이나믹스와 데이어스 엑스를 개발한 에이도스 몬트리올이 합작 개발하는 대형 프로젝트입니다. 그리고 그간 수없이 찍혀나오던 저퀄리티 마블 코믹스 게임들에 대한 해명이기도 하죠.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는 마블 세계관의 여러 영웅을 직접 플레이하게 됩니다. 현재까지 공개된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캡틴아메리카, 아이언맨, 토르, 헐크, 블랙위도우까지 다섯이죠. 머리 좋은 개발사입니다. 미리 DLC가 나올 구석을 만들어뒀네요. 하지만 이와 별개로 마블이 각잡고 푸시하는 AAA급 타이틀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기대할 가치는 있는 게임입니다. 물론 아캄버스에 대항할 강력한 게임이 될지, 혹은 망겜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최근 '마블 스파이더맨'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것을 생각하면 계속 지켜봐도 될 것 같습니다.


7.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
수많은 게이머가 업어키운 엘리의 귀환


장르: 액션 어드벤처
개발사: 너티 독
출시일: 2020년 5월 29일
플랫폼: PS4

수많은 게이머의 코끝을 5분만에 시큰하게 만들었던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후속작입니다. 전편에서 플레이어가 40대 후반의 조엘을 플레이하고, 엘리가 탄약셔틀(...)을 맡았다면,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엘리입니다. 전편에서 5년이 지나면서 엘리는 19세가 되어 전투력을 손에 넣었고, 50대 중반이 된 조엘은 근육이 빠지기 시작했거든요. 게임의 재미에 대해서는 사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너티 독은 그간 크런치 모드와 관련되어 먹칠을 한 적은 있지만 게임의 완성도와 관련해서는 언제나 믿음직한 개발사니까요.


8. 다잉 라이트2
드롭킥 날릴 시간


장르: 1인칭 액션 어드벤처
개발사: 테크랜드
출시일: 2020년 봄
플랫폼: PC, PS4, XBOX ONE

별로 안 유명한 게임을 왜 끼워놓았냐고 물으신다면, 전작이 숨겨진 명작이기 때문이라 말씀드리겠습니다. 좀비물은 이제 놀라울 것 없는 장르 소재입니다만 다잉 라이트는 수많은 좀비물중에서도 유니크한 게임성을 자랑합니다. 다양한 좀비물 게임에서 등장하는 총기가 거의 등장하지 않고, 사람보다 훨씬 강한 좀비들을 상대로 백병전을 펼치고, 파쿠르를 통해 도망다녀야 하죠. 그리고 그 후속작이 나옵니다. 여전히 세상은 엉망진창이고, 파쿠르는 훨씬 강화되었으며, 이제 좀비가 아닌 적대적 생존자도 드롭킥으로 날려버릴수 있죠. 물론, 1인칭 파쿠르의 멀미는 경계해야 합니다.


9.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노트북에 깔고 비행기에서 하고싶은 No.1 게임


장르: 시뮬레이터
개발사: 아소보 스튜디오
출시일: 2020년 연내
플랫폼: XBOX ONE, PC

갑작스럽게 발표된 플라이트 시뮬레이터의 최신작입니다. 과거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9.11 테러용의자들이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로 연습을 했다는 루머가 있어 시달리기도 했지만, 역으로 "그만큼 진짜같다고?"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실감 넘치는 시뮬레이션 시리즈이죠. 이번 작품은 또다른 의미로 사실적인 작품입니다. 말 그대로 지구를 가져왔죠. 위성 사진을 매핑해 4K로 적용해버렸고, 이 와중에 쓰인 지형 데이터의 용량만 2 페타바이트, 즉 2,000테라바이트입니다. 단순 정지 화면만 가져다 놓은게 아니라 지상에서 움직이는 차량과 동물들도 구현해두었죠. 대기오염과 계절에 따른 일출, 일몰 시간, 천체의 각도에 이르기까지, 비행 시뮬레이션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타이틀입니다.


10. 발더스 게이트3
이것도 말해 무엇할까. 또다른 전설의 귀환


장르: RPG
개발사: 라리안 스튜디오
출시일: 2020년 연내(예정)
플랫폼: PC

무려 19년 만에 출시되는 후속작입니다. 오죽하면 라리안 스튜디오의 '스벤 빈케' CEO가 제작 소식을 알렸을 때, 개발사의 젊은 직원들은 "그게 무슨 게임인데?"라고 말하며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오래된 게임이죠. 젊은 게이머들이라면, 확실히 발더스 게이트라는 이름이 낯설 겁니다. 잘 모르는 분들에게 설명드리자면, 20년 전에는 '발더스 게이트'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파워가 있었습니다. 사실, 개발에 착수되는 것도 다소 어려운 게임이었지만, 최근 몇 년간 '디비니티' 시리즈와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시리즈가 고전 RPG 붐을 일으키면서 개발에 힘을 받을 수 있었죠. 젊은 층에겐 다소 답답할 수 있는 깊은 스토리와 느린 템포를 갖춘 게임이지만, 고전 RPG 팬들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출시일을 기다리고 있지요.


11. 와치독 리전
해킹의, 해킹에 의한, 해킹을 위한 게임


장르: 액션 어드벤처
개발사: 유비소프트
출시일: 2020년 하반기
플랫폼: PC, PS4, XBOX ONE, 구글 스태디아

얼마 전, 휴대전화를 바꾸러 갔더니 대리점 사장님이 "요즘 집에 있는 카메라 있죠. 그거 다른데서 다 해킹해서 보고 그래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말이지만 '와치독' 시리즈를 플레이해본 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게임으로서의 재미와 별개로 '와치독' 시리즈는 해커가 어디까지 대단해질 수 있는가를 그린 꽤 신선한 소재의 게임이었죠.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한 명의 개인으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영국으로 바뀐 배경만큼이나, 게임 내 설정들도 흉악해졌죠. 런던은 자유가 완전히 통제되는 도시가 되었고, 연령, 성별, 인종을 불문한 수많은 해커가 '데드섹'이라는 이름으로 자유를 위해 싸웁니다. 할머니 해커, 할아버지 해커, 아주머니 해커까지 싸우죠. 좀 더 나갔으면 강아지도 해킹을 할 동네입니다. 힘 있는 캐릭터가 가지는 파워를 포기하고 '데드섹' 그 자체를 내세운 만큼 이번 유비소프트의 시도는 꽤 실험적인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유비소프트가 발표한 여러 차기작 중 손에 꼽을 기대작인 건 확실하죠.


12. 헤일로 인피니트
다시 무릎에 힘을 주는 마스터 치프


장르: FPS
개발사: 343 인더스트리
출시일: 2020년 말
플랫폼: XBOX ONE, PC

헤일로5에 이은 6번째 정규 시리즈이자, 드물게 PC로도 출시되는 작품입니다. 워낙 팬덤이 큰 게임이다 보니 4편과 5편이 크게 비판을 들었지만, 사실 그 비판받은 작품들도 메타크리틱 점수 80점은 가뿐히 넘습니다. 헤일로 시리즈가 가진 파괴력을 잘 보여주는 예시죠. 게다가 이번 작품은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얼핏 보면 스페이스오페라로 보이는 이 시리즈의 정수는 어디까지나 '마스터 치프'의 모험담이죠. 이번 작품에서 개발진은 마스터 치프 위주의 싱글플레이가 메인이 될 것이라 공언했습니다. 옛 번지 시절의 헤일로로 돌아가겠다는 제작진의 의지가 밝혀진 만큼, 팬이라면 충분히 기대해도 될 게임일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