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타고 지나가면서 한쪽 눈 감고 봐도 러스티레이크 게임이네."

1월 9일 출시된 러스티레이크의 신작 '더 화이트 도어' 이야기다. 음울한 배경음, 투박한 특유의 그림체, 중간 중간 등장하는 검은 그림자, 그리고 이미 이전 시리즈를 통해 얼굴을 비췄던 등장인물들까지 더 화이트 도어에는 러스티레이크 팬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시그니쳐'들이 가득하다.

더 화이트 도어는 스팀과 모바일에서 모두 구매할 수 있는데, 기존 러스티레이크의 유료 시리즈인 루츠, 호텔, 파라다이스에 비해서 플레이타임이 매우 짧다. 약 한 시간에서 두 시간이면 엔딩까지 볼 수 있다. 그리고 큐브 이스케이프 초반 시리즈와 비슷한 난이도를 가지고 있어 크게 어려운 편은 아니다.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전작들에 비해 크리피한 부분을 많이 덜어냈다는 점이다. 잘린 손이 튀어나온다거나, 눈알, 심장 등 신체 기관이 등장하거나, 갑자기 확 하고 튀어나오는 소름 끼치는 사운드 등 러스티레이크의 특징이라고도 볼 수 있는 '기괴함'을 이번에는 크게 느끼지 못했다. 물론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기존 시리즈가 많이 매니악한 느낌이라면 더 화이트 도어는 그에 비해 훨씬 대중적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의 러스티레이크 시리즈 중 가장 '따뜻한' 게임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엔딩을 보자마자 이렇게 아름답고 훈훈하게 끝난 적이 있었던가 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니까. 뭐랄까, 여운이 남는다.



전작을 알면 더 흥미로운 스토리

더 화이트 도어의 주인공은 'Cube Escape: Theatre'에서 바에 앉아 술을 마시던 그 남자, 'Cube Escape: Case 23'에서 용의자로 처음 시리즈에 모습을 보인 '로버트 힐(Robert Hill)'이다. 그리고 이미 전작에서 수없이 만나본 바 있는 여성, Laura 역시 등장한다. 로버트의 이야기를 메인으로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Laura와의 관계도 풀어낸다.

더 화이트 도어는 철저히 로버트 힐과 Laura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전의 게임들을 플레이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떠한 문제도 없다. 딱 더 화이트 도어 자체만으로도 한 편의 이야기가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하지만 러스티레이크의 게임을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서, 내용이 이어지는 'Cube Escape: Seasons', 'Cube Escape: Case 23', 'Cube Escape: Theatre'를 먼저 해보는 걸 추천한다. 아니 꼭 해줬으면 한다. 왜 로버트가 '하얀 방'에 갇히게 되었는지, 그리고 도대체 그의 기억 속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에 대해 확실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과 PC에서 무료로 플레이할 수 있고 플레이타임도 짧은 편이라 부담도 적다.

그리고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전 시리즈를 모두 해본다면 더 재미있다. 러스티레이크에서 제작하는 게임들은 모두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다 보니 큐브나 그림자처럼 시리즈를 플레이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떡밥'이 많은 편이다. 더 화이트 도어 역시 시리즈 내내 등장하던 떡밥이 회수되는 부분이 있어 타 시리즈를 해본다면 좀 더 깊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그러니 이왕이면 러스티레이크 사이트에서 할 수 있는 무료 시리즈들을 해보고 더 화이트 도어를 구매하도록 하자.

세계관을 깊게 다루고 있는 유료 시리즈도 하면 더 좋다. PC 버전은 스팀에서 모두 구매할 수 있고, 모바일로도 할 수 있지만 안드로이드의 경우 호텔은 현재 구매할 수 없다. 기존에 구매했었더라도 게임 실행이 불가능하다.

▲ 지금까지 출시된 러스티레이크 시리즈


어렵지 않은 게임 플레이

더 화이트 도어라는 제목에 걸맞게 게임은 하얀 문 안, 무채색의 배경 속에서 진행된다. 화면은 반으로 나뉘어 있는데 기본적으로 왼쪽은 등장인물의 이동 동선을 보여주며 오른쪽은 등장인물의 시야를 나타낸다. 예를 들자면 왼쪽 화면에서 로버트를 거울 앞으로 데려가면, 오른쪽 화면에 로버트의 얼굴이 비친 거울이 보이는 방식이다.

사실 플레이 방법은 진짜 별 게 없다. 매우 단순한 편. 그리고 퍼즐들 역시 기존 시리즈에 비해 전혀 어렵지 않다. 러스티레이크, 특히 '큐브 이스케이프' 시리즈의 장점은 퍼즐형 게임이지만 '어렵게, 더 어렵게'하기 위해 집어넣은 억지스러운 장치가 없다는 것인데, 더 화이트 도어는 그런 장점이 더 도드라진다. 후반부 몇 가지 퍼즐을 제외한다면 정말 물 흐르듯이 방 안에 펼쳐져 있는 단서들을 통해 풀어나갈 수 있다.

▲ 왼쪽은 이동 동선, 오른쪽은 시야를 나타낸다

게임은 총 8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같은 배경인 병실에서 진행되며, 퍼즐 위주로 이루어져 있는 '하루'를 지내고 나면 채색된 로버트의 기억 속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시리즈 전체에서 자주 나오는 그림 기억형 퍼즐이 많이 나오는 편이다.

오전 7시부터 정해진 '일과'를 진행하는 방식인데, 정상적으로 일을 마쳤을 때 자동으로 시간이 흐른다. 그럼 해당 시각에 배정되어 있는 다음 일을 하면 된다. 8시에 항상 아침으로 제공되는 도넛을 먹고, 9시에 세면대에서 양치와 세수를 하고, 11시에 간단한 질문으로 이루어진 검진을 받고, 15시에 컴퓨터를 통해 기억 훈련을 하고, 18시에는 제공되는 저녁을 먹고, 20시에는 매일 달라지는 여가 활동을 한다. 게임 자체가 로버트의 일과를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고 보면 된다.


물론 게임이 진행될수록, 즉 날이 지날수록 그 일상에서 벗어나는 추가 행동이 늘어나고 그만큼 퍼즐도 복잡하고 어려워진다.

번외편인 Sarah 에피소드는 7개의 본 에피소드를 모두 완료하고 엔딩 크레딧까지 다 본 뒤에 이어서 플레이할 수 있다. 로버트의 이야기만으로는 알 수 없는 내용이 나오니 꼭 진행하는 걸 추천한다.

러스티레이크는 게임을 출시하고 자체적으로 공략 영상을 사이트에 업로드하는데, 더 화이트 도어는 이 영상을 보지 않고 완료하는 것이 가능한 정도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 물론 퍼즐의 난이도는 개인에 따라 다른 것이지만, 더 화이트 도어는 배경 자체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만 신경 써서 둘러보면 모두 해결할 수 있는 편이다.


기가 막힌 '떡밥' 회수


러스티레이크 시리즈의 특징은 어떤 게임을 플레이하든 다른 시리즈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는 시리즈 전체에 흐르는 그로테스크하고 음울한 분위기도 한몫하지만, 기가 막힌 '떡밥' 회수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나의 게임으로 본다면 독특한 분위기가 눈에 띄는 퍼즐 게임 정도지만, 전 시리즈를 묶어서 플레이하다 보면 '아니 이게 여기서 풀리네', '아니 이정도면 스토리 게임 아닌지' 싶을 수준이다.

더 화이트 도어만 하더라도 시리즈 첫 작품격인 Seasons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마무리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Seasons에서 Laura의 마지막을 보여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Case23에서 그녀의 상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다뤘으며, Theatre에서 그녀와 관계가 있는 로버트를 등장시켜 또 다른 궁금증을 유발했고, 더 화이트 도어를 통해 Laura와 관련된 이야기의 한 축을 마무리 지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 이야기 속에 기존 시리즈에서 플레이했던 부분들도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더 화이트 도어에서 로버트가 바에 앉아 마신 술이 '블러디 메리'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실제로 Theatre에서 유저가 로버트에게 만들어 준 술 중 하나가 블러디 메리다. Theatre에서 등장한 여자 가수가 로버트의 기억 속에서 등장하기도 하고, 호텔과 루츠를 포함 시리즈 내내 등장하는 동물 가면들도 만날 수 있다. 그림자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런 게 러스티레이크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시리즈의 팬들에게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스토리와 그 속에 숨어있는 복선, 그 강도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절대 변하지 않는 그로테스크함을 제공하여 열광하게 만들고, 처음 접하는 게이머들에게는 궁금증을 유발시켜 다른 시리즈를 플레이하게 만드는 그런 '독특함'말이다.

물론 러스티레이크의 게임과 그들이 다루는 스토리가 완벽하다거나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대중적인 내용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아주 매니악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림체가 투박해서 그렇지 피나 잘린 신체 부위 등이 나오지 않는 시리즈가 드물고, 사운드 역시 가끔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이라 불편한 경우도 있으니까.

하지만 러스티레이크가 올해 들어 처음 선보인 더 화이트 도어는 기존 작들에 비해 훨씬 가볍다. 러스티레이크 특유의 느낌은 가져가면서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게임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맛보기용이랄까. '이런 느낌을 좋아하니? 그럼 우리 게임 한 번 해볼래?' 이런 거 말이다.

만약 더 화이트 도어를 구매할 생각이라면, 꼭 주말에 플레이하도록 하자. 정신을 차리고 보면 큐브 이스케이프 시리즈를 모두 완료하고 유료 시리즈인 호텔, 루츠, 파라다이스까지 플레이하고 있을 테니까. 유료 시리즈의 경우 플레이 타임이 꽤 긴 편이니 평일에 했다가는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