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단 한 번뿐인, LoL 프로게이머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무대.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에 진출한 팀 중 스토리 없는 팀이 어디 있겠냐마는 개중에서도 손꼽히는 이야깃거리를 가진 팀이 있다. 22개 팀 중 어느덧 4개 팀만이 생존한 현재, 탑 e스포츠와의 대결을 앞둔 쑤닝도 그 중 하나다.

LDL 최고 유망주에서 당당히 LPL 특급 신인으로 데뷔한 '빈', 가혹한 LPL 정글에서 살아남은 베트남 용병 '소프엠', 누구보다도 롤드컵을 열망하던 '엔젤', 눈물겨운 과거사를 딛고 완전체가 되어가는 '후안펑', 팀의 맏형에서 '후안펑'의 어머니가 된 베테랑 서포터 '소드아트'. 다섯 명의 선수, 다섯 가지의 이야기를 하나로 모은 쑤닝은 롤드컵 최초 4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넘어 더 큰 기적을 바라보고 있다.


'빈' 천 쩌빈
선수들이 인정한 선수, 롤드컵 로열 로더를 향해

2019년, LoL 한국 서버 솔로 랭크에 'love camille'이란 닉네임이 홀연히 나타났다. 모스트 챔피언인 이렐리아를 필두로 아트록스, 아칼리, 제이스, 피오라 등 '칼챔'들을 위주로 사용한 그는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플레이를 펼치며 랭킹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너구리' 장하권을 비롯해 많은 선수와 관계자들의 이목을 끌었던, 솔랭 전사 'love camille'이 바로 쑤닝의 탑 라이너 '빈'이었다.


'빈'은 2019년 쑤닝의 아카데미 팀 소속으로 LDL에서 활약했다. 2019 LDL 스프링 스플릿에선 개인도 팀도 그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으나, 이어진 섬머 스플릿부터 본격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수많은 매드 무비의 주인공이었던 이렐리아로 펜타 킬을 기록했고, 정규 시즌-플레이오프에서 치른 72세트 중 무려 40회의 솔로 킬을 기록하는 압도적인 기량을 뽐내며 플레이오프 3위까지 달성했다.

올해 LPL 나이 제한에 통과한 '빈'은 곧바로 1부 리그에 입성했다. 그러나 많은 기대를 받은 것과 달리 그의 데뷔 시즌은 순탄치 않았다. 한정된 챔피언 폭과 LDL까지 통했던 극도로 호전적인 성향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자가격리로 한동안 휴식기를 갖기도 했다. 결국 '빈'은 2020 LPL 스프링 스플릿 정규 시즌에 단 19세트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8승 11패라는 성적표를 받으며 아쉬움을 남겼다.

떠오르지 못한 채 지는 태양이 될 것 같았던 '빈'은 아카데미 시절과 마찬가지로 섬머 스플릿에서 제대로 떠올랐다. 단점을 보완하기보다 강점을 더욱 살려 경기에 임했는데, 제이스-갱플랭크-잭스 등 '칼챔'을 비롯해 레넥톤이나 오공으로도 우수한 경기력을 뽐내며 팀의 많은 승리와 롤드컵 진출을 견인했다. 와중 그의 자랑인 솔로 킬을 정규 시즌에서 17회, 플레이오프에서 8회 기록하며 통합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번 롤드컵에서도 '빈'은 본인의 색깔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캐리와 쓰로잉의 한가운데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선수들은 물론 경기를 시청하는 팬들의 심장까지도 쫄깃하게 한다. 가장 거대한 무대에서 신인의 긴장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빈'의 마음가짐은 쑤닝이 기적을 만드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그리고, 다음 상대인 '369' 앞에서도 그는 어김없이 화끈한 플레이와 패기를 선보일 것이다.


'소프엠' 레 꽝 주이
베트남의 자랑, 유행을 선도하는 특급 정글러

험하기로 소문난 LPL의 정글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베트남 용병이다. 심지어 생존한 거로 모자라 최상위 포식자가 됐다. 베트남 LoL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소프엠'은 그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소프엠'의 가장 유명한 일화는 베트남인 최초로 LoL 한국 서버 챌린저를 달성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열악한 네트워크 환경의 베트남에서 무려 70 전후의 핑을 감수하며 기록한 것이기에 큰 의미가 있다. 또한 '타잔' 이승용도 사용한 구원 올라프를 비롯해 난입 자르반 4세, 기사의 맹세 리 신 등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특이한 스타일의 정글 픽으로도 유명세를 탔다.

여러 팀을 전전하던 '소프엠'은 2016년 스네이크 e스포츠(현 LNG e스포츠)에 입단해 본격적으로 LPL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의 플레이는 점점 공격적으로 변해가는 LPL 무대에 빠르게 적응했고, 종종 정규 시즌서 상위권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우승과는 거리가 매우 멀었고, 롤드컵 LPL 대표 선발전에선 2016년에 3위에 오른 것을 마지막으로 이후 기록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2020 시즌에 앞서 현재 팀원들을 만나며 '소프엠'은 창의적이고 유연한 본인만의 스타일에 힘을 얻었다. '빈'의 정글러를 개의치 않는 적극적인 라인전과 상대 미드 라이너와 최소 반반은 가는 '엔젤'은 '소프엠'의 동선을 더욱 자유롭게 해줬다. 또한 카운터 정글을 워낙 좋아하는 그에게 갱킹을 흡수하는 '후안펑'-'소드아트' 듀오는 그야말로 천생연분이었다.

최고의 파트너들과 함께 생애 첫 롤드컵 무대를 밟은 '소프엠'은 맹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그룹 스테이지에서 G2에게 2연승을 거둘 때도, 징동 게이밍에게 세트스코어 3:1로 승리할 때도 그의 존재감이 눈에 띄었다. 자르반 4세나 킨드레드 등을 선보이며 AP 챔피언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단점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기도 했다. 만약 '카나비' 서진혁을 압도한 '소프엠'이 이번 4강서 '카사'까지 넘는다면, 2020년 LPL 최고 정글러로 칭하기에 손색없을 것이다.


'엔젤' 상 타오
감상문은 이제 그만! 내가 주인공이 될 차례

쑤닝에서 가장 존재감이 옅은 선수지만, 롤드컵에 대한 열망만큼은 그 누구보다 컸다. 늘 먼 발치서 롤드컵을 지켜본 '엔젤'은 이제 본인이 주인공이 될 기회를 잡았다.


2017년 데뷔 후 2018년 7월 쑤닝에 합류한 '엔젤'은 2018 LPL 섬머 스플릿에 주전으로 나섰다. LPL의 다른 걸출한 미드 라이너들에 가려져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으나, 그렇다고 결코 하위권 미드 라이너도 아니었다. 모든 AP 챔피언을 수준급으로 다루며 상대에게 CS가 밀리는 한이 있어도 쉽사리 발품을 팔게 내버려 두진 않았다. '메이플'의 합류로 2019년엔 서브 선수가 됐지만, 올해 다시금 주전을 꿰차 활약 중이다.

한편, SNS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엔젤'이 장문의 글을 남기는 기간이 있다. 바로 롤드컵 진행 기간인데, 2018년 10월 LPL 팀들의 그룹 스테이지 경기를 시작으로 4강, 결승을 시청한 후 감상문을 길게 적어 게시했다. 이후 약 1년간 단 5개의 포스트만 업로드한 '엔젤'은 2019년 10월에 또다시 LPL 팀들의 롤드컵 경기 감상문을 올리며 롤드컵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렸다.

올해 '엔젤'은 감상문을 쓸 수 없다. 본인이 롤드컵 무대 한가운데에 당당히 서 있으니까. 또한 롤드컵을 꿈꾸는 누군가는 그를 보고 감상문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엔젤'은 본인의 역량을 증명해야 한다. LPL을 넘어 세계 최고의 미드 라이너가 되려 하는 '나이트' 앞에서 말이다.


'후안펑' 탕 후안펑
과거를 딛고 나아서다, 차세대 LPL 봇 라이너

어지간한 다큐멘터리에서도 연출하기 어려운 불우한 과거사를 가진 프로게이머다. 누구보다도 일찍 철이 들어야 했던 '후안펑'은 이제 LoL을 통해 본인의 진짜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후안펑'은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이 위치한 광서 동흥시에서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후안펑'의 곁을 떠났고, 다른 살림을 차린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은 채 적은 생활비만 지원해줬다고 한다. 홀로서기를 시작한 '후안펑'은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학교 성적을 최상위권으로 유지하며 틈틈이 LoL을 즐겼다. 고등학교에서도 우등생이었던 그는 심화반에 배치되었는데, 학업을 원하는 아버지와의 갈등 끝에 프로게이머의 길을 선택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후안펑'은 PC방 리그를 비롯해 아마추어 팀을 전전하며 간신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전 동료 '레얀'이었다. 당시 IG의 아카데미 팀 IG 영의 에이스였던 '레얀'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후안펑'은 IG 영에 전격 입단한다. 이후 '후안펑'은 IG 영의 봇 라이너로 2019 LDL 섬머 스플릿 정규 시즌 2위, 플레이오프 우승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IG가 봇 라이너로 '퍼프'를 영입하며 '후안펑'은 설자리를 잃었다. 반드시 LPL 무대에서 뛰고 싶었던 그는 징동 게이밍과 WE를 비롯한 여러 팀의 입단 테스트를 봤지만 모조리 탈락했다. 프로게이머로서의 자신감을 잃은 그를 찾은 팀은 '재키러브'를 놓친 쑤닝이었다. 기존 정글러 '웨이웨이'를 봇 라이너로 돌렸다가 처참한 결과를 맛본 쑤닝이 급한 대로 '후안펑'을 영입한 것이다.


멀리 돌고 돌아, 기나긴 여정을 끝내고 쑤닝에 정착한 '후안펑'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LPL 입성 후 머지않아 잠재력이 폭발한 '후안펑'의 기량은 다른 베테랑 봇 라이너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공수 완벽한 밸런스 속에 애쉬-이즈리얼-진 등의 챔피언으로 쏘아대는 논타겟 스킬의 적중률이 특히 빛났다. 고점도 저점도 높은 기복 없는 경기력을 유지한 '후안펑'은 쑤닝의 선전을 이끌며 '빈'과 함께 LPL 데뷔 1년 차에 롤드컵 무대를 밟는 데 성공했다.

"좋아하는 일을 해. 후회하지 마, 포기하지도 마", '후안펑'이 과거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다고 한 이야기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LoL에서 가장 큰 명예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앞둔 그는 탑 e스포츠와 어떤 대결을 펼치더라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결코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번 롤드컵을 배움의 장으로 삼으며 "더 강해지고 싶다"고 외치는 '후안펑'은 어쩌면 '재키러브'를 넘어 차세대 LPL을 대표할 완전체 봇 라이너가 될 수도 있겠다.


'소드아트' 후 숴제
어머니가 된 베테랑 서포터의 도전

쑤닝의 주전 선수들 중 국내 팬들에게 가장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한때 'LCK 킬러'로 불렸던 플래시 울브즈의 터줏대감이자 데뷔 9년 차 베테랑 서포터, '소드아트'가 쑤닝의 어머니가 되어 돌아왔다.


오랜 시간 몸담았던 플래시 울브즈를 떠나 2019 시즌을 쑤닝에서 보낸 '소드아트'는 씁쓸한 1년을 보냈다. LMS 6회 연속을 비롯해 언제나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던 그가 LPL에선 중위권에 머무른 것이다. 쟁쟁한 LPL 서포터들 사이에서도 개인 피지컬만큼은 결코 부족하지 않았으나, 판을 직접 설계하거나 팀원들을 조율하는 능력은 확실히 떨어졌다. 어딘가 모르게 2% 부족한 팀원들의 기량도 그의 모든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하는 억제기였다.

2020 시즌을 앞둔 '소드아트'는 변화를 모색했다. 본디 카시오페아 장인이자 미드 라이너로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인게임에서 그다지 많은 콜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LPL 무대를 처음 밟는 두 신인, '빈'-'후안펑'이 팀에 합류하며 그 어느 해보다 그의 책임감이 막중해졌다. 인게임 콜은 물론 멘탈 케어나 일상생활 면에서도 두 선수를 돌봐야 했고, 이에 '소드아트'는 자연스럽게 팀의 어머니 역할을 맡게 됐다.

특히 '소드아트'는 봇 파트너 '후안펑'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인간 불신에 빠져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후안펑'을 인간적으로 감화시키고, 엄격한 피드백을 통해 그의 기량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모든 과정이 순탄치 않았고 큰 갈등도 있었지만, 결국 '소드아트'는 '후안펑'을 LPL 최고의 신인 봇 라이너로 키워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인게임 콜이 늘어나며 더욱 발전한 오더 능력도 갖추게 됐다.

어느덧 6번째 롤드컵을 맞이한 '소드아트'는 4강 진출로 이미 커리어 하이를 갱신했다. 그러나 스스로 더 발전하고 싶은 욕심에 LPL을 선택한 그에게 이는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후안펑'을 비롯해 새롭게 만난 쑤닝 선수들과 플래시 울브즈에서 이루지 못했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소드아트'의 발자취는 그가 도전을 포기하기 전까지 끝나지 않겠다.


상대는 극악 상성 TES
2020년 상대 전적 1:7, 기적은 쓰일 수 있을까

각자의 스토리가 어떻든, 가능한 최고의 로스터를 꾸렸든, 경기력은 별개의 이야기다. 그리고 쑤닝은 4강에서 결승까지 반드시 피했어야 할 최악의 상대 탑 e스포츠를 만났다. 2020년에 3판 2선 2회, 5판 3선 1회 대결한 두 팀의 상대 전적은 세트스코어 기준 1:7로, 모두 탑 e스포츠의 승리였다. 쑤닝이 거둔 유일한 세트 승도 '재키러브'가 없었던 6개월 전의 이야기다.


탑 e스포츠의 선수들은 쑤닝을 잡아먹기에 딱 알맞은 능력을 갖췄다. 쑤닝이 보여주는 대부분의 승리 시나리오는 미드-봇이 무난하게 상대를 막아내는 동안 '빈'이 상대를 압박하고, '소프엠'이 카운터 정글을 바탕으로 플레이 메이킹을 성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369'는 '빈'의 무력을 잠재울 수 있으며, '카사'는 '소프엠'의 생각과 동선을 추적해 변수를 차단할 충분한 노련함이 있다. '나이트'는 매 세트 '엔젤'을 압도하며 미드 차이를 벌렸다. 그나마 봇에서는 초중반 사고가 터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후안펑'이 캐리할 수 있는 판이 깔리진 않았다.

더 큰 문제는 탑 e스포츠의 운영과 수비력이다. 쑤닝은 언제나 무기력하게 패배하진 않았다. 거의 모든 세트는 팽팽했으며 중후반까지 큰 격차의 글로벌 골드를 우위를 점한 것도 세 번이나 된다. 하지만 태산 같은 탑 e스포츠의 단단함은 쑤닝이 승부에 쐐기를 박는 것을 결코 허용치 않았다. 열세 속에서도 집중력을 유지한 탑 e스포츠는 몇 번의 교전을 통해 전세를 뒤집으며 번번이 역전승을 달성했다. 반대로 탑 e스포츠가 먼저 앞서가는 상황에서 쑤닝이 역전하는 그림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명백히 체급 차이가 나는 두 팀의 승부다. 그러나 8강에서 징동 게이밍을 상대로 보였던 쑤닝의 고점 경기력과 프나틱에게 흔들렸던 탑 e스포츠를 되돌아보면 이변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과연 쑤닝은 올해 한 번도 넘지 못했던 탑 e스포츠를 롤드컵 4강에서 처음으로 꺾는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 2020 LoL 월드 챔피언십 4강 2경기

탑 e스포츠 vs 쑤닝 - 25일(일) 오후 7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