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 출시된 '로보 리콜'. 이전부터 '대단한 게임'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정식 출시 이후에도 명불허전이었다. 오큘러스 터치의 기능을 십분 활용한 게임 디자인과 입체감 넘치는 사운드, 그리고 에픽의 기술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은 듯한 마감새까지, '로보 리콜'은 어느새 VR 게임이 나아가야 할 지표와도 같은 게임으로 자리매김했다.

가장 멋졌던 건, 그 전에 공개했던 '불릿 트레인'보다 월등히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거다. 전작보다 나아지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하냐 싶겠느냐만, 사실 '불릿 트레인'만 해도 공개 당시엔 "와 이거 진짜 물건이다!"하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대단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게임이었다. 실험작과 각종 시행착오가 난무하던 시절에 등장한 한줄기 빛과 같았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로보 리콜은 그 불릿 트레인에서도 월등히 발전했다. 이게 왜 대단한 거냐고? '문명 6'를 하면서도 가끔은 '문명 5'가 하고 싶어진다. 전작은 전작만의 매력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로보 리콜'을 하는 순간, '불릿 트레인'은 더 할만한 가치가 없어진다. 스마트폰과 벽돌 휴대폰 정도의 차이라 할 수 있다.

'에픽 게임즈'의 신광섭 차장이 연단에 올랐다. 이 '로보 리콜'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 완성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에픽이 VR에 대해 도전한 건 '불릿 트레인'보다도 한참 전부터였다. '엘리멘탈 VR'부터 '로보 리콜'까지. 무려 여섯 작품을 거치며 쌓아온 그들의 노하우를 엿보았다.

▲ 에픽게임즈 신광섭 차장



■ 엘리멘탈 VR - VR에 대한 첫 도전

▲ 엘리멘탈 VR

'엘리멘탈 VR'은 에픽이 처음으로 발표한 VR 콘텐츠였다. 덕트 테이프를 써가며 만든 초기형 HMD로 구동하는 콘텐츠인 만큼, 부족한 면도 많았고 기술적인 수준도 굉장히 초보 단계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개발하면서 에픽은 몇 가지 귀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이동'에 관한 것이었다.

일반적인 콘솔, 비디오 게임에서의 캐릭터 이동 속도는 실제 사람의 이동 속도에 비하면 굉장히 빠른 편이다. 에픽은 개발 과정에서 일반적인 게임의 3분의 1 수준으로 이동 속도를 제한해야 VR에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경사로'가 생각보다 막막한 벽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경사로를 이동하는 과정은 실제로 몸이 움직이지 않고, 시선만 변하는 것임에도 상당히 심한 멀미를 유발했다. 중요한 건 시선의 방향과 이동 방향을 일치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비결을 더 얻을 수 있었다. '눈송이'와 같은 효과가 볼륨을 만들어서 입체감을 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파티클 반사가 플레이어의 '시선'을 끌어 오면서 VR의 느낌을 더욱 살릴 수 있다는 것과 오디오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 스트레테지 VR - '포지션 트래킹'의 응용


두 번째로 만들어진 '스트레테지 VR'은 조금 독특한 시선의 VR 콘텐츠였다. 이 작품은 작은 크기의 마을이 등장하는 '디펜스'형 게임이었는데, 이 작은 마을을 고개를 숙임으로써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구성이었다. 이때부터 VR HMD에는 본격적인 '포지션 트래킹' 기술이 구현되었고, 머리의 움직임에 따라 카메라의 위치를 이동할 수 있었다. 멀리서는 자세히 보이지 않는 작은 오브젝트를 향해 머리를 숙이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었고, 이를 통해 VR을 즐기는 플레이어가 더욱 더 VR에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 '포지션 트래킹'의 첫 도입

중요한 건, 이 '트래킹'이 끊어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VR은 기본적으로 외부 환경을 살필 수 없으므로 시연 도중 센서 영역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았고, 이 때문에 포지션 트래킹이 끊어지는 경우가 왕왕 일어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에픽에서는 화살표나 프러스텀을 그려보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했고, 끝내 센서 외곽으로 가까워질수록 화면을 흑백으로 만드는 방법을 고안해 이를 해결했다.


■ 소파의 기사 VR - '게임 플레이'를 만들다

▲ 묘하게 '에픽'답지 않은 '소파의 기사'

'소파의 기사'는 소파에 앉아 테이블에 놓인 캐릭터를 조종하는 게임으로, 기존의 '게임 컨트롤러'를 VR 게임에 맞추는 과정에 주안점을 두고 설계된 게임이다. 이 작품은 원래는 '언리얼 엔진3'의 테크 데모였던 '사마리아 인'을 소재로 취조실에서 탈출하는 게임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소재는 GDC를 통해 발표하기엔 너무 하드코어한 소재라는 의견이 나왔고, 결국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마리아 인'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던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는 남았다. 포지션 트래킹이 구현된 상태였음에도 자신의 몸이 구현된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기시감을 느끼곤 했다. 당시는 독립형 컨트롤러가 개발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손의 움직임을 잡아낼 수 없었고, 내 움직임과는 달리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게임 속 플레이어의 손이 '불쾌의 골짜기(언케니 밸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 플레이어는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때문에 디자인 자체를 소파에 앉아 컨트롤러를 쥔 형태, 즉 플레이어의 모습과 동기화했다. '소파의 기사'는 기본적으로 다른 이와 함께 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HMD를 써서 상대의 움직임을 살필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에픽은 또 한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보디랭귀지를 통해 굉장히 힘 있는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에 착안해 도입한 '표정'은 오히려 또 다른 불쾌함을 일으켰다. 이 또한 교훈이 되었다.


■ 쇼다운 - 90Fps 비주얼 개량

▲ 이건 상당히 '에픽'스럽다

'쇼다운'은 게임이 아닌, 체험 영상에 가까운 작품으로 2015년에 발표되었다. 그 전에 발표한 작품들을 포함해 가장 '에픽'스러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단 도입부부터 뭔가 쾅쾅 터져나간다. 이때 에픽은 다른 것보다 '비주얼' 측면에 집중했다.

소파의 기사는 75Fps의 프레임 레이트를 보여주었다. 에픽의 목표는 90Fps를 원활하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려다 보니 여러 가지 효과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일종의 '비주얼 사기'를 칠 수밖에 없었다. 배경에 직접광을 배제하고 라이트맵만 뿌리는가 하면, 라이트매스에 조명 대부분을 의존했다. 다이나믹 셰도우 또한 매우 무겁기 때문에 가짜 그림자로 대체하고 총구 불빛 등에만 다이나믹 라이트를 사용했다.

▲ 성능과 비주얼을 모두 잡기 위해 고민한 결과

이를 통해 에픽은 칼 같은 90Fps의 프레임 레이트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물론 문제도 많았다. 그럴싸해 보였던 노멀맵은 밋밋했고, 스프라이트 파티클은 VR을 직접 쓰고 보는 처지에서 조잡하기 그지없었다. 때문에 여러 가지 지오메트리를 직접 만들거나, 각 눈에 비치는 화면을 다르게 구성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반사' 효과만큼은 VR 환경에서 정말 좋은 효과를 거두었다.


■ 불릿 트레인 - VR에서만 가능한 콘텐츠의 구현

▲ 여러모로 대단했던 '불릿 트레인'

'불릿 트레인'은 본격적인 VR 게임이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를 보여준 첫 번째 사례라 할 수 있다. 가장 혁신적인 변화는 '이동'이라는 소재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것이다. 원래 '불릿 트레인'은 고정된 장소에서 등장하는 적을 사격하는 일종의 '슈팅 갤러리'형 작품으로 기획되었다. 하지만 이는 박진감도 떨어지고 액션이 죽는 구도였다.

때문에 여러 아시안 영화의 액션 구도(홍콩 영화, 느와르물, 그리고 올드보이 등)를 참고해 이동은 자동으로 두고 슈팅을 함께 하는 구도를 생각했지만, 이건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냈다. 미처 처리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적을 처치하기 위해 뒤를 도는 과정에서 트래킹을 놓치게 되는 것이었다. 결국, 에픽은 고민을 통해 '텔레포트'의 개념을 도입했고, 이 과정에 몇 가지 양념을 쳤다.

▲ 사실상 '모범'과 같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플레이어 개인을 일반인보다는 '슈퍼 히어로'에 가깝게 만든 것이다. 텔레포트를 위해 버튼을 누르면 순간적으로 화면이 슬로 모션으로 변하면서 다가오는 총알을 잡을 수 있고, 그대로 던져 줄 수도 있다. 이런 '슈퍼 파워'는 플레이어 개인에게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부여해 '게임'으로서 더 높은 가치를 보여주는 힘이 되었다.


■ 로보 리콜 - VR 게임의 '레퍼런스'


그리고 '로보 리콜'이 만들어졌다. 이 작품에 이르러서는 'VR'이라는 장치가 가진 구조적 특징이나 디자인 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이미 조목조목 연구된 단계였다. 필요한 건 '퀄리티'를 올리는 것. 이때부터는 '에픽'의 기술력이 빛을 발했다.

각 지점마다 플레이어가 위치할 경우 보이는 오브젝트를 미리 계산하고, 그만큼만 먼저 렌더링하게 하여 GPU 부하를 줄이고, 여러 메쉬를 합쳐 드로우 콜을 줄였다. 또한, 같은 메쉬를 사용하는 오브젝트들은 함께 렌더링 될 수 있도록 구성했다.

VR로 살펴보면 자글자글한 계단 현상이 더 눈에 띄기 때문에 '안티 얼라이징'에도 신경을 썼다. 나아가 '모딩'을 지원했다. 사실 '로보 리콜'은 극도의 완성도에도 게임 볼륨 자체는 크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에픽은 로보 리콜을 완전 무료로 풀었고, 나아가 모든 게임 내 어셋도 함께 배포했다. 각종 모드를 통해 게임이 스스로 더 나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기를 바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