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오브 어스2', '바이오하자드 RE:2', '마블 스파이더맨'.

지난해 소니는 E3에서 다양한 신작 트레일러를 쏟아냈다. 그 틈에서 바나나가 기타를 연주하고 뭉글뭉글한 캐릭터가 돌아다니는 게임을 눈여겨보는 팬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의 창작 디렉터 마크 힐리가 현장에서 26분의 게임 시연을 마친 후, 상황은 바뀌었다. 현장에 있던 해외 유수의 언론들은 E3 프레스 컨퍼런스 최고의 게임으로 이 게임을 꼽았다.

'대체 왜?'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그 답이 지금 나온다. 무한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게임. 제작 툴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는 미디어 몰큘의 '드림즈'다.

26분 만에 만들어진 3D 게임
그냥 넣고 조립하고 꾸미고

제한적인 정보만을 내놓던 미디어 몰큘이 E3 2018에서 상세한 게임의 모습을 공개했다. 행사 당일 '드림즈'의 창작 디렉터인 마크 힐리는 무대에 올라 게임을 직접 실행하고 손바닥 하나 정도의 작은 그림을 불러왔다.

게임의 기반이 되는 작은 지역. 마크 힐리는 오브젝트 창을 열어 맵을 넓히고 주인공이 될 캐릭터 하나도 꺼냈다. 적으로 등장하는 거대한 보스도 하나 추가해 직접 수정하고 관절을 붙여 그럴듯하게 꾸몄다. 여기에 음성과 움직이는 패턴을 더했다. 다음 스테이지로 이동하는 목표와 함정이 포함된 발판을 더하고 심심하니 흥겨운 음악도 추가했다.













▲ E3 2018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공개된 '드림즈' 제작 과정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스테이지. 3D 게임으로 이런 스테이지를 만드는 데 보통 몇 분이 걸릴까? 마크 힐리는 '드림즈'로 이 스테이지를 만드는데 고작 26분이 걸렸고 이는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자세한 설명과 대화가 오간 만큼 실제 제작 시간은 이보다 훨씬 짧은 셈이다.


만들거나, 그냥 플레이하거나
드림 서핑 & 드림 셰이프


'드림즈'는 2가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하나는 꿈을 탐험하는 드림 서핑(Dream Surfing). 플레이어는 정해진 일련의 이야기를 따라 퀘스트를 풀고 스토리를 이어나간다. 스토리가 정해져있을 뿐 풀어나가는 방식은 비교적 자유롭다. '드림즈'는 기본적으로는 3D 어드벤처이지만 플레이어는 게임에 포함된 수많은 에셋과 환경 조작, 디자인 툴 등으로 모든 것을 바꿔나가며 플레이한다.

창의적인 노력이 크게 필요하진 않지만, 각자의 사고방식이나 아이디어에 따라 새로운 길을 만들기도 하고 지형을 조작해 플레이 내에 자유도를 얻는다. 이는 본격적인 게임 제작까지는 아니더라도 플레이어 스스로 창작자가 된다는 느낌을 받기 충분하게 스테이지 구성이다.

▲ 3D 어드벤처. 이건 바꿀 수 있겠다 싶은 건 그때그때 바꿀 수 있도록 했다.

'드림즈'의 핵심 모드는 제작 툴이라고 할 수 있는 드림 셰이핑(Dream Shaping)이다. 플레이어는 게임 내에 주어진 다양한 요소들을 활용해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 수 있다. 간단하게는 게임의 배경이 되는 지형지물부터 광원, 적들의 이동 패턴, 장애물 요소 등을 조작해 하나의 스테이지를 만들 수 있다.

특기할 점은 기존에 존재하는 오브젝트를 직접 수정하거나 아예 새롭게 추가해 적용하는 것이다. 조작은 PS4의 조작기기인 듀얼쇼크4나 PS 무브를 이용하는데 찰흙 주무르듯 눈으로 보며 조작해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 또한, 형태나 크기, 오브젝트의 겹치기 등의 제약이 없어 마음만 먹으면 기성 게임 수준의 완성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제약 없는 제작 환경은 완성된 게임의 형태도 자유롭게 만든다. '드림즈' 제작진은 게임이 3D로 구성되어있는 만큼 3D 게임을 만드는 게 더 쉽지만, 2D 게임도 구현할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특히 8bit 감성의 레트로 픽셀 게임 역시 구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장르 역시 3D 플랫포머부터 퍼즐, 슈팅, 횡스크롤 액션, 텍스트 기반 어드벤처 등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다.

그래픽과 연출 외에도 게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음향 효과를 제작하고 적용하는 것도 간단하다. 다양한 샘플을 선택해 화면 곳곳을 패드로 두드리며 리듬이 갖추어진 배경음악을 만들 수 있다. 또한, PS4 마이크 녹음 기능을 통해 보스의 기괴한 음성과 사운드 효과도 직접 지정해 입힐 수 있다.

▲ '드림즈' 구현된 전혀 다른 스타일의 게임들. [클릭 시 확대]

▲ E3에서 열린 콘서트도 듀얼쇼크를 활용해 게임 음악 제작 툴로 즉석에서 연주됐다.

게임과 제작의 경계를 허무는 미디어 몰큘의 도전은 2008년 '리틀빅플래닛'과 함께 시작됐다. '리틀빅플래닛'은 세계를 구하는 털실 인형 리빅보이의 이야기를 그린 퍼즐 플랫포머 게임이다. 하지만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단순히 준비된 스토리 모드를 깨는 것 외에도 스테이지를 직접 구성하기도 하고 전혀 다른 장르의 게임을 만들어내는 등 창작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당시에는 기술적인 한계로 한정된 오브젝트를 가져다 쓰고 스테이지 구현도 제한이 있는 제약이 있었다. 다만, 만들어진 세계를 플레이하는 것과 플레이 할 세계를 만들어 가는 미디어 몰큘의 게임 철학은 이때부터 확고하게 자리 잡았던 셈이다.


개발사가 만든 게임 내 스토리보다 창작의 요소가 더 주목받는 '드림즈'. 과연 게임일까, 게임 엔진일까. 게임의 테크니컬 디렉터인 알렉스 에반스는 '드림즈'가 무엇인지 묻는 말에 이렇게 말했다.

"'드림즈'는 하나의 스케치북입니다. 어떻게 그림을 그릴지는 플레이어의 손에 달렸죠. 소비자든 크리에이터든 결국은 이 거대한 세계를 채워나가는, 게임을 만드는 '게임'을 하는 거죠."


마리오부터 데드스페이스까지
무한대의 가능성 'Dreams'

출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드림즈'는 진행된 베타를 통해 게임 제작 기능의 가능성을 무한히 뽐내고 있다. 1월 29일 비밀유지협약 기간이 끝나고 게임 내용에 대한 공유와 방송이 허용되면서 제작물이 쏟아지고 있다. 일부는 실사에 가까운 오브젝트를 만들었고 누군가는 자신만의 창의력을 새로운 게임으로 풀어냈다. 기존 게임을 좇아 캐릭터와 세계를' 드림즈'로 재구성하기도 했다.

짧은 기간 진행된 데모임에도 다양한 구성과 연출, 오브젝트, 그리고 여러 장르의 게임은 '드림즈'의 무한한 가능성을 짐작게 한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일주일 정도 만에 만들어졌음을 생각한다면 정식 출시 후 훨씬 더 완성도 높은 게임이 나오지 않을까. 아래는 그 가능성을 확인해볼 수 있는 유저 작품의 일부다.

 ◼︎ 사일런트 힐즈 PT 리메이크

코나미가 메탈기어 시리즈로 유명한 코지마 히데오를 필두로 기예르모 델 토로, 이토 준지, 노먼 리더스 등 최고의 스태프진과 함께 제작했던 사일런트 힐즈 플레이어블 티저(PT). 끝내 출시되지 못한 이 게임이 '드림즈'로 다시 제작됐다. 끝없이 반복되는 저택 복도를 원작과 유사하게 구현했고 배경을 유추할 수 있는 라디오 속 뉴스부터 삐걱거리며 울리는 효과음까지 원작 느낌을 충실히 살렸다.



◼︎ 데드스페이스

SF와 서바이벌 호러의 완벽한 조합을 선보인 데드 스페이스도 '드림즈'로 다시 태어났다. 게임의 특징인 UI나 깜짝 놀랄만한 적들은 아직 구현되지 않았지만, 주인공 아이작 클라크의 디테일과 삭막한 우주 공간은 원작과 유사하게 구현됐다. 특히 베타 기간이 지날수록 게임의 만듦새는 더욱 다듬어진 만큼 '드림즈' 정식 출시 이후를 기대해볼 만한 타이틀 중 하나다.



◼︎ 울트라 리얼리스틱 FPS

뭉글뭉글한 디자인과 천연색이 어울리는 '드림즈'. 하지만 울트라 리얼리스틱 FPS는 기성 게임 엔진 수준의 그래픽을 가진 게임도 제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게임은 어느 주택가를 배경으로 비가 내리는 밤 환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아직은 기본 지형 구현에 그쳤지만, '드림즈'의 1인칭 시점 슈팅 게임 제작 능력도 확인할 수 있다.



◼︎ 슈퍼 마리오

플랫포머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마리오 역시 유저들의 손에 의해 제작됐다. 게임에 사용하는 기본 오브젝트는 3D로 구현되어있지만 2D 게임을 제작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적이나 반응 구현 등 완전한 슈퍼 마리오와는 차이가 있지만 모든 자원을 직접 제작하며 만들었다는 기억하자.



◼︎ 프로젝트 힐 리덕스

공포게임 프로젝트 힐 리덕스는 '드림즈'를 통해 구현할 수 있는 광원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손에 들고 있는 손전등으로 비추는 빛과 어둠, 그리고 그림자를 통한 공포감을 구현하고 있다.



◼︎ 요시다 슈헤이 SIE WWS 대표

PS 무브를 통해 캐릭터 조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는 이미지다. 조형은 수치나 관절을 조절하는 대신 찰흙을 가지고 놀 듯 주무르며 변경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직관적인 캐릭터 조형이 가능해진다. 다만 자이로 센서를 이용한다 해도 듀얼쇼크4로 조작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 달걀 프라이

전작들과 달리 '드림즈'의 오브젝트는 유저가 직접 조정하고 편집해 자신만의 객체를 만들 수 있다. 유저 benpres가 만든 달걀 프라이는 광원 효과로 기름진 프라이팬을 표현했고 특유의 색감을 더해 먹음직스러운 모습을 갖추었다. 게임 속 소품 하나일 뿐이지만, 이런 소품 하나하나를 공유하고 이렇게 모인 에셋들이 게임 제작을 더욱더 쉽고 훌륭한 퀄리티로 제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