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트슨 대학교 크리스토퍼 퍼거슨 교수

'게임장애'에 대한 오해를 조명하는 국제 심포지엄이 건국대학교에서 5일 진행됐다. 심포지엄에는 스테트슨 대학교의 크리스토퍼 퍼거슨 교수, 하와이 대학교의 로버트 토구나가 교수, 노스텍사스 대학교의 김단종 교수, 건국대학교 정의준 교수가 참석해 발표했다.

먼저 퍼거슨 교수는 게임을 둘러싼 '모럴패닉'을 언급했다. 모럴패닉은 사회심리학에서 질서를 위협하는 것들에 대한 강렬한 감정을 의미한다. 과거 미국에서는 앨비스 프레슬리나 만화 캐릭터 벅스바니 같은 게 모럴패닉 대상이었다. 예로 만화에서 벅스바니가 총을 맞고도 멀쩡한 장면이 있었는데, 이걸 보고서 아이들이 따라 하는 사례가 있었다. 앨비스 프레슬리 역시 그를 모방하는 청소년이 많아졌다는 이유로 모럴 패닉의 대상이 됐다.

이 매체들은 TV나 라디오와 같은 매체에서의 영향이 사회적으로 이어진다고 보도했었다. 만화영화에서 총을 쏘는 장면들이 실제 사회에서 총격전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일부 언론이 사회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벅스바니나 앨비스 프레슬리에게 책임을 씌운다는 점이다. 가장 만만한 대상을 공공의 적으로 만드는 게 사회문제의 책임을 돌리는 쉬운 방법이어서다. 이런 맥락으로 최근 모럴패닉의 주 대상은 게임이 됐다고 퍼거슨 교수는 설명했다.

모럴패닉으로 누명을 쓴 게임은 결국 '게임장애(gaming disorder)라는 새로운 질병을 의심케 했고, 원인으로 꼽혔다. 하지만, 퍼거슨 교수는 "게임장애는 논란의 여지가 많고 원인이라는 증거는 희박하다"고 단언했다. 예로 게임장애를 진단하는 물음에는 '게임을 하지 않을 때, 계속 생각하나요?'나 '게임을 하지 않을 때 기분이 나빠지나요?'와 같은 항목이 있다. 이를 독서, 영화감상, 요리와 같은 '건전한 취미'로 바꿔 진단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책을 읽지 않을 때 내용이 생각난다고 해서 '책 중독'이라며 사회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또한, 퍼거슨 교수는 미국 정신의학회가 가장 최근 정리한 DSM-5에서 제시한 게임장애 근거를 보더라도, 증상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기존 알콜중독, 도박중독과 같은 문제들은 금단이나 내성에 관한 증상이 있어 측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게임은 앞선 문제처럼 증상과 내성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했다. 특히, "게임이란 콘텐츠 자체를 중독 물질로 전제한 뒤 문제를 지적했다는 점도 타당하지 않다"고 퍼거슨 교수는 말했다.

이어 로버트 토구나가 교수는 '게임장애'와 같이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단어를 조사한 결과 '병리'학적인 시선과 '인지'적인 관점으로 나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병리학적 관점은 게임을 하는 거 자체가 나쁘다는 의견이다. 인지적인 관점은 게임보다는 사람 개인과 환경을 주목한다.

앞서 토구나가 교수가 2015년 발표한 논문 결과에 따르면, 미디어 습관 자체는 배워서 하는 게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보통 사람이 퇴근하고서 집에 들어가 먼저 TV를 키는 행동은 중독돼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그냥'하는 건데 이를 병으로 여겨 문제로 만드는 거다. 게임과 게임장애에 관한 현상도 마찬가지다.

아울러 토구나가 교수는 "게임장애를 주장하는 이들이 비교를 술이나 도박중독에만 그친다"라고 비판했다. 게임장애를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은 뇌 활성화 영역이 술이나 도박에 중독됐을 때와 같으니 게임장애는 옳다고 말한다. 그러나 토구나가 교수는 "이런 뇌 반응은 공부나 스포츠를 할 때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퍼거슨 교수와 같이 "게임장애를 말하는 이들이 게임은 문제라 전제한 상태에서 주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단종 교수는 게임장애에 관한 논박이 아닌 '어떤 사람들이 게임에 더 몰입하는가'를 연구해 발표했다. 그는 "오프라인에서 대인관계가 좋은 사람은 게임 그 자체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며 "게임을 좋게 생각해서 남들보다 더 몰입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앞선 주장은 게임을 즐기는 약 57.7%의 사람에 해당된다.

다음으로 정의준 교수가 우리나라 게임중독을 둘러싼 내외부의 시선을 먼저 소개했다. 미국 ABC 뉴스는 지난 2015년, "한국은 세계 최고의 인터넷(게임) 중독자의 나라"라며 "한국의 게임 중독자는 200만여 명"이라 보도했다. CNN은 "한국이 게임중독과 싸우기 위해 '청소년 셧다운제'를 실시했다"며 "9~12세 청소년의 14%가 게임중독으로 분류된다"라고 전했다. PBS 뉴스는 중국이 300개 이상의 게임중독캠프를 운영하는 사례를 소개하면서 "중국과 '한국'은 게임중독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긴다"라고 전했다. 이어 이 매체는 "그러나, 유럽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다"라며 게임중독을 바라보는 동서양간의 온도차를 알렸다.

정 교수는 게임중독의 원인과 증상, 규정에 대한 동서양의 일치된 견해가 없다는 걸 지적했다. 실제로 게임중독에 관련한 보고는 주로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게서 나온다. 서양에서도 게임중독 관련 보고가 나오지만, 아시아 국가만큼 공격적이지는 않다. 이에 정의준 교수는 "아시아 국가 청소년의 학업 스트레스, 부모의 간섭과 같은 문화적 독특성에 대한 고려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게임과몰입 관련 청소년 조사 결과 모델(정의준 교수)

이어 정의준 교수는 지난 4년간 우리나라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게임이용자패널조사연구'의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게임을 즐기는 청소년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중 200명은 MRI 조사까지 했다. 초중고 학생을 균등하게 분배했으며, 가정 방문을 통해 부모 설문 조사까지 마쳤다.

결과는 "청소년 시기 게임 과몰입 수준은 매우 탄력적"이라고 정의준 교수는 말했다. 발표에 따르면, 매년 과몰입군 청소년의 50~60%는 1년후 별다른 조치 없이 일반군으로 이동했다. 5년간 과몰입군을 유지한 청소년은 2,000명 중 11명으로 1.4%에 불과했다.

정 교수는 과몰입군과 일반군의 차이를 보이는 주요 변인이 학업 스트레스, 자기통제력, 게임시간으로 요약된다고 정리했다. 가정에서는 부모의 과잉간섭과 기대, 대화 정도가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학교에서는 교사와 친구와의 관계, 고독함 등이었다.

특히 부모와의 관계는 청소년의 게임 이용 습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부모 스스로의 사회심리적 지수가 자녀에게 영향을 미쳤다. 예로 부모가 자기통제가 안 되거나 우울함을 보일 경우 자녀의 자기통제 능력이 낮아지거나 스트레스가 높아져 게임 과몰입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정의준 교수는 경고했다.

즉, 정의준 교수는 "서양에 비해 아시아 국가에서 게임과몰입 관련 보고가 많은 이유는 학업 스트레스와 부모 과잉간섭이 비교적 더 크기 때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의준 교수는 "게임과몰입의 주된 원인은 게임 그 자체보다는 부모의 양육태도와 학업 스트레스, 자기통제력 등의 사회심리학적 환경에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며 "스트레스와 자기통제능력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게임을 없애도 또 다른 갈등을 양산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편, 세미나 이후 진행된 질의응답에서 나온 "WHO 게임장애 질병코드 확정 이후, 전 세계에 적용됐을 때 게임산업은 어떻게 변했을까?"라는 물음에 패널들은 "생각보다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 입을 모았다. 도박중독이 인정됐다고해서 라스베가스 갬블링 산업이 죽지 않았듯이 패널들은 게임을 즐기는 젊은이들과 회사는 큰 신경을 쓰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단, 패널들은 게임장애 여파로 '랜덤박스' BM이 사라지거나 축소되는 영향이 있을 거라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