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대는 오늘(3일),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청년문화공간JU 동교동 5층 니콜라오홀에서 '세계보건기구(WHO) 게임 질병코드 분류 추진,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세션을 진행했다.

이번 세션에서는 박승범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산업과 과장,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이 참여했다. 1부에서는 윤태진 교수와 이동연 교수가 각각 '누가 게임 중독의 질병화를 주도하는가', '게임은 중독 물질이 아닌 놀이문화의 플랫폼'라는 테마로 발제했으며, 2부에서는 각 연사와 관계자들이 모여 토론을 이어나갔다.



■ 누가, 왜 우리를 환자로 만드는가? - 게임 질병화의 과정 훑어보기

▲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교수

윤태진 교수는 게임이 한국 사회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마약처럼 간주됐다고 설명했다. 약 30년 전, 당시에 전자 오락이라고 불렸던 것들은 사회적으로 마약 같이 해악을 끼치는 존재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런 양상은 미디어 전체로 볼 때는 특이한 현상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옛날에 TV가 처음 나와서 보급됐을 때는 바보상자, 마약이라고 했었다. 심지어 예전에는 소설을 두고서 마약이라고 일컫기도 한 적도 있었다.

그는 게임을 두고 마약, 혹은 부정적인 모든 사태의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은 새로운 문화 콘텐츠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덧씌우는 과정과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는, 부정적인 사건을 해당 콘텐츠와 연결시키는 일들이 이어졌다. 엽총 난사범이나 게임 때문에 갈등을 겪고 집에 불을 지른 고등학생, 게임에 빠져서 자식을 굶겨죽인 부모 등을 들고 와서 게임 중독, 그리고 게임이 마약 같은 존재라고 어필하는 것이다. 이미 이런 시각에는 게임이 부정적이라는 기본 전제가 깔려있다.

▲ 출처: SBS

이후 보건 기구가 나서기 시작하고, 2013년에 DSM-5에 인터넷 게이밍 디스오더가 등록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연구가 진행됐다. 당시에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부연설명이 붙었고, 그 뒤로 진행된 여러 연구들을 분석한 결과는 어땠을까?

윤태진 교수는 그간 1,500개에 가까운 논문들을 분석해나갔다. 그러는 동안 WHO에서는 ICD-11에서 게임 장애를 등록했고, 이를 '정신적, 행동적 또는 신경발달적 장애'라는 대범주 속에 끼워넣었다. 더 상세히 보면 '물질 사용이나 중독성 행동으로 인한 장애'라는 중범주 내에서 '중독성 행동으로 인한 장애'라는 소분류로 편입된 상태다. 이 의미를 두 가지로 설명하자면, 첫 번째로는 약물 중독에서 처방되는 방식이나 이를 체크하는 방식이 똑같이 적용된다는 의미다. 두 번째로는 도박 중독과 비교되면서, 그와 유사성을 연구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다.

▲ WHO가 ICD-11에 명시한 '게임 이용 장애'

ICD-11에 대해 언급하기에 앞서서 그는 DSM-5에 대해서 먼저 언급했다. DSM-5에서는 9가지 기준 중 다섯 가지를 충족시키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 문제는 여기에 게임이 아닌 다른 취미를 대입시켜도 이를 충족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게임을 제외한 다른 오락, 흥미가 감소하느냐는 항목에 낚시나 자전거 타기 등을 넣어보았을 때 문제가 되는가? 하는 의문이 발생한다. 즉 명확하지 않은 범주로 판정을 한다는 것이다.

WHO의 이번 결정에 대해서 심리학자뿐만 아니라 정신의학자들도 반발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게임을 한다는 행위를 미디어 소비라는 측면이 아니라, 물질남용 연구에 끼워넣은 것이 문제가 된다고 설명한다. 또한 게임을 좀 많이 해서 일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단순히 병리적으로 진단을 내리는 행동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서 상담을 하거나 타이르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질병 코드에 분류된 증상에 의거해서 '환자'라고 진단을 해버리면, 그 대상자는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이 때문에 질병 코드로 분류했을 때 게임을 과몰입하는 계층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치유적 효과가 나올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윤태진 교수는 최근 5년 간 연구를 살펴보면,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은 동아시아권의 정신의학 연구 집단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가장 많은 게임 중독 관련 논문을 발표한 국가는 우리나라(91편)였으며, 그 다음으로는 중국(85편)과 미국(83편)이 차지했다. 조사 기준은 영어로 쓰인 논문들을 기준으로 했으며, 저자의 국적이 아니라 저자가 속한 연구 기관의 국적을 기준으로 진행했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인구당 논문 편 수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이 중에서 특기할 점은,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의학 관련 논문의 비중이 59.3%로 국가별 평균인 36.8%에 비해서 크게 높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과 타이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런 동아시아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연구자들이 '게임 중독'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게임 중독이 병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어떤 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그런 것이 있나' 혹은 이것이 과몰입이냐, 장애냐, 어떤 것을 그렇게 이야기 해야 하느냐부터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외국과 비교했을 때 동아시아 3개국, 한국과 중국 그리고 타이완은 게임 중독이라는 개념에 대해 각각 81.9%, 90.6%, 91.7%로 압도적으로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최근의 연구 추세를 살펴보면, 2013년에 DSM-5에 인터넷 게이밍 디스오더 항목이 나오면서 이를 전제하고 연구를 진행하는 논문 수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2013년에는 58.7%였는데 그 뒤로 연구가 진행되고 논문이 발표되는 시기인 2016년부터 73.5%로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신학회에서 이미 '이런 게 있다'라고 언급을 한 이상, 병인지 아닌지 부언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게 있다'고 정의했기 때문에 그 본질적인 의미를 따질 필요 없이, 그 현상에 대해서만 연구해도 된다는 식으로 받아 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는 ICD-11 등재 역시도 그와 비슷한 식으로 진행됐다고 보았다.

▲ DSM-5에서 인터넷 게이밍 디스오더가 명시되자, 이를 근거로 연구들이 진행되는 추세가 늘었다

그렇다면 게임 중독 연구의 주요 기관은 어떤 곳일까? 윤태진 교수는 한국과 중국의 정부 기관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자연과학 펀드를 총괄하는 조직인 국가자연과학기금위원회(NSFC)에서 50편의 연구비를 지원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연구재단이 35편, 보건복지부가 23편, 전 미래창조과학부에서는 17편의 논문 연구비를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수행된 연구의 53%가 정신의학 분야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그 연구들을 훑어본 결과, 진단 도구의 타당성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우선 영의 IAT(인터넷 중독 테스트)를 가장 빈번하게 쓰긴 하지만, 그 외에도 GAS(게임 중독 등급), CIAS(첸 인터넷 중독 등급) 등 여러 가지 지표들이 사용된다. 그렇게 상이한 척도를 쓰다보니 중독의 유병률도 천차만별이다.

뿐만 아니라 IAT 등 옛날 지표들이 과연 타당성이 있는지도 의문을 제기했다. 예를 들어서 IAT 7번 문항은 '공부나 해야 할 일을 하기 전에 이메일부터 먼저 확인한다'라는 것인데, 이를 직장인에게 대입하면 어떨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이 7번 조항에 걸리는 직장인이 더 많다

중독 외에 게임과 관련해서 많이 언급되는 것이 폭력성과 연관이 있느냐 여부다. 미국에서는 게임 중독보다 이쪽 이슈에 더 많은 연구를 기울이고 있는데,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은 몇 가지 정도로 추려냈다. 우선 폭력적 자극에 민감한 특정 위험군은 분명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신경증 환자나 성격적 결함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렇지만 게임 폭력이 무조건 폭력을 유발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자극을 증가시켜 단기적 흥분을 일으킬 수도 있고, 일부 위험군에 이것이 크게 작용할 수 있지만 이런 것이 게임에서만 일어나는 유별난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자극은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부작용에 대해서 최소화하는 것과, 그 부작용 때문에 아예 중독 물질이나 질병 코드로 지정해버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담론이 이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과도한 게임플레이가 폭력 등을 유발한다, 이렇게 말하면 더 이상 이야기가 진전될 수가 없다. 이는 마치 과음하면 안 좋다, 라는 것과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학술적 연구를 살펴보아도 아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게임 장애가 어떤 것인지 아직은 확실하지 않다' 라고 보았다. 게임 장애의 증상도 일괄적이지 않고, 임상의가 이를 보았을 때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장르를 막론하고 게임 전체에 적용되는지, 또 게임 장애라고 진단한 환자들의 문제 행동은 다른 정신 장애 때문에 일어나는 것인지 아닌지 명확하지 않다.

윤태진 교수는 '게임 중독'과 이 논란은 비의학적인 문제가 의학적 문제가 되는 의료화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언급했다. 피터 콘래드가 2007년에 '어쩌다 우리가 환자가 되었나(원제: The Medicalization of Society)'라는 저서를 발표하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이 개념은 다음과 같다. 기술과 과학이 발전해서 약과 수술의 의존도가 높아지면, 이에 관한 전문가 즉 의료진이 정보를 독점한다. 그리고 소비자나 환자들은 손쉬운 치료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냥 쉬면 되는 것도 약을 먹거나 수술에 의존하는 것이다. 병의 원인보다는 증상을 억누르는 대증적 치유 방안에만 우선시한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의학적 치료에 대해 불신하게 되고, 민간요법 및 미신, 사이비의 영향도 커진다. 여기에 게임을 대입시켜보면, 현재 게임 중독 이슈의 진행 상황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WHO가 게임 중독에 질병 코드를 부여하면 어떻게 될까? 부모는 게임을 많이 하는 자식들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가정 교육에 문제가 있다거나, 아이가 ADHD나 우울증에 걸려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게임이라는 중독 물질 때문에 아이가 그렇게 된 것이라고 판단하고, 아이의 주변 문제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아도 무방해지는 것이다. 의사 역시도 복잡한 연구도 필요 없이 게임 중독이라고 진단을 내리면 된다. 심지어 일부 정신의학과 전문의들은 당장에 질병코드 분류를 받으면, 보험 적용이 아직 논의되지 않은 단계이기 때문에 한동안 비보험 치료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 게임 중독이라고 진단하고, 처방하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누가 질병화를 주도하고 있고, 이렇게 게임을 몰아가고 있을까? 윤태진 교수는 그에 대해서는 '도덕적 공황 이론'을 근거로 설명했다. 이는 스튜어트 홀이 주창한 개념으로,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앤서니 빈 교수가 2017년에 이를 정신 의학에 대입해서 정리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공포를 조장하는 연구나 발언은 대중매체에 의해 전파되고, 여기에 정치인이 개입하면서 다시 대중매체들이 개입하는 순환이 발생한다. 그러면서 이런 공포를 조장하는 연구의 필요하다고 언급이 되고, 그 연구가 실행이 되는 구조인 셈이다.

이런 사례로 윤태진 교수는 한겨레 신문의 2000년 보도 일부를 들었다. "경찰은 김 씨가 인터넷 머드게임에 중독돼 심한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9일 주검을 부검할 계획이다." 이 보도를 잘 살펴보면 모호하다. 김 씨가 왜 죽었는지 사안이 정확하지 않다. 게임 때문인가, 아니면 과로와 스트레스인가,그리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머드게임을 즐겼는지, 머드게임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겼는지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이런 보도들이 계속 축적되면 어떻게 될까? 게임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 라는 식의 보도가 계속 되면 시민들의 공포는 배가 된다. 그러면서 정책 담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연구가 선택적으로 인용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앞서 사건과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면, 그렇게 축적된 결과들이 자동적으로 반영이 되어버린다. '게임은 이런 나쁜 일을 발생시키는 유해 물질이다'라는 식으로 조명이 되는 것이다.

▲ 이런 보도가 축적되면서, 부정적인 담론이 확산되고 '의료화'가 진행된다 (출처: KBS2)

마지막으로 윤태진 교수는 실제 게임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이 연구를 이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게임 중독이라고 하는데, 정작 그 '게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게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라면 장르별 차이라던가 플랫폼, 유저층 등등 각각의 차이와 그로 인해서 유발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차이점도 인지하고 있다. 그런 것 없이 대부분의 연구는 '게임'이라는 한 가지로 묶어버린다.

예를 들자면 MMORPG와 MOBA, FPS를 그냥 '게임'이라고 묶어 놓은 뒤에 각각의 차이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각각 게임의 플레이타임도 다 다르고, 유저층도 다르다. 또한 게임에 빠져드는 요소도 다르다.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피험자에 대한 분류도 체계적이지도 않다는 의미기도 하다. 또한 측정 도구 역시도 불완전하다.

이와 같은 내용을 근거로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다시 던졌다. 누가, 왜, 게이머들을 환자로 만들려고 하는가?



■ 게임은 중독물질이나 질병코드가 아니다 - 놀이문화의 플랫폼

▲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동연 교수는 미디어가 국가 권력의 통제 대상이었다는 점을 재조명했다. 앞서 윤태진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TV 등도 반사회적 매체 혹은 선량한 청소년을 나쁜 길로 빠져들게 하는 물질 등으로 매도가 됐던 것이다. 이제는 게임이 그 통제, 명령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게임이 다른 매체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중독 물질'이나 '질병 코드' 등으로 분류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예전 TV나 비디오, 만화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게임만은 유독 그런 취급을 받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보았다.

▲ 특정 매체를 나쁜 것으로 규정하는 행위는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질병'으로 분류되진 않았다

그 다음으로 게임을 규제하는 방식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나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눠서 이를 분석했다. 첫 번째는 2011년부터 진행되는 셧다운제다. 여기서 작용한 문법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이동연 교수는 청소년을 나쁜 매체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이른바 청소년 보호론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당시에 여론을 주도했던 것은 개신교 성향의 학부모 단체, 보수 단체, 미디어 감시 단체였다.

그 뒤로는 조금씩 강도 높은 규제안이 발의되다가, 신의진 전 의원이 게임중독법을 발의하면서 국면이 전환됐다고 보았다. 중독법은 청소년 보호 차원이 아니라, 정신 의학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법안은 게임 업계나 사회문화 단체들이 반발하면서 계류가 됐다.

▲ 게임중독법을 발의한 신의진 전 의원

그리고 이번의 WHO의 질병 코드 분류는 또 다른 차원이라고 이동연 교수는 설명했다. 이번엔 단순히 정신 의학의 영역이 아니라, 보건 의료의 영역으로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에 셧다운제, 중독법 논란, WHO 질병코드 등 문화 담론에서 정신의학, 보건의료까지 가는 이 일련의 움직임은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보았다.

보건의료의 측면에서 '게임'을 바라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게임을 흔히 문화, 놀이, 산업, 예술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하고는 한다. 그렇지만 보건의료라는 담론이 개입되면, 그것들은 모두 배제가 되어버린다. 삶의 근간을 파괴할 수도 있는 질병, 그리고 이를 다루는 보건의료라는 측면은 그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런 담론이 자리잡기 전에 그는 업계와 정부가 강력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일단 한 번 보건의료의 문제로 자리잡으면, 이를 되돌리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아울러 2013년 발의된 게임중독법을 어떻게 막을 수 있었는지 다시 살펴보라고 주문했다. 그는 게임중독법이 계류하게 된 계기가 법안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문화예술계와 업계가 강력하게 대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았다. 이렇듯 이번 이슈에 대해서도 업계, 문화예술계, 정부 부처가 강력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게임 중독법 발의 때처럼 업계가 강력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WHO의 질병 코드 분류 이유를 게임에 몰입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고,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 혜택을 제공해야 하는 만큼 그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에 이동연 교수는 질병 코드로 분류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가지 조치가 취해지는 것이 완전히 다르다고 반박했다. 뿐만 아니라 게임이 질병 코드로 분류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게임이 뇌에 나쁘다는 이른바 '게임뇌'도 이미 임상학자들의 연구를 통해서 반박됐다. 그리고 흔히 중독 이론자들이 말하는 도파민 분비 역시도 잘못된 인용이라고 이동연 교수는 설명했다. 전두엽에서 생성되는 도파민은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신경물질로, 흔히 마약을 할 때 나온다고 알려져있다. 이를 근거로 게임 = 마약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도파민은 다양한 상황에서 분비되는 물질이다. 예를 들어서 키스를 하거나 할 때에도 나온다. 즉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것만으로 게임을 그렇게 몰고 가기에는 합당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 도파민 분비만으로 게임이 마약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다

일각에서는 게임이 뇌를 손상시킨다는 연구도 있지만, 반대로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 등에서는 뇌 기능이 향상된다는 임상학적 실험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즉 일부만 갖고 전체화할 수 없는 단계인 만큼, 일반화할 수도 없고 질병으로 단순 분류를 할 수 없다고 보았다.

아울러 이동연 교수는 이런 논의 자체가 게임이 갖고 있는 가치 자체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게임이 갖고 있는 산업, 놀이, 교육적 가치는 언급되지 않고 중독이냐, 아니냐만을 갖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정신 질병으로 코드화가 되는 순간, 게임은 그 모든 가치를 상실하고 질병의 대상이 된다. 그런 만큼 업계에서 이 문제에 더 참가할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게임은 단순히 중독이라는 차원에서만 부정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아니다. 게임에 대해서 사회적 담론을 펴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폭력성'을 조장하는 유해 매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식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작년 2월 플로리다 주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 이후 백악관 공식 유튜브에다 게임 속 폭력적인 장면만 모은 영상을 올린 일이었다. 그 행동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게임이 이렇게 잔인하고 폭력성을 조장하는데 규제를 안 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 주의: 잔인한 장면만으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이동연 교수는 게임과 총기 범죄에 연관성에 대해서는 연구가 진행되기도 했고, 그 결과 게임 외에 다른 여러 요인들이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우선 전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게임들을 즐기는 유저층이 있는데, 미국에서만 유달리 총기 사건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총기를 보유한 인구의 비율이나 가정 문제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는데, 이런 부분은 언급하지 않고 게임만을 지적한 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준 행동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게임은 크게 산업과 규제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만 언급되고 있다. 놀이문화라는 가치는 그 둘에 속하지 않는 제 3의 영역인데,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담론에 진전이 없다고 이동연 교수는 지적한다. 과장되게 말해서 "돈만 벌면 되겠냐", "돈 버는 것을 왜 막느냐"라는 측면에서만 담론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미덕이나 선, 문화라는 측면이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게임과 달리 영화 산업이 시민사회의 지지를 받았던 이유라고 보았다. 영화는 우리가 지켜야 할 문화다, 라는 인식이 시민들에게 퍼지면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던 것이다. 게임 역시도 이런 관점에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이동연 교수는 주장했다.

▲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전시전이 열릴 만큼, 게임의 문화적 가치는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게임은 시각적, 청각적, 심지어 일부 플랫폼에서는 촉각 등 다양한 감각과 더불어 텍스트가 결합된 가장 진화된 놀이 문화라고 보았다. 그리고 호모 루덴스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게이머들이 게임을 좋아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놀고 싶어하는 존재고, 게임은 그 욕망을 채워주는 여러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중독 물질로 분류되어야 하는지, 근원적인 의문을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이야기도 질병 코드화가 되면 아예 언급 자체가 어려워지게 되는 만큼, 업계에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이번 질병 코드화 이슈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세션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