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게임개발자협회는 금일(28일) 판교에 위치한 글로벌게임허브센터에서 한국인디게임협회, 넥슨 노동조합 스타팅 포인트, 스마일게이트 노동조합 SG길드, 스마트폰게임개발자그룹, 게임 개발자 출신 인기 유튜버 G식백과 김성회 크리에이터와 함께 WHO 게임 질병코드 부여 확정 및 보건복지부의 국내 KCD(한국표준질병분류) 도입을 반대하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는 기자 회견을 진행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게임 질병도입 및 게임중독과 관련하여 게임 산업 구성원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마련됐다. 한국게임개발자협회의 전석환 실장의 공동성명서 대독 발표로 시작됐으며, 이어서 한국게임개발자협회의 정석희 회장, 한국인디게임협회 최훈 회장, 넥슨 노동조합 스타팅포인트 배수찬 지회장, 스마일게이트 노동조합 SG길드 차상준 지회장, 스마트폰게임개발자그룹 전명진 회장, G식백과 김성회 크리에이터의 발표가 이어졌다.


■ 기자회견 공동성명서 전문

우리 게임 제작자들은 게임을 치명적인 중독 물질로 규정한 WHO의 게임 질병코드 부여 결과를 강력하게 규탄하며 보건복지부의 국내 도입을 적극 반대한다.

국내 게임 산업이 태동한 후 지난 30여년간 우리 게임 제작자들은 ‘게임은 아이들의 놀이’라고 치부해왔던 척박한 환경에서도 새로운 문화 산업의 신 개척자라는 사명감과 문화 콘텐츠 수출 분야에서도 1등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게임을 개발 및 제작해왔으며, 그 결과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게임 제작 기술 보유 국가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우리는 몇 해 전 게임을 마약, 술, 도박과 함께 4대 중독으로 포함시키고 그 가치를 폄하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막아내며 굳건히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의 지위를 지켜왔으나, 게임을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치명적인 중독 물질로 치부하는 작금의 상황에서는 더 이상은 침묵할 수 없기에 아래와 같이 선언을 발표하여 게임의 가치를 지켜 내고자 한다.


하나. 게임은 대중과 함께 숨쉬는 콘텐츠이다.

게임은 전체 국민의 70%가 이용하고 있는 건전한 국민 대중 문화이자 국민 놀이 문화이다. 국민 다수가 즐기는 게임과 게임을 행할 자유를 명확하지 않은 기준으로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

하나. 게임은 창의적인 콘텐츠이다.

게임은 사용자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만나는 문제에 대한 해결 과정을 통해 창의력이 배양되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콘텐츠이다.

하나. 게임은 자기 주도적 학습이 가능한 콘텐츠이다.

사용자는 플레이 중 주도적 학습의 과정을 스스로 터득하고, 학습 과정을 통해 재미를 느끼게 되며, 새로운 학습 체계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적극적으로 배양할 수 있는 콘텐츠이다.

하나. 게임은 예술적 가치를 포함하는 콘텐츠이다.

게임은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사실적, 초사실적, 은유적, 낭만적 표현의 자유가 극대화된 예술적 가치를 포함한다. 소프트웨어 공학이라는 기술적 기반 위해 문학, 미술, 음악이 가진 예술적 가치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융복합 콘텐츠이다.

우리 게임 제작자들은 게임 중독이라는 용어조차 사회적 합의가 없었음을 지적하며, 언론 및 방송에서 게임 중독 대신 ‘게임 과몰입’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

지금의 아이들이 원하는 세상의 놀이터는 어른들이 뛰어 놀았던 운동장과 놀이기구가 있는 놀이터 만이 아니며, 무한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게임이라는 가상의 세계가 이미 아이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발전하면, 살아가는 환경과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도 함께 변화해야 한다.

다만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 게임에 지나치게 과몰입되어 있다면, 그것은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과몰입할 수 밖에 없었던 환경, 그래서 사회적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환경의 문제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으면 안 되는 나쁜 게임이 아닌, 있어서는 안 되는 나쁜 환경을 해결하는데 노력을 다해야 한다.



"게임 과몰입 청소년 2,000명 5년 관찰 결과 98.5% 자연 해결됐다"
한국게임개발자협회 정석희 회장


▲ 한국게임개발자협회 정석희 회장

한국게임개발자협회의 정석희 회장은 우선 게임이 중독물질이라는 단서부터가 잘못됐다고 설명했다. 그 증거로 정석희 회장은 건국대학교 정의준 교수의 연구 결과를 예시로 들었다. 그는 "정의준 교수님의 연구 발표에 따르면 게임에 과몰입된 2,000명의 청소년을 5년간 연구 관찰한 결과, 98.5%의 아이들이 별도의 치료나 상담 없이도 자연스럽게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다"며, "오히려 정의준 교수님은 과몰입 원인에 대해 학업이나 가정, 그리고 사회 환경이 학생에게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작금의 게임 중독물질 지정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게임 업계 역시도 반성해야 할 점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업계가 뜻을 모아 공개석상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사례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정석희 회장은 이에 대해 "질병코드가 부여되기 전에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업계와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해서 아쉽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편, 정석희 회장은 이번 질병코드 부여로 인해 업계의 뜻이 모인 이제부터라도 보건복지부의 국내 KCD 도입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약속했다. 우선 공대위를 통해서 유관단체 및 기관과 협력해 업계의 의견을 강력히 타진하는 동시에 그간 소극적이었던 행보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당당히 목소리를 내겠다고 전했다.


"게임 질병코드 부여, 문화 콘텐츠 전체에 악영향 줄 수도"
한국인디게임협회 최훈 회장

▲ 한국인디게임협회 최훈 회장

한국인디게임협회 최훈 회장은 게임 질병코드 부여가 단순히 게임만의 문제가 아닌 문화 콘텐츠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음을 경계했다. 그는 "가스렌지나 토치를 두고 누구도 방화 도구라고 하지 않는다"며, 게임은 모든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 콘텐츠인데 각종 사건사고의 원인으로 게임을 지목하고 무작정 질병코드를 부여한 건 너무 성급하게 판단한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아울러 최훈 회장은 이러한 질병코드 부여가 결국은 산업의 입지를 좁게 할 거라고도 덧붙였다. 중독물질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업계에서도 도전보다 안전한 콘텐츠만 생산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게이머들도 선택의 폭이 좁아질 거라고 본 거였다.


"게임이 중독물질이라면 개발자는 중독 환자인가?"
넥슨 노동조합 스타팅포인트 배수찬 지회장


▲ 넥슨 노동조합 스타팅포인트 배수찬 지회장

넥슨 노동조합 스타팅포인트의 배수찬 지회장은 노조의 의견을 말하기에 앞서 포괄임금제보다도 이번 게임 질병코드 부여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았다고 이야기했다. 개발자 본인들이 직접 영향을 받는 악폐습인 포괄임금제보다 산업 전체를 휘청이게 하는 질병코드 부여를 더 위협적으로 봤다는 의미였다.

본격적인 질병코드 부여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면서 배수찬 지회장은 게임이 중독물질이라는 것에 대해 명확한 실체가 없음을 지적했다. 그는 "게임이 정말 중독물질이라면 누구보다 게임을 사랑하고 개발하는 개발자야말로 가장 심각한 중독 환자일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단순히 게임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만으로 중독물질이라고 규정하는 건 잘못됐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 관점이라면 오히려 수능이나 사교육이 더 심각하다. 공부하다가 자살하는 학생도 많다. 하지만 누구도 수능이나 사교육을 원인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관계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라며, 그런 면에서 게임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소수만 즐기는 문화이기에 공격의 대상이 됐다고 자신의 의견을 내비쳤다.

다만, 배수찬 지회장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게임을 하는 그런 사례가 늘어나고 언젠가 게임이 주류 문화로 편입되면 이런 시선 역시 사라질 거라고 전망했다.


"게임 중독물질 낙인, 전두엽 절제술 같은 비극 되풀이해선 안 돼"
스마일게이트 노동조합 SG길드 차상준 지회장


▲ 스마일게이트 노동조합 SG길드 차상준 지회장

스마일게이트 노동조합 SG길드 차상준 지회장은 명확한 인과관계도 밝히지 않고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한 것부터가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부모의 과도한 간섭과 무신경함을 비롯해 제대로 된 취미활동도 만들기 어려운 사회 환경에서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다"라고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서 최근 발생하는 사회 문제에 대한 원인을 그저 게임으로 돌리고 있는 게 아니냐며 "직무유기를 게임에 덮어씌운 건 아닌지 묻고 싶다"고 쓴소리를 쏟아냈다.

아울러 그는 게임 질병코드 부여는 성급하고 시기상조였다고 덧붙였다. 게임과 중독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너무 성급하게 추진했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끝으로 차상준 지회장은 작금의 게임 질병코드 부여에 대해 과거 무분별하게 행해진 전두엽 절제술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며,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게임은 새로운 문화 공간, 배척하기보다 이해해야 한다"
스마트폰게임개발자그룹 전명진 회장


▲ 스마트폰게임개발자그룹 전명진 회장

스마트폰게임개발자그룹 전명진 회장은 본인과 아이의 사례를 통해 게임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의견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전명진 회장은 어릴 적부터 아이와 게임을 하고 놀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그가 퇴근할 때가 되면 아이는 현관에서부터 게임 컨트롤러를 들고 졸졸 따라다녔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는 "이런 내 아이가 게임중독일까? 아니다. 그저 아빠랑 놀고 싶은 거였다"라고 강조했다.

물론, 이제 전명진 회장의 아들은 그와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 이제는 친구들과 게임을 즐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는 여전히 그걸 중독으로 보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친구들과 노는 등 일종의 사회생활을 하는 셈으로 본 거였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그런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건 새로운 세대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그는 게임이 청소년 범죄율을 높인다는 의혹을 영국의 연구 결과를 이야기하며 정면에서 반박했다. 영국에서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약 7년간 조사한 결과, 청소년들이 게임을 함으로써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직접적인 범죄 환경에 노출되는 걸 줄여줘서 결과적으로 청소년 범죄율을 줄이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냈다는 연구 결과였다.

끝으로 전명진 회장은 "아이들이 게임에 빠졌다고 무조건 손을 붙잡고 정신병원에 가기보다 게임이라는 문화를 공감하고 이해하며 진솔하게 얘기를 나누는 게 더 중요하다"고 무작정 배척하기 보다는 포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게임은 허비하는 게 아니다. 하비(Hobby)다"
G식백과 김성회 크리에이터


▲ G식백과 김성회 크리에이터

김성회 크리에이터 역시 게임이 중독물질로 지정된 것과 관련해 중독의 명확한 기준이 없음을 지적했다. 그가 만난 게임중독 찬성 인사들은 게임을 많이 한다는 걸 중독의 지표로 봤다. 하지만 그렇다면 프로게이머야말로 누구보다 게임에 중독된 인물이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얘기를 하면 의견이 나눈다. 아예 프로게이머조차도 중독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독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어엿하게 프로게이머로 데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습생은 아니다. 하루 12시간 넘게 게임을 하는데 프로 데뷔를 하지도 못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게임중독의 굴레를 뒤집어쓴다. 이에 대해 얘기를 하며 김성회 크리에이터는 "얼마 전 100분 토론에 나온 말 그대로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굴레를 씌우는 이유에 대해서는 학부모들의 도피심리, 핑계가 작용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자식이 공부를 못하는 명확한 이유가 없으니 그에 대한 원인으로 무조건 게임을 지목한다는 거였다.

아울러 그는 언론이 게임을 제대로 바라봐주길 당부했다. 게임 작업장을 하던 부모가 아이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을 예로 들며 "이걸 게임중독으로만 모는데 이건 마치 불법 양조장을 운영하던 부모가 아이를 방치해 죽인다고 알콜 중독자라고 판단하는 꼴"이라고 비난했다. 인과관계를 명확히 보지 않고 무조건 게임은 나쁘다고 언론이 몰았다는 거였다.

뉴질랜드 총기사건 역시 당사자가 "게임 때문에 일을 벌이는 게 아니야"라고 성명서를 내걸었음에도 언론에서 게임을 타겟으로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아낸 일을 김성회 크레에이터는 꼬집었다. 이어 그는 "게임을 각종 이슈의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성회 크리에이터는 우리나라 대형 게임사의 자성을 촉구했다. 그는 "게임은 문화라고 강조하지만, 우리나라 대형 게임사가 만든 사행성 게임들을 보면 할 말이 없다"며, "이런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게임다운 게임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