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L 티어2에서 시작한 팀이 1년 만에 도타2 아시아 챔피언쉽(이하 DAC) 6위권이란 성적을 거뒀다.

선수들 면면을 살펴보면 '아티지'나 'iceiceice', '퍼피'같은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과 비교해 2% 부족한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선수들 다섯 명이 모인 레이브라는 팀은 DAC 1, 2위인 EG, VG와 풀리그 단계에서 호각의 경기를 펼칠 정도로 강했다. 결국 빅 갓에게 패배했지만 그 경기에서도 레이브는 엄청나게 불리하던 경기를 역전하는 등 전 세계에 자신들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소년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료들을 믿으니까!'라는 말. 레이브는 모든 멤버들 간의 믿음으로 개개인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면서 소년 만화처럼 기적적인 성장을 이뤘다. 인천의 한 피자 가게에서 권평 매니저와 함께 피자를 뜯으며 얘기를 나눠보니, 레이브는 선수부터 매니저까지 한 몸처럼 서로를 믿고 의지한다는 느낌을 더 확실히 받을 수 있었다.

이하는 레이브의 권평 매니저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TI보다도 어려웠던 DAC... 6위는 생각도 못 한 성적


Q. 안녕하세요! 먼저 팬 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레이브의 매니저를 맡고 있는 권평입니다. 팬 여러분의 응원 덕분에 DAC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Q. DAC같이 큰 대회는 처음이었죠? 대회를 치른 소감이 어떤가요?

미니 TI란 얘기가 많았어요. 하지만 중국 팀이 많아서 저희는 대회 전부터 TI보다 어렵다고 얘기를 했었죠. 유럽 팀은 잘 하는 팀이 일부 정해진 반면 중국 팀은 다 잘 하니까요. 오히려 더 어렵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 DAC에서 레이브의 6위권 성적을 과연 몇 명이나 예상했을까?

Q. DAC 성적이 6위에요. 그 정도 성적을 낼 거라고 조금이라도 예상을 했나요?

전혀 생각 못했죠. 애초에 DAC 목표가 상위 8팀 내에 들자는 것이었어요. 거기까지 간 것만 해도 굉장히 잘 한 성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그 정도까지 가니까 욕심은 나더라고요. '할 수 있겠다, 가능하겠다'고 선수들끼리 얘기했어요.

원래 선수들이 경기가 다 끝나고 나면 잠이 잘 온다고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서 마셨어요. 그런데 빅 갓과 경기를 치르기 전 날에는 제가 다음 날 일정이 많다고 소주를 못 마시게 했어요. 선수들이 그것 때문에 졌다고 제 탓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Q. 빅 갓과의 경기에서 첫 세트를 따내고 역전당했어요. 아쉽지 않았나요?

2세트에서 상대 선수들이 노련하다는 게 느껴졌어요. 아무리 푸쉬 메타가 약해졌다 해도 상대 팀에 막을 영웅이 없으니까 잘 통한다는 걸 증명했잖아요. 3세트에서도 골드 부활도 없는 적 가면무사를 잡을 기회가 있었는데 체력 50 남은 걸 못 잡아서 결국 졌어요. 선수들 말로는 순간 렉이 걸려서 못 때렸다고 했는데 운도 실력의 일부라고 봐요. i-리그와 DAC에서 'xiao8'을 만나서 다 졌는데 다음엔 꼭 이기고 싶어요.


■ 술 마시다 접한 생존 소식! 재경기 일정 소화는 전혀 문제 없어


Q. 첫 날 3승 1패후 성적이 조금씩 나빠졌었죠. 불안하지 않았나요?
저희가 원래 하루에 1승씩만 하자는 게 목표였어요. 예외적으로 첫 날만 iG와 MVP 피닉스를 잡고 2승을 하는 게 목표였어요. 그런데 첫 날부터 3승을 하니까 약간 해이해진 것 같아요. 출전한 모든 팀이 저희보다 잘 한다고 봤으니까 게임을 져도 괜찮으니 뭐라도 배워왔으면 된다고 생각했죠. 중간에 전패한 날 빼고는 다 괜찮았어요.


Q. 마지막 날 경기까지 치르고 자력 진출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였어요. 그 상황에서 꼴찌였던 뉴비한테 팀 운명을 맡겨야 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솔직히 뉴비도 그렇고 MVP 피닉스한테 굉장히 화가 났었어요. 한 판은 이겨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도 했죠. 통푸랑 HGT 잡아서 우리 좀 도와달라고 응원도 많이 했어요. 'LD', '윈터'같은 캐스터들은 경기만 하면 'MVP 피닉스와 경기를 치르게 됐으니 상대 팀은 이제 진출했다', '이건 보너스 스테이지다'라고 해설을 하더라고요.

뉴비가 경기를 치르기 전에는 '우리 이제 떨어졌다'고 하면서 선수들하고 방에서 술 마시고 있었어요. 그런데 뉴비가 경기 이기더라고요. '하오'가 제 옆 방이었는데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선수들하고 다같이 밖으로 뛰어나가 고맙다고 인사했어요(웃음).


Q. 재경기 일정이 많이 빡빡했는데 힘들지 않았나요?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지난 번에 MPGL 치르러 필리핀에 갔는데 하루에 18시간을 대회를 했어요. DAC 정도는 바캉스죠. 필리핀에서는 18시간 동안 밥도 안주고 3시간 자고 다음 날 경기장에 오라고 해서 잠 안자고 갔더니 교통 상황 안 좋아서 상대 팀이 안 왔다고 하더라고요. 열은 열대로 받고 몸은 몸대로 아팠는데 그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에요(웃음).


Q. 3자 동률이 났을 때 숙소 분위기가 어땠나요? 바로 다음 날 경기를 치러야 했는데 준비는 어떻게 하셨는지?

크게 동요하거나 하진 않았어요. 이만큼 해도 잘 했고 충분히 자랑스러워 해도 된다고 말했어요. 그냥 다음 날 준비나 잘 하자고 연습했죠. 다음 날 경기에서 '제요'는 1번 캐리를 시켜서 무조건 세이프 레인으로 보내는 게 메인이었어요. 선수들한테 첸, 트롤 전쟁군주, 폭풍령처럼 다른 영웅들을 할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많이 해 봤다고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해 보라고 시켰죠. 결과적으로 좋은 결정이었어요.


■ '이기는 법'을 배운 DAC, 선수들에 대한 신뢰가 승리의 원동력


Q. DAC를 치르면서 제일 힘든 경기와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경기는 어떤 경기였나요?

가장 크게 흔들렸던 게 C9전이었어요. 무조건 잡을 수 있는 팀이라고 생각하고 경기를 치렀는데 전 레인이 터지면서 경기를 지니까 선수들이 많이 힘들어했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건 HGT, 통푸 같은 중국 하위팀과 iG, MVP 피닉스였어요. 뉴비는 못 이길 줄 알았는데 MVP 피닉스와 경기하는 걸 보니까 '뉴비가 상태가 좀 이상하다. 이길 수 있다'고 했죠.

저는 저희 팀이 경기를 할 때 그 경기를 잘 안 봤어요. 대신 저희와 다음에 상대해야 할 팀들 경기를 보고 메모를 하면서 대비를 했죠. 저희 팀 경기를 제가 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잖아요. 본인들 실수를 본인이 더 잘 알텐데 그걸 풀리그 기간 중에 일일이 꼬집기도 좀 그렇고 해서 경기 끝나고 난 후에 저희 경기를 봤어요.

전력 차가 너무 심해서 이기기 힘들다고 생각한 건 팀 시크릿이었어요. 거긴 경험이 너무 많고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들이 많았으니까요. 그래도 EG, VG같은 팀과는 꽤 비등비등한 경기를 펼쳤고 경기도 잘 했으니까 조금만 더 가다듬자고 얘기를 해줬죠.


Q. 선수들이 포지션을 많이 바꿨어요. DAC같은 큰 대회에선 포지션 변경이라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텐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렸죠?

그냥 선수들을 믿었어요. 대회 때는 포지션이 정해져 있다곤 하지만 혼자 게임할 땐 아무 포지션이나 플레이 하잖아요? '크리시'도 원래 서포터를 제일 잘 해요. 그런데 우리 팀에 오프레인을 맡을 선수가 없으니 '크리시'가 오프레인을 간 거에요. 원래 '크리시'가 제일 잘 하는 건 4번 서포터에요.

'료'는 오프레인 연습을 따로 하지는 못했는데 할 수는 있기 때문에 오프레인을 맡게 됐어요. 헬레이저와 경기할 때 상대에 모래제왕이 있었어요. 먼저 한타를 열 수 있는 영웅이 모래제왕이고 푸쉬를 할 때도 모래제왕이 있으면 힘들어지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료'가 자신을 희생해서 야수지배자의 멧돼지와 새를 보내 스택을 방해해서 모래제왕을 말리게 했어요. 자기가 맡은 포지션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이해를 한 거죠.

예전에는 선수들의 생각이 '내가 잘해서 이겨야지'였다면 지금은 스스로를 많이 희생을 시켜서라도 상대방의 핵심 영웅을 말리게 해서 게임을 승리하는 법을 알았어요. 한 마디로 이기는 방법을 안 거죠. 헬레이저와의 경기가 끝나고 모든 선수들이 '료'가 MVP라고 칭찬했어요.

▲ 오프에 미드에 서포터까지... 못 하는 게 대체...?

Q. DAC 후 팀 분위기는 어떤가요? 큰 대회에서 상위 입상을 했으니 분위기가 많이 올라갔을 것 같은데요.

분위기는 거의 다른 게 없어요. 대신 선수들한테 휴식을 취하라고 시간을 줬죠. '료'는 필리핀에 놀러 갔고 '닌자부기'는 플레이 스테이션이 너무 사고 싶다고 해서 하나 사 줬더니 숙소에서 그것만 하고 놀고 있어요. 다른 선수들은 해괴수 이벤트를 하거나 그동안 밀렸던 드라마, 애니메이션 보면서 쉬고 있어요.

원래 일정대로라면 위플레이 리그를 오늘 치러야 했는데, 대회가 미뤄지지 않았다면 그냥 기권을 하려고 했어요. 할 때는 해야 하지만 쉬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계속 하다보면 사람이 방전이 되니까요. 게다가 게임을 안 하고 있다고 해서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건 아니에요.

선수들이 굉장히 성실하기 때문에 연습에 대해 따로 터치하진 않아요. 선수들이 대회 전에도 '연습은 3판 2선승제로 하루 두 번씩만 하겠다'고 해서 '너희들이 그게 맞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해라'고 했어요. 양보다 질이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스크림은 횟수가 적더라도 전력이 뛰어난 팀과 하게 했어요.


Q. 강팀과 스크림을 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해외 팀 입장에선 한국과 스크림을 해서 얻을 게 별로 없어 보이는데요.

스크림 일정을 잡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요. 그동안 스크림 때 저희가 아무것도 못 하고 경기를 내주는 일은 없었거든요. 중국 팀은 연습 때도 사력을 다해서 게임을 해요. 그런데 스크림에서 우리가 LGD를 계속 잡고 iG도 계속 이기니까 그런 팀이나 VG 같은 팀에서 스크림을 하자고 먼저 연락이 와요.

또, 선수들이 중국 서버에서 솔로 랭크 게임을 많이 해요. 크리시는 7700점까지 찍었기 때문에 게임을 하다가 iG의 '쥰'이나 '루오'를 계속 만나거든요. 그래서 게임하다가 '같이 연습이나 할래?'하고 얘기가 나와서 스크림을 하게 되기도 해요. 저희가 중국 서버에서 게임을 한다고 핑이 나쁜 게 아니고 중국 팀이 한국 서버를 돌린다고 핑이 나쁜 게 아니라서 중국 서버가 터지면 한국 서버에서 연습을 하기도 해요.



■ 히어로즈 팀에는 약간의 도움만 줬을 뿐... 실력 향상을 위해선 큰 목표와 인성이 필수


Q. 히어로즈 팀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 보죠. 처음 팀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키라'라는 아이디를 쓰는 아는 동생이 있어요. 히어로즈를 한다면서 저희 팀 이름을 빌려 써도 되냐고 물어보길래 그냥 그러라고 했죠. 저도 그렇고 그 친구도 그렇고 한국 스폰서 방식이 굉장히 열악한 걸 잘 알고 있어요. 저희한테도 스폰서를 해 준다고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었는데 다 거절했죠. 선수를 위해야 스폰서지 자기 뱃속 채우는 건 스폰서라고 할 수 없잖아요.

'키라'한테는 '해외 팀도 큰 대회 전에나 잠깐 모여서 합숙을 하지 항상 모여서 연습을 하진 않는다. 정 숙소가 필요하다면 나중에 스스로 상금을 모아서 해라. 해외 스폰서를 찾는 건 내가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저희 팀 이름을 빌려서 활동하는데 도와줄 수 있는건 도와줘야죠. 친한 동생이기도 하고 다른 선수들도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니까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고 있어요.


Q. 팀 선수들은 어떻게 구하게 됐나요?

선수들은 '키라'가 다 구해서 모이게 됐어요. 저는 그냥 이름만 빌려준 거라고 보시면 돼요. 팀이란 게 홍보 효과가 있으니까 스폰서 입장에서는 마케팅에 써먹을 수 있느냐를 보거든요. 그 정도 선에서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주려고 해요.

히어로즈 팀이 잘되면 제가 잘 해서 그렇게 되는게 아니라 그 친구들이 열심히 해서 잘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하기도 하고 착한 선수라서 충분히 잘 할 수 있다고 믿어요.


Q. 국내 히어로즈는 TNL이 꽉 잡고 있는 상황이에요. 히어로즈 팀 레이브가 우선적으로 보는 목표는 어디인가요?

도타2 팀을 만들 때도 TI 진출이 목표가 아니라 우승을 목표로 만들었어요. 마찬가지로 히어로즈 팀도 TNL이 아니라 세계의 강팀을 넘어야죠. 눈앞에 있는 작은 산만 쳐다보면서 그걸 넘겠다고 낑낑대지 말고 멀리 있는 큰 산을 봐야 작은 산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게임에서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개개인 실력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요. 밴픽, 경험, 상황판단 능력에서 많이 갈리죠. 제일 중요하게 보는 건 인성이에요. 팀원들이 인성만 좋다면 언제가 되건 따라잡을 수 있다고 봐요. 화내지 않거나 게임에 마이너스 요소를 만들지 않는 등 성격이 중요하죠.

피지컬이란 말이 있지만 손 빠르기는 어느 정도 수준만 되면 돼요. 실력은 언젠가는 늘지만 벽을 깨는 건 자신의 인성이라고 생각해요. 도타2 팀도 티어2부터 시작했는데 팀원들 성격이 아주 좋아서 언젠간 성공할 수 있다고 항상 말했어요. 제 눈이 틀리지 않아서 다행이네요(웃음).


Q. 본인도 히어로즈를 플레이 하시나요?

잠깐 했었죠. 하지만 우선 저희 팀한테 신경을 써 줘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많이 플레이하진 못했고 지금은 하고 있지 않아요.


Q. 작별할 시간이 가까워졌네요. DAC에서 받은 상금은 어떻게 사용할 계획이신가요?

어차피 선수들한테 돌아갈 금액이니까 사용 계획은 따로 없어요. 아, 23일에 숙소를 제물포역 근처로 옮길 예정이에요. 거리는 지금 숙소랑 별로 멀지는 않아요. 그런데 현재 숙소가 방음이 잘 안 되거든요. 그것 때문에 한밤중에 선수들이 소리 지른다고 주민들이 뭐라고 하실 때가 있어요. 새로 옮길 숙소는 방음도 잘되고 근처에 편의 시설도 많아서 환경이 더 좋아질 것 같아요. 저희 숙소는 항상 열려 있으니까 놀러오셔도 돼요(웃음).


Q. 마지막으로 DAC동안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인사나 하고 싶은 말씀 해 주세요!

팬 분들의 응원에 정말 감사드려요. 어떤 스포츠건 팬들이 있어야 활성화가 되니까요. 가끔 과격한 팬분들도 계시지만 다 좋은 관심이라고 생각해요. 응원해주시는 부모님, 여자친구, 그리고 항상 열심히 해주는 팀원들에게 정말 고맙단 말을 전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