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말 프로젝트 A라는 이름의 가제로 컨셉만 슬쩍 내비쳤던 첫 발표 시점부터 게이머들은 '발로란트'에 더없이 큰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대망의 1차 클로즈 베타 테스트(이하 CBT)의 첫날이었던 2020년 4월 7일, 발로란트는 트위치에서 동시 시청자 172만 명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새 역사를 썼다. 그로부터 한 달이 훌쩍 지난 현재도 발로란트는 여러 게이머의 입과 커뮤니티에 오르내리며 2020년 게임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임을 증명하고 있다.

한편, 1차 CBT 기간이란 사실이 무색하게 라이엇 게임즈는 지난 4월 16일 발로란트 e스포츠에 대한 첫 단상을 발표하며 "발로란트가 e스포츠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을 품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이하 CS: GO), 배틀그라운드, 오버워치 등의 종목에서 활약하던 기존 FPS 프로게이머와 여러 게임단도 일찍이 발로란트로 눈길을 돌렸다. 여기에 FPS라는 장르적 특성에 따라 발로란트의 e스포츠화는 이미 기정사실화된 상황이다.

소박하게 출발했던 라이엇 게임즈의 첫 작품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는 어느새 국제 e스포츠의 대표 타이틀 중 하나로 단단히 자리매김했다. 그들의 야심작인 발로란트는 과연 LoL의 뒤를 쫓아 e스포츠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게임 자체 인기
현재로선 안정권, 정식 서비스 이후가 고비

종목을 불문하고 e스포츠 흥행의 첫 번째 요소는 게임 자체의 인기다. 게임성이나 보는 맛, 선수들의 매력이나 실력 등 부차적인 요소가 아무리 좋다 해도 팬이 없는 e스포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해당 게임을 실제로 플레이하거나 꾸준히 관심을 가지는 유저가 많다면 팬을 보다 쉽게 확보할 수 있으며, e스포츠 지속력이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효과를 얻는다.


발로란트의 경우 인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듯하다. 유저들의 호불호는 크게 갈렸지만 라이엇 게임즈의 신작이라는 후광과 다수의 프로게이머 및 스트리머의 호평 속에 줄곧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클로즈 베타 키 지급으로 어느 정도 수가 부풀려지긴 했지만, 1차 CBT 중인 발로란트는 '오픈발'이 한풀 꺾인 지금도 LoL, CS: GO, 포트나이트 등의 인기작보다 많은 방송 시청자 수를 자랑한다.

FPS 특성상 국내보다 해외 수요가 더 크다는 것도 강점이다. 발로란트의 경우 요원과 스킬이 있긴 하나 기초적인 골자는 사격 중심의 정통 FPS다. 이에 정통 FPS 게임이 강세를 보이는 유럽-북미를 필두로 해외 게이머들이 발로란트에 훨씬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발로란트 e스포츠는 도타2나 CS: GO처럼 국내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훨씬 규모가 큰 국제 무대에서의 대표 e스포츠 종목으로 떠오를 수 있다.

다만, 지금의 인기와 관심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출시 초기에 반짝 떠오른 게임들은 많았으나 대부분의 경우 롱런에 실패했다. 라이엇 게임즈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건 슈팅 게임들의 선례를 통해 최대 이슈인 핵 문제는 물론 게임 운영, 콘텐츠 업데이트, 밸런스 수정 등에서 빠른 피드백이 절실하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저가 어느 정도 빠지는 건 막을 수 없겠지만, 철저한 사후 관리를 통해 게임이 완전히 몰락하는 최악의 경우는 피해야 한다.


보는 맛
직관성은 뚜렷하지만, 타격감은 글쎄...

e스포츠의 보는 맛은 크게 직관성과 특수 효과로 나눌 수 있다. 직관성은 게임의 진행 과정과 결과를 얼마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느냐다. 해당 e스포츠를 시청하는 데 필요한 게임 지식이 적을수록, 상황 파악이 쉬울수록, 옵저빙이 용이할수록 직관성은 좋아진다. 특수 효과는 이러한 직관성에 특별함을 더해주는 그래픽, 연출, 음향, 속도감, 타격감 등이다.

격투나 레이싱 게임만큼은 아니더라도 CS: GO로 대표되는 정통 FPS의 직관성은 꽤 좋은 편이다. 지난 약 20년간 수많은 대회를 마쳤고, 그 과정 속에서 꾸준히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발로란트 역시 공격 팀 대 수비 팀으로 나뉘어 한 라운드씩 반복 대결하는 정통 FPS의 게임 형식을 따랐기에 무난한 직관성을 보일 것이다. 어쩌면 라이엇 게임즈가 자체 기술을 통한 최적의 옵저빙 시스템을 개발해 팬들에게 선보일 수도 있겠다.


특유의 그래픽도 한몫한다. 발로란트의 세부 정보가 첫 공개됐을 때 신규 게임답지 않은 투박하고 단순한 그래픽에 유저들의 반응이 크게 엇갈렸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요원과 스킬, 지형의 명확한 구분을 강조한 발로란트의 그래픽은 e스포츠에 더없이 적합하다. 과도하게 화려하거나 난잡한 그래픽은 직관성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는데, 이러한 부분에서 발로란트는 완전히 자유롭다.

치명적인 약점은 타격감이다. 현재 진행 중인 1차 CBT에서는 1인칭에서 직접 적을 쓰려뜨려도 별다른 타격감을 느낄 수 없다. 3인칭 옵저빙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심화시켜 최상위 유저들의 치열한 교전을 밋밋하고 무미건조하게 만들어 킬 로그만 찾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특히 프로 e스포츠 무대에선 다수의 슈퍼 플레이가 나올 텐데, 지금의 타격감으로는 시청자들이 느낄 쾌감과 짜릿함이 반감되어 많은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실력 기반 게임
스타플레이어 탄생 예고... 다양한 요원도 강점

e스포츠에선 평소 보기 어려운 최상위권 유저 간의 대결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에 운 요소보다 실력 요소가 중요하고, 프로와 아마추어의 실력 차이가 명확한 게임일수록 e스포츠에 대한 선호와 몰입도가 높아진다. 발로란트의 경우 사격이라는 뚜렷한 실력 요소를 갖고 있기에 흔히 이야기하는 '실력 게임'으로서 e스포츠 팬들에게 다가갈 예정이다.

한편, 실력 기반 게임은 프로게이머끼리도 어느 정도의 격차가 발생한다. 이러한 차이는 팀의 에이스를 만들고, 나아가 스타플레이어의 탄생을 알린다. 지금 당장 임요환, 장재호, '페이커' 이상혁 등 각 e스포츠 종목의 대표 선수와 그들의 역할, 영향력, 존재감을 떠올려 보라. 이러한 스타플레이어들은 e스포츠 팬들의 시청 만족도를 높이며, 충성도와 지속도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침으로써 궁극적으로 e스포츠 흥행에 크게 기여한다.

발로란트엔 개성 넘치는 요원들이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특정 선수가 특정 요원의 대표로 이름을 알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버워치 리그를 예로 들어 '쪼낙'의 젠야타나 '미로'의 윈스턴, '에이멍'의 레킹 볼처럼 말이다. 특정 선수가 본인의 시그니처 요원으로 고도의 숙련도를 뽐내며 다른 선수들이 쉽게 따라 하지 못할 슈퍼 플레이를 해내는 모습을 보는 것도 발로란트 e스포츠를 즐기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 발로란트 프로게이머 전향을 알린 2019 오버워치 리그 MVP '시나트라' 제이 원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서문에서도 밝혔듯 다수의 FPS 프로게이머와 게임단이 이미 발로란트 e스포츠에 발을 담갔다는 것이다. 2019 오버워치 리그 MVP '시나트라' 제이 원을 필두로 수많은 전/현직 FPS 프로게이머들이 발로란트 프로씬에 도전장을 던졌고, T1-젠지-C9을 필두로 현재 창단된 발로란트 프로 팀만 전 세계에 18개다. 1차 CBT가 종료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대규모의 선수 인프라가 구축됐다는 점은 향후 발전 가능성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다.


라이엇 게임즈
10년에 걸친 e스포츠 노하우와 의지

발로란트의 개발사가 라이엇 게임즈란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잡음은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지난 10년 동안 쉬지 않고 LoL e스포츠를 확대 개최하며 달려온 게임사다. e스포츠 운영 노하우가 충분히 쌓인 라이엇 게임즈는 일찍이 발로란트 e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며 장기적인 비전과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다.

해당 게시문에서 라이엇 게임즈는 공정성, 접근성, 진정성이라는 세 가지 핵심 원칙을 강조했다. 공정성은 외부 요인이 아닌 선수의 실력과 팀워크에 따라 게임의 승패가 결정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원칙이며, 접근성은 최고 품질의 방송 환경을 구축해 팬들에게 독창성, 팀워크, 결정적인 순간 등을 생생하게 전달하겠다는 내용이다. 진정성은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하며 팬들과 함께 발로란트 e스포츠를 만들어가겠다는 키워드다.

▲ 발로란트 커뮤니티 대회 지침

또한 발로란트 e스포츠의 기초 생태계를 만들어 갈 발로란트 커뮤니티 대회 지침도 전달했다. 라이엇 게임즈는 해당 지침을 바탕으로 커뮤니티 대회를 지원하여 관계자들과 협력관계를 만들고 저변을 확대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지침의 상세 내용에 따르면 커뮤니티 대회는 총상금 1만 달러 이하의 소형 대회와 총상금 5만 달러 이하의 중형 대회 및 대형 주최사(OGN, ESL, 드림핵 등)가 주최하는 메이저 대회로 구분된다. 각 대회는 고유의 목적을 가지며, 라이엇 게임즈는 지원 사격에 나서 적극적인 대회 개최와 목적 달성을 독려할 예정이다.

출시부터 e스포츠화를 염두에 두었던 게임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게임은 허술한 인터페이스와 옵저빙 시스템, 성숙하지 못한 운영과 문제 대처로 e스포츠 팬들을 실망시키고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러한 선례에 비하면 라이엇 게임즈는 발로란트의 e스포츠화에 큰 강점을 가진 상태다. 또한 "팬들을 위한 최선의 방향을 알기 전까지 급하게 e스포츠를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선언한 만큼, 차근차근 대회를 준비해 충분한 완성도를 갖춘 후 팬들 앞에 나설 것이다.


마치며
e스포츠도 좋지만, 게임이 먼저다


신규 게임의 e스포츠화를 지켜보는 과정은 대단히 흥미롭다. 한 게임이 e스포츠로서 성공하는 건 게임 자체의 성공보다 더 많은 조건이 필요하며, 보이지 않는 위험 요소가 늘 곳곳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게임이 e스포츠에 도전하고 사라져갔던가.

다른 게임과 마찬가지로 발로란트도 시험대에 올라 대중의 평가를 받아야 할 날이 올 것이다. 현재로선 약점보다 강점이 두드러지는 발로란트 e스포츠다. 하지만 '까보기 전까지 모른다'라는 말처럼 정식 서비스와 e스포츠화 단계에서의 흥행 여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조용히 사라진 e스포츠 종목들과 같은 길을 걸을 수도, 어쩌면 LoL, 도타2, CS: GO를 위주로 고여 가는 e스포츠 시장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도 있겠다.

한편, 지금까지 줄곧 발로란트 e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으나 1차 CBT를 진행 중인 게임의 e스포츠 성공 여부를 논하는 건 어쩌면 시기상조일지 모른다. 긴 준비를 마치고 어렵게 첫발을 뗀 현시점에선 e스포츠를 게임의 성공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부산물로 생각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에 라이엇 게임즈의 우선 과제는 발로란트로 멋지고 거대한 e스포츠를 연출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개선해 흠잡을 곳 없는 게임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발로란트가 대체 불가능한 게임이 되도록 유저들의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여야 한다. 아직 발로란트를 접하지 못한 게이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발로란트를 한순간 유행하는 베스트셀러가 아닌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로 만든다면, e스포츠의 장기적인 흥행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성큼 다가서게 될 것이다.

사진 출처 : 발로란트 및 트위치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