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인가, 아니면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인가.

단순히 VR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VR 자체가 아닌, 그 시장에 대한 의문. VR을 대할 때마다 몇 번씩이나 생각하게 되는 고민이다. 확신에 차 미래의 주역 중 하나가 될 것이라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와 반대로 부정적인 견해를 말하는 이도 있다. 비단 사람들의 의견 뿐만이 아니라, 실제 업게의 흐름도 이와 비슷하게 흘러간다. 뜨겁지만, 실체가 없다.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더 그렇겠지만, 흔히 보이는 옹호론자들이 말하는 것 만큼 VR의 뜨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별로 없다.

이런 고민이 단순히 나만의 고민은 아닐 거다. 세덱(CEDEC) 2016의 2일차, 일본 내에서도 VR '최전선'에 있다고 할만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강연 시간의 하나를 차지하고 있지만, 단순히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강연이 아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게스트들은 각자 VR을 알리기 위해 이벤트를 진행했고, VR에 대해 알지 못하는 대중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진행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들은 VR, 그리고 일반 대중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정립할 수 있었다. VR의 대중화, 그 현 위치에 대해 고민하고, 앞으로의 모습을 예측하는 자리. 현직 최전선에서 일하는 이들은 현재의 VR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 게스트 소개

코야마 준이치로 : 90년대 남코에 입사, 아이돌마스터, 마리오 카트, 에이스컴뱃 등의 타이틀 개발에 참여했고, 컨슈머 스마트폰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타미야 유키하루 : 반다이 남코의 개발, 기획 팀에서 근무. 드래곤 크로니클, 드래곤볼 젠카이 시리즈 등의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코바야시 타케시 : 주식회사 코로푸라 소속. 2014년부터 VR 게임 개발을 시작했으며 '스틸 컴뱃'과 같은 VR 격투 게임을 개발함. 게임 이외에도 VR 영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VR 관련 개발을 진행 중


Q. 먼저 가벼운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얼마 전 반다이 남코에서 '프로젝트 I CAN'이라는 이름으로 VR존을 운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오랫동안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 반다이 남코, 코야마 준이치로

코야마 준이치로 : 프로젝트 I CAN 같은 경우 처음부터 모든 사람들을 생각해 만든 것이다. VR로 게임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엔터테인먼트를 먼저 제공하고 싶었다. 예전에는 VR이라고 하면 뭔가 고급지고, 부자들만이 향유하는 놀이 문화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커플을 비롯한 젊은 남녀, 나아가 모든 이들이즐길 수 있는 놀이로 계획했다.

처음에는 VR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이 VR 존을 찾을지 고민하기도 했다. 예산을 넉넉하게 잡고 시작한 프로젝트도 아니었기에 그런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준 덕분에 PV도 만들고 광고를 할 수 있었다. 첫 주 평일에는 지금 관객석에 앉아 계신 분들과 같이 VR에 대해 어느정도 아는 분들이 많이 오셨지만 주말이 되니 커플, 가족과 같은 분들도 많이 오시더라.


타미야 유키하루 : 효과는 꽤 좋았다. VR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도 많았고, PS VR의 발매 소식도 꽤 좋은 홍보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PS VR이 나온다는 소식은 접했지만, 그게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는 분들이 행사장을 많이 찾아 주셨다. 다만 안경을 쓰면 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많아 안경을 쓰신 분들은 조금 주저하시더라.(웃음)

▲ 반다이 남코, 타미야 유키하루


Q. 현 상황에서 VR의 대중적 인지도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개발 과정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코바야시 타케시 : 솔직히 말하자면, 일반인들 중 VR 기기를 소유한 사람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세계적으로 보면 개인 단위 소비자 중 VR 기기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존재하지만, 그마저도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는 이 소수의 소비자들조차도 소중한 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분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많은 도움을 받았고, 앞으로도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시장에 맞춰 더 많은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물론 아직은 좁은 유저 풀에만 우리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종국에는 VR이라는 플랫폼에 우리의 콘텐츠를 전하는 것을 목적이라 생각하고 개발에 임하게 있다.


Q. 주식회사 코로푸라의 경우 원래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던 회사인 거로 알고 있는데, 왜 VR이라는 분야에 뛰어들게 되었는가?

코바야시 타케시 : VR 개발은 2014년 8월 경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조부님이 회사의 대표로 있는데, 어느날 오큘러스 DK1을 가져 오셔서 이거로 콘텐츠를 만들어 보라 하시더라. 그것이 계기가 되었다. 1년 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간단한 사격 VR 게임을 만들었고, 이를 모바일 VR로 이식하면서 다양한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하지만 팀 없이 개발을 진행한다는 것은 힘들었기에 회사에 요청해 팀을 꾸리게 되었다.

▲ 주식회사 코로푸라, 코바야시 타케시


Q. 반다이 남코는 어떻게 VR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나?

코야마 준이치로 : 솔직히 말해 내 나이가 조금 많다.(웃음) VR 개발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는 세대인 것은 자각하고 있지만, DK1을 처음 만져본 순간 이 기계가 정말 대단한 기계라는 생각을 숨길 수가 없었다. 단순히 게임 뿐만 아니라, 차세대 엔터테인먼트의 열쇠를 본 기분이랄까?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타미야 유키하루 : 사내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VR 콘텐츠를 개발하고, 어떻게든 그것을 직원들에게 씌워 체험하게 만들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VR을 체험하는 장면을 영상을 찍어서 공개했고, 이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VR의 재미있는 점은 본인이 직접 체험하지 않는다 해도 다른 사람이 체험하는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I CAN의 프로모션 영상 같은 경우도 다른 이들이 체험을 하는 장면을 중점적으로 노출했다. 지금이야 올림픽이 끝났지만, 올림픽 중계를 보다 보면 사람들이 함께 울고, 웃는 장면들이 나오지 않나. 그렇게 대중의 감정선을 함께 건드릴수 있는 순간이 VR 체험 장면을 보는 과정에서도 충분히 일어나는 것 같다.


Q. 주식회사 코로푸라는 직접 콘텐츠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자리를 가진 적이 있는가?

코바야시 타케시 : 올해 8월에 텔레비전 여름 이벤트를 통해 HMD를 갖고 있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VR 콘텐츠를 경험하게 할 기회가 있었다. 적극적으로 밖으로 나가 사람들에게 권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다. 유저의 표정을 직접 살피는 것은 힘들었지만, 체험하는 이들을 직접 보는 과정 그 자체가 굉장히 좋은 피드백의 기회가 되었다.


Q. 프로젝트 I CAN에서는 어떤 타이틀을 주로 선보였는가?

코야마 준이치로 :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 중에서도 짧은 시간에 즐길수 있는 타이틀을 주로 꼽았다. VR의 장점은 실제로 할 경우 많은 돈이 들거나, 안전을 보장할수 없는 스릴을 부담 없이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실제로는 굉장히 위험하지만 짜릿한 경험들, 그리고 반다이 남코의 IP인 드래곤볼이나 아이돌마스터 같은 소재를 활용한 VR 콘텐츠를 이용했다.

▲ 프로젝트 I CAN의 콘텐츠 일부


Q. 아직까지 VR의 안전 문제가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안전 문제로 곤란을 겪은 적은 없는가?

타미야 유키하루 : 아쉽게도 VR을 착용한 상태로 유저에게 완벽한 자유를 주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다. 넓은 영역을 걷는다거나 하는 행동이 가능하면 더욱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인데 말이다. 나중에는 꼭 가능하게 만들고 싶다. VR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유저층의 경우 예상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 절도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현장에서 처음 VR을 접한 분들을 보며 놀란 점은 콘텐츠를 만들면서 생각했던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VR을 즐기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다는 점이다. 높은 곳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콘텐츠에서는 마치 번지점프를 하듯 떨어지려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것도 굉장히 멋진 포즈로 말이다.(웃음) 자유로운 상황을 만들어주면 정말로 몰입할 사람들이 매우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뒤로 돌아와 달라고 부탁하면 꼭 뛰어 오는 분들이 있고, VR 속에서 보이는 공간을 향해 점프하거나, 이를 직접 잡으려는 분들도 많았다. 이런 행동들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기 때문에 다소 위험한 부분이었다.


코바야시 타케시 : 벽과 바닥에 컨트롤러를 휘두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꽤 많은 수의 컨트롤러가 이 과정 중에 고장나 버렸다. 현실의 벽과 바닥은 언제나 방해가 되더라.


Q. 그래도 많은 대중과 함게 하면서 이런 위험에 대처하는 법을 배웠을 것 같다. 어땠나?

코야마 준이치로 : 사전에 주의 사항을 안내하더라도 처음 접한 VR 환경 안에서는 이 주의 사항을 까맣게 잊는 분들이 많더라. 이제는 어느 정도 행동 패턴이 파악되어서 대처가 가능하지만, 처음에는 정말 놀라는 순간이 많았다.


타미야 유키하루 : VR 속 가상의 장소에 유저가 실제로 들어갔다고 믿게 될 경우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 대응하는 방법을 어느정도 알게 되었다. 유저들도 나름대로 '이 정도는 해봐도 되겠다'라고 생각하는 선이 있다. 그 선을 파악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때로는 너무 소극적으로 움직여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 안전 관련 이슈는 항상 일어난다.


Q. 앉아서 즐기는 콘텐츠의 경우 위험 부담이 조금 덜하지 않은가?

타미야 유키하루 : 코야마 씨에게 앉아서 즐기는 VR 바이크를 체험하게 했는데 의자에서 몇 번 떨어지더라.(웃음) 방심할 수가 없다.


코바야시 타케시 : 어떤 컨트롤러를 사용하고, 어떤 콘텐츠를 경험하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핸드 모션 컨트롤러가 가장 높은 몰입감을 보여주고 편하지만, 디버깅을 하게 되면 조금 지치기도 하더라. 다양한 가능성을 확인해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Q. 개발자의 입장에서 기존의 게임들과 VR 게임은 어떻게 다른가?

코바야시 타케시 :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카메라 워크다. 모든 콘텐츠를 만들 때 기획자들은 보여주어야 할 부분과 보여주어서는 안될 부분을 생각한다. 하지만 VR의 경우 유저가 직접 카메라를 다루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이런 요소들을 구별하는 것이 힘들다. PC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는 90프레임의 주사율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최적화와 그래픽 사이에서 항상 고민하게 된다. 또한, 많은 이들이 체험하면서도 멀미를 일으키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코야마 준이치로 : 멀미가 나면 끝이다. VR이건 뭐건 '체험'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문화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멀미가 나면 이 목적 자체가 어그러져 버린다. 때문에 콘텐츠를 개발하게 되면 사내에서 다양한 테스트를 진행하고, 실험을 통해 멀미의 정도를 파악한다. 때로는 반복적인 체험을 통해 멀미를 극복하는 경우도 있다.


Q. '게임'으로서의 재미와 '체험'으로서의 재미 사이에 밸런스를 맞추는 것은 어떻게 하는가?

타미야 유키하루 : 항상 고민하는 주제다. 게임으로서의 재미를 최대한으로 담아낼 경우 이게 굳이 VR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곤 한다. 게임의 룰에 집중하게 되면 굳이 VR이 아니더라도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코바야시 타케시 : 개발중에도 몇 번씩 회의를 거듭하게 되는 주제다. 둘 모두를 잡으면 좋지만, 보통의 경우 하나를 잡게 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밸런스를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 또한 다른 개발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 체험과 게임 사이의 저울질은 언제나 고민되는 부분


Q. VR 체험을 게임센터와 같은 오프라인 사업장에 선보일 생각도 있는가?

타미야 유키하루 : 게임이라면, 그리고 게임 센터에 들어갈 게임이라면 '반복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개념을 VR에 도입하다 보면 원래의 VR과는 조금 다른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개발 과정에서 일단 이 '반복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VR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체험'에 비중을 둔 장치이고, 이 매력을 더 크게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I CAN을 운영하기 위해 콘텐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이 '반복성'에 대한 이야기는 꾸준히 나왔다. 호러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런 논의가 벌어졌는데, 회의 끝에 반복성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더 강렬한 공포를 주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Q. 5년 후, VR의 모습은 어떨 거라 생각하는가?

코야마 준이치로 : 지금의 VR은 하드웨어의 성능, 그리고 기존 게임 시스템의 변형 등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직접 현장에 가지 않아도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수준이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AR이나 VR 모두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되지 않을까 싶다. 스키를 타고 싶어도 꼭 스키장에 갈 필요가 없어지지 않을까?


Q. 그럼 스키장은 다 망하지 않나?(웃음)

타미야 유키하루 : 물론 VR을 통해 가정에서 손쉽게 흡사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리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스키장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일들도 있지 않나. 친구와, 가족과 함께 직접 방문해 추억을 만들고, 그 장소에 대한 기억을 남기는 것은 VR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스키장이 망하진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더 발전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360도 카메라를 이용한 영상이 개선될 경우 굉장히 좋은 경험의 매개체가 되지 않을까 싶다. 360도 영상에 거리 정보가 더해지면, 직접 찍어둔 영상이 아닌, 실제로 현장에서 보는 듯한 환경을 구축할수 있을 것 같다.

▲ 스키 점프는 어렵겠지만, 스키장이 망할 일은 없다.


코바야시 타케시 : 아마도 스마트폰처럼 가지고 다니기 쉬운 형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여행을 간 상황이나 집에 있는 상황이나 관계 없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의 발전이 가장 우선시 될 것 같다. 일단은 가정에 HMD가 많이 보급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선되야 할 것 같다. 여러가지 걸리는 사항은 많지만, 결국은 이뤄질 것으로 본다.


코야마 준이치로 : PS VR과 같은 장비는 아이들을 위주로 모든 분들이 즐길수 있는 좋은 장비가 되지 않을까 싶다. 60대 할머니도 PS VR을 경험하시고서는 정말 놀라면서 즐거워하시더라. 인생에서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고 하는데, 보는 내가 다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