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큰 열풍을 일으키고 콘솔 시장의 걸작으로 칭송받았던 PS2가 지난 3월 4일(금)에 출시 22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SIE(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PS2 설계자였던 유타카 데이지, 오오토리 야스히로와 PS2에 대한 짧은 인터뷰의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인터뷰는 일본어로 진행되었으므로 이해를 돕기 위해 번역을 해서 옮겼습니다.

※ 해당 번역문에는 의역이 있을 수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자료 및 원문 출처] SIE 공식 블로그 '発売22周年を迎えたPlayStation®2の誕生秘話'






'발매 22주년을 맞은 PlayStation®2의 탄생 비화'

PS2는 2022년 3월 4일(금)에 출시 22주년을 맞이했다. PS2는 그래픽의 아름다움이 게임 표현의 폭을 넓히고, 이전 세대인 PS1의 게임도 구동이 가능해 많은 화제를 모았다. 또한 게임뿐만 아니라 DVD 재생 플레이어로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으로부터 인기를 얻은 하드웨어이기도 했다.

PS2가 당시 대중의 관심을 얼마나 끌었는지는 전 세계 누계 판매량이 PS 시리즈 사상 최대인 1억 5,500만 대 이상(2013년 말 시점)이라는 기록을 세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럼 유저들에게 많은 인기를 받은 PS2는 어떻게 개발된 것일까? PS2 개발에 종사했던 SIE의 유타카 데이지(豊 禎治, 이하 유카타), 오오토리 야스히로(鳳 康宏, 이하 오오토리) 두 사람이 당시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 인터렉션 R&D 부문 유타카 테이지(좌), 하드웨어 설계 부문 오오토리 야스히로(우)


■ 두 분은 어떻게 PS2에 관여하게 되었는가?

유타카: 1988년 당시 소니의 정보처리연구소에 신규 졸업자로 입사했습니다. 당시 상사가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쿠타라기 켄'씨며, 그분 산하로 초대받아 PS의 개발에 관여했으며 이후 PS2 개발 당시 PS1과의 하위호환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오오토리: 1998년 7월, 28세 때 타 제조사에서 엔지니어로 근무를 하다가 SIE로 이직했습니다. 마침 당시에 PS2 개발이 시작되고 있었지만 PS2 본체의 제조 설계 담당은 저를 포함한 3명밖에 없었으며, 갑작스럽게 기본 레이아웃 설계를 도맡아 했습니다. 본체의 크기와 구조를 어떻게 하면 될지, 냉각이나 조립은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을 디자이너나 전기 엔지니어, 부품 메이커 등 여러 사람과 협의하고 자정까지 CAD와 눈싸움을 벌이며, 시책과 실험을 반복하는 힘겨운 나날이었습니다.

▲ 당시 PS2 검토에 사용된 도면


■ PS2는 전례 없는 대히트 상품이 되었는데, 무엇을 목표로 개발한 것인지?

유타카: PS1은 세계에서 최초로 실시간 3D 컴퓨터 그래픽(3D CG)을 가정용 게임기로 들여왔지만, 그래픽은 아직도 진화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성능 그래픽을 실현하기 위해 PS2에서는 그래픽 신시사이저(GS)라는 GPU를 독자 개발하고 칩 안에 그래픽 메모리를 넣었습니다. 그 덕분에, PS2의 그래픽 품질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TV 화면이 4:3 VGA 해상도인 시대에서도 스트레스 없이 즐길 수 있는 화질이 되면서 3D CG 게임은 많은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오토리: 그러나 첫 번째 PS1의 큰 성공 후, 세상에서는 '차세대기로 계속 성공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때 이런 예상을 날리는 엄청난 물건을 만들자! 라는 분위기가 사내에 넘쳐났습니다. 제가 SIE로 이직할 때 '게임기는 이미 한계가 보이는 사업이다. 괜찮아?'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응징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 PS2에는 DVD 재생 기능도 탑재되어 있다.

유타카: 당시 대히트한 영화 '매트릭스'의 DVD와 PS2의 출시 날짜가 동일시기에 정해지면서, PS2는 게임 산업뿐만 아니라 영화 산업에서도 기대되는 중요한 제품이었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이 남습니다.


■ PS2라는 하드웨어 장치를 돌아보면, 혁신적이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어디인가?

유타카: 앞에서 말했다시피 GPU와 GS라고 생각합니다. GS는 칩 내에 비디오 램을 탑재하고 약 5천 개의 배선을 메모리 액세스에 할당해 초고속으로 접속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만 비디오 램을 칩 안에 넣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필요한 비디오 메모리가 월등히 크다는 이유가 있지만 현대 GPU도 비디오 메모리를 칩에 넣는 일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GS와 비디오 램이 초고속으로 접속할 수 있게 됨으로써, 어떤 성과가 있었는가?

유타카: 드로잉 성능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픽셀 필 레이트는 1프레임을 드로잉할 때 전체 화면을 100회 이상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매우 혁신적인 성능이며 드로잉 성능 덕분에 고품질 이미지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PS2는 다양한 도전이 막힌 하드웨어지만 어떤 장벽이 있었는가?

오오토리: 본체의 발열량이 80W였는데 당시로써는 놀라울 정도로 높은 수치였습니다. 지금은 200W나 300W의 냉각 구조를 만들고 있어 80W는 귀엽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열 설계의 전문이 아니었고, 설계자의 인원이 한정되어 있어 구조 설계부터 냉각 설계까지 전부 고려해야 했습니다.

또한 팬과 히트 파이프, 방열판을 설치하지 않으면 절대 식힐 수 없을 것이라는 물리법칙도 분명했으나, 당연히 비용과 생산성과 관련이 있어 여러 곳곳에서 인정받기가 어려웠습니다. 당시에는 팬이 장착된 컨슈머 기기는 많지 않았고, 열 설계에 대한 주위의 이해도 거의 없다 보니 '기술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필요한 것 아니냐', '전혀 소음이 나지 않는 팬을 개발하라'라는 엉뚱한 요구도 나오곤 했는데, 자료나 데이터를 정리하고 쉽게 표현함으로써 어떻게든 이해를 시켰습니다.

유타카: 담당했던 것은 PS1과의 호환성 기능 개발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새로운 기기로는 전 기기의 게임 타이틀을 구동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콘솔의 호환 기능은 전례가 없어 과연 실현할 수 있는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것을 할 수 있다고 믿으며 필사적으로 작업한 것이 기억납니다.

첫 번째 큰 문제는 PS1과 PS2의 CPU가 호환되지 않아 PS1의 게임을 PS2에서 작동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PS1의 CPU를 PS2에 탑재할 수 없는가. 그렇게 하기 위해 호환성을 유지하는 것 이외에도 가능한 방법은 없는지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댔습니다. PS2의 작동 주파수는 PS1보다 매우 고속화되어 있습니다. 메인 CPU가 동작이 느린 DVD나 사운드 등 주변 기기에 작용하는 것은 PS1 시절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PS2의 고속 CPU에서는 비효율적으로 됩니다.

그때 'PS1의 CPU를 I/O 프로세서로 해서 주변 디바이스를 관리하도록 하고, PS1 게임을 할 때는 메인 프로세서에 주종역전을 시켜 PS1 CPU를 작동시키자'라는 아이디어가 당시 DVD 드라이브를 담당하던 기술자로부터 제안되었습니다. 이 구성으로 세계 최초의 콘솔 게임의 하위 호환이 실현된 것입니다.


■ 발매일에는 각 가전 제품점과 게임 매장에서 PS2를 구매하기 위한 대기 줄이 생겼었다. 당시 그걸 보고 어떻게 느꼈는가?

오오토리: 출시 당일 행렬을 보기 위해 가전제품점으로 갔었습니다. 제가 설계한 것이 주목된다는 현상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고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 꿈을 꾸는 기분이었습니다.

유타카: PS2의 발매는 주요 뉴스로도 다뤄졌고, 대행렬을 모습을 TV 뉴스를 통해 보았지만, 그런 명성을 갖게 되어 매우 기뻤습니다. 개발에 관여한 기기 출시를 보는 것은 PS2가 세 번째였지만, 가게 앞에서 가장 열기가 느껴지는 제품이었습니다.


■ PS2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유타카: 예를 들어 호환 기능의 실현까지는 엄청난 수의 게임 타이틀을 확인하고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 있었습니다. PS1의 각 타이틀의 작업을 확인하고, 작동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으면 원인을 밝혀갔습니다. 그중에는 게임 소프트웨어 측의 오류도 있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협력하는 소프트웨어 제조 업체에 요청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호환성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상세한 내용을 전달할 수 없는 딜레마도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품질 관리팀의 엄청난 노력 덕분에 우리는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타이틀을 호환 기능에 대응시킬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고품질 텍스처 매핑 및 고속 로딩과 같은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

PS2 성공의 원동력은 '쿠타라기' 씨의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목표 설정이었습니다. 그것은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개발자 모두가 믿고 열심히 노력하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오토리: 당시 개발 인력의 수가 제한되어 있어 어려웠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상황을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개발팀이 그때보다 많이 확장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적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자점, 전자 제품관점, 소프트웨어 가게가 바로 가까이에 있고 단기간에 방향을 정하고, 한마음으로 나아가는 문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PS2 개발 때부터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것을 말하자면?

오오토리: 저는 두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기본에 충실한 원리 원칙을 놓치지 않은 설계' 입니다. 독창성이나 획기성이라는 것에 별로 흥미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공손하게 기초를 쌓아 놓은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PS5에서는 컨슈머 제품 중 최초로 액체 금속을 사용하는 기기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라기보다는 성능, 비용 및 생산성을 고려했을 때 가장 뛰어나면서 간단하고, 수월한 것을 채용했을 뿐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기술만을 추구하면 저절로 기능적인 아름다움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름답고 멋진 기계를 만들고 싶지만 그 수단은 어디까지나 '기술의 추구'라고 생각합니다. '빠른 기계는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지만 '아름다운 기계는 빠르다'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인생의 작품입니다. 회사에서는 PS를, 집에서는 여러 가지 것을 만들고 있지만 아직 납득할 만한 것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아직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타카: PS의 개발을 통해 가슴에 새기고 있는 것은 '시선을 높게 잡는다'라는 것입니다. 담당했던 호환 기능은 누구나 실현할 수 없으며, CPU의 호환성도 없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PS를 즐겨온 유저를 생각하면 그것을 달성해야 합니다. 그 높은 관점을 잊지 않아야 하며 저는 그것을 명심하고 있습니다.

▲ PS2의 마지막 1대가 공장에서 출하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오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