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퇴근길에 있었던 일입니다.

7호선 가산역에는 아파트형 공장 빌딩들이 밀집되어 있어서 
출퇴근 시간에 무척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립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가산역에서 지하철이 미어 터질만한 인파가 탔는데 
그 순간 갑자기 안내 방송이 흘렸습니다.

"승객여러분 중 한분이 너무 춥다고 항의 하시어 잠시동안 에어컨 가동을 멈추겠습니다."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더위와 막 시작한 장마로 눅눅해질대로 눅눅해진 오늘 같은날,
더군다나 퇴근길 몰린 인파로 숨 막히는 지하철 안에 갖힌 사람들에겐 날.벼.락.같은 방송이었죠.

"누가 장암에서부터 혼자 타고왔나보다, 춥다는걸보니..."
어떤 분이 약간 빈정조로 툭- 던지신 말입니다.
"감기라도 걸렸나보네, 이런데서 덥다는걸 보면..'
일행이신듯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두마디씩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 아니, 몸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한 여름에 감기가 걸려..."
"울 회사에도 그런 뇬 있어, 혼자 춥다고 에어컨 못키게 하는..."
"추우면 내복 입고 다니지 왜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줘...."
"울 회사도 그런 노처녀 있는데..."
"뭐, 그런 이기적인 뇬이 있어...." 
"그러니까 시집을 못가는거야..."
"집 밖에를 못나오게 해야해..."
웅성웅성.... 시끌시끌...

서로 일행도 아닌 분들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지하철 한동에 계시던 서로 낯선 분들이 모두,
어느 모를 한분을 성토하셨습니다. 
분위기가 매우 공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실제,
추우니 에어컨을 꺼달라고 하신 분이 누구였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분이 어느새 매우 구체적으로
시집 못가고 몸 관리도 못하고 남 배려도 안하는 이기적인 여자분이 되신겁니다.

지하철을 내리면서 웃음이 나더군요.
어제 제가 한 짓을 생각하니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저러나, 대박이야는 대체 누굴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