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리뷰] 디아블로 4 시즌 14의 현주소와 근본적 한계
- 랙스(Raxxanterax) 리뷰 -

안녕하세요, 랙스입니다. 오늘은 디아블로 4 시즌 14의 현주소에 대해 깊이 있게 다뤄보려 합니다. 시즌 오픈 후 하루 반 정도 플레이를 달렸는데, 투컴 방송용 캡처 보드가 갑자기 고장 나는 바람에 몇 시간을 수리하는 데 허비하긴 했지만, 그건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번 영상은 평소처럼 단순히 장단점만 나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보려 합니다. 장단점도 짧게 짚고 넘어가겠지만, 오늘은 화면에 그림판이라도 띄워놓고 제 솔직한 생각들을 여러분과 대화하듯 편안하게 풀어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여전히 디아블로 4에 진심이고, 이 게임을 정말 아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블리자드는 지난 확장팩을 통해 디아블로 4 역사상 최고의 성과 중 하나를 거두기도 했으니까요.

👍 긍정적인 부분: SSF 모드 도입과 밸런스 정상화

먼저 긍정적인 부분부터 짧게 짚어보겠습니다. 캡처 보드가 터져서 튕기기 전까지 하루 반 동안 즐겨본 결과,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드디어 SSF(솔로 셀프 파운드 / 싱글 플레이어) 모드가 추가되었다는 것입니다. 수년간 유저들이 그토록 원했던 기능이죠. 원래는 확장팩 런칭과 함께 출시될 줄 알았는데 작업이 지연되었는지 두 달 늦게나마 본섭에 적용되었습니다.

"어차피 거래도 안 하는데 SSF 서버가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순위표(리더보드) 최상위권 경쟁을 목표로 한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기존 일반 거래 서버의 순위표는 사실상 완전히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현금 거래(RMT)를 통해 무한 보스런 버스를 타고, 신화 고유(Mythic) 아이템을 쓸어 담으며 종결급 세팅을 돈으로 바르는 상황에서 공정한 경쟁이란 애초에 불가능했으니까요.

SSF 모드는 계정을 공유하는 치팅만 제외한다면 유저들에게 훨씬 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제공해 줄 것입니다. 실제 구현도 잘 되어 있어서, 오픈 월드에서 다른 유저가 이따금 보이긴 했지만 전혀 거슬리지 않았고 오히려 월드 보스를 잡을 땐 곁에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또한, 아이템이 즉시 신화 고유 등급으로 드롭되도록 변경한 결정은 매우 칭찬할 만합니다. 게임에 엄청난 도파민을 불어넣어 주거든요. 강령술사를 키우는 제 친구 중 한 명은 지옥물결을 돌다가 원하던 검이 신화 등급으로 떨어졌다며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불과 5분 뒤에 반지가 또 신화 등급으로 떨어지더군요. 세상에서 제일 운이 좋은 녀석이긴 하지만, 게임 내에 이런 짜릿한 파밍 요소가 추가되는 것은 언제나 대환영입니다.

그리고 블리자드의 밸런스 패치 방향성, 특히 '너프(하향)'와 관련해서 저는 항상 블리자드의 결정을 지지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를 두고 '게임의 재미를 망치는 경찰관(Fun police)'이냐고 비난하시겠지만, 유저가 수천억, 수조 단위의 데미지를 뿜어내며 12단계 메피스토 같은 최고위 보스를 평타 한 방에 오버킬 내버리는 작금의 상황은 분명히 비정상적입니다.

캐릭터가 원래 도달해야 할 한계치보다 100배는 더 강해져서 마치 신이 된 것처럼 군림하는 것은, 결국 장기적인 성장 과정의 재미를 근본적으로 파괴합니다.

물론, 빌드의 뼈대를 이루는 핵심 시너지마저 뭉개버리는 식의 너프에는 저도 분노합니다. (예컨대 혼령사가 잔혹성 중첩을 이용해 '비상하는 발톱'을 초기화하며 회피기를 무한정 쓰던 메커니즘을 통째로 막아버린 패치 같은 것들 말이죠.)

하지만 게임의 전반적인 수치를 압축하고 밸런스를 조절하려는 큰 틀의 방향성만큼은 확실하게 찬성합니다. 덧붙여, 이번 시즌 테마가 단순히 캐릭터의 능력치(파워)만 일차원적으로 올려주는 뻔한 방식이 아니었다는 점에도 큰 따봉을 주고 싶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 부정적인 부분: 속이 텅 빈 일회성 시즌 테마

이제 아쉬운 점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원래 길게 적어둔 내용이 있지만 핵심만 요약하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번 시즌 테마는 게임에 아무런 깊이도, 가치도 더해주지 못하는 '속이 텅 빈 껍데기(Nothing burger)'에 불과합니다.

과거 유저들에게 엄청난 비판과 미움을 받았던 '세계방랑자' 시즌의 에셋을 뻔뻔하게 재탕했을 뿐만 아니라, 이 콘텐츠와 도대체 왜 상호작용해야 하는지 그 의미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지옥물결에서 제가 이 시즌 기믹을 수행하는 유일한 목적은, 오직 진행도 게이지를 채워 '구더기'를 더 많이 소환하기 위함입니다. 구더기가 쏟아내는 경험치 효율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사기적이거든요. 지옥물결 지도 사이트를 화면 한쪽에 띄워놓고 돌아다니며 구더기만 뽑아내면 정복자 보드 레벨이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오릅니다. 게임 내 존재하는 다른 모든 콘텐츠의 효율을 하찮게 만들어버리죠.

결국 유저들은 시즌 테마 그 자체의 재미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경험치를 폭식하기 위한 '구더기 소환용 도구'로만 소비하고 있습니다.

나락에서 시즌 기믹이 등장할 때면 헛웃음마저 나옵니다. 차라리 기믹과 상호작용을 아예 안 하고 무시하는 편이 나락 클리어 타임을 단축하는 데 훨씬 유리하게 느껴지니까요. 굳이 상호작용을 해서 토큰을 얻어봤자, 매 시즌마다 재탕되는 20단계짜리 시즌 보상판에서 무한 가방 파밍하는 데 쓰는 것이 전부입니다.

솔직히 말해 이번 시즌 테마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게임 체감상 아무런 차이가 없었을 겁니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이 테마가 향후 본편에 영구적으로 편입되지 않고 버려질 것이 99% 확실하다는 점입니다. 단언컨대 이번 시즌은 디아블로 4 역사상 최악이자 가장 빠르게 잊혀질 시즌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 핵심 문제: 타 게임사들과 완전히 동떨어진 블리자드의 '시즌' 철학

이제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핵심 이야기를 꺼내보겠습니다. 조금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 게임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작년 11월 블리자드와의 직접 인터뷰에서도 정면으로 제기했던 아주 뿌리 깊은 문제입니다.

저는 블리자드가 설정한 '시즌'이라는 개념의 근본적인 정의와 방향성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봅니다.

'비교는 기쁨을 훔쳐 가는 도둑'이라는 명언도 있지만, 냉정하게 타 게임사들과 비교해 봅시다. 현재 ARPG 시장에는 자사 게임의 시즌과 업데이트를 훌륭하게 전개하는 수많은 경쟁사들이 존재합니다.

패스 오브 엑자일의 그라인딩 기어 게임즈(GGG), 토치라이트 인피니트의 XD, 올해 정식 출시를 앞둬 기대감이 큰 노 레스트 포 더 위키드의 문 스튜디오(Moon Studios), 그리고 라스트 에폭의 일레븐 아워 게임즈(EHG)가 대표적이죠. 이 네 개의 경쟁사들과 블리자드 사이에는 결정적이고 뚜렷한 차이점이 하나 존재합니다.

타 게임사들의 시즌 기획 프로세스는 매우 명확합니다. 게임의 발전 방향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이를 거대한 시즌 콘텐츠로 빚어낸 뒤, 최종적으로는 그 핵심 메커니즘을 향후 게임의 '영구적인 코어 시스템'으로 편입시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례가 있지만 최근의 예시만 들어보겠습니다.

- 패스 오브 엑자일(GGG): 이번 시즌에 룬 시스템을 도입해 '탐험(Expedition)' 콘텐츠를 완전히 개편했습니다. 런칭 직후 유저 피드백을 수용해 즉각적인 개선을 거쳤고, 현재 탐험은 게임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최상위권 파밍 전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저는 원래 물 지형 쪽은 쳐다보지도 않을 만큼 탐험 콘텐츠를 혐오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주문과 종결급 아이템 파밍의 재미, 전략적인 룬 선택 방식을 추가하면서 탐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는 시스템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심지어 시즌 테마보다도 훨씬 거대했던 대규모 엔드게임 업데이트와 더불어, 탐험 전용 스킬 트리까지 내장시켜 게임의 영구적인 코어 메커니즘으로 승화시켰습니다.

- 라스트 에폭(EHG): 지난 패치에서 오염도(Corruption)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편했습니다. PoE 출신 개발자들이 많아 아이디어를 차용한 감이 있지만, 이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완벽하게 소화해 냈습니다. 유저들은 열광했고, 모든 플레이어가 자신의 아이템에 오염도를 과감하게 바르며 게임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시스템 안착입니다.

- 노 레스트 포 더 위키드(Moon Studios): 지난 1월, 엄청난 양의 커뮤니티 피드백을 수용하여 정식 출시를 앞두고 게임의 퀄리티를 수백만 배는 끌어올린 역대급 대규모 패치를 단행했습니다.

- 토치라이트 인피니트(XD): 페이 투 윈(P2W) 요소 때문에 이 게임을 혐오하는 분들이 많다는 점, 완벽하게 이해합니다. 그래서 아예 관심을 끄고 사시는 것도 납득합니다. 하지만 P2W를 차치하고 본다면, 이 게임이 매번 출시하는 시즌 콘텐츠의 볼륨은 시장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압도적이고 방대합니다. 매번 그렇게 묵직한 시즌을 내놓고 있죠.

그렇다면 디아블로 4의 시즌은 보통 어떤 식으로 흘러가나요?

필드에 기믹이 조금 추가되고, 캐릭터 능력치를 조금 얻고, 20단계짜리 보상판을 마우스로 클릭해 다 채우고 나면 펑 하고 공중으로 증발해 버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돈을 내고 '유료 콘텐츠'를 결제할 때까지, 속 빈 강정 같은 일회성 플레이를 무한정, 계속해서 반복해야만 합니다. 유료 확장팩이 출시되어야만 비로소 개발팀이 그동안 무슨 작업을 해왔는지 게임의 진짜 발전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죠.

이번 확장팩에서 호라드림의 함도 추가되었고, 실질적인 크래프팅 시스템도 생겼으며, 토너먼트 티어 단계 개편도 아주 훌륭했습니다. 드디어 제대로 된 패치를 받은 느낌이 들었죠.

하지만 확장팩과 다음 확장팩 사이의 그 기나긴 공백기 동안, 유저들은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며 게임을 켜야 하는 걸까요? 그저 얄팍한 일회성 콘텐츠의 무한 반복일 뿐입니까?

솔직히 저는 개발진들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3개월마다 칼같이 새로운 시즌을 뱉어내야 한다는 끔찍한 압박감 속에서 작업해야 하니까요. 물론 타 게임사들이 퀄리티 타협을 위해 시즌 주기를 4~5개월로 늦출 때, 3개월 주기를 시계태엽처럼 꼬박꼬박 지켜내는 블리자드의 성실함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 3개월이라는 강박이 오히려 게임을 해치고 개발진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 번뜩이는 훌륭한 아이디어가 있어도 쓸 수가 없습니다. 진짜 좋은 아이디어들은 1년 반 뒤에 유저들에게 팔아먹을 '유료 확장팩'을 위해 꽁꽁 숨겨두어야 하니까요. 결국 개발팀은 남은 자투리 아이디어로 다음 3개월을 버틸 얄팍한 시즌을 대충 포장해 내면서, 제발 유저들이 배틀패스나 구매해 주기를 기도하는 기형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디아블로 2 시절에는 정기적인 콘텐츠 추가 자체가 없었고 래더 초기화만 누르면 끝이었죠. 디아블로 3 초창기 시절의 시즌이라는 것도 '고블린 출현 확률 2배 이벤트' 따위를 시즌이라고 우기며 유저를 기만했던 끔찍한 재앙이었습니다. 예전엔 이래도 넘어갔지만 지금은 시대가 다릅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게임에 구현하는 데 시간이 너무 심하게 오래 걸립니다.

"유료 결제를 하기 전까지는 양질의 대규모 콘텐츠를 제공할 수 없다"는 변명은 타 경쟁 게임들에게는 절대 통하지 않는 헛소리입니다. 그라인딩 기어 게임즈는 역대급 탐험 업데이트를 무료로 제공했고, 다가올 11월과 12월 업데이트에서는 얼리 액세스 비용마저 없애며 게임을 무료로 개방합니다.

토치라이트도 최신 영웅을 유료로 팔지만, 게임만 열심히 플레이하면 무료 영웅 토큰을 얻어 공짜로 해금할 수 있습니다.

문 스튜디오와 일레븐 아워 게임즈(라스트 에폭) 역시 처음에 세일가로 헐값에 패키지를 구매한 이후, 그 거대하고 훌륭한 메가 업데이트들을 즐기는 동안 단 한 푼의 추가 결제도 요구받은 적이 없습니다. (라스트 에폭이 크래프톤에 인수되면서 내년에 유료 확장팩을 낼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하긴 하지만요.)

💡 블리자드도 예전엔 '진짜 시즌'을 완벽하게 만들 줄 알았습니다

제가 가장 답답함을 느끼는 부분은, 블리자드 역시 과거에는 이런 영구적이고 훌륭한 시즌을 완벽하게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한동안 여러분은 완전히 올바른 궤도에서 완벽한 아이디어로 시즌을 운영했습니다.

디아블로 3 개발팀이 해체 수순을 밟고 회사 차원에서도 반쯤 손을 놓고 방치하던 황혼기 시절, 남은 개발자들은 연달아 초초초대박 역대급 시즌들을 터뜨렸고, 이는 대다수의 유저가 게임을 접은 한참 뒤까지도 커뮤니티의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

- '의식의 제단(Altar of Rites)' 시즌: 엔드게임 진행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고친 혁명이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오늘날까지도 게임에 영구적으로 남아, 수많은 유저들이 제단을 채워나가며 캐릭터가 강력해지는 판타지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완벽 그 자체였죠.

- '축성(Sanctified) 아이템' 시즌: 플레이어가 말 그대로 신이 된 것 같은 압도적인 쾌감을 선사했던 놀라운 시즌이었습니다.

- '적개심의 환영(Visions of Enmity)' 시즌: 처음엔 저도 반신반의했지만 결과적으로 미친 아이디어였습니다. 지루하기 짝이 없던 대균열 뺑뺑이에서 유저들을 끄집어내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오픈 월드와 현상금 사냥으로 등 떠밀었죠. 마을 한복판에서 보스 열 마리가 튀어나오고, 알록달록 동산을 열었더니 보물 고블린 20마리가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혼돈과 꿀잼의 포털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이 환영 포털은 지금도 디아블로 3에 영구적인 시스템으로 남아있습니다.

블리자드는 분명 유저들이 열광할 만한 핵심 시스템을 시즌을 통해 테스트하고 게임에 영구적으로 안착시키는 성공 방정식을 알고 있습니다.

최근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디스커버리 시즌(Season of Discovery)'에서도 이런 비슷한 철학이 엿보이더군요. 이번 블리즈컨에서 와우 클래식 관련 대형 업데이트가 있을 거라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부탁입니다. 과거에 해냈던 것처럼 기발하고 미친 아이디어들을 과감하게 도입해서, 게임에 영구적으로 남을 수 있는 훌륭한 시스템들을 정기적인 주기로 추가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발, 이 물 탄 듯 밍밍하고 얄팍한 일회성 시즌의 굴레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 주십시오.

?+ 게임의 미래와 벼랑 끝에 몰린 소규모 크리에이터들을 위하여

디아블로 4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일부 유저들은 이런 비판 영상을 올리는 저를 마치 '디아블로를 억까하는 악마' 취급하기도 합니다. 자신들과는 완전히 궤가 다른 악성 유저가 감히 본인들의 최애 게임을 험담한다며 분노하시죠.

여러분, 저는 철저하게 여러분의 편입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20년 넘게 디아블로 시리즈와 함께해 왔습니다. 장담하건대 이 글을 보시는 그 누구보다 제가 디아블로 3를 더 깊게 파고들었고, 대다수의 유저들보다 디아블로 4 플레이 타임이 압도적으로 깁니다.

저는 여러분이 더 풍성하고 퀄리티 높은 콘텐츠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블리자드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의 편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분들이 있다는 게 저로서는 정말 억울하고 미칠 노릇입니다.

우리는 지금 시즌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전략 개편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블리자드가 유저들이 두고두고 씹고 뜯을 수 있는, 게임에 영구적으로 추가될 만한 묵직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제발 집중해 주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99%의 대중들은 신경 쓰지 않겠지만 블리자드 내부의 누군가 몇 명은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를 꺼내겠습니다.

크리에이터들 사이에는 '다른 사람과 주고받은 개인적인 귓속말이나 메시지는 절대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불문율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그 금기를 깨려 합니다.

당연히 이름은 익명으로 처리하겠지만, 디아블로 4를 메인으로 삼고 방송하는 여러 명의 소규모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이번 시즌을 겪으며 제게 절박하게 조언을 구하는 귓속말을 보내왔습니다. 그들의 하소연은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았습니다.

"랙스, 제가 여기서 도대체 어떻게 방송을 풀어나가야 할지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 디아블로 4는 제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시청자들을 위해 메인으로 다루고 싶은 게임입니다. 하지만 세 가지 심각한 문제가 생겼어요.

첫째, 저는 이번 시즌 테마가 너무나도 싫습니다.
둘째, 게임에 파고들 '깊이'라는 게 전혀 없어서 도저히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방송 콘텐츠를 뽑아낼 수가 없어요.
셋째, 볼륨이 이 모양이니 이번 시즌을 플레이할 유저 자체가 급감할 텐데, 제 채널의 미래가 너무 걱정됩니다.

제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제발 생각 좀 도와주세요."

이 크리에이터들 중 상당수는 1년 반에 한 번씩 떨어지는 확장팩만 바라보고 살 수 없습니다. 훨씬 자주, 흥미롭고 깊이 있는 콘텐츠가 정기적으로 수혈되어야만 방송을 유지하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분들입니다.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처럼 덩치가 큰 스트리머는 당장 금전적인 타격이 없으니 다른 게임을 하며 유유자적하면 그만입니다. 스트리머들을 불쌍하게 여겨달라며 동정표를 구걸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블리자드 여러분, 디아블로 4 하나에 열정을 다해 생계를 걸고 있는 소규모 크리에이터들에게, 이렇게 텅 빈 시즌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습니다.

블리자드가 이런 빈약한 일회성 콘텐츠를 계속 고집한다면, 결국 게임의 화제성을 무보수로 유지해 주던 가장 헌신적인 팬과 방송인들부터 잃게 될 것입니다. 저나 디아블로 판의 거물급 스트리머들 이야기가 아닙니다. 게임 생태계를 받치는 풀뿌리 소규모 크리에이터들이 지금 피를 흘리며 고통받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뜻입니다.

제가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토론할 수 있지만 이쯤에서 갈음하겠습니다. 저는 블리자드의 성공을 바라고, 커뮤니티 유저들의 행복을 바랍니다.

비싼 유료 결제 장벽 뒤에만 꽁꽁 숨겨진 기형적인 구조가 아니라, 훨씬 지속 가능하고 훌륭한 퀄리티의 무료 콘텐츠들이 디아블로에 끊임없이 생명력을 불어넣기를 갈망합니다.

과거에는 래더만 툭 초기화해도 유저들이 군말 없이 즐겼다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고 ARPG 시장의 판도는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다른 모든 경쟁작들은 앞다투어 진화하며 '시즌'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정의를 확립하고 있는데, 디아블로 4 혼자만 구시대적인 엇박자를 내고 있습니다. 냉정하게 말해, 이런 현실 인식 부족은 블리자드를 매우 무능한 개발사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제발 오늘 제가 드린 고언을 진지하게 씹어 삼켜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시즌들은, 정말로 게임의 뼈대를 튼튼하게 발전시키고 유저들이 두고두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는 영구적인 자산이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기에 뒷북치는 감은 있지만, 그래도 SSF 모드를 출시해 준 결단에는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블리자드가 앞으로 어떤 기막힌 요리를 만들어낼지, 그리고 다가올 블리즈컨에서 어떤 희망찬 청사진을 보여줄지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이상이 제가 진단한 디아블로 4 시즌 14의 뼈아픈 현주소였습니다.

이제 레딧에 이 글을 마음껏 퍼다 나르십시오. 그리고 제가 얼마나 게임을 억까하는 쓰레기 같은 놈인지, 제가 어떻게 여러분의 갓겜을 망치고 있는지 신나게 욕하시고 이 영상 댓글창을 악플로 활활 불태워주시기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diablo4&no=680212&s_type=search_subject_memo&s_keyword=rax&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