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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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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비화 8화 서막을 노래한다칠흑비화 8화
서막을 노래한다(序幕に謳う) 역사라는 것을 둘러보면, 그 고비에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다.전쟁을 이기고 나라를 세운 누군가.역사적인 발견을 한 누군가.닥쳐온 어려움으로부터 민중을 구한 누군가... 그런, 밤하늘을 여기저기를 비추는 별같은 사람들을, 위인이나 천재 또는 영웅이라고 부를 것이다. 나는 영웅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회장이다. 18대째 이어지는 갈론드 아이언웍스의 18번째 회장.초대를 비롯한 몇몇은 운 좋게도 살아있는 중에 자리를 물려줬으나 가장 짧은 녀석은 취임 후 사흘 만에 목숨을 잃은 적도 있었다.그렇게 약 200년동안……이 직무를 맡아 온 18명은, 비록 후세의 사람들에게 구전되더라도 '초대 시드와 그에 뒤를 이은 회장들'정도로 정리되는 게 고작일 것이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형식 없는 위업이라면 더더욱 그럴테지. 이 이름은 역사에 남지 않는다.그렇기에 영웅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가슴을 펴고 살아 간다. **** 은빛 눈물 호수에 우뚝 솟은 묵약의 탑. 거창한 이름이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거대 전함은 강철판을 도굴하려는 도굴꾼들에게 전부 도둑맞아 이제는 고목과 다름 없다. 그야말로 폐허 같은 분위기는 은신처를 마련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호수 안이라고 하는 위치때문에 그만큼 습격하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남겨진 외각에 감겨 있는 거대한 호스……아니 「용」은, 그 영웅과 인연이 있는 존재였다고 전해 들었다.우리가 정착하는 데는 안성맞춤일테지. 그런 은신처 중앙에 있는 집회장에서 그날 밤 갈론드 아이언웍스 직원과 협조자들이 곯아떨어져 있었다. 며칠동안은 작업장인 크리스탈 타워에 머물렀지만 오늘 밤은 그럴 필요도 없다.준비는 이미 다 되었기에 내일 아침 그 탑은 과거의 제 1세계를 향해 출발할 예정이었다.이를 축하하기 위해 열린 조촐한 잔치도 벌써 끝났어도 그래도 아쉬움에 자리를 뜨지 못한 사람들이 결국 곯아 떨어진 것이였다. 딱 하나 타오르고 있는 불은 이들의 잠을 방해하지 않고 새빨갛게 타고 있었다. 그것을 응시하면서 깨어 있는 것은 나와 그리고, 이제 한 사람뿐이다. ![]() "저기 그라하..." 부르자, 불길처럼 붉은 눈이 이쪽을 향했다. 그는 그 붉은... 알라그의 황족의 피를 갖고 있기에 이 시대까지 잠들었고 그리고 내일, 다른 시대로 건너가는 것이다.이번에는 세계마저 넘는 희망을.다른 미래를 주기 위해. 그 중책을……자신들이 그에게 맡긴 사명의 중량감을 생각하면, 언제라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치밀어 온다. 그러나 이제 서로 각오를 다 잡은 것이다. 무심코 꺼낼 뻔했던 몇 마디 말을 하는 대신, 전부터 묻고 싶던 이야기를 오늘만큼은 하기로 한다. "너…… 어째서 크리스탈 타워랑 함께 잠들기로 한거야?" 그렇게 묻자 그는 의외라는 듯 눈을 깜빡인 뒤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그 이야기야?" "마지막 기회니까. 그야, 너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인데다, 옳았다고도 생각해.우리의 꿈이 이어지게 된 것도 그 덕분이지. …하지만, 간단하게 선택할 수 있는 길도 아니었을 텐데." 전부터 안고 있던 그에 대한 의문. 그것을 솔직하게 꺼내자 놀리는게 아니라고 생각해준거겠지. "그렇네……"라고 중얼거리며 시선을 불 쪽으로 돌렸다. 답을 찾고 있는 듯 꼬리가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흔들린다. 참을성 있게 대답을 기다리자 이내 그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가늘게 뜬 눈은 불꽃의 빛 너머에 더 눈부신 무언가를 보는 듯했다. "비춰진 거야.그 열과 빛에" "…뭔데?" "시드와 네로, 그리고 웨지,초대 빅스.모두, 엉망진창으로 머리도 솜씨도 좋아서 말이지..." 자신이 한 가지 아이디어를 말하면 그들은 순식간에 발명품을 만들어 냈다. 옆에서 조사를 지휘하고 있던 램블루스라고 해도, 현인으로서는 대선배다.눈짓꾼이라는 날뛰는 젊은이를 내심 흐뭇하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가 자신을 인정하고 의지해 주어서 기뻤다. 중간부터 조사에 참여한 도가와 우네는 무려 알라그 시대에 태어난 복제라고 했다.긴 시간을 넘어, 오로지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려고 있었다. 그런 일행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고대 알라그 문명의 지혜와 어둠.알라그 역사에 이름을 올렸던 영웅들, 전설의 시황제 잔데, 심지어 세계를 건너 대요마와 결전을 하기도 했다. 그것들을 물리치고 노아의 길을 개척해 온 것은...다름이 아닌, 제8 재해가 일아난 세상에도 이름을 남겼던 그 영웅이다. "굉장해, 정말로. 이야기가 갑자기 현실이 된 것 같아서…… 집중했어.그런 와중에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하지 않는다" 라는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해?" "마음은 둘째치고……두려움은 없었어?" "그야, 없었다고는 할 순 없지만……" 그라하 티아는 천장을 올려다본다. 광장 바로 위에는 비바람을 막아내도록 보수했지만 구멍 투성이였고 검게 뻗은 뼈대 사이로 깜박이는 밤하늘이 보였다. 그 빛을 눈동자에 담아 그리움을 가득 머금으며 자랑스럽게 그는 말한다. "어떤 운명이라도 도전할 수 있다.그렇게 믿었어, 그녀석들이랑 뛰면서." 망설임이 없는 옆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탄의 숨을 내쉬었다. 과연 남에게 그렇게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존재가 영웅인지도 모른다. 나의 조상도 초대 회장도 이 계획에 종사해 온 많은 사람이 그것을 접하고 가슴을 태웠다.과연 본인에게 자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걸음은 분명 한 때 옆을 걸었던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먼저, 미래로, 희망으로 나아갈 용기를. 그것이 내일 아침, 다름 아닌 자신의 대에서 결실을 맺는다고 생각하자, 숨을 들이마시는 것과 동시에 등이 펴졌다. "…전송. 반드시 성공시킬 거야" 그렇게 주먹을 내밀면 자기 주먹보다 훨씬 작은 주먹이 세게 부딪힌다. "그래. 그 뒤는 맡겨줘." 비록 이 약속의 끝을 알 수 없다 해도. 거기에 하나라도 더 많은 행복이 생기기를 바라며 다음날 아침 크리스탈 타워의 전송 계획은 실행에 옮겨졌다. 바라건대 두 세계가 구원되기를. 그러기 위해 힘쓰는 그에게도 부디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결말을. 동료들의 그런 생각으로 배웅을 받으며 아름다운 수정 탑은 새벽 하늘에 잔광을 흩뿌리며 사라졌다. *** 모르도나 호숫가에서 동료들과 얼마나 서 있었을까. 크리스탈 타워가 전송했을 무렵엔 아직 어두컴컴했던 하늘에서 해가 뜨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모두 그냥 사라진 탑이 있는 쪽을 응시했다. 계획은 아직 시간과 차원의 저편에서 계속 된다. 그러나 우리의 차례는 여기까지다. 탑이 사라진 모르도나의 풍경처럼 내 안에 구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해냈다는 충족감과, 그러니까 적막감이 그 구멍으로 흘러들어 간다. 200년 간의 꿈의 끝은 너무나 고요했고 바람과 호수가 내는 희미한 소리만 들렸다. "…사라지지 않는 거지,우리는" 한 동료가 그렇게 말하며 정적을 깬다. 확실히 역사 개편의 영향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날지 몰랐다. 그것을 성립시킨 순간에 이 역사 자체가 "없었던 일"이 될 가능성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탑을 보냈는데도 우리들은 변함없이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그라하 티아가 제 1세계의 구제에 실패하면 개변은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이왕이면, 좋은 쪽을 믿고 싶다. 그는 계획을 완수해 제 8재해가 일어나지 않는 역사를 성립시켰다. 한편, 우리의 역사도 또 이것은 이것대로 계속 되는 것이다……라고. 동료들도 같은 생각에 이르렀을 것이다. 서로를 둘러보며 이변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변하지 않아.모든 게.이 진흙탕 같은 세상에서 내일.또 내일을 향해 살아간다. 그렇게 당연한 뻔한 결말에 이른 것이, 우스워서... 그리고 묘하게 행복했다. 그렇게 완전히 끝난 것처럼 생각하고 있던 우리들은, 그러니까, 그래,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크리스탈 타워. 시간의 날개.차원의 틈새을 초월한 관측자. 그런 모험으로부터 계속 되는 이 역사에는 아직, 깨어날 사람이 있었다는 것에... 갑자기 땅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순간적으로 주위를 훑는다.동료의 한 명이 "어이, 저길 봐!"라고 은신처 쪽을 가리켰다.뒤돌아보자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폐전함에 남은 녹투성이 전함이 삐걱거리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몇 개는 그대로 떨어져 나가, 호수면에 큰 물보라를 일으켰다. 원래부터 무너질 것 같은 폐허지만 마침내 한계가 온 것일까. ...아니. 겉에 얽혀 있던 "그것"이, 마치 되살아난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환룡……미드가르드오름……!?" 다시 하늘까지 떠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용의 포효였다. 이윽고 완전히 폐전함에서 떨어진 거대한 용은, 빙그르르 하늘을 한바퀴 돌더니, 무슨 일인지 이쪽으로 향했다. 동료나 나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경직되었다. 이 용이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초대 회장이 남긴 차원의 틈새에 대한 조사기록으로 알고 있었다.하지만 설마 눈을 뜨리라고는 누가 예상했는가.혹시 크리스탈 타워를 전이시킨 게 그의 잠을 방해한 건 아닐까 싶어 얼굴이 창백해진다. 그런 우리를 바라본 미드가르드오름은 낮고 조용히 목소리를 냈다. "너희들, 작은 인간의 아이여……지금 막 수정탑을 차원의 너머로 보냈구나." "아, 아아……미안. 그래서 일어난 거야……?" 용은 얼른 대답하지 않았다. 무의식중에 움켜쥐고 있던 손바닥에 불쾌한 땀이 번진다.괜찮아.그는 적이 아닐거라고 스스로 타일러도 본능적인 경외감은 감출 수가 없다.드래곤족이 이런 것인가를 실감하며 대답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잠깐 눈을 붙이며 세상의 변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와 함께 있는 인간이 무엇을 이루려 했는지도 말이지." 원초의 용은 담담하게 말하며 다시 한번 우리를 돌아보았다. "나는 싸움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그러므로 너희의 행동이 용감하다는 것도 안다.그러나…인간의 삶은 너무나 짧다. 하물며 그 마음의 변한다는 것에 이르면 우리 용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지. 그랬기에 언젠가는 무너질 꿈이라고 생각했건만……너희들은 해냈다." 덧붙여서, 라며 그 거대한 눈이 동료 중 한 명을 붙잡았다. 아직 나이가 어린 그녀는 두 손으로 검은 덩어리를 감싸쥐고 있다. 내 조상이 만들었다는 오메가 모형이었었다. 그것은 오랜 세월동안 갈론드 아이언 웍스의 일원으로서 사랑받고 있었지만,역시 그동안 손상되어 여기저기 망가져 있었다. 배터리를 바꾸어도 곧바로 멈추고, 센서에도 이상이 온건지 자주 은신처의 벽에... 말하자면 미드가르드의 몸에, 탁탁 거리며 부딪치고 있었다. 완벽히 수리할 수도 있지만 그건 다시 만든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 무렵에는 이미 탑의 전이 계획에 집중되고 있었기에 일단 그것을 마칠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아도 그대로……라고 모두 결정했던 것이다. 그런 모형을 본 미드가르드오름이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용의 표정은 잘 몰라도 왠지 웃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긴장이 풀린 건지, 아니면 그 광경에 뭔가를 느꼈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다만 온몸에 다시 피가 돌기 시작했고 그것이 심하게 뜨거워졌다. 머릿속에 어젯밤 들었던 말이 들렸다. "당했구나"라고. 아, 이런 느낌이었을까. 뭔가 장대한 흐름에 몸을 던지듯, 일의 시작을 눈앞에 둔 듯한 약간의 불안감과 고양감. 그래서 들뜨듯 두려워하던 용을 똑바로 바라본다. 용 또한 비늘을 아침 햇살에 빛내며 이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인간의 아이여, 너의 꿈은 여기서 끝인가?" "…아니, 우린" 제8 재해가 없는 미래를, 그 영웅이 사는 미래를 성립시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없다. 그러나, 그 꿈을 위해서 닦아온 기술은, 확실히 이 손에 남아 있다. 포기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매달려 쌓아 온 그것은, 이번에는 세계를 구하는 것에 충분하지 않을까. 아니... "구하고 싶어, 이 세상을." 그 대답에 미드가르드오름은 역시 웃는 듯했다. "우리는 인간의 이빨이 아니다. 그러나 이 별에 빌려 사는 자로서, 너희의 소원에 힘을 보태리라. 고집을 견고한 성벽으로 삼고 도시를 만들어 지혜를 더 쌓는 것이 좋으니라.그 끝에 언젠가는 오겠지...새로운 평화의 시대, 인간이 성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 우리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시간과 세계를 건넌 저 청년도 그의 전쟁터에서 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그 결말을 서로 이야기하지 못해도.서로의 역사에 이름이 기록되는 일은 없을지라도. 우리들은 분명 똑같이, 저편의 별에 손을 뻗는다. ![]() |


에멧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