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무어

Bobby Moore

  

주 포지션:CB

국가:​잉글랜드

키:182cm

생일:​1941년 4월 12일(1941-04-12)

​별명:​삼사자군단의 캡틴

​주요 클럽:​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선수생활 기간:​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1958-74)

풀럼 FC (1974-77)

샌안토니오 선더 (1976)

시애틀 사운더스 (1978)

헤르닝 프레마드 (1978)

 

클럽 커리어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544경기 24골

풀럼 FC 124경기 1골

샌안토니오 선더 24경기 1골

시애틀 사운더스 7경기

헤르닝 프레마드 9경기

  

잉글리시 FA컵 우승 1회

UEFA 위너스컵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66 FIFA 월드컵 우승

1968 유럽 선수권 대회 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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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커리어

 

​1970 발롱도르 2위

​1966 FIFA 월드컵 실버볼

​1970 FIFA 월드컵 브론즈볼

1966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68 유럽 선수권 대회 올스타팀

FWA 올해의 선수상 1회

BBC 선정 올해의 선수상 1회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영구결번 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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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머스의 영원한 캡틴

   

  
바비무어는 1956년 웨스트햄유나이티드유스에 입단한다. 그리고 2년만에 시대를 주름잡을 천재 수비수로 일컬어 지며 1958년 첫 프로데뷔전을 가진다. 1년 뒤에는 66월드컵 논란의 중심 제프허스트까지 보강되며 웨스트햄유나이티드는 어느정도 강팀으로 불려진다. 허스트와 무어는 60-61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기용되며 활약한다. 특히 63-64시즌에는 그 시즌에만 50경기라는 사실상 팀의 모든 경기를 풀로 소화했고 그에 맞는 타이틀인 FA컵을 우승한다. 그의 첫 우승트로피였다. 그 해에 FWA올해의선수상까지 수상했고 그 다음시즌인 64-65시즌에는 위너스컵까지 우승하며 웨스트햄을 유럽에서 어느정도 이름있는 팀으로 불리게 된다. 이 후 거의 15년동안 팀을 지키던 그는 웨스트햄유나이티드를 떠나게 된다. 500경기 넘는 출장수와 그에 맞는 우승타이틀들을 보유했다. 70년대 초반부터는 기량이 하략했고 그의 아내가 납치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렇게 웨스트햄유나이티드를 떠나 풀럼에서 다시 선수생활을 시작한다. 풀럼에서도 어느정도 활약하며 풀럼에서의 데뷔시즌인 74-75시즌에는  FA컵 결승에 진출한다. 운명의 장난인지 그 상대는 웨스트햄유나이티드였고 풀럼은 2-0으로 아쉽게 패배한다. 그렇게 미국이나 여러 팀을 떠돌다 그는 1978년 현역은퇴를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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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자군단의 영광

  
   

그의 첫 메이저국대경기는 1962월드컵이었다. 그는 겨우 22살에 주장완장을 찬다. 잉글랜드는 조별예선은 통과하지만 2차라운드에서 브라질을 만난다. 브라질은 당시 펠레가 부상으로 빠졌지만 바바와 가린샤가 그의 자리를 충분히 메꿨고 팀은 3-1로 패배한다. 그래도 바비무어는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며 유럽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 당시 잉글랜드는 축구종가라며 세계에 떠들고 다녔으나 58,62월드컵의 참패로 축구종가로써의 자존심은 처참히 구겨졌다. 때문에 다음 자국에서 열리는 66월드컵에는 꼭 우승을 해야했다. 잉글랜드는 마음을 굳게 먹었는지 조별예선부터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결승까지 진출했다. 특히 무어는 계속해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 그와 수비듀오이자 바비찰튼의 친형인 재키찰튼 역시 최고의 화합을 보여줬다. 그리고 클럽에서의 동료인 제프 허스트 역시 잉글랜드 최고의 공격수 지미 그리브스의 부상으로 인한 공백을 완벽히 매꾸며 결승까지 진출했다. 상대는 우베젤러와 베켄바우어의 서독이었다. 경기는 2-2 접전으로 연장전으로 흐르는데 101분,제프허스트가 한 슛팅이 크로스바를 맞고 골라인 근처에서 떨어졌다. 이를 제대로 못본 주심은 골로 인정했고 제프허스트가 또 다시 한골을 넣으며 해트트릭에 성공하며 4-2로 승리한다. 무어는 실버볼과 올스타팀에 선정된다. 그렇게 세계 최고가 된 잉글랜드는 다시 한번 70월드컵에 도전하지만 8강에서 서독에게 복수를 당하며 진다. 근데 이 대회에서 우승한 브라질을 상대로 조별예선에서 무어는 멱살잡고 잉글랜드의 수비를 맡았고 명경기를 펼친다. 때문에 브론즈볼을 수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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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스타일 및 평가

  

​바비무어는 완강한 대인마크 능력과 정확한 태클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태클이 특히 굉장히 정확했고 스탠딩태클에 있어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본다. 키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헤딩을 잘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겁이 없이 덤벼들어 발로라도 공을 걷어냈고 이 외에도 커팅능력도 뛰어났다. 수비뿐만아니라 거의 리베로라고 볼 정도로 드리블과 패스를 잘했다. 특히 수비를 한번에 허무는 롱패스와 시야와 직접 하프라인까지 드리블로 몰고 올라가며 패스로 연결하든 중거리슛을 때리든 팀의 공격에도 활기를 불어 넣을줄도 알았다. 그러나 그의 클럽커리어는 많은 역대급수비수들에게 비교도게 터무니 없다. 하지만 웨스트햄유나이티드의 최고성적이 리그 3위라는것과 유일한 위너스컵우승이 그가 있을때라는것을 생각하면 그의 커리어는 반대로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위상을 더 이야기하자면 70월드컵 당시 리벨리누,토스탕,펠레,자이르지뉴등을 완벽히 묶어내며 1골밖에 허용하지 않았는데 무서운것은 그경기에서 잉글랜드를 제외한 브라질의 상대팀은 적어도 모두 3골이상 허용했다는것이다. 이것 역시 생각해보면 그가 단지 잉글랜드를 우승시킨 주장으로써의 위상이 아닌 축구사 어디를 봐도 이만큼의 역량을 보여준 선수가 없다는것을, 그가 왜 역대 최고의 센터백인지를 알려준다.

  
 

​"공간과 사람, 둘 다 막을 수는 없다."

​- 바비 무어 -

 

 

 

요번에 피파에 나오긴했지만 60년대 선수여서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것같습니다.

궁금해서 바로 구매해봤으나 게임에서는 별로네요...

그래도 실축에서는 베켄바우어 다음으로 최고로 평가받는 센터백입니다.

블로그에 있는글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원글:http://blog.naver.com/avec3525/220675182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