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지청천 장군 서거 (1888.03.07 ~ 1957.01.15)

지청천 장군은 대대로 무관을 지낸 집안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어린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1908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일제에 의한 군대해산으로 2년만에 폐교되었고 이들은 모두 일본으로 보내졌다.

그렇게 지청천은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1914년 졸업한다. 중위로 진급할 무렵 3년 선배인 김경천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다. 현역장교였던 이들의 망명으로 일본은 충격을 받았고 엄청난 현상금을 걸고 수배를 내린다.

1919년. 신흥무관학교 교성대장이 되어 독립군 간부양성에 진력하였다. 그는 독립군에서 유일하게 정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사람이었고 그의 경험과 배움의 가치는 그만큼 엄청났다.

청산리 대첩 이후 일본군의 한국인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을 피하여 신흥무관학교를 폐교하고 병력을 간도로 이끌고 건너가, 서일, 홍범도, 김규식, 김좌진 등과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했다. 그리고 1930년. 한국독립군을 만들고 독립군 총사령관에 취임, 1940년에는 광복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다.

그는 총사령관으로 쌍성보전투, 대전자령전투와 청산리 전투 등에서 승리를 이뤄냈으며 1946년 광복 이후 지청천이 김포공항으로 돌아왔을때 이승만, 김구, 김규식 등이 친히 마중나왔다. 정부수립 이후 초대 국무위원 및 무임소 장관을 역임하였고 이후 정치인의 삶을 살았다.


"조국광복을 위해 싸웁시다. 싸우다 싸우다 힘이 부족할 때에는 이 넓은 만주벌판을 베개 삼아 죽을 것을 맹세합니다."

- 백산 지청천 -

1957년 1월 15일. 지청천 장군은 자택에서 별세하였고 1962년 지청천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