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따스한 봄날. 청명한 햇살 아래서 훈련을 하고 있을 적의 일이었다.

 

 며칠이나 이어진 고된 훈련 끝에 대부분의 제자들은 반쯤 쓰러져 곡소리를 내곤 더 이상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있었고, 지휘하는 나조차도 조금은 버거워져 그들에게 막 휴식을 허락했던 차였다. 누구라 콕 찝을 필요 없이 거의 모두는 있는 힘껏 기력을 짜내 햇무리가 닿지 않는 그늘로 향하였고, 모두가 쉬지 못할 정도로 퍽 비좁은 나무의 둘레에 둥글게 에워싸 앉더니 지친 눈으로 나인지 허공인지 모를 곳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을 잠시 쳐다보기만 했다. 그들이 잠시 숨을 고를 때까지.

 

"다들 움직임은 좋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부분은 많다. 하딘."

 

"…예."
 

 분명 지쳐있으나 하딘의 눈은 아직까지 살아있었다. 일어나라면 일어날 것이고, 휴식 없이 수행하라 하여도 곧이곧대로 들을 것이 뻔해보였다. 하딘도 그러기를 예상하기라도 한듯 몸을 일으키려 들었다. 나는 다시 앉으라 명령하고 말을 걸었다.


"네 약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본인이 판단해봐라."

 

"…망설이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
 

"…."

 

 하딘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말하기조차 버거울 정도로 지쳤기 때문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약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것인지. 그 의중은 알 수 없었다.

 

"네가 나와 대련을 했을 때, 나에게 한 순간이지만 빈틈은 있었다. 하지만 너는 그 틈을 노리지 않았지. 오히려 내가 자세를 다잡을 때까지 기다렸다."

 

"알고 있습니다."
 

"어째서지?"
 

"그건… 비겁하지 않습니까. 전력의 상대와 맞서는 것이 아니라 약점을 찔러 이기는 것은 기사도와도 어긋납니다. 그래서였습니다."
 

 지친 탓인지, 의견에는 그다지 힘이 없었다. 목소리는 메말라 갈라질 정도여서 겨우 침을 삼켜 말을 잇고 있을 지경이었다. 수통을 건네주어 잠시 말을 쉬게 하고서야 하딘의 목소리는 평소로 돌아왔다. 

 

"그럴지도 모르지."
 

"…!!"

 

 하딘은 내가 동의할줄 몰랐다는 양 크게 놀랐다. 금세 표정을 숨기려고는 했지만 이미 들키고 나서였다. 나는 눈을 크게 뜬 하딘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에도 가능한 이야기일지 생각해봐라. 너와 맞붙을 상대는 언제나 만전의 상태일지를. 만약 지쳐있는 적군과 싸우게 됐을 때에도 그 핑계를 대며 맞서지 않을 건지를."

 

"…."

 

 하딘은 나의 눈을 피했다. 눈에는 분명 거부감이 표출되어있었다. 신념 또한 분명 흔들리고 있으나 아직 뿌리는 남아있었다. 그러나 아직 뿌리뽑기에는 시기상조였다. 그래서 거기까지만 이야기를 이었다.

 

"만약 그것에 거부감이 든다면, 생각을 바꿔보는 편도 나쁘지는 않겠지."

 

"바꾸다니, 어떻게… 말입니까."

 

"목적을 달리해보도록. 눈앞의 적을 쓰러트리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말고 더 중요한 것을 보도록. 나라의 수호나 주군에 대한 충정. 그런 것을 소임으로써."

 

"…."

 

"그러기위해서 더욱 수련하고 실력을 갈고 닦아, 추태를 보이지 않도록 해라. 패배한 자가 내뱉는 기사도따위는 핑계에 지나지 않아. 승리해야지만 그 의지가 빛을 발하는 법이다. 명심하도록."
 

"알겠습니다."
 

 하딘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도 그것으로 하딘에 대한 조언을 마쳤다. 하딘은 그 후 그늘로 들어서려 했으나, 그 자리는 이미 가득 차 있었다. 퀘이그마저도 들어서지 못해 그늘과 햇무리에 걸터 서있기까지 했다. 내가 모두를 잠시 흘겨보자 다들 눈을 피하기만 했다. 다들 햇무리가 가득한 그늘 바깥으로는 나오고 싶어하지 않는듯보였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에드가 불쑥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더니 나의 앞에 나섰다. 

 

"아무래도 다 듣게 될 것 같은데, 먼저 듣는 쪽이 괜찮을 거 같아서요."

 

"에드."

 

 아직 다리를 후들거리고 있기에 수통을 건네었지만, 마치 사양하는 것처럼 선뜻 손을 뻗지는 않았다. 결국 받아들기는 했으나 겨우 몇 모금 마시더니 아직 그늘에 있는 아인에게로 넘기기까지 했다. 물을 원하는 시선이 하도 부담스러워서였을까. 아무튼 에드는 허탈히 웃음을 지으며 빨리 끝내달라는 듯 나를 마지못할 정도의 씁쓸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도 길게 이야기를 끌 생각은 없었다.

 

"하딘이 망설이는 것이 문제라면 너는 혈기왕성해서 문제가 된다. 팀이 지쳐 대부분이 호응하지 못하는데도 너는 대뜸 달려들었으니까. 어긋나는 팀워크는 전멸의 시발점이 될 뿐이야."

 

"…에고, 예상은 했는데. 새겨듣겠습니다."
 

 나도 거기까지만 얘기하고 달리 말을 더하진 않았다. 에드가 막무가내로 덤벼든 것은 지쳐 빈틈투성이인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서였으리라. 


"잠시만? 내가 넘겨줬던 물은 다 어디갔어?"
 

"어? 나도 일단 입만 축이고 라이언한테 넘겨줬는데…."

 

"응? 그거 다 마시라고 준 거 아니었어?"
 

"상식적으로 그러겠어?! 으악, 목만 겨우 축였었는데!"
 

 잠깐 생각하고 있자니 그늘 안에서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던 모습은 어디갔는지 에드는 잔뜩 화를 내며 라이언에게 나무라고 있었다. 남을 먼저 생각하다 자신에게 오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 괜히 웃겨 피식거리는 웃음이 나왔다. 다시 에드를 불러 남아있던 물을 주니 그제야 말싸움은 잦아들었다. 

 

"푸흐. 단장님? 저기, 나눠줘도 되겠습니까?"

 

"그래." 

 

"고맙습니다. 자, 너도 목만 축였지? 여기."
 

"응? …고마워."

 

 아인은 힐끔 나의 눈치를 살핀다. 내가 괘념치 말라는 의사로 고개를 한번 까닥하고서야 에드에게서 수통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인다. 물을 마셔 입을 축이고, 그제야 긴장을 풀리는지 몸에서 힘이 빠진듯 보였다.

"아인."

"…네, 단장님."

"너는."

​"네."
 

"아니다. 넘어가지."
 

 아인은 팀워크 면에서는 그다지 실책이 없었기에 나는 말을 넘겼다. 극도로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었지만 그건 시간이 지나며 차차 해결될 것이었다. 공격이 광범위적인만큼 신중을 가했다고 볼 수 있으니 아무래도.

 

 내가 나무라지 않는 것애 아인은 잠깐 의구심을 가지더니 곧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라이언이나 에드가 약간 놀라하는 눈치로 보는 것에도 자만에 찬 입꼬리만 내보였다.

 

"라이언."
 

"예! 단장님."

 

 뒤이어 라이언을 부르자 칭찬을 예상하기라도 한듯한 대답이 들려왔다. 평소의 활달함이 극도로 달해있기까지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내가 할 말은 칭찬이 아니었다.

"동료를 쏘지 마라."

 

"…."
 

"그래도 모두 수고했다. 오늘의 훈련은 여기까지 할 테니 각자 개인시간을 갖도록."


 라이언은 실망하는 와중에도 꿀같은 휴식을 일단 기뻐했다. 에드는 이제야 긴장을 풀고 무장을 벗어 한숨 돌렸으며, 아인은 훈련이 끝나니 도리어 품위있어보이려는 귀족의 걸음걸이로 훈련장을 떠났다. 남아있는 건 하딘과 퀘이그였다. 나는 멍때리며 찬란한 태양을 바라보는 하딘의 어깨를 토닥이며 우선은 수고했으며, 앞길에 관한 고뇌는 머리를 깨끗이 씻어낸 후 고민해보라고 조언했다. 돌아가는 하딘의 걸음은 어쩐히 허탈하기까지 보일 지경이었다. 퀘이그는 훈련이 끝났냐는 짧은 한마디만을 하고 대답을 듣자 유유히 자리를 떴다.


 결함투성이인 제자들이었으나, 분명히 재능은 있는 원석들이었다. 

 

 






 제자들은 이미 돌아가 쉬고있었으나, 나는 무언가의 미련이라도 남은듯이 황량한 수련장에서 잠시 서있었다. 그러다 다가오는 인영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보이기 시작해 잠시 지켜보았다.


 사람 둘 셋쯤의 무리. 아직 지지 않은 햇무리가 반사되어오는 와중, 나는 그것이 갑옷의 반사광인것을 깨달아 잠시 흠칫했다. 찰그락거리는 금속성의 소리는 점차 가까워지고, 그 소리를 내는 철갑옷의 두 사내는 왕실근위대로서, 사이에 아직 덜 자란듯해 보이는, 무방비의 사람 하나를 호위하고 있었다. 나는 다가오는 자의 얼굴을 완전히 알아채지는 못했으나 어렴풋이 짐작할 수는 있었다.


"스승님."

"왕자님…? 어떻게 여기에…."

 

"제자가 그동안 격조하였지요. 뵙고싶었습니다."


 왕자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짐작하였으나 나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피치못할 일로 궁에서 퇴출당하고서부턴 듣는 일이 없는 목소리였고, 또 들어서는 안되는 목소리였다. 서자인 탓에 겨우 왕자로서 존속되고있는 그가, 반역죄를 뒤집어써 처형 직전까지 갔던 기사에게 방문하는 일이란 있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왕자님을 다시 대면하였다는 반가움보다도 그의 앞으로의 처지에 대한 불안이 앞섰다. 때문에 섣불리 인사에 대답하지도 못했다.

 

"폐하께서 아시게 되시면 큰일입니다. 어서…."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자가 스승을 뵙는 일일 뿐입니다. 거리낄 게 무엇이겠습니까?"

 

"하지만."

 

 나는 재차 불안의 목소리를 내비쳤으나, 그의 눈을 보고는 의견을 무를 수밖에 없었다.

 

 마주하는 왕자님에게서 나와 비슷한 분위기의 불안이 얼핏 비치고 있었다. 그도 이미 각오한 채로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나는 기사된 자로서 한 때 섬겼던 주군에게 더 큰 불안을 심고싶지는 않아 애써 내뱉으려던 다음 말을 삼켜내었다. 그러자 왕자님은 나에게 언제나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차분한 말투로 말을 걸어왔다.

 

"저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충분합니다. 저는 지금 공식적으로는 타국과 교류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서두르다보니 일이 일찍 끝나 이틀정도의 여유가 생겨 괜찮습니다."

 

"타국…, 그건 폐하께서?"
 

"예. 나라의 중요한 일이란 명분이었어서, 신하론 부족해 저까지 대동시키더군요. 서자라는 맹목상의 이유도 눈에 뵈지 않을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

 

 나는 생각이 복잡해 잠시 말을 않았다. 그러자 왕자님은 "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지요." 라며 주제를 더 잇지 않기를 바라듯이 말했다. 게다가 대동시켰던 호위마저도 되돌리고, 그들이 저 멀리 떠나고서야 다시 내 눈을 올려다보며 대화를 시작했다.

 

"자리를 옮기도록 하죠."
 

 나는 말없이 긍정을 표했다. 왕자님은 나를 앞질러 걷다 내가 뒤따르자 천천히 속도를 늦추었다. 왕자님은 단지 몇 걸음을 내딛었을 뿐이었지만 나는 왕자님이 가려는 곳을 단숨에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말없이 걷고 걸어, 호위하는 기사도, 낙제생 투성이의 제자들도 전혀 오지 못할 가파른 곳까지 올라갔다. 그곳은 여전히 왕국의 전경이 확 트이듯 보이고, 져가고 있는 햇무리가 아름다운 장소였다. 이름은 없으나 있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몽환적인 장소였다.

 

"자주 올라왔던 장소였죠." 

 

"그렇습니다. 훈련을 마치면… 항상 정한듯이 이곳에 오곤 했죠."
 

"그 때가 그리워 잠시 오고싶었습니다. 저희가 스승과 제자 사이였던 그 때가."

 

"…."

 

 왕자님은 도시에 반쯤 가려진 햇무리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말은 평소처럼 곧았으나 기세에 힘이 전혀 없고 애수에 차 있었다. 지친 끝에 금방이라도 포기해버릴듯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지고있는 햇무리를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스승님이 궁을 떠난 다음부터는 저 전경을 봐도 도무지 이전과 같은 감상이 들지 않았으니까요."
 

"왕자님."
 

"…스승님은 그렇지 않습니까? 저희는 옛날에 이런 이야기도 나누었었지요. 석양에 파묻혀가는 왕국의 전경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어째선지 가끔씩 두려움을 일게 한다고."
 

"그랬지요."

 왕자님은 햇무리에서 고개를 돌려 잠시 나를 보았다. 그러나 다시 말을 할 때는 햇무리를 바라보려고만 하였다.

 

"저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제가 느끼기엔 전혀 다르게 보이고 있습니다. 여전히 두려움을 일게 하고는 있지만 그때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왕자님."

"…."

"왕자님."

 두어 번을 부르고서야 왕자님은 나를 힐긋 보았다. 그러나 금세 고개를 돌렸다. 왕자님은 지고있는 햇무리에 정신이 팔린 듯 눈을 떼지 않으려고만 하였다. 나는 그런 왕자님의 처지가 가련하여 잠시 슬픈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같이 지고있는 해를 바라봐, 왕자님이 그 너머로 보고있는 것을 따라 보고자 하였다.

 오래 바라보고서야 그가 보고있는 것이 보여, 그제야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쓸쓸히, 한때의 영광만을 추억하게 될 거란 불안 탓에… 저희는 두려워했었지요. 아름다운 것이 그러하듯, 수많은 왕국이 그러했듯. 샤레니안조차 언젠가는 쇠하게 되어버릴 거라 직감하며."

"예."

"하지만… 지금은 다른 것 같습니다. 저조차도 지금의 저 햇무리 너머 존재하는 두려움의 의미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건, 찬란했던 왕국의 최후에 대한 두려움도, 아름다운 것에 대한 쓸쓸한 추억도 아닌…." 

 

"…."

 

"삶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제서야 왕자님은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왕자님을 볼 면목이 없었다.

 

 왕자님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내가 반란죄를 뒤집어써 궁에서 퇴출당하고나서부터 그러했을 것이다. 서자인 탓에 온갖 차별을 받으며, 세력을 불리기 위한 정치싸움의 온상이 되고, 극단적으로는 목숨의 위협까지도 숱하게 받아왔을 것이다. 정말로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을 텐데도 어린 아이의 정신과 몸으로 홀로 서서. 그렇게 지금껏 버티고 버텨오다 쓰러질 것만 같아, 그나마 회상할 수 있던 과거의 추억을 쫓아 내게로 온 것일 테지.

 

 그런데 나는 그의 아픔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더 이상 보듬어줄 수는 없었다. 결국 왕자님은 궁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운명이며, 그렇게 되면 궁 바깥의 나라는 존재는 그저 비참할 정도의 미련으로만 남을 뿐이기에. 그래서 그를 도저히 마주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방관만 하다 정말로 끔찍한 재앙이 닥치게 될 거란 예상도 들어, 도무지 모른 체 넘어갈 수도 없었다. 그 탓에 아픔을 이해한다는 알량하고 이기적인 말을, 책임도 없이 내뱉고야 말았다. 말 뿐이고 결국 방관하고있을 뿐이니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스승님, 예전에 당신과 함께할 때에는 단지 육체만이 힘들 뿐이었습니다. 훈련은 고됐으나 보람찼고, 대련을 마치고 난 뒤 올라와 보는 풍경도 지금보다도 훨씬 보람차며, 아름다웠습니다. 때문에 왕국에 긍지가 생겼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왕국을 지켜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여기에서 보는 나라가 아름다웠기에…."

 

"…."

 

"그러나 지금은 용기가 없습니다. 저를 지키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서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너무나도 두렵습니다.

 

 왕자님은 그 말을 마침표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 머릿속은 완성된 문장으로 가득 차 계속 메아리치고만 있었다. 

 

 실제론 우리 둘 사이에는 긴 정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허나 그 긴 정적이 오히려 의미가 뚜렷했던 것은 왜였을까. 그러한 침묵 속에 담긴 의미를 애써 지워내나 흔적은 남아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뿐이었다. 미처 끝내지 못한 말인데도 그러했다.

 

"왕자님."

 

"…."

 

"잠시, 쉬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미 지쳐있는 왕자님께 배려의 말을 꺼내나, 이미 이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내 이기적인 욕심은 한껏 드러나있었고.

 

 나는 결국 침묵할 뿐으로 문제에는 결국 답을 내놓지 않았으며.

 

 때문에 왕자님의 온몸 곳곳에 서려있는 피곤의 흔적조차, 잠시 쉬고나면 괜찮을 것이란 자기위안을 한 채, 단지 그의 등을 사뿐히 받쳐줄 뿐이었다.

 

"…."

 

 제자는, 딱딱한 나무기둥에도 반쯤 뉘었을 뿐인데도 바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였고, 나는 그 모습을 꽤 오랫동안 지켜보기만 하였다. 

 이런 따스한 봄날이 불변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채. 

 아주 잠깐일 뿐인 이 날이 영원하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늘 아래 불변하는 것은 없음을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