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문학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거리입니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큐피트와 프시케> 같은 역경을 넘어서서 사랑을 쟁취하는 궁정식 사랑 이야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로이오와 줄리엣> 같은 역경과 고난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비운의 사랑 이야기, 여우에게 홀려서 나라를 팔아먹는 <봉신연의> 등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운 소재거리이지요.

 이러한 사랑은 참 달콤합니다. <빨간머리 앤>의 앤이 매번 꿈에 부풀린 사랑을 상상하는 것처럼요. 그리고 참 다양합니다. 심리학자 존 앨런 리가 사랑의 색채 이론을 통해 사랑을 6가지 유형으로 구분 지었을 정도로요. 그렇기에 다양한 사람에 맞게, 평범한 사랑과 마찬가지로 괴상한 사랑도 매번 이야기에서 빼먹기 어려운 일입니다.

 충격과 공포를 선사한 <스쿨 데이즈> 같은 질투심이 파국으로 치닫는 사랑이나 어디 TV프로그램의 로봇 합체를 그대로 현관에서 재현한 <요스가노소라> 같은 부적절한 사랑. 아니면, 다수의 여성이 색기를 뿌려대도 금욕을 추구하며 정신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투 러브 트러블(?)> 같은 금욕주의적 사랑도 있죠!



▲다양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사랑에도 참 다양한 유형이 있다.



 그렇다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랑 이야기가 존재하는 만큼 역설적으로 무생물, 혹은 일부 신체 특정 부위에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페티시즘은 그릇된 사랑일까요?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범법 행위(얀데레, 페도필리아 등)의 사랑보다도 도덕적이고 건전합니다!!

 이번에 다루고자 하는 <미루 타이츠>는 페티시즘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타이츠를 열렬히 사랑하는 향유자를 위한 애니메이션입니다. 네, 맞습니다. 딱 달라붙는 흡착력으로 펑퍼짐한 살을 밀집시켜 몸매를 세련되게 가꿔주며 방한 기능까지 탑재한, 문물과 복식의 위대한 합작품이자 미와 실용성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아낸 인류의 역작, 타이츠 페티시즘을 가진 사람들이 좋아할 애니메이션이라는 거죠.

 다만, 앞서 예시로 꺼내놓은 작품처럼 로맨스는 일절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관객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당신! 당신이 꿈꾸며 좋아하고 바라보고 싶은 시선을 통해 일상을 훑어보는 이야기이죠!





 <미루 타이츠>는 동인 이벤트인 COMIC1와 코믹마켓에서 판매하는 동명의 동인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단편 웹 애니메이션입니다. 3명의 여고생이 주도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잔잔한 일상과 소소한―연애 얘기가 배제된―걸즈 토크가 에피소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루 타이츠>는 그야말로 타이츠로 정리되고, 타이츠로 직결되는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괜히 <보는(미루) 타이츠>라고 제목을 지은 게 아닙니다.

 <미루 타이츠>는 인물 간의 대화 중에도 철저히 타이츠에 시선을 고정. 상당수의 장면이 인물의 표정보다는, 타이츠를 근접 촬영하거나 로우 앵글로 비춰주게 됩니다. 시청자가 우선적으로 타이츠를 바라보고 면밀히 집중하며 관찰하도록 유도해냅니다.

 그런데 타이츠의 표현력이 장난 아니게 세밀합니다. <미루 타이츠>의 감독인 오가와 유키가 작품 코멘트로 타이츠의 특유 질감 묘사와 페티시 감각을 표현하면서 타이츠에 무관심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스타킹의 장점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물이 스며든 타이츠를 쥐어짜는 질감, 타이츠가 찢어는 사운드, 타이츠 두께에 따른 살의 비침 정도 등. <미루 타이츠> 자체의 작화도 굉장히 세련됐는데, 그 모든 작화 퀄리티가 오로지 타이츠에서 이끌어진다는 인상을 심어줄 정도로 멋들어졌습니다.



▲놀라우리만치 섬세한 움직임을 선보인다. 비록, 타이츠를 잡아줄 때로 국한되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작화도 이에 못지 않게 굉장히 세련되었다.



 또한, 스토리의 전개도 마찬가지입니다. 작품을 주도하는 세 여고생 간의 이야깃거리는 작든 크든 타이츠―다리를 비출 명분이 가득 배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등굣길 쏟아지는 빗물에 신발 안이 젖는 일상, 교복 안에 입은 수영복 얘기 등 타이츠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그런데 이게 타이츠가 빛을 발하는 순간을 너무 잘 골라내서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연결해나갑니다. <미루 타이츠>의 각본을 맡은 진성 스타킹 페티시인 마루토 후미아키이기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타이츠가 가장 매혹적인 순간의 분위기를 잘 표현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심지어, <화이트 앨범 2>, <시원찮은 그녀를 위한 육성 방법> 등의 작품을 내놓은 유명 작가이자 각본가라서 그런지 타이츠에만 돋보이는 될 대로 되라는 마구잡이식 전개가 아닌, 각 전개 장면에 충분한 개연성을 심어두면서, 페티시에 무관심한 시청자라도 작품의 메커니즘에 빠져 무의식적으로 타이츠에 시선을 빼앗기고 심취하도록 인도하게 합니다.




▲<미루 타이츠>의 스토리 전개는 타이츠가 빛을 발하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잡아준다. 시청자가 무의식적으로 타이츠에 혼을 빼앗길 정도로...



▲원작가 본인인 마루토 후미아키를 비롯해서, 감독인 오가와 유키와 콘티를 작업한 카메이 칸타도 <시원찮은 그녀를 위한 육성 방법> 애니메이션의 연출과 감독을 맡은 경력이 있다. 감독은 카메이 칸타고, 유키와 콘티가 연출이지만. 이 영향으로 작중에 카스미가오카 우타하의 교복을 코스프레한 장면이 등장했다.



 이렇게 <미루 타이츠>는 타이츠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만약 타이츠에 무관심한 분이라면 어떨까요? 이제는 조금이라도 흥분했던 머리를 식혀 타이츠에 관한 얘기는 잠시 빼놓고 다시 얘기해보도록 합시다.

 <미루 타이츠>는 최근 시장에서 쉽게 보이는 여타 일상물과는 차별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속 분위기가 가볍지 않으며, 일상물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인물의 개성에 모든 걸 맡겨놓으면서 유별나며 시끌벅적한 전개상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실 주인공인 세 여고생의 개성도 되게 평범한 편이죠.

 하지만, <미루 타이츠>의 이러한 분위기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타이츠보다도 더욱! <미루 타이츠>의 분위기는 사람의 웅성거림과 발자국, 물건이 떨어지거나 옷이 스칠 때 같은 현실 감각을 부여하는 스산한 소리가 작품의 배경음을 지배하고 있어서 상당히 무거운 감각을 전해줍니다. 덕분에 그 장소에 있는 듯한 감각을 심어주며, 장소에서 풍겨오는 진득한 향기가 맡아지는 듯한 착각과 함께 마음의 안정감을 줍니다. 또한, OST가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쳐낸 듯이 느린 템포로 은은하게 울리며, 무거운 감각을 적절하게 순화해줍니다. 그러니 분위기를 차분하고 담백하게 되고, 마치 공원 정자에 가만히 앉아있는 편안한 인상을 심어주죠 .



▲작품이 풍기는 잔잔한 분위기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인물의 개성이 평범한 점도 좋습니다. 인물의 개성이 평범하기에 무분별한 모에 요소로 신경 거슬리는 인물이 없고,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심지어, 인물의 단순한 개성이 되게 재미있게 잘 표현되어서 작품을 즐기는데 문젯거리도 되지 않았습니다. 되려, 인물의 평범한 개성에도 각 인물의 소소한 차별점을 잘 담아내니까 작품만의 독특한 매력을 풍겨주었죠.




▲작중 인물 간의 대화 장면이다. 작은 행동에서조차 인물을 차별화하는 요소가 있어, 뚜렷한 개성이 없어도 인물 간의 시너지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게 해준다.



 <미루 타이츠>는 특유의 현실감각을 담아내면서 무게감을 주고 친근한 분위기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게 매력 포인트입니다. 또한, 각본가의 실력이 좋아서 인물의 개성도 되게 자연스럽고 유쾌하게 표현되어서 소소한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편안한 분위기를 준다고 해도, 노골적으로 타이츠를 집요하게 과시하는 앵글은 불편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명분 설명이 충분하고 전개가 매끄럽다고 할지라도, 너무 욕망에 충실하기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또한, 잔잔한 분위기와 느긋한 작품의 속도 덕분에 소소한 재미에도 지루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으니, 이 점도 유의하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노골적인 앵글은 어쩌면 불편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할지도 모른다. 필자는 전혀 이해 안 되지만!!!



 특정 취향이 노골적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타이츠와는 별개로 <미루 타이츠> 같은 애니메이션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범람하는 모에 애니메이션은 인물의 개성이 너무 뚜렷한 나머지 더욱 개성이 없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 자극적인 요소, 잘 팔리는 요소에 빠져서 작품의 다양성이고 뭐고 없는 현재 모에 애니메이션에서 차별화되어 작품 본연만의 매력을 추구하는 <미루 타이츠> 같은 작품이 계속 늘어났으면 합니다. 너무 극단적이지 않는다는 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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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블로그 링크: https://blog.naver.com/zkdlsk1/221566959764
 


 참고로, <미루 타이츠>는 2019년 5월 11일부터 온라인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니코니코동화, 일본 스트리밍 사이트인 D 애니 스토어와 비디오 마켓, 그리고 접근성이 좋은 유튜브 공식 채널에서 찾아볼 수 있죠. 현재 7화까지 방영되었는데, 인터넷에서 매주 토요일 22시에 무료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에 전편 다 리뷰 쓸 당시에는 전 화 공개되었는데, 지금은 최신 방영 화와 1화까지만 공개되고 있습니다. 다만, 니코니코동화는 국가 제한으로 감상할 수 없으니, 유튜브로 감상하기를 권장드립니다. 물론, 자막은 없습니다.

 어쨌든, 언제까지 공개할지는 잘 모르겠네요. 일단, 작품 길이도 4분밖에 안 되니, 체험한다는 기분으로 한 번 감상해보셨으면 좋겠네요.

 아, 참고로 유튜브로 직접 가셔야지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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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애게 여러분!

 이번 리뷰는 서론을 너무 막나가게 쓰는 바람에 본론을 비슷한 텐션으로 적어야 해서 굉장히 곤욕스러웠던 글이었습니다. 재미를 위해 썼지만, 막상 재미는 없고.... 그렇다고 다시 쓰기는 심심한 거 같아, 어쩔 수 없이 본론의 내용을 살짝 텐션으로 올리게 수정해봤습니다. 많이 후회했어요......

 재미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어주셧으면 좋겠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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