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png 유익유익 정복왕 광개토태왕의 위대한 야망.txt


고구려의 정복군주이자 한민족의 정복군주인 광개토태왕 (391~412년 재위) 


모든 한국인들이 그를 알지만 그의 큰 그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함. 


그가 꿈 꿨던 원대한 야망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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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토를 장수왕 대의 영토라고 다들 알고 있는데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이미 광개토태왕은 한창 전성기 시절에 충청지역까지 내려와 있었음. 




그런데 당시 광개토태왕의 능력으로 보거나 주변국의 정세로 보거나 


더 넓힐수 있었는데 왜 저기서 끝났을까?




가장 큰 원인은 그의 너무 빠른 요절(향년 39세)이 원인이겠지만 


좀더 세세하게 파보면 이것 또한 그의 큰 그림의 일부였다는 걸 알수 있다. 


일단 광개토태왕 이전의 고구려의 강역을 한번 살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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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이듯이 고구려는 고국원왕 시절에 선비족 전연에게 쳐맞고 


백제의 근초고왕에게 왕 모가지가 따이며 


멸망 직전까지 갔던 산골짜기 좆밥 국가에 불과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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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던 나라에서 소수림왕이라는 먼치킨 군주가 탄생하여 


망해가던 나라를 수습하여 단 5년만에 다시 정상화 시켜놓음. 


소수림왕이 했던 주요 정책 다들 기억남? 


불교 수용, 율령 반포, 태학 설립. 




불교 수용 = 내부 결속 강화 


율령 반포 = 지 멋대로 노는 귀족들 뚜들겨 팰 명분이 생김 (사회 안정) 


태학 설립 = 군대 양병




이 정책을 잘 물려받은 고국양왕의 내정으로 인해서 


이미 이 시기부터 고구려는 누군가를 패지 않으면 몸이 근질근질한 단계까지 와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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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18살에 불과했던 고담덕이 19대 고구려의 태왕으로 즉위함. 


나이는 어렸으나 담덕은 이미 어릴 때 부터 국제정세에 대해 눈을 뜨고 있었고 


고구려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진짜 하늘이 고구려를 위해 내려준 천재였음. 




담덕이 원했던 고구려의 이상향은 딱 하나. 


'고구려의 천하관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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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중국에는 만리장성 너머에 있는 국가와 민족을 죄다 오랑캐로 치부해버렸는데


담덕은 "응 좆까 우리 천하관에선 너네도 오랑캐임"을 시전하기로 결정했고 


더 나아가서 "저 짱깨 새끼들 언제 한번 줘패야겠다." 


라는 생각까지 갖고 있었음. 




그 천하관을 확립하기 시작한 출발점이 최초의 연호 '영락'을 사용한 것이였음. 


그리고 그 천하관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영토를 확보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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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는 (고)조선의 세계관을 공유하던 나라였음. 


그리고 거기서 갈라져나온 고구려 역시 똑같은 세계관을 공유함. 




고구려 역시 똑같이 환웅과 단군왕검을 그들의 시조로 여기고 있었으며 


동명성왕(고주몽)을 그들의 세계를 다시 열어낸 선지자로 섬기고 있었음. 




이렇듯 고구려는 고조선이 자리 잡았던 요령지방, 만주, 한반도 북부를 자신의 세계관으로 여기고 있었고 


이는 고구려가 어떤 지역을 정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으로 정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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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이 처음 내세운 큰 그림 


1. 과거 고조선의 영토 회복 + 백제 흡수 


고조선의 핵심 영토였던 요동 지역은 농사가 잘 되고 


철 매장량이 넘사벽인 그야말로 자원 몰빵 지역이였으며 


만주의 초원 지역을 확보하면 다량의 군마를 확보할 수가 있음 


(당시 군마는 현대의 땅크와 같은 자원)




그리고 백제 역시 고구려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같은 민족이였기 때문에 


이들 역시 흡수하기로 결정함. 


이렇게 고토를 회복한다 + 자원 많은 땅을 먹자라는 명분과 방향이 세워지자 마자 


광개토태왕은 바로 행동에 들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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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순위 땅으로 요동을 먹어야겠지만 요동에는 당시 짱깨들을 뚜뜰겨패고 댕기던 선비족이 부활해 후연을 세웠고


만주지역엔 거란족이 비려(패려)국을 세워서 고구려인들을 약탈하고 있었음. 


남쪽으로는 여전히 백제가 강력하게 고구려를 견제하고 있었음. 


일단 고구려인을 납치해가고 마을을 약탈한 비려국부터 손봐주기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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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려국을 박살내어 속국화 시키고 잡힌 포로들과 군마 수만필, 쌀을 확보하고 


만주 벌판에 국경선을 확정짓고 귀환함. 


그리고 그대로 말머리를 돌려 백제로 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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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동안 근성으로 백제를 뚜들겨 패서 백제를 속국으로 만들어버림. 


왜 곧바로 병합하지 않았냐면


당시 백제는 전남 지역의 마한 속국들과 귀족세력을 끝까지 병합하지 못해서 


여전히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태였거든. 


이렇게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지역을 곧바로 병합해버리기엔 


고구려가 상대해야 할 적은 아직 많았음. 


어쨋든 백제를 쌀 셔틀로 만든 광개토태왕은 


군대를 정비한 후 또 다시 말 머리를 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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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바로 요동. 


거란이 군마를 공급해주고 


백제는 쌀과 군수물자를 공급해주니 


보급도 안정적인데다가 


거기다가 마침 후연은 황권 다툼으로 인해 내부 분열을 반복하고 있었던 지라 


이 시기를 놓칠 리가 없었던 광개토태왕은 


곧바로 요동 지역을 평정해서 곧바로 고구려의 영토로 병합시킴. 


요동지역을 확보한 고구려의 국력은 엄청나게 떡상하여 


이때부터 중원의 짱깨국들은 감히 고구려를 함부러 대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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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 지역을 안정화 시키고 난 후 광개토태왕은 요동 반대편의 지역에 눈길을 돌림. 


이 지역에는 숙신족이라는 부족이 살았는데 


광개토태왕릉비에 나오는 식신족을 데려와 묘지기로 썼다는 애들이 바로 얘네들임. 


얘네가 후에 물길, 말갈, 여진으로 불리는 녀석들인데 


성격이 굉장히 포악하고 과거 고구려보다 더한 약탈을 일삼던 놈들이라서 


광개토태왕은 여기를 한번 혼쭐 내줌. 


그런데 얘네를 복속시키고 보니 


얘네가 의외로 싸움을 존나 잘하는 전투기마민족이였음. 


광개토태왕은 그 이후로 정복전쟁을 할 때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우수한 전투자원들을 골라내서 최전선에서 싸우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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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9년차. 


몇년 전 광개토태왕에게 뼛속까지 털린 아신왕은 


고구려에게 복수 할 생각으로 군대를 일으켰으나 실패함. 


이 과정에서 신라의 견제가 있었고 


빡친 백제는 왜, 가야와 연합 전선을 펼쳐 신라를 팰 생각을 함. 


이에 좆됐다 싶은 신라에서 구원요청을 하고 


광개토태왕은 ㅇㅋ 하고 


5만의 군대를 파병시켜서 백제,가야,왜 연합군을 싹다 쓸어버림. 


그리고 신라는 마립간이 직접 고구려까지 와서 


조공을 바칠 정도로 내정간섭을 받는 속국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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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호시탐탐 부활하여 고구려를 팰 궁리를 하는 후연과 


언제 한번 끝장을 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후연이 과거에 고구려가 신라를 구원하던 도중 


사신의 무례함을 핑계로 


신성과 남소성을 점령하고 꺼들먹거린 전적을 명분 삼아서 


후연과의 대대적인 전쟁을 시작함. 


8년 동안 치고 박고 싸웠으나 


결국 후연은 북위와 고구려의 양면전선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구려의 결정타를 먹어 멸망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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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산골짜기 국가에서 출발한 고구려는 


후연을 멸망시켰고 


백제, 신라, 가야를 식민지로 만들었으며


요동, 만주, 동북지역, 한강일대를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시킴. 


가끔씩 가야, 백제, 왜군이 연합해서 고구려에게 반항했으나 


광개토태왕은 이를 언제나 밟아버렸고 


물길지역 놈들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약탈을 감행했으나 


언제나 가서 물리 치료로 조용히 시켜버림. 


광개토태왕은 이러한 모습들을 보며 한가지 생각을 하게 됨. 


"이 새끼들을 아예 고구려의 천하관으로 들이면 반항을 멈추지 않을까?" 


그래서 광개토태왕은 제 2의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함 


"굳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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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광개토태왕은 고구려의 천하관을 한반도 전체로 확대하고 


연해주지역과 흑룡강일대까지 확대하여 거대한 세계관을 형성하기로 결정함. 


그 일환의 첫번째 작업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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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기는 일이였음. 


다들 평양성으로 천도한 업적은 장수왕의 업적으로 다들 알고 있지만 


이걸 먼저 시작하고 구상하고 건설을 시작한 사람은 바로 광개토태왕이였음. 


일찍 승하해버려서 장수왕이 그걸 물려받은 것에 더 가까움. 




평양성 천도의 목적은 


1. 자신이 꿈꾸던 고구려 천하관의 중심부 


2. 짱깨들과 교역하기 좋으면서도 많은 인구수를 포용할 수 있는 평야 지대 


3. 백제와 신라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리 


4. 과거 고조선의 수도이자 이에 대한 계승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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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작업으로는 바로 삼한일통 사상이였음. 


고대에는 삼한이라 하면 


남부지방의 마한, 변한, 진한을 이야기했으나 


광개토태왕 시기를 기점으로 삼한을 고구려, 백제, 신라로 보게 됨. 




즉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를 보며 한민족이라는 일종의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게 후대의 통일 전쟁에서 프로파간다로 확장된게 신라의 삼한일통이였음. 


광개토태왕을 기점으로 삼한일통 사상이 퍼져나가며 


백제와 신라, 가야를 서서히 자신의 천하관으로 들이려고 함. 




그와 반대로 짱깨, 선비족, 말갈은 철저히 이민족, 오랑캐로 구분했고 


이들의 대우는 2등 국민 or 묘지기에 불과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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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랜 정복활동으로 인해 


역사속의 많은 정복군주들이 그러했듯이 


그 역시 39세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요절해버림. 


아마 광개토태왕이 20년만 더 살았다면 


삼한일통 아래에 한민족의 통일은 


신라가 아닌 고구려의 손에 이뤄졌을 거임.


거기다가 광개토태왕은 지속적으로 선비족과 돌궐을 이용한 


이이제이 전략으로 짱깨를 견제하고 있었고


이러한 힘의 균형을 계속 유지하여 오랜 기간 동안 


지역강국으로 계속해서 자리 잡았을 꺼임.




우리에게도 저런 자랑스러운 정복군주가 있었다는 거에 


자랑스러워 해보는 건 어떨까?


디시의 분탕 조선족들이나 짱깨 댓글 알바들이 


자꾸 고구려는 중국의 일부라고 우겨대는데 


고구려는 짱깨들을 묘지기 셔틀 or 노비 그 이상으로 보지 않았음 ㅇㅇ 


그럼 이만






3줄 요약 


1. 광개토태왕은 단순한 정복군주 정도가 아닌  한 민족의 민족의식을 결정지은 세계관을 확립한 군주 


2. 교과서에 나오는 광개토태왕의 업적은 굉장히 축소되어 있음. 


3. 짱깨들은 고구려 천하관에서 묘지기 셔틀에 불과했음. 






원문 출처
https://gall.dcinside.com/m/singlebungle1472/357134 - "유익유익 정복왕 광개토태왕의 위대한 야망.t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