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 이유.


조선사 관련 인물들 중 가장 세탁 및 포장을 잘 받은 두 명 중 한 명.
실상은 정도전이 구상하고 태종이 확립하고 세종이 보완하던 조선의 시스템 그 자체를
지 야심 하나로 엿바꿔먹은 찬탈자.


세종이라는 위대한 아버지 씨에서 나왔다고는 생각하기 힘든 개새끼 OF 개새끼인데
특이하게도 수양새끼에 대한 평가 중 상당수는
'집권 과정에 흠결이 있지만 그래도 업적이 훌륭한 왕' 정도의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아니면 '업적은 훌륭하지만 집권 과정이 더러운 왕' 이거나.
과연 그럴까?


집현전 폐지 : 검토에 검토를 거듭하여 가능한 정돈된 정책을 시행하던 조선 초기 통치력의 완성도가 하락하고 일시적으로 왕권이 비대해짐. 왜 왕권을 그렇게 비대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는가? 집권 과정이 구리니까.


훈구파 대두 : 계유정난의 논공행상으로 인해 대토지를 보유한 측근들이 대거 양성되었다. 지금 압구정동이 누구 땅이었나? 수양새끼의 책사 노릇을 하던 한명회 땅이다.


직전법 시행 : 공신들에게 공신전 지급하느라 전국의 과전, 즉 나라 소유 공전이 격감.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직 관리에게만 과전을 지급함. 이게 뭐가 나쁘냐면, 이때부터 관리들이 사적으로 대토지를 보유하는 현상이 매우 가속화되고 국가가 이를 통제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림파 형성 : 대토지를 소유한 측근 신하들 견제하겠답시고 지방에서 공부하던 애들 엄청나게 불러들임. 이게 좋게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과거제를 통해 인재를 선발한다는 조선 초기 인재 등용의 대원칙을 무너뜨린 사건이고, 나아가 붕당 정치, 세도 정치로 이어지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보법 시행 : 국방체제 자체를 밀어버린 희대의 개뻘짓. 당시 조선의 군사체제는 중산층 3호가 군사 1정을 지원하고 가난한 집은 5호가 1정을 지원하는 식으로 유연하게 운영되고 있었음. 근데 이 개멍청한놈이 무조건 2호 1정으로 일률화시켜버림. 가난한집이건 좀 사는 집이건 얄짤없이 군사를 똑같이 부담해야하니 양민층이 이를 버티지 못하고 신분을 이탈하기 시작하고 이게 해결이 안됨. 뭐 수양새끼가 찬탈해먹던 시절에야 전쟁이 없었으니 상관없는데 이 폐해가 가장 크게 터진 게 뭐다? 임진왜란.


등등. 이래도 수양새끼가 명군? 업적?


수양새끼가 재위기간 내내 골몰한 것은 그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하고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뿐.
나는 이 새끼만 보면 북한의 뒈진 뽀그리우스나 루마니아의 챠우셰스쿠가 떠오르는데
명군으로 평가받는 이유에 대해서 알고나 싶다.
나라를 무난하게 경영했다? 단종이 살아있었어도 수양새끼 정도는 했을 거다.


대체 수양새끼의 대단한 '업적'이 대체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