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가로채기, 보모 노릇 강요에 폭언...학교 당국, 정부는 '봐주기'

참담하다. 오랫동안 억울함을 참다가 지금에야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피해 학생들의 피눈물이 스며 있다."

최근 전북대학교 컴퓨터공학부 교수들이 비리를 저지른 동료 교수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내용의 공동 성명서에서 한 말이다. ‘공정성’이 사회적 화두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학 연구실 내에선 갈수록 연구 비리가 횡행하는 현실에서 대학 당국이나 정부가 징계·연구비 관리 강화 등 대책 마련에 소홀한 채 봐주기로 일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젊은 연구자들인 학생들의 피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폭언·인건비 가로채기 등 부패 만연

지난 4월 연구 비리 혐의로 기소된 전북대 컴퓨터공학과 이 모 교수의 사례는 대학 내에서 횡행하는 부패 행위의 ‘종합세트’로 손꼽힌다. 이 교수는 오빠와 동생까지 합세해 학생들의 논문에 자신들의 이름을 올리는가 하면 다양한 인권 침해 및 연구비 횡령 등 비리를 저질렀다. 이 교수는 몽골 출신 박사과정 A씨에게 1년 6개월간 자녀의 주 3회 통원 치료를 시키는가 하면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양말을 집어던지는 등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A씨의 이름으로 통장을 개설해 인건비 2400여만원을 편취하는 한편 석사 논문 심사 학생들에게 식사비 등 28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그러나 학교 측은 공무원 징계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 등으로 소극적이었고, 결국 동료교수들은 성명을 내 "비위 의혹이 세상에 나온 지 1년이 넘은 지금에도 오히려 피해 학생들은 불안해하고 이들 교수는 버젓이 그 지위를 그대로 누리고 있는 이 현실 앞에서 우리는 밖으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며 "하루빨리 사건이 정의롭게 처리돼 피해 학생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지난해 7월 발표된 교육부의 연세대·고려대 종합 감사 결과에서도 연구비리, 특히 학생인건비 공동관리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일례로 연세대 교수 B씨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16개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석사과정에게 60만원, 박사과정에겐 80만원만 월 연구비로 지급하는 등 인건비 중 1억1875만4000원을 공동비용으로 유용했다.

◇연구 비리 더 늘었다.

연구실을 장악한 교수들의 비리는 갈수록 횡행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5년간 총 85건의 연구비 부정 사용이 적발됐다. 금액으로는 284억원에 달한다. 특히 2017·2018년 각 15건, 2019년 22건, 작년 9월 현재 16건 등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부정 사용 연구비 총액도 2017년 55억6300만원에서 2019년 94억5400만원, 작년 9월 현재 49억5600만원이었다.반면 환수 금액은 이 기간 17.2%(49억1600만원)에 그친다. 유형별로는 학생 인건비 공동관리가 63건으로 가장 많고 회의비 등 직접비 부적정 집행 8건, 연구장비 재료비 부당 집행 5건, 연구비 편취 5건, 유용 2건, 횡령 1건 등의 순서였다.

특히 연구 현장의 고질적인 문제로 첫손에 꼽히는 학생인건비 공동관리는 심각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점검 대상 59개 기관들 중 19개 기관이 학생의 인건비를 교수가 환수해 공동 관리·사용했다가 적발됐으며 금액은 23억원에 달한다. 가장 많은 기관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7억3700만원, 전북대 4억1900만원, 연세대 4억원 등의 순서였다.

이처럼 학생들을 ‘봉’으로 삼는 교수들의 행태는 학생연구원들이 연구실 내 최대 약자인 현실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강태경 전국대학원생노조 정책위원장은 "산학협력단이 인건비를 직접 집행하도록 제도를 바꿨지만 아직도 문제가 되는 곳들이 많다"며 "학생연구원들은 논문, 졸업, 취업 등으로 교수들과 얽혀 있기 때문에 비리가 있어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美에선 3배까지 사업비 환수

연구 비리에 대한 처벌이 약하고 관리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연구비리 적발 시 최대 5년간 연구 참여 제한, 연구비 환수 조치가 이뤄지지만 선진국의 강력한 처벌에 비하면 솜방망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연구자가 비위를 저지를 경우 최대 영구 참여 제한 조치를 취하고, 연구비 용도외 사용이 적발되면 사업비 환수는 물론, 허위 청구 금액의 최대 3배까지 민사적 책임을 지도록 한다.

이에 따라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처벌 및 관리 강화의 목소리가 잇따라 제기됐다. 그렇지만 정부는 연구자권익보호위원회의 결정을 빌미로 오히려 징계를 감경해주는 한편, 규정 자체도 완화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