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활자의 발명이 인류의 혁명으로까지 불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어릴때에는 그까짓 활자가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가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의문을 가진 것 또한 단순하게 활자화 된 교과서의 내용만을 주입받아 시험에 써먹기 위해, 한정된 시간과 교사당 배정된 학생 수가 많은 현실때문에 어쩔수 없이 재단된 교육방식 속에서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일 듯 하기도 합니다.


1. 성경 권력과 활자혁명과의 관계
성경이 처음 만들어지고 활자혁명이 이루어지기 이전까지 성경은 소유 자체가 권력이 되는 구조였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 자체를 옮겨적을 방법이 필사 뿐이었고, 필사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계층 또한 극도로 제한되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필사된 성경을 가지고 그 말(정보)을 대독하는 것 자체가 정보의 독점권을 가진 엄청난 권력이 됨을 의미했기 때문이죠.


2. 정보화 시대에 일어나는 역설적 상황
활자혁명을 넘어 정보화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으나 제가 보기엔 성경을 필사해서 권력을 독점하고 군림하던 시대와 근본적으로 다른점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귀찮아서, 정보가 너무 많아서 와 같은 이유로 오히려 정보의 독점권을 여전히 언론이라는 권력의 대리인들에게 위임을 한 상황이라 그런 것 같구요.



3. 세상은 생각만큼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그런점에서 정치를 혁명처럼 여기고 계시다가 실망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스킨만 변화하였을 뿐 그 근본적 형태는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 입니다.

대신 매일 집안의 바닥을 청소하고 걸레질하듯 도를 넘어 욕심을 내고 부정을 저지르는 집단을 청소하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어떻게 보면 도를 넘어 대놓고 사익과 집단이익을 위해 불법을 저지른 이들이 져야 할 당연한 책임을 지지 않고, 그들을 오히려 감싸고 때로는 언론의 정보독과점권에 자의반 타의반 속아넘어가서 집안(나라)이 너무 더러워진 채로 오래 살다보니 이정도 더러운 것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는 착각이 든 상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네 방 너무 더럽다' 는 이들이 아니꼬운 것이죠.
항상 이렇게 살아왔는데?

물론 사회에는 어느정도의 '유도리'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적정선을 넘어선 것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이 문제인 것이겠죠.

개인적으로 솔직히 문재인 대통령 정도의 젠틀한 '청소' 방법에 극도로 반발하는 것 자체가 이재명씨를 후보로 만든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적당히 해먹고 이제 청소를 좀 하자고 동의했으면 그래도 이정도 반작용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정보화시대에 와서도 여전히 속고 사는 이들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