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말기에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 노동자, 군인 및 군무원으로 징용, 동원되는 사례가 증가했다. 나가사키시와 주변 지역에 (조선인) 약 3만5,000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시 상공에서 폭발한 원자폭탄은 약 7만4,000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갔다. 수천 명에서 1만 명으로 추정되는 우리 동포도 목숨을 잃었다.” 일본 나가사키에 이런 문구가 새겨진 ‘한국인 원자폭탄 희생자 위령비’가 다음달 6일 세워진다. 재일동포 한국인이 중심이 돼 건립을 추진한 지 30년 만의 일이다. 나가사키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건립위원회와 주후쿠오카대한민국총영사관은 11월 6일 나가사키시 평화공원에서 위령비 제막식이 열린다고 20일 밝혔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시에 원자폭탄이 투하돼 약 7만4,000명이 사망했는데, 당시 일제에 의해 공업지역인 나가사키에 강제 동원됐던 수천~1만 명으로 추산되는 한반도 출신 노동자들도 숨졌다. 히로시마시에는 1970년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현지 평화기념공원에 건립됐으나, 나가사키에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가 없었다. 1990년대부터 건립이 추진됐으나, 방식을 둘러싼 재일동포 사회 내 견해 차와 부지 확보 문제로 진전을 이루지 못하다 2011~2012년 한국원폭피해자협회와 후쿠오카총영사관이 나가사키시에 평화공원 내 건립 장소 제공을 요청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2013년에는 민단 나가사키본부와 후쿠오카총영사관, 한국후쿠오카청년회의소 등으로 구성된 건립위원회가 발족했다. 그러나 나가사키시 측이 한국인 원폭 희생자가 발생한 역사적 배경인 강제징용 관련 비문 내용과 위령비 디자인 등에 문제를 제기하며 건립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우익 성향 단체가 위령비 건립 반대 목소리를 높인 데다 2015년 ‘메이지(明治) 일본 산업혁명 유산’(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록 과정에서 강제노동과 관련한 한일 외교 갈등이 불거진 것도 원인으로 보인다.
















위령비 건립위는 끈질기게 시 당국과 의회를 대상으로 설득 작업을 전개해 올해 3월 부지 제공 승인이 났고, 지난달에는 비문 문구 등에 대한 세부 협의도 끝났다. 비문 내용과 관련해선 시 당국이 반대한 ‘강제징용’이라는 표현 대신 ‘본인의 의사에 반해’라는 표현을 넣는 것으로 절충했다. ‘본인의 의사에 반해’라는 표현은 2015년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대사가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됐다”고 밝힌 것을 근거로 삼았다. 후쿠오카총영사관 측은 “재일동포와 한국 정부의 오랜 염원이었던 이번 나가사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건립을 통해, 태평양전쟁 당시 원폭 투하로 희생된 한국인 영령을 재일동포뿐 아니라 나가사키를 방문하는 한국인이 자유롭게 추도할 수 있게 됐다”며 “전쟁과 피폭의 역사를 후세에 전달할 수 있는 소중한 징표를 마련했다”고 의미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