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들어가기에 앞서

Who is 병식?
병식이란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짦은 만화
https://m.inven.co.kr/board/webzine/2097/1732836?iskin=webzine&my=opi

-본문

세상천지에 다시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우리 병식이의 도플갱어는 사실 각 249개국에 하나씩 존재하며 본인의 역마살때문에 세계각국을 돌아다니며 2~30대를 보내니 우연찮게도 각 지역에서 그나라의 병식이를 만나는 기이한 인연을 맺곤했다. '쓰리 아이덴티컬 스트레인저스'(Three Identical Strangers)' 라는 다큐를 보기를 권유하는 바, 이 다큐의 내용인 즉슨 세쌍둥이를 각기 다른 가정으로 입양을 보낸 후 성인이 되었을때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를 연구했던 미국 연구가들의 모럴해저드에 대한 폭로인데 도덕적 위선에 대한 내용이야 차치하고서라도 그 연구결과는 놀랍도록 쌍둥이의 유전적인 요소가 환경적인 요소를 뛰어넘는것을 시사하고있다. 즉, 249명의 병식이들은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도 똑같이 병신이었다는 소리다. 이에 내가 만난 4인의 병식이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저 한다.



1. 한국병식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블로그 내의 101개의 썰과 만화로 그의 파탄난 인성과  정신병적인 뇌구조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 자신한다.



2. 호주병식이 러식이



나는 브리즈번에서 막노동을 하며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일연명의 삶을 살고 있었는데 논외로 호주에서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막노동을 하며 그렇게 사회적으로 좋은 지위의 화이트칼라 일을 하지않아도 생활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 참 좋았다. 여튼 내가 벽돌을 나르는 건설현장에는 마더로씨아에서 온 빅터라는 근로자가 하나 있었는데 이새끼의 만행을 살펴보면 과히 러식의 칭호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기행을 펼치곤 했다.



가다의 아침출근은 무엇으로 시작하는가 하면 다같이 커피를 내려먹으며 오늘 할일을 팀리더에게 지시받고 간단한 안전교육과 안전장치를 받으며 착용확인을 하고 시작하는데 커피는 현장 한켠에 준비된 포트에서 컵에 인원수에 맞게 따라 한명이 준비하며 당번은 돌아가며 바뀌곤했다. 그리고 여느때와 같이 출근을 해서 당번이 따라온 커피를 마시며 팀리더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커피맛이 진하고 마실수록 힘이 나는 것이 맥심을 탔으면 물조절을 칭찬했겠지만 원두커피에 물조절이 있을리도 만무하고 어쨌든 파이팅 넘치게 하루 일과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벽돌을 나르는데 유독 우리팀원들만 일이 지치지도 않는지 콧노래를 부르며 기분좋게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개고 미장을 하는가하면 팀리더는 여느때와 다르게 지도 돕겠다며 나서서 벽돌을 지고 팀 사기를 높이는 것이었다.



다른 팀들은 늘 축 쳐져있고 우울하며 시킨일 이외에는 숨쉬는것도 아까워하는 우리팀이 갑자기 활력이 넘치고 나서서 일을하자 신기해 하며 무슨 좋은일 있냐며 물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미래는 암울하고 처지는 우울했으며 생활을 처절했으므로 콧노래가 나올래야 나올수가 없었을 뿐더러 그나마 우리팀중에서는 내가 제일 좋은 퀄리티의 삶을 살고 있었으므로 뜬금없이 활력넘치는 이 사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 결국 나대던 팀장이 쓰러지고 나서야 이 사태의 전말이 밝혀졌는데 우리 팀이 늘 생산성평가 꼴찌를 해서 인센티브 수당을 받아가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갖던 러식이 빅터 새끼가 우리가 먹던 커피에 고용량 카페인을 구해서 타먹였으니 고추장먹인 장닭마냥 팀원들이 전부 high 상태로 일을하다 뻗을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일로인해 빅터새끼는 팀장에게 죽빵을 맞았으며 빅터는 지 잘못도 모르고 맞서싸우다가 팀리더의 오른팔 에티오피아 흑형에게 반격을 맞았으며 쌍남자스럽게도 쌍코피를 흘리며 알아들을 수는 없으나 분명 러시아에서 아주 상스러울것으로 예상되는 욕몇마디와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는 저 미친새끼를 앞으로 보지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고용량의 카페인이 몸에서 빠져나감과 동시에 반동으로 오는 무기력함에 일찍 퇴근하고 집에서 골아떨어졌다.



3. 싱가폴 병식이 병싱이



인도네시아에서 근무할때 근무비자갱신을 위해 외국을 한번 나갔다 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는데 (아직도 왜 이래야 하는지는 그 커리큘럼을 이해하지 못하여 상세설명 불가) 대부분 인도네시아 거주 한인들은 가장 가까운 싱가폴을 당일치기로 다녀오곤했다. 더러는 당일치기, 더러는 주말껴서 1박2일이나 2박3일 싱가폴 여행을 하고 오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싱가폴에 하도 많이 가서 더이상 싱가폴에서는 즐길거리가 남아있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로 싱가폴은 땅덩이도 좁을 뿐만 아니라 즐길거리도 괸장히 적어 짠내투어를 보고 5박7일의 싱가폴여행을 간 명득이가 3일차되던 밤에 vpn까지 써가며 롤접속을 하는건 당연한 수순일 정도이다.



나 또한 싱가폴에서 할 수 있는것은 다 해서 갈때마다 무료하게 호텔에 누워있다가 오곤 했는데 그날따라 외롭기도 하고 맥주한병 끌려 마리나베이 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거리의 아무 노상펍이나 들어가서 맥주를 한버켓을 시킨 후 홀짝이며 마시고 있는데 옆에서 누가 나에게 중국말을 하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말을 거는 쪽을 쳐다보니 누가봐도 중국찐따에 싱가폴너드인 한놈이 나에게 열심히 중국어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데 인니든 어디든 해외나가서 중국말 받아줬다가 별로 좋았던 기억이 없는지라 아임 코리안 한마디 하고 시선을 피하며 못알아들은체 했더니 이새끼 갑자기 영어로 자기와 합석하자며 끈질기게 붙어댄다.



이 또한 역시 못알아 듣는척 캔트 스핔 잉그뤼시 하며 자리를 옮기려는데 이새끼 자존심이 상했는지 뭐라뭐라 씨부리며 지 자리로 돌아앉는데 분명 그 입에서 빵즈소리가 나오는것을 들은 나는 내 고국을 욕하는것은 참을 수 있지만 나를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평소의 신념을 붙들고 이 중국찐따에게 가서 왓디쥬쎼이를 외쳤다. 그러더니 이 빵즈는 유 스핔!!!!하며 더욱더 흥분을 했는데 그렇게 대충 각국의 언어로 험한말을 몇마디 주고 받고는 분이 풀리지 않는 것이 이새끼 중국말로 하는 욕은 내가 알아 듣는데 내가 하는 한국욕은 이새끼가 못알아 듣는 바람에 일방적으로 데미지를 받은 나는 이 짜장면을 한대 후려치고 싶었지만 어쨌는 외국에서 본국인과 다투어 좋은 결말을 본적이 없는 나는 결국 짜장면에게 술마시기 대결을 신청했다.



 하지만 서로 씩씩거리며 이를 가는 와중 잭다니엘 한병과 샷잔 두개가 내 앞에 놓였을때 아뿔사 피가 식으며 이성을 되 찾은  나는 꺠달았다. 내 주량은 맥주 한병이 최대치라는 것을.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고 공황장애가 올것만 같았다. 이 승부를 지켜보는 인원만 주위에 어림잡아 2~30. 이미 우리의 언쟁으로 나는 한국인, 저새끼는 짜장면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 상황. 이 순간 만큼은 내가 국가대표였지만 어쩌랴, 나는 발이없는 축구선수였으며 손이 없는 야구선수였는데. 허나 그때 소광이가 "술은 정신력이다. 간은 어찌됐든 뇌의 명령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하급 기관이다." 라는 명언이 머리에 스쳐지나갔으며 그와 동시에 입시때 배웠던 병자호란과 틈만나면 조선을 괴롭혔던 중국에 대한 증오가 끓어 오르면서 의욕이 불타 올랐고 당당하게 첫잔을 들이켰다.



오산이었다. 나는 냄비근성의 민족이었다. 술은 너무 썼으며 목은 타는것만 같았다. 애초에 나는 양주라는 것을 입에 잘 대보지도 않았는데 양키새끼들은 왜 멀쩡한 옥수수를 갖고 갖가지 지랄을 떨어 이딴 쓰레기를 만들어 내었는지, 왜 정신 반쯤 놓고 사는 카우보이 새끼들이 이 술을 마시는지, 왜 비싼 양주를 코카콜라에 섞어서 마셔야만 했는지 단번에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흔들리는 눈동자로 패배를 직감하며 짜장면을 쳐다보는데 이게 웬일인가. 짜장면의 눈동자 또한 천안문으로 진격하던 탱크의 바퀴처럼 진동하고 있었으니 그렇다. 이것은 올림픽이 아닌 패럴림픽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깨달은 나는 이 게임은 소화력이 아닌 기세다라는 것을 캐치하고 연거푸 두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주위 관객들에게 너스레를 떨어댔고, 짜장면은 물끄러미 빈잔을 쳐다보더니 정말 거짓말 같이 잭다니엘 한잔에 gg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짜장면이 일어나는 순간, 긴장이 풀린 내 입에서 구토가 튀어 나왔지만 어떠랴, 짜장면이 아뿔싸 하며 나에게 눈알을 희번덕 거려도 오늘은 조선이 진격했고 칸이 만리장성위에 숨었거늘. 그렇게 나는 국위선양을 하고 내가 먹다 남은 맥주 및 잭다니엘 -4잔을 주위사람들에게 돌리고는 영수증을 모두 짜장면에게 처리시키고 유유히 빠져나왔으니 이 짜장면을 일컫어 뭍 사람들은 싱가폴 병싱이라 칭송하여 마지않았다.



4. 인도네시아 병식이 인식이



자카르타에서의 내 생활은 정말로 지옥같은 나날의 연속이었는데, 궁금하지 않은가? 지옥에서 나쁜짓을 하는놈은 도대체 어디로 떨어질까. 쓰레기장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는 어디로 갈것이며 뉴욕 하수구에 살고있는 랩틸리언들이 똥을 싸고 내린물은 과연 어디로 흘러갈까. 그것이 모두 모인 자리가 아마 내 자카르타 생활을 더욱 깊은 지옥으로 이끌어준 내 전용 기사 아리프가 운전하는 자동차의 옆자리일 것이다.



우선 아리프 이 새끼는 정말로 답이 없는 인생을 살고있다. 월급은 한국돈 30만원남짓이며 그 와중에 부인은 셋에 자식만 여덟이 넘는데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당시 이새끼의 나이가 31였다는 것이다. 그와중 애인은 또 둘이 더 있었으니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5천명을 먹인 예수님이 하필이면 이슬람의 나라에 강림하셨다는것이 믿을수도 믿고싶지도 않았지만 늘 자신은 30만원으로 14명을 먹여살리는데 미스터는 너무 돈을 헤프게 쓴다며 충고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정말 스타벅스에서 커피한잔 사먹으면서도 아프리카 기아옆에서 치킨껍질 벗겨먹는 만수르라도 된냥 눈치를 보며 차를 타야하는 것이다.



 더욱 멋진것은 이 새끼의 운전스킬이었는데, 교통지옥으로 유명한 자카르타 내에서도 이새끼는 자신의 운전스킬을 루시퍼마냥 뽐냈으니 좌회전을 하고싶은데 옆에 오토바이가 서있으면 이 새끼는 크랙션도 창문을 내려서 비키라고 소리도 지르지 않는다. 엑셀을 슬쩍 밟아서 차 본네트로 오토바이를 툭툭 친다. 그러면 오토바이 운전자는 경악을 하며 항의를 하기 위해 보조석 옆으로 오는데 그때 바로 풀악셀을 밟아 출발을 해버리는 식으로 차선변경을 하곤한다. 비단 이 짓거리는 오토바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에게 까지 적용이 된다는 것이 킬링 포인트(말그대로 사망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가끔 이짓거리를 하다가 정말 사나운 항의자를 만나면 내가 앉아있는 보조석 창문을 슬쩍 내린다. 그리고 자기는 앞만 보고있다. 정말 총이 있다면 이새끼를 쏴죽이고 싶은 순간인 것이다. 그리고 마음약한 내가 그이를 달래며 사과를 하면 다시 유유히 출발을 하며 나에게 하이파이브를 치려난 이새끼는 마치 우리를 인도네시아 배드보이즈 정도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또한 이새끼는 저항의식이 꽤나 다분한데 특히 gps에 대한 불신과 저항의식이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이 새끼 말로는 만약 모든 운전자가 구글네비를 보며 운전을 하고 a길이 막혀있고 b길이 뚫려있다면 모두들 b길로 가지 않겠느냐. 그러면 나는 한발 앞서 다시 a길로 가겠다라는 식인데 몇번 그 짓거리를 하다가 미팅에 늦어 개 지랄을 떨고 자르네 마네 한 이후 부터는 삐진건지 반항을 하는건지 딱 구글지도가 시키는대로만 가는것이다.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 좌회전만 하면 미팅장소인것을 구글 네비가 2km앞에서 유턴하라고 하자 정말 2km를 직진해 달리는 도중에 차에서 뛰어 내린적도 있고 아침에 차를 대기시켜놓지 않고 지각을 하길래 왜 자꾸 지각을 하냐고 물어봤더니 데이터가 없어서 구글지도가 켜지지 않아 데이터를 충전하고 오느라 늦었다고 개 쌉소리를 하는데 지네집과 회사 기숙사가 불과 300m 거리인것을 뻔히 아는데도 개정색을 하며 구글지도를 들이미는 이새끼를 어쨌든 계속 기사로 부려하 한다는 것도 나에겐 큰 스트레스였다.



아리프와의 이별을 결심한 방점을 찍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새끼 내 자리에서 지 애인과 떡을 치는 것을 나에게 들켰다. 그것도 한낮에 내가 미팅간 사이에 내 자리에서 지 여친과 떡방아를 찍고 있었는데 그날 담당자의 졸도로 (회사에서 도깨비가 뛰어다니는 것을 목도했다고 하는데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앞에서 다른직원이 전화로 무당을 부르는 것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것 같았지만 이 나라는 발전가능성이 정말 0에 수렴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일찍 내려와 조수석 문을 열자 내가 본 광경은 지옥도에 가까웠으며 냉이 흘러 내가 앉는 자리에 흘러있는것을 보고는 그대로 택시를 타고 회사를 복귀했고 그동안 입었던 바지와 셔츠는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결국 아리프와 이별을 강력하게 주장하여 기사교체가 이루어지고 아리프는 본인의 해고소식을 듣자마자 회사차를 끌고 자기 고향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이새끼를 잡을때까지 나는 한국에서도 잘 안탔던 대중교통을 인도네시아에서 인니인들의 땀삭은내를 참아가며 이용해야했다. 그리고 두 달 후 내 아반자가 자카르타로 돌아왔을때는 마후라 3개 추가에 오디오 풀업, mcu 리미트 풀 오픈 및 붉은색 led와 이해못할 인도네시아 방언이 본네트 위에 랩핑되어 있는 진정한 인도네시아 선텐갸루급 양카로 ntr 당한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나는 그 이름을 입에 올리기도 싫어 인식이라 명명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