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발한다. 시대의 비겁함을 >
1. 개혁이 불편하십니까?
개혁을 안하면 공포가 지배합니다.
검찰개혁 안하니 정치검찰이 21세기에 왕을 꿈꾸게 됐습니다.
언론개혁을 안하니 언론은 조국을 불공정의 대명사로 프레임을 씌우고 세세한 정보가 부족한 대중은 그렇게 믿게 됐습니다.
대통령후보도 여론에 좇아 조국에 대해 사과를 반복했습니다. 대통령후보의 사과를 이용해 다시 ‘조국은 불공정하다’로 한번더 낙인 찍게 된 것입니다.
2. 조국은 정치판의 공공의 적이 아닙니다.
조국과 사과를 입에 올리는 것은 두 부류입니다. 한 쪽은 개혁을 거부하는 반개혁세력이고 다른 한 쪽은 반개혁세력의 위세에 눌려 겁을 먹는 쪽입니다.
2019년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청문회 진행 도중 자정 무렵, 정치검찰은 후보자 부인을 표창장 위조라며 서둘러 기소를 했습니다. 야당 법사위원장은 마치 검찰과 미리 짠 듯이 “기소되면 장관 후보를 사퇴하겠느냐?” “기소 여부가 1시간 내로 결정될 것 같다.”며 후보를 겨냥해 기소 직전까지 여러 차례 모욕을 주면서 후보 사퇴를 종용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이른바 ‘조국사태’는 ‘검찰의 난’이었고, 정치검찰 ‘윤석열의 난’이었습니다.
언론과 야당이 ‘조국사태’라 부풀리고 과장했지만 주요 혐의인 사모펀드 의혹은 대법원의 무죄 선고로 오히려 기소권 남용인 것입니다. 표창장만 남았으나 의전원 입학자료에 참고도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표창장 위조 혐의로 징역 4년이라는 희귀한 중형을 선고했는데, 수십억 원의 국가보조금을 횡령한 윤석열의 장모의 3년 형과 비교할 때, 도저히 ‘공정’한 형량이라 할 수 없을 겁니다. 그토록 ‘공정’을 주문하던 세력이 여기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3. 조국사태는 개인의 비극이 아닙니다.
개혁이 기득권 유지와 확장에 걸림돌이라고 여기는 세력들이 조국을 통해 겁을 주는 것입니다. 누구든 함부로 개혁을 하고자 하면 조국처럼 만신창이로 만들겠다고 본보기 삼은 것입니다.
그들은 검찰, 언론, 정치세력, 재벌, 법조 등 기득권 카르텔입니다.
검찰은 대장동에서 보듯이 언론, 정치, 재벌, 법조의 거대한 기득권 카르텔을 지켜주는 수문장입니다.
2019년 2월까지 방영된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부의 대물림과 학벌의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현대판 신분사회를 그린 드라마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교수, 의사, 변호사 등 지배 엘리트의 부도덕하고 끝없는 욕망을 보면서 좌절과 충격,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습니다.
이런 상대적 박탈감에 편승해 검찰이 만든 조국사태는 일반인과 조국을 쉽게 갈라놓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과 불공정에 기회가 줄어든 청년들의 공감을 얻기에 때맞춰 터진 적절한 사건이었습니다.
마치 전두환 정권이 3S (스크린, 스포츠, 섹스)의 우민정책으로 5.18 무력 유혈 진압을 감추고 독재를 가렸듯이, 검찰은 검찰독재를 감추고 조국사태를 수사 드라마로 엮었습니다. 실시간 수사내용을 언론에 흘리며 내내 중계 보도를 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4. 조국사건은 드레퓌스를 연상시킵니다.
유태인 장교 드레퓌스는 독일군의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악마의 섬으로 종신추방 됐습니다. 당시 유대인은 국제 사회로부터 ‘공공의 적’처럼 혐오의 대상이었기에 누구도 함부로 변호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는 글로 드레퓌스의 무고함을 발표합니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사채를 모아 파나마운하 건설을 맡은 ‘파나마회사’가 도산하는데, 프랑스 의회는 그 기업이 거액의 공적 자금을 횡령하도록 방조하고, 언론과 고위 공직자도 매수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사채를 빌려준 프랑스 중산층 50만 명이 파산해 사회는 불안정하고 붕괴 중인 사회의 부패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이방인으로서 프랑스 사회에서 주로 돈놀이 사업에 관여했던 유대인은 당시 증오의 대상이 되었는데, 마침 터진 드레퓌스 사건은 기득권의 특권과 반칙을 덮고 대중의 불만과 관심을 돌릴 수 있었던 표적이 되었습니다.
드레퓌스를 모함한 군대조직과 유대인을 증오했던 교회세력 모두 드레퓌스를 위험 인물로 여겼습니다.
이런 사회분위기에서 졸라의 업적은 불굴의 용기 그 자체였습니다.
대중의 잘못된 인식을 깨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던 것입니다. 누구나 음모를 따져 묻지도 않고 허리를 굽힐 때 무기도 없이 격분한 대중 앞에 나서서 감히 ‘아니오’ 라고 말한 사람이 졸라였습니다.
한 인간에 대한 터무니없는 경멸로 자신들의 부패를 감추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을 향해 졸라는 싸우고 지더라도 또 싸우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진작에 진범이 나타나 무고함이 밝혀졌어도 광풍처럼 왜곡된 여론 앞에 사법부도 제대로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결국 대통령이 드레퓌스를 특별사면 해서 종결시켰습니다.
5. 인간 존엄성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다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습니다.
한 인간에 대해 함부로 하면서 민주주의를 지킨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한 인간에 대해 함부로 하는 것을 방치하면서 국민을 지키겠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인권은 만인에 대한 인권이기 때문입니다.
조국과 그 가족에 가한 서슴없는 공포는 언급하지 않고 사과를 말합니다. 참 무섭습니다.
윤석열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 수사'라는 명분으로 스스로를 영웅화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가려져 있는 가혹한 수사와 기소권 남용, 무리한 공소장 변경 등 검찰이 저지른 인권침해에 대해 비판도 없고 침묵합니다.
기득권세력은 그들이 차지한 막대한 불로소득과 특권이익은 가리고 조국 자녀 입시를 불공정을 내세워 서민과 청년들의 불만을 돌리고 있습니다.
결국 조국은 개혁을 거부하는 세력이 시시 때때로 불러내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물러설 것이 아니라 불공정의 원인이 무엇인지 조국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 말해야 합니다.
6.<지정생존자> 시즌 2, 5편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대통령님의 문제는 누군가가 비열한 플레이를 당해도 전혀 반응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전면적인 공격을 받고 때로는 지더라도 싸우십시오, 희망을 가지고 싸우면 그것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참모가 대통령에게 한 충언이었습니다.
지도자가 옳고 그름에 대해 '예, 아니오'를 분명하게 가르마 타지 않고,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짚어주지 않고 애매하게 흐리면 국민이 희망을 갖지 못합니다. 그것으로 중도층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무기력한 국민이 의지를 거두고 지지를 거둘 것입니다.
7. 악을 구분하고 악을 다스릴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자신의 권력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삶을 지키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조국에 대한 사과는 인간 존엄을 짓밟는 것입니다.


민주당은 조국 전장관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걸 알았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