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문득,
밥에 넣어 먹는 서리태를 키워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두 알은 홈플XX에서 산 건데, 수확한지 1년 묵은 녀석이고.
다른 두 알은 작년에 고모가 가져다 주신 햇콩입니다.

건조 상태에서는 작지만, 일단 물에 넣어 불리면 지름이 거의 두 배로 불어나죠.
며칠 정도 젖은 키친 타월 위에 올려두자, 저렇게 싹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일년 묵은 녀석 중 하나가 가장 빨리 싹이 텄고,
햇콩 중에 두 녀석이 조금 늦게 고개를 쳐듭니다.

근데 나름 깨끗한 녀석으로 고른다고 골랐는데...
일년 묵은 녀석들은 떡잎에 상처가 심하네요.
그나마도 제일 마지막에 싹이 튼 녀석은 떡잎에 상처가 너무 심하고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콩나물처럼 누리끼리 한게 영 힘이 없습니다.
결국 한 녀석은 가망이 없다 싶어서 솎아 냈습니다.
혼자 비실거리면 상관 없는데, 병충해 같은 것이 생겨서 옮기면 곤란하니까요.



콩나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쑥쑥 자랍니다.
그런데... 너무 크게 자랍니다.
이건 좋은게 아니죠. 웃자라고 있는 거니까요.
저렇게 키만 멀뚱하게 크면 잎으로 가야할 영양이 죄다 줄기로 가게 되고
나중에 결국 자빠져 버리게 됩니다.

물론 지주대를 세워서 덩굴 형태로 키울 수도 있습니다.
만약 덩굴 형태로 키우게 된다면, 3미터까지도 자란다고 하네요.
하지만 역시 그건 좀 곤란합니다.

결국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본잎이 나온 서리태를 뽑아내어 삼단분리를 합니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요?
뜬금없어 보이긴 합니다만, 이건 나름 최신 농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단근, 적심, 삽목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과정을 시작한 거죠.

단근 - 뿌리를 자릅니다.
적심 - 순을 자릅니다.
삽목 - 꺾꽂이를 합니다.

즉, 뿌리와 순을 자른 다음 남은 중간 부분을 땅에 꽂아 키우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사진에 보이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서리태는 특이하게 떡잎에도 곁순이 있습니다.
생장점이 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처음 싹이 틀 때부터 곁순이 나 있습니다.

지금의 이 방법은, 첫순과 뿌리를 자르고
떡잎의 영양분을 이용해 곁순과 새로운 뿌리를 만들어 키우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키우게 되면, 처음부터 곁순 두 개가 뻗어 나와서 자라게 됩니다.
위로 키가 크는 걸 처음부터 억제하고
최대한 옆으로 자라도록 만드는 것이죠.



첫순과 뿌리를 잘라 삽목한 것이니, 새로 뿌리가 나올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뿌리가 없는 상태에서 발산 작용만 이루어지게 되면
식물은 그대로 시들어 버리게 됩니다.
위에 비닐을 씌워서 고무줄로 묶어준 것은,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고 습도를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다만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이건 무엇을 삽목하든 간에 마찬가지인데요.
따뜻하고 습한 환경은 곰팡이가 아주 좋아하죠.
막 삽목된 싹은 이와 같은 적대적인 환경에 매우 취약합니다.
이 상태로 그늘에 놔두게 되면, 곰팡이가 피어서 결국 삽목한 싹마저 썩게 됩니다.

그럼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면서도 곰팡이가 피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태양광을 쐬어 주면 됩니다.
물론 직광을 그대로 쐬게 되면 시들어 버리니까
간유리 등을 한번 거친 간접광을 쐬어 줘야 하겠죠.

이 상태로 습도와 온도, 그리고 간접광을 유지시키며 약 2주 정도 지나게 되면...




짜잔.
이렇게 곁순에서 잎이 피어나게 됩니다.
이 상태로 조금 더 싹을 키운 다음, 본격적으로 키울 장소에 옮겨 심으면 되는 거죠.

사실 서리태의 파종 시기는 6월경입니다.
보통 시골 같은 데서는 옥수수를 먼저 키워서 수확하고 난 다음
미리 키워둔 서리태 모종을 심는 방식으로 재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서리가 내릴 때까지 키워서 수확하는 거죠.
서리태라는 이름 자체가 서리가 내린 다음 수확하는 콩이라는 뜻입니다.

너무 일찍부터 키우게 되면, 앞서 말한대로 스스로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서 쓰러지거나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벌써부터 서리태를 키우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죠.
하지만 뭐 어떤가요. 어차피 전 농사를 지으려는 것도 아닌데. ㅋ
밥에 넣어 먹는 서리태 한 알을 종이컵에 담아 키워서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뿐입니다.
나름 꽤 저렴한 취미 아닌가요?

덧)


일전에 던져 놨던 돌나물입니다.


현재는 이렇게 순이 뿅뿅 나오고 있는 중이랍니다.



이건 파프리카입니다.
파프리카 먹고 남은 씨앗을 뿌려봤더니 아주 잘 자라네요.
겨울이라 햇빛이 부족한데도 웃자람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다른 것도 많지만, 그건 또 다음 기회에 소개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