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초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토(NATO)가 러시아 문 앞에서 짖어댄(barking)” 것이 크레믈린의 분노를 촉발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였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중요 원인 중 하나를 정확히 짚은 것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줄기차게 추동해 왔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을 믿고 나토 가입을 추진해 왔다. 나토는 미국이 창설하고 관리하는 군사동맹으로서 그 산하의 군대는 미국 군부가 지휘·통제한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고 그 영토에 미국의 군사기지가 들어서면 러시아는 유럽 진출에 방해를 받는 것은 물론 심각한 안보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 적의 비수가 코앞에 놓인 꼴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2월24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행동이 개시되자 미국과 서방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전장의 참혹함을 부각시키면서 전세계를 대상으로 러시아는 악이요, 우크라이나는 선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잔혹한 러시아군을 선량한 우크라이나군이 용감히 무찌르고 있으니 러시아는 곧 패퇴할 것이라는 기대 또한 함께 전파했다.

그러나 그 후 4개월이 지나는 동안 전황이 점점 뚜렷이 드러나면서 우크라이나의 패배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그동안 보도를 장식했던 러시아군의 잔혹성 중 많은 부분이 사실과 다르거나 부풀려지거나 조작된 것이라는 점도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군에 대항하여 싸우는 아조프 연대가 나치의 후예들로서 민간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한 피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미국은 이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으면서도 피와 살이 튀는 전장에서는 한 발 떨어져 있다. 결국 우크라이나가 미국을 대리하여 러시아와 싸우다가 패하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리에게 타산지석이다.

미국과 북한이 대결하고 있는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칼날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늘 위태로웠다. 북미 대결의 추이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불안과 희망이 교차되는 가운데 지금까지 살아 왔다.

북미 간의 대결과 대화 사이에서 우리에게 가장 현명한 선택은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는 것이다. 이런 기조를 잘 유지할 때 크고 작은 위기도 극복하고 남북 간의 정상회담과 각종 교류가 가능했다. 그 반대의 경우 심각한 대결 분위기에 봉착했다.

개성공단 운영과 4·27 판문점정상회담 등은 전자의 사례요, 개성공단 폐쇄와 연평도 포격은 후자의 사례다.

윤석열 대통령이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는 그의 후보 시절 '선제타격' 발언에서 일찌감치 점쳐졌고 대통령 당선 후 한미동맹 강화와 대북 강경 노선 등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화해 무드가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로 제동이 걸린 이후 북미 대결이 점점 격화되어 어느 때보다도 위태로운 이 시점에서 윤석열 정권의 행보는 위험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그가 젤렌스키처럼 미국의 힘을 믿고 북을 자극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뼈 아픈 전쟁의 역사가 있다.

미국을 믿고 '북진통일'을 외쳤던 이승만 대통령은 온 강토를 전화에 휩싸이게 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윤석열 정권이 그의 전철을 밟다가 자칫 한반도에 불행한 일이 벌어진다면 세계 언론은 윤석열을 일컬어 코리안 젤렌스키라 언급할 것이다.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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