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대학이 가장 의미하는 것이 큰 부분이 
'삶에 대한 진지한 생각'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라고 생각함.

개인적으로도 고등학교때까지 이문열씨의 삼국지를 몇번씩 읽고 조조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될 시기만 하여도 진짜 할머니가 말씀하시던 '빨갱이' 가 어떻게 대통령이???
라는 생각 한조각이 스쳐 지나가고 끝이었지만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진짜 '자유'라는 것이 책임과 함께 한다는 것을 학점으로 뼈저리게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고3때보다 더 도서관에 남아서 마음에 드는 전공과목에 꽂히기도 해보며
볕좋은 날 한가롭게 학교안 벤치에 앉아서 시, 수필, 잡생각들을 노트에 끄적이기도 하였음.

크리슈나무르티의 책을 읽고 도저히 이해가 가지않아 책장 한구석에 쳐박아 놓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 짝사랑에 힘든 어느날 문득 다시 꺼내어 본 같은 책의 한 구절이 가슴에 와닿기도 하였고
한참 후에 크리슈나무르티의 엽기적인 뒷모습을 알고 분개하기도 하고...

세상이 부모님과 학교 품안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다는 것을 조금씩 체험하던 시기였고, 앞으로 보여지는 세상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 극히 일부라는 것도 알기 시작한 것이 바로 20대 초반이었음.



인간의 삶이라는 것 자체가 길어야 백년이고, 그 시간에 본인의 본모습조차 알기 힘든 짧은 시간인데
생각보다 진지함이라는 그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이들이 너무나 많음

특히나 친구라는 것은 그러한 진지함이 필요한 시기를 함께 하는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는데, 대부분은 가까운 친구일수록 '경쾌함, 끊이지 않는 웃음, 소주잔' 이 없으면 문제가 있는듯 여기는 경향이 큼.

물론 그런 시간이 쓸모없다는 말은 아님. 진지함만으로 가득한 시간이란 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고립된 섬과 같은 무쓸모한 영역이 될 가능성이 높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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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이후로 대학가에 사라진 것은 쓸모없다고 여겨진 낭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삶에 절대적으로 소량은 필요한 '진지함'이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함.

타인의 삶, 국가의 역사, 본인의 감정, 꿈 이런것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란 것이 '쓸모없는 것' 이라 생각하기에, 혹은 세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적어지기를 바라는 이들에 의해 '진지함' 에 대한 편견이 강화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언제나 이른바 극우 사이트들이라 불리는 커뮤에서는 진지함이 거세되고 오히려 천박함을 넘어 자조적인 배설글들이 유머글로 소비되고

역사에 대한 진지함이 없으니 감정과 이익이 충족되기만 하면 만족하고.
세상 사는것이 힘든것에 대한 분노표출의 대상이 공급되기만 하면 만족하고.
권력이란 결과적으로 가진 것 그 자체가 승자라는 것이 당연한 듯 받아들이게 되고.

그러니 당연히 진지함이란 '신포도'처럼 위선적인 것처럼 여겨지게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