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두 번의 파양을 경험하셨고,

혼자서 10대에 아이를 낳아 키우셨다.



관리비를 내지 못해 수도와 전기가 끊긴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아이의 장난감만큼은 꼭 사주셨다.




그리고 화재가 발생했을 때,

어머니는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 구조되었고,

몸의 3분의 2가 화상을 입었다.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숨을 거두셨다.

시신에는 극심한 고통과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인한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고,

법의학자 교수님은 부검 중 눈물을 흘리셨다.



그 어머니는 미혼모였으며,

당시 주민등록은 말소된 상태였다.



사망신고는 6개월이 넘도록 이루어지지 못했고,

양아버지는 병문안을 왔지만 끝내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