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근데 우리집 주소는 어떻게 알았어?”

 

천폭은 씻고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오면서 소파에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던 피노에게 물었다. 하지만 피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자는군..”

 

피노는 천폭이 방금전까지 누워 있던 소파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천폭이 오래 씻기는 했지만, 그녀는 어느새인가 설거지와 청소를 해놓고서는 자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밤 샜다 그랬지.”

 

천폭은 물끄러미 피노를 바라보다가 방에 가서 이불을 가져 왔다. 코를 대서 냄새를 맡아 봤지만 다행히 아무 냄새 나지 않았다. 천폭은 이불을 덮어 주고는 옆에 잠시 앉아서 피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틱틱대서 몰랐는데.. 꽤 단정한 얼굴이네

 

천폭은 피노의 헝크러진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정리해 주었다. 조심스레 움직이던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얼굴에 살짝 닿았고, 그녀는 순간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자 몸을 움츠렸다.

 

..”

 

선머슴이라고만 생각 했는데 자는 모습은 귀여웠다.

 

그나저나 찌루 씨랑 만남은 다음으로 미뤄야 하는건가..”

 

 

곱등아. 괜찮아?”

응응. 멀쩡해

안 멀쩡해 보여..”

너야말로 얼굴에 손자국 났는데..?”

괜찮아..”

그래. 얼른 가자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하던 꽃비와 곱등. 꽃비는 연신 곱등의 얼굴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고, 곱등은 그런 그녀가 걱정하는게 싫었다.

 

다음에 또 괴롭히면 말 해

자기들도 쪽팔려서 이제 못 건드릴걸

그러면 좋겠지만 말이야

곱등아

?”

고마워

뭘 고마울 것까지야

멋있더라..”

 

꽃비의 조그만 목소리.

 

?”

..아냐..”

싱겁긴.. 분홍색보다는 노란색이나 연두색이 낫지 않아?”

?”

 

꽃비는 순간 잠시나마 곱등이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워졌다.

 

죽어!!”

!”

 

자신의 정강이를 있는 힘껏 때리고는 멀찍이 뛰어가는 꽃비.

 

미안. 꽃비.”

 

곱등이는 꽃비를 보며 계속 혼잣말만 되내였다.

 

 

 

남자가 유치원 원장님이라니. 신기하네요

그런가요?”

아무래도 여자분들이 많긴 하죠. 하하

 

핑궤와 찌루는 조금 늦은 점심 아니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있었다.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거에요?”

.. 뭐 개인적인 사정이 좀 있었어요

 

핑궤는 이제 겨우 28살이 된 남자였다. 하지만 유치원을 운영한지 벌써 3년이나 되었다고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핑궤의 전화기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며 전화가 왔다.

 

.. 잠시만요. 여보세요

 

핑궤는 전화를 받더니 자리를 잠시 비웠다. 28살의 유치원 원장님이라. 찌루는 그가 참 마음에 들었다.

 

. 어쩌죠? 제가 급하게 돌아가 봐야 할 듯 하네요

저는 괜찮아요. 여자친구분이 찾으시나봐요?”

여자친구요? 아뇨. 저 솔로에요 하하. 유치원에 일이 있다고 해서요

. 그렇군요. 들어 가보세요. 여기서 도서관이야 멀지 않으니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 못 마신 커피는 다음에 마셔요

 

핑궤는 계산을 하더니 쏜살같이 차에 시동을 걸고는 사라졌다. 찌루는 그가 여자친구가 없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왠지 좋은 일이 있을거 같았다.

 

 

으응..”

일어났어?”

여긴.. 어디.. .. 누구..”

 

피노는 잠에서 깨서는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가 다시 소파에 누워 버렸다. 아마 꿈이라고 생각했나보다.

 

피노

으음.. 천폭이네.. 꿈인가보네.. 좋다..”

뭐가 꿈이야?”

으쌰..”

 

피노는 자기 앞에 있는 천폭의 얼굴을 자신쪽으로 끌어 당겼다. 천폭은 순간 당황하였지만, 아직 잠에서 덜 깬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놔둬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피노는 천폭의 입술을 그대로 잡아 당겨 자신의 입술에 포갰다. 천폭은 너무 놀라 그녀를 밀쳐 내려 했지만 그녀가 금새 입술을 떼더니 자는 것을 보고는 차마 그녀에게 손을 댈 수 없었다.

 

으응.. 좋아..”

......”

 

천폭은 한참을 멍한 채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두근거리는 자신의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방으로 들어 갔다. 그가 방에 들어 가서 문을 닫는 소리가 나자 피노는 눈을 떴다.

 

....”

 

터질 것 같은 피노의 심장. 그녀는 단박에 깼지만 천폭의 얼굴이 보이자 용기를 내보려고 했던 것이었다.

 

이러면..안되는데..”

 

피노와 천폭. 둘의 심장은 거침 없이 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