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6일, 리그오브레전드에서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챔피언이 캄캄한 어둠만이 있는 심해로 떠나갔습니다. 100%에 육박하는 밴픽률과 상대를 압살하는 강력한 딜링, 전장 곳곳을 누비는 기동성까지. 그는 OP 챔피언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렸던 챔피언이었고, 불리한 상황을 자신의 힘으로 뒤집는 역전의 승부사였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2월 26일에 진행된 5.4 패치에서 그는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승률 40% 미만, 밴 창에서 사라진 그의 이름. 누구도 그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의 팀은 승리한다’는 말은 이제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렇게 화려한 과거를 뒤로 한 채, 그는 왕좌에서 내려왔습니다.

카사딘! 왠지 모르게 그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입니다. 그동안 카사딘은 밸런스 붕괴의 주범으로 지목돼 끊임없이 너프 공세에 시달렸고, 강력하다는 이유로 유저들의 숱한 비판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카사딘의 시간에도 아픔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OP 챔피언의 몰락으로 간단히 정리하기에는 카사딘의 지난 굴곡은 깊고 풍부합니다. 이번 롤챔프 탐구생활에서는 밝은 햇빛이 비치는 왕좌에 앉아 있었기에 잘 보이지 않았던, 진짜 카사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 OP의 화려함 속에 카사딘의 많은 이야기가 감춰져 있다



■ 인간과 인간이 아닌 무언가의 경계에 선 챔피언, 카사딘! 그가 리그오브레전드에 등장하다

카사딘은 본디 인간이었고, 학자였습니다. 리그오브레전드 세계관에는 ‘공허’라는 공간이 존재합니다. 그곳에는 코그모와 초가스와 같은 흉측하고 무시무시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습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인해 공허를 발견한 인간 대부분은 공허의 힘에 자아를 잃었습니다. 끊임없이 지식을 탐구했던 카사딘 역시 고대로부터 내려온 책을 통해 잊혀진 왕국 이케시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허를 마주하죠.

하지만 카사딘은 공허를 받아들여 추악한 욕망에 휩싸인 말자하와는 달랐습니다. 추악한 욕망을 정신 속에 집어 넣고자 하는 공허의 공격을 초인적인 힘으로 막아 냈습니다. 비록 기억과 신체 일부를 잃기는 했지만, 카사딘은 공허가 존재하는 미지의 공간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결코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외형과 공허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뿐. 그렇게 인간과 인간이 아닌 무언가의 경계에서 ‘공허의 방랑자’ 카사딘은 다시 태어났습니다.


▲ 인간과 인간의 아닌 것이 섞인 존재! 때문에 카사딘의 음성은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출처 : LeagueVoices)


공허의 습격을 막아내기 위해 공허의 힘을 사용하는 묘한 콘셉트. 라이엇 게임즈는 'AP 챔피언을 카운터 칠 수 있는 AP 챔피언'으로 카사딘을 설계합니다. 우선 적이 주는 마법 피해를 15% 감소시키는 패시브 스킬을 카사딘에게 부여합니다. 이 패시브 스킬을 통해 카사딘은 경기 시작부터 마법 저항 아이템을 착용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고, 약점이라 지적되는 라인전 단계에서도 AP 챔피언의 견제는 어느 정도 버틸 힘을 가지게 됩니다.

무의 구체(Q)와 힘의 파동(E) 역시 AP 챔피언들을 상대로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적에게 침묵을 거는 무의 구체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 마법을 감지해 사용할 수 있는 힘의 파동 역시 AP 챔피언에 맞서는 상황에 특화되어 있죠. 더 나아가 황천의 검(W)과 균열 이동(R)의 존재는 카사딘이 기존 AP 챔피언과는 구별되는 마검사(근접전을 펼치는 AP 챔피언) 이미지를 가지도록 만들어 줍니다. 특히, 이후 끊임없이 이야기될 균열 이동(R)의 기동성은 카사딘에게 ‘너프로도 막을 수 없는 챔피언’이라는 칭호를 안깁니다.


▲ AP 챔피언을 잡는 AP 챔피언으로 설계된 카사딘
(카사딘의 슬픈 과거가 서려 있는 '인간 시절의 카사딘' 스킨)


한국에 리그오브레전드가 상륙한 시점, 카사딘은 강력했습니다. 롤챔스의 전신인 2012 LoL 인비테이셜에서는 라이즈, 모르가나와 함께 주목받는 AP 챔피언으로 떠올랐고, 아직 주류 메타가 정립되지 않은 랭크 게임에서도 카사딘의 강력함을 말하는 유저들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AP 챔피언을 카운터 치는 챔피언답게 AP 챔피언을 상대로 상당히 강력한 모습을 보여줬고, 균열 이동 후 이어지는 무의 구체 - 힘의 파동 콤보는 유저들의 마음을 조금씩 흔들어놓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잘 플레이하지 않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우리 팀만의 색다른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라인 푸시력이 조금 약하지만 막강한 면모 또한 갖추고 있어 좋아한다. 카사딘은 로밍을 다니기 좋은 챔피언이라 마음에 든다.”
- 카사딘에 대한 ‘콘샐러드’ 이상정의 코멘트 (2012년 4월 13일) -


▲ 카사딘 장인으로 알려졌던 ‘콘샐러드’ 이상정


그러던 중 Team OP의 미드 라이너 ‘콘샐러드’ 이상정이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합니다. 때는 2012년 4월 27일. Team OP와 프나틱이 롤챔스 8강 조별리그에서 맞붙게 됩니다. Team OP의 미드라이너 ‘콘샐러드’ 이상정은 메자이의 영혼약탈자 20스택 카사딘을 선보였고, 단 한 번의 콤보로 상대 모르가나를 삭제시키는 놀라운 플레이를 펼칩니다. 이 사건은 국내 유저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고, 해외에 비해 다소 미지근했던 카사딘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됩니다.

결국, 카사딘은 2012 롤챔스 스프링에서 총 18번의 밴을 당하며, 당시 최고의 OP 챔피언이라 불리던 쉔과 케넨에 이어 밴 횟수 3위에 오릅니다. 특히, 밴픽률 50%에 승률 61.5%를 기록. ‘힘의 균형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그의 대사에 맞게, 라이엇 게임즈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을 정도의 균형감 있는 성적을 냈고 이는 카사딘의 밝은 내일을 예상하는 근거로 작용합니다.


▲ 부악~! 어느새 사라져버린 모르가나
(출처 : 온게임넷)



■ 카사딘이 처음부터 대세는 아니었다?! 화려함 속에 감춰진 카사딘의 고난기

카사딘의 이러한 활약은 균열 이동이라는 핵심 스킬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균열 이동은 엄청난 거리를 순간 이동할 수 있게 해주며, 상대의 예측을 뛰어넘는 기동성을 카사딘에게 부여합니다. 물론 연속으로 사용할 경우 심각한 마나 압박에 시달린다는 문제점이 존재하지만, 다른 챔피언들이 300초마다 사용할 수 있는 점멸을 3~7초마다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이러한 문제점을 덮어버리기 충분합니다.

균열 이동을 이용한 치고 빠지기식 추격과 암살. 상대의 와드에 노출되지 않는 빠르고도 변칙적인 로밍 루트. 더 나아가 카사딘은 6레벨 이후 상대 정글러의 위협에 거의 면역이 될 정도의 높은 생존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무의 구체에 붙어 있는 침묵 효과 또한 이러한 균열 이동의 장점을 배가 되게 합니다.


▲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던 'Xpeke'의 카사딘 백도어


하지만 카사딘은 대세 챔피언이 아니었습니다. 2012 롤챔스 섬머에서는 단 한 번도 밴픽 창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2012-13 롤챔스 윈터에서는 단 2.6%의 밴픽률을 기록했고, 이어진 2013 롤챔스 스프링과 섬머에서도 각각 0%, 2.5%의 밴픽률을 기록하며 프로 선수들에게 철저히 외면받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해외/국내 솔로 랭크에서는 위협적인 모습을 자주 연출했지만, 리그오브레전드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프로리그에서는 ‘카사딘 = OP’ 공식은 여전히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2012 롤챔스 스프링 이후 미드 챔피언에게 요구되는 덕목 중 하나가 CS를 만들어 먹는, 일명 더티 파밍이었습니다. 이는 미드-봇 혹은 탑-봇 스왑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강력한 라인 푸시가 중요하게 여겨지던 당시 주류 메타로 인해 발생한 결과였습니다. 스킬 구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더티 파밍과 라인 클리어 능력이 뛰어나지 못한 카사딘에게는 결코 긍정적인 흐름이 아니었습니다.


▲ 2012 섬머 시즌 이후 미드 라인을 지배한 3대장
(오리아나, 카서스, 애니비아)


카사딘을 대처하는 전략도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카사딘의 핵심은 균열 이동을 통한 후반 캐리력. 카사딘을 상대하는 팀은 경기 초반 철저히 카사딘을 공략했고, 미드 – 봇 스왑을 통해 카사딘의 성장 자체를 억제하는 전략을 펼칩니다. ‘최고의 OP는 아이템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완벽하고 사기적인 스킬 구성을 지닌 카사딘이라도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아이템이 갖춰지지 않은 이상 그저 그런 챔피언에 불과할 뿐. 초반부터 시작되는 적의 견제 속에 카사딘은 고통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즌 3에 접어들어도 카사딘의 상황은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시즌 3 초반, 리그오브레전드를 지배하고 있던 챔피언들은 제이스, 제드, 카직스로 대표되는 AD 챔피언들. AP 챔피언을 상대로 특화되어 있는 카사딘에게 이러한 AD 챔피언들의 약진은 큰 시련이었습니다. 마법 대미지를 감소시켜주는 패시브 스킬은 이러한 AD 챔피언들을 상대로 아무 쓸모가 없어졌고, 6레벨 이전 라인전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 밴픽률 1.8%. 당시 카사딘에게 이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2012 롤챔스 섬머 ~ 2013 롤챔스 섬머까지의 통계)



■ 카사딘이라 쓰고, OP라 읽다! 라이엇, 카사딘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다!

하지만 리그오브레전드는 역동적인 게임입니다. 영원한 승리도 없지만, 영원한 고통도 없는 법이죠.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카사딘에게 한 줄기 빛이 내리쬐기 시작합니다. 우선 카운터라 할 수 있는 AD 챔피언들이 하나둘씩 너프를 당했습니다. 또한, 수정 플라스크를 시작 아이템으로 하는 새로운 카사딘 운영법이 등장합니다. 이 운영법은 취약한 초반 운영이라는 카사딘의 단점을 완벽히 보완했고, ‘왕의 귀환’을 완성할 수 있게 하는 토대를 마련해줍니다. AD 챔피언들의 연이은 너프와 새로운 운영법의 등장. 솔로 랭크에서 카사딘은 미쳐 날뛰기 시작합니다.

프로 경기에서도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것도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들이 자웅을 겨루는 롤드컵이었습니다. 때는 2013년 9월 30일. 시즌3 롤드컵 조별리그에서 삼성 오존과 프나틱이 만났습니다. 카사딘 백도어 플레이로 전 세계적 스타로 거듭난 적이 있는 프나틱의 미드 라이너 'Xpeke'는 다시금 카사딘을 꺼내 들었습니다. 상대는 세계 최고의 미드 라이너에 도전하고 있는 ‘다데’ 배어진. 하지만 'Xpeke'의 카사딘은 그야말로 경기를 지배했고, 팀에게 승리를 안겨다 줍니다. 무엇보다 경기 초반 엄청난 고통을 받았음에도, 어느새 경기를 폭발시킬 정도의 위력을 보여준 카사딘의 모습에 많은 유저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 'Xpeke'의 카사딘이 시즌3 롤드컵에서 보여준 활약은 많은 유저들을 흥분시켰다


이와 함께 카사딘을 억누르고 있던 주류 메타 역시 변화에 직면합니다. 더 이상 짜여진 5대 5 한타는 옛말이 되었습니다. 암살자 챔피언들이 미드 라인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고, 리 신과 같은 다재다능한 챔피언들이 정글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소규모 교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이를 통해 스노우 볼을 굴리는 것이 리그오브레전드의 승리 공식으로 정착된 것입니다. 따라서 균열 이동을 통한 빠른 교전 합류와 침묵과 둔화를 통한 변수 창출에 특화된 카사딘은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즌 3 말, 카사딘은 강함을 뛰어넘는 OP로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솔로 랭크에서는 90% 이상의 밴율을 기록했고, 레드 팀이 밴 카드 하나를 무조건 카사딘에 투자해야 할 정도로 카사딘은 대단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프로경기에서도 나타납니다. 2013-14 롤챔스 윈터에서 카사딘은 67.5%의 밴픽률을 기록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픽 횟수보다 월등히 많은 밴 횟수. 카사딘은 52번 밴픽창에 등장했고, 그 중 40번이 밴이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프로 경기에서는 라인 스왑과 같은 전략적 움직임을 통해 카사딘을 억제할 여지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라인 스왑이 용이하지 못한 조합이거나 AP 미드 챔피언을 가져가는 전략을 취할 경우 카사딘은 반드시 밴을 해야하는 0순위 후보였습니다. 픽보다 밴이 월등히 많은 상황은 카사딘의 가치와 위력은 이미 솔로 랭크를 넘어 프로 선수들 사이에서도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 픽보다 밴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카사딘의 상황은 큰 의미를 가진다!
(2013-14 롤챔스 윈터 통계)


리그오브레전드에서 버프는 멀고, 너프는 가까운 법. 그동안 카사딘 패치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던 라이엇 게임즈는 본격적으로 카사딘과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첫 번째 공세는 시즌 3 롤드컵 직후에 진행됐습니다. 2013년 10월 31일에 진행된 패치에서는 무의 구체와 균열 이동이 변화를 겪습니다. 두 스킬 모두 저레벨 단계에서는 약간의 상향이, 고레벨 단계에서는 하향이 진행됐습니다. 초반이 약하고 후반이 강한 챔피언이라는 균형 잡힌(?) 분석 끝에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하지만 카사딘은 밴율 90%대의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균열 이동을 통해 전장 곳곳을 누볐고, 침묵으로 시작하는 일방적인 딜교환은 상대에게 좌절감을 선사했습니다. 결국 라이엇 게임즈는 4.3 패치에서 노골적인 너프를 시도합니다. 무의 구체의 피해량과 침묵 지속 시간이 감소했고, 힘의 파동 역시 피해량이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라이엇 게임즈도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로 카사딘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 어쩌면 언젠가는, 누군가 카사딘을 플레이할 수 있게 될지 모른다?!
어느새 카사딘은 단순 너프로는 막을 수 없는 OP 챔피언이 되어 버렸다
(4.3 카사딘 패치 일부)


결국, 라이엇 게임즈는 4.4 패치에서 카사딘 리메이크를 진행합니다. 리메이크의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AP 챔피언을 제압하는 데 특화된, 뛰어난 기동성을 가진 암살자라는 콘셉트는 그대로 유지하되, 게임 초반만 무난하게 넘기는 순간 상대가 손을 쓸 수 없는 괴물이 되어 버리는 상황을 완화하는 것. 우선 균열 이동과 힘의 파동의 피해량이 감소했습니다. 특히 균열 이동은 중첩당 마나 소모가 100 증가하는 시스템에서 중첩당 마나 소모가 두 배로 증가하는 큰 변화를 겪습니다.

그리고 무의 구체의 침묵 효과가 삭제됩니다. 이는 균열 이동 이후 무의 구체, 힘의 파동으로 이어지는 카사딘 콤보의 핵심을 겨냥한 변화였습니다. 이로써 카사딘은 상대의 반격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고, 균열 이동을 통한 전투 진입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무의 구체를 사용하면 1.5초 동안 마법 피해를 흡수하는 보호막이 생성된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지만, 당시 대부분 유저들은 카사딘의 이러한 변화를 너프로 바라봤습니다. 결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랫동안 90% 이상을 유지하던 솔로 랭크에서의 카사딘 밴율이 수직 하락을 시작한 것이죠.


▲ 4.4 패치 이후 급격히 떨어진 카사딘의 밴율
(출처 : FOW.KR)


카사딘의 추락은 오랫동안 계속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4.4 패치가 프로 경기에도 적용된 2014년 03월 26일부터 2014 올스타전 개막 직전인 5월 7일까지. 카사딘은 롤 챔피언스, 롤 마스터즈 그리고 NLB에서 진행된 총 108경기 중 단 2경기(밴픽률 : 1.6%)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솔로 랭크와 프로 경기 모두에서 카사딘은 빠르게 잊혀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카사딘은 역시 카사딘이었습니다.

카사딘의 극단적인 추락이 안쓰러웠는지 라이엇 게임즈는 4.6 패치에서 카사딘에게 작은 버프를 해줍니다. 무의 구체와 황천의 검 피해량과 AP 계수를 증가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이 패치는 카사딘을 다시 OP 챔피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4.6 패치로 진행된 2014 올스타전에서 카사딘은 밴픽률 100%(밴 17번, 픽 1번)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둡니다. 당황한 라이엇 게임즈는 4.7 패치에서 무의 구체의 피해량과 AP 계수를 원래대로 돌리는 ‘롤백’을 진행합니다. 하지만 리워크 카사딘에 대한 유저들의 연구는 이미 진행될 대로 진행된 상황. 카사딘은 다시 OP 챔피언으로 밴창을 점령하기 시작합니다.


▲ 리메이크 후 더욱 잘 나가는 카사딘?
(2014 올스타전 챔피언 통계)



■ 라이엇 게임즈의 노골적인 너프 공세 속에 카사딘 드디어 무릎을 꿇다! 하지만 카사딘이기에...

2014 롤챔스 섬머에서의 밴픽률 98.8%., 밴 71회. 밴 횟수 2위 리 신과는 31회 차이. 카사딘은 그렇게 부활, 아니 솔로 랭크와 프로 게임 모두를 지배하는 진정한 OP 챔피언으로 거듭났습니다. 라이엇 게임즈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존의 위력을 낮추기 위해 진행된 리메이크가 오히려 카사딘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버렸고, 작은 버프가 만든 큰 여파를 수습하기 위한 재빠른 롤백이 진행되었지만 카사딘은 상승세는 계속됐습니다.

‘This guy. man(하! 카사딘 이놈)’


라이엇 게임즈는 4.12 패치 예고 글에서 카사딘의 상황을 위와 같이 정리합니다. 자신을 창조한 라이엇 게임즈마저 난감하게 만든 카사딘! 그는 이미 단순한 챔피언 차원을 넘어서는, 진정한 ‘갓사딘’의 영역에 들어선 것입니다.


▲ 라이엇 게임즈조차 카사딘에 항복 선언(?)을 하다?!
(4.12 패치 예고 카사딘 파트)


라이엇 게임즈는 공세의 수위를 높입니다. 4.12 패치에서 황천의 검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6초에서 9초로 증가했고, 힘의 파동의 둔화 시간이 1초로 감소하는 하향을 겪습니다. 4.14 패치에서는 균열 이동의 피해량/마나 소비 중첩 초기화 시간이 12초에서 20초로 증가합니다. 연이어 진행된 노골적인 너프에 카사딘의 입지는 조금씩 좁아집니다. 6레벨 이전의 라인전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서 후반 캐리력의 핵심인 균열 이동의 사용 역시 제한되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솔로 랭크에서 카사딘의 입지는 점차 좁아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2014 롤드컵을 기점으로 카사딘은 다시금 반전의 기회를 잡습니다. 특히, 삼성 화이트의 ‘루퍼’ 장형석과 나진 실드의 ‘세이브’ 백영진이 보여준 탑 카사딘 전략은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미드 라인과는 달리 초중반 부족한 딜이 큰 문제로 작용하지 않은 탑 라인으로 전향. 그리고 여전히 리그오브레전드 최강으로 평가받는 기동성. 그렇게 카사딘은 라인 스왑이라는 전략으로 라이엇 게임즈의 공세를 극복합니다.


▲ 라이엇 게임즈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2014 롤드컵 결승에 카사딘은 등장했고 승리했다!


이러한 흐름은 시즌 5에 접어 들어서도 이어집니다. 비록 솔로 랭크에서는 약해진 딜링과 후반 캐리력을 발휘하기까지의 힘든 성장 과정 등을 이유로 과거 90%에 육박하는 밴율은 보여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마스터, 챌린저와 같은 상위 랭크와 프로 경기에서 카사딘은 여전히 강력한 챔피언이었습니다.

탑 라인에 리산드라와 럼블로 대표되는 AP 챔피언들이 자주 등장하는 메타가 정착되면서, AP 챔피언의 카운터 격인 카사딘이 탑 라인을 담당하는 전략이 더욱 주목을 받았습니다. 상황에 따라 미드 라인과 탑 라인을 스왑할 수 있어, 밴픽 싸움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카사딘의 가치를 높이는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결국, 2015 롤챔스 코리아 스프링에서 카사딘은 92.4%의 밴픽률을 기록하게 됩니다.


▲ 잔나, 자르반 4세에 이어 밴픽률 3위의 성적을 기록한 카사딘
(2015 롤챔스 코리아 스피링 1라운드 통계)


너프와 부활. 그리고 다시 너프와 부활. 카사딘은 라이엇 게임즈조차 막지 못하는, 영원히 죽지 않을 챔피언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라이엇 게임즈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 버렸습니다. 2015년 2월 26일, 5.4 패치가 본 서버에 적용되었습니다. 라이엇 게임즈의 의지는 단호했습니다. ‘카사딘의 꿈과 희망과 정체성은 전부 단 하나의 스킬, 균열 이동으로 정의된다’라는 서문으로 시작되는 이 짧지만 강렬한 패치는 카사딘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립니다.

그동안 라이엇 게임즈는 수많은 패치를 진행했습니다. 마나 소모 시스템과 피해량이 수시로 하향되었고, 카사딘의 장점 중 하나였던 침묵 효과도 삭제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손대지 않았던 것이 있습니다. 카사딘을 카사딘답게 만들어 준 '균열 이동이 가진 기동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5.4 패치에서 이 불문율은 깨집니다. 균열 이동의 사거리, 700에서 450으로 감소. 카사딘은 추락합니다. 그동안 겪었던 그 어떤 추락보다 더 깊이.


▲ 카사딘, 너를 보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아!
(제작 : '나는요'님의 '카사딘, 너를 보내줄게.')


현재 솔로 랭크에서는 밴창에서 카사딘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승률은 38.41%, 모든 챔피언을 통틀어 최하위의 성적입니다. 그 유명한 우르곳마저도 카사딘보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 5.4 패치에 많은 유저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 했습니다. 프로 경기와 달리 솔로 랭크에서의 밴율은 그다지 높지 않았고, 승률도 48~49%에 머물렀기에 이번 너프가 너무 과하다는 의견들도 많았습니다. 어쩌면 최근 솔로 랭크에서의 카사딘은 무조건 밴해야 하는 공포의 OP 챔피언이 아닌 다른 챔피언들과 비등비등하게 경쟁하는 하나의 선량한(?) 챔피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카사딘의 그런 운명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OP 챔피언으로의 비상과 심해로의 추락만이 허락되는 챔피언. 이것이 카사딘이라는 챔피언이 설계될 시점부터 그에게 부여된 숙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5.4 패치 이후 라이엇 게임즈의 Meddler는 ‘카사딘을 버프 할 것’이라는 코멘트를 남기는 했지만, 전망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OP 챔피언이었기에 사랑과 비난을 동시에 받아야 했고, 라이엇 게임즈조차 당황시켰던 부활의 의지로 많은 유저들을 감동시켰던 진정한 방랑자, 카사딘. 그의 예전처럼 지금의 시련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는 리그오브레전드에서 영원히 ‘갓사딘’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 한 시대를 풍미한 카사딘이 떠나갔다. 하지만 방심하지 마라!
그는 영원한 OP이자 부활의 아이콘, 카사딘이다!
(제작 : '사상가'님의 '이렇게 한명의 챔피언이 우리의 곁을 또 떠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