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네팔렘 여러분! 지난 시간에 이어 디아블로 역사 추적 리포트 2부로 찾아뵙게 됐습니다. 1부에서는 디아블로 1편의 이야기를 개관하고, 2편의 내용을 암시했던 엔딩 내레이션을 짚어봤습니다. 또한 1편을 반복 플레이했을 때 발견할 수 있는 여러 고서들을 통해 악마들의 분쟁과 호라드림의 대악마 추격은 물론 3편에서 등장하게 되는 아즈모단, 벨리알에 대한 설정이 이미 존재했음을 확인했죠.

이번 시간에는 디아블로 2편의 이야기를 살펴볼 겁니다. 트리스트럼이라는 협소한 배경에 국한되어 있던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 확장되었는지, 2000년 당시로 돌아가 봅시다.




■ 디아블로 2편 上 : 대악마 추격을 통해 찾아가는 호라드림의 발자취

디아블로 2편의 이야기는 상당히 복잡하고 연계된 사건들이 많습니다. 일자식 서술로는 1편 이야기의 숨겨진 전말은 물론 플레이어가 루트 골레인과 쿠라스트에서 지나쳐버린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이번 리포트는 플레이어의 '스토리 정주행' 시점을 기반으로 전개되지만, 이따금씩 과거로 회귀하거나 다른 에피소드가 틈입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미리 일러드립니다.

자, 이제부터 디아블로 2편의 첫 장면인 로그 캠프로 가기 전에 디아블로2 오리지널의 오프닝 시네마틱을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상 하단의 자막 버튼을 누르면 한글 자막을 볼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네마틱 영상은 정신병동에 갇혀 있는 마리우스와, 그를 찾아온 남성과의 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프닝에선 마리우스의 회상 부분만을 보여주고 끝이 나지만, 그 다음에 정신병동에서 사건이 하나 더 벌어집니다. 이 부분은 2편 오리지널의 엔딩으로 사용됐죠.

영상 속 마리우스의 회상 장면에 등장하는 방랑자는 바로 디아블로 1편에서 이마에 영혼석을 박아넣었던 용사(전작의 플레이어)입니다. 처음에는 디아블로의 정수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의 영혼은 약해졌고, 디아블로에게 의식을 내주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 아직까지는 사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어둠의 방랑자

▲ 하지만 인간인 이상 영원한 투쟁이란 불가능했던 것 같다


용사 내면의 싸움에서 디아블로가 우위를 점할 때마다 지옥의 마물들이 성역으로 솟구쳐 올랐고, 이 때문에 '어둠의 방랑자가 지나간 길엔 재앙만이 남는다'라는 소문이 돌게 됐습니다. 마리우스가 목격하게 된 장면도 바로 용사가 디아블로에게 잠시 굴복했던 순간이었죠.

디아블로의 부름에 나타난 마물들은 마리우스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인간을 처치한 뒤에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속삭이는 듯한 음성으로 마리우스를 부르죠. 이때부터 마리우스는 어둠의 방랑자와 함께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행적을 쫓게 되는 것이 바로 디아블로 2편의 플레이어들입니다. 그 시작은 액트1인 로그 캠프에서부터 시작되고요.



◆ 액트1 : 전작의 주인공을 쫓아라!

디아블로 2편의 시간적 배경은 디아블로 1편 엔딩으로부터 불과 몇 주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입니다. 1편에서 디아블로를 처치하고 그의 영혼석을 이마에 박아넣은 용사는 본능적으로 동쪽을 향해 계속 움직였습니다. 아라녹 사막 너머에 있는 신비한 대지에서 자신을 구원할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면서 말이죠.

용사의 몸속에 스며든 디아블로의 정수는 이따금씩 그의 의식을 잠재우고 온갖 마물을 성역의 땅위로 기어오르게 했지만, 용사의 동방 여정을 막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추적자들을 막기 위해 곳곳에 악마들을 심어두기까지 합니다.




용사, 그러니까 '어둠의 방랑자'가 동부의 아라녹 사막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동부 관문입니다. 이곳은 칸두라스 동부 경계라고 할 수 있는 타모에 산맥을 관통하는 유일한 진입로였고, '보이지 않는 눈의 자매단'이 대를 이어 지켜온 수도원이 있는 곳이기도 했죠.

디아블로는 이곳에서 고뇌의 여제 '안다리엘'을 불러들여 동부 관문을 장악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디아블로 1편의 로그 '모레이나'가 안다리엘에 의해 타락하게 됩니다. 그 결과물이 유니크 몬스터인 '블러드 레이븐'입니다.


▲ 전작의 영웅 중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로그 모레이나


'보이지 않는 눈의 자매단'은 스코보스 제도에서 탈주한 아마존들이 칸두라스에 정착하면서 역사를 가지게 된 집단입니다. 대를 이어 타모에 산맥에서 무리 생활을 했고, 동부 관문을 둘러싼 수도원을 지켜왔습니다. 디아블로2 액트1의 NPC인 카샤와 아카라, 그리고 디아블로1의 로그 '모레이나'가 바로 이 자매단 소속입니다.

1편에서 디아블로와의 전투를 마친 모레이나는 정신적 피해를 크게 입은 채로 수도원에 돌아왔습니다. 당시 모레이나의 모습을 본 아카라가 "더 이상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라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정신적으로 약해진 탓인지 안다리엘이 수도원 공격을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타락하게 됐죠.




누구보다도 기량이 뛰어났던 로그가 하루아침에 악마로 돌변하면서 자매단은 빠르게 궤멸했습니다. 타락하지 않은 로그들은 안다리엘의 수하들에게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사망했고, 그나마 목숨을 부지한 자들은 수도원으로부터 멀리 피신해 야영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 야영지가 세워지고 난 뒤, 몇 주 후에 모험가(플레이어)가 도착하면서 디아블로 2편이 시작됩니다. 아라녹으로 이어지는 길목은 안다리엘에 의해 차단된 상태고, 야영지 바깥에서는 블러드 레이븐이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었습니다. 자매단 고위 사제 아카라와 정찰대장 카샤가 어떻게든 살림을 꾸리고는 있지만 바람 앞의 등불같은 신세였죠.


▲ 그야말로 야영지라서 허름한 모습이다


모험가는 로그 캠프 안에서 지금까지의 일들을 보고 듣게 되지만, 대부분의 인물들이 현재 상황을 총체적으로 알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무역상인 와리브는 "어둠의 방랑자가 몇 주 전에 이 길을 지나간 건 사실"이지만 악마가 활개치고 다닌다는 것은 확실하지 않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공식 번역은 '한 사람의 방랑자'로 되어 있지만 게임 내 NPC 음성은 "dark wanderer"로 재생됩니다.)

수도원의 비극을 직접 겪은 카샤와 아카라는 좀 더 구체적인 증언을 하지만 초점은 '안다리엘'에 맞춰져 있을 뿐, 어둠의 방랑자에 대한 소견은 가지고 있지 않죠. 본격적인 이야기는 액트1 세 번째 퀘스트를 통해 케인을 구출한 뒤부터 전개됩니다.


▲ 보스다운 위용을 자랑하는 안다리엘


모험가가 악의 동굴을 가뿐히 소탕하고 전작의 영웅 중 하나인 블러드 레이븐까지 쓰러뜨리는 것을 지켜본 아카라는, 사실 데커드 케인이 아직도 트리스트럼에 잡혀 있다는 중대한 사실을 실토합니다.

또한 트리스트럼까지 걸어가는 동안 케인이 죽을 가능성이 높으니, 스토니 필드에서 연결되는 지하 통로를 거쳐 다크 우드로 간 뒤, 그곳 어딘가에 있는 이니훠스 나무에서 스크롤을 획득하고 다시 스토니 필드로 돌아가 케른 스톤의 수수께끼를 풀라고 합니다. 물론 케른 스톤을 디아블로2 진보스 라카니슈와 그의 졸개들이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사전에 고지된 바가 없었죠.


▲ 초보 모험가들의 친구 라카니슈


어쨌든- 아카라가 제시한 위업을 모두 달성하면 드디어 전작의 배경인 트리스트럼에 입성할 수 있게 됩니다. 언데드가 된 그리스월드를 해치우고 데커드 케인을 구출하면, 그가 공식적으로 디아블로의 부활을 선포하며 어둠의 방랑자가 동쪽으로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줍니다.

이때부터 모험가의 임무는 로그 캠프의 구제가 아니라 '디아블로를 쫓아라'로 바뀌고, 이후 퀘스트의 뉘앙스도 추격전의 형태를 띠게 됩니다. 물론 퀘스트 지문에 '늦었다', '이미' 등의 글자가 자주 등장하는 탓에 아주 긴 여정을 하게 되지만요.


▲ 전작 NPC였던 그리스월드를 몬스터로 만나게 된다



◆ 액트2 : 호라드림과 탈 라샤의 무덤

액트2는 아라녹 사막지대를 배경으로 진행됩니다. 어둠의 방랑자는 모험가가 안다리엘과 다투는 동안 사막 어디엔가 숨겨져 있는 탈 라샤의 무덤을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아케인 생츄어리와 관련한 NPC들의 대사에서 '몇 달 전 어느 마술사가 호라이즌의 성소로 들어갔다.'라는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보면, 모험가는 액트1에서 동부 관문을 뚫기 위해 최소 한 달 이상을 소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마술사가 바로 디아블로 1편의 소서러인 '자즈레스'거든요.

저 이야기는 잠시 후에 다시 다루도록 하고, 먼저 액트2의 오프닝 영상을 봅시다. 영상에서는 여전히 어둠의 방랑자와 동행 중인 마리우스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때 방랑자가 인간의 모습을 한 채로 바알이 자신의 '형제'라고 말하는데요, 이 부분에서 아이단의 영혼은 디아블로에게 완전히 잠식되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 영상 출처 : 유튜버 1kangminyoung


영상에서 봤듯이 어둠의 방랑자가 탈 라샤의 무덤을 찾는 이유는 그 안에 파괴의 군주 '바알'이 호라드림에 의해 봉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디아블로 2편 시점으로부터 약 250년 전, 대천사 티리엘에 의해 호라드림이라는 비밀단체가 결성됐습니다. 강인한 마법사들로 구성된 호라드림은 지옥에서 쫓겨나 성역으로 숨어들어온 대악마 메피스토, 디아블로, 바알을 봉인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게 됩니다.

이들은 케지스탄의 도심에서 인간들 사이에 숨은 메피스토를 찾아내어 제압하는데 성공했고, 티리엘이 세계석 조각을 빚어 만든 푸른빛 영혼석에 메피스토의 정수를 봉인하기에 이릅니다.


▲ 왼쪽부터 메피스토, 디아블로, 바알의 영혼석


하지만 호라드림은 아직 잡히지 않은 디아블로와 바알을 계속해서 쫓아야 했기 때문에, 남아서 메피스토의 영혼석을 지켜줄 믿을만한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이때 호라드림의 수장이었던 탈 라샤가 지목한 것이 바로 자카룸 교단입니다. 당시 자카룸은 작은 교단에 불과했는데, 오히려 교세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탈 라샤의 신망을 얻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 디아블로2 액트3의 NPC '흐라틀리'의 대사에 따르면 바알과 메피스토는 아라녹 사막에서 함께 제압당했으나, 이후 설정집인 '케인의 기록'에서는 두 대악마가 따로 붙잡힌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후 호라드림은 쌍둥이 바다를 건너 아라녹의 사막에서 바알과 격전을 치렀습니다. 지층이 무너질 정도의 격렬한 전투 끝에 바알을 제압하는데 성공하지만, 바알의 정수를 봉인할 호박빛 영혼석이 깨지는 바람에 탈 라샤의 몸으로 소실된 영혼석 조각을 대체하는 끔찍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바로 졸툰 쿨레입니다.)

호라드림은 바알의 영혼석이 가슴에 박힌 탈 라샤를 고대 왕의 무덤 깊숙한 곳에 가둔 뒤, 마지막 대악마인 디아블로의 흔적을 쫓아 서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근 십 년에 걸친 추격 끝에 칸두라스에서 디아블로를 봉인하는데 성공합니다. 호라드림은 디아블로의 영혼석을 탈산데 강 근처의 동굴 미로 속에 숨기고, 그 위에 호라드림 사원을 지어 보호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사원 주변의 땅을 일구어 마을을 세웠는데, 이곳이 바로 트리스트럼입니다.


▲ 애초에 저주받은 땅이었던 거다


즉, 액트2의 내용은 수백 년 전 호라드림에게 마지막으로 봉인됐던 디아블로가 부활해서 나머지 두 대악마의 봉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첫 목적지가 바로 아라녹 사막 어딘가에 묻힌 탈 라샤의 무덤인 거죠.

모험가는 아라녹 사막의 여러 지역을 누비면서 호라드림이 바알의 봉인지로 가는 길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사용했던 '호라드릭 스태프'를 복원하게 됩니다. 이 스태프는 다른 차원으로 분리된 탈 라샤와 바알의 러브하우스를 불러오는 열쇠였습니다. 그러나 대악마인 디아블로는 이 열쇠가 없이도 납관실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물론 티리엘도 열쇠가 필요없었다


하지만 일곱 개나 되는 고대 무덤 중에서 정확히 어떤 것이 탈 라샤의 무덤인지는 알 수 없어 모든 무덤을 들쑤셨고, 그 결과 각 무덤에는 되살아난 시체와 마물들이 가득 차게 됐죠.

한편 모험가는 호라드릭 스태프 완성 후, 탈 라샤의 무덤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루트 골레인 궁전 지하의 아케인 생츄어리로 진입했습니다. 이곳은 호라드림에 의해 대악마 삼형제가 봉인되기 전에 활동하던 '호라존'이라는 마법사가 만들어낸 공간입니다.


▲ 이쯤 왔으면 길을 잘못 선택했음을 깨닫게 된다


2편 플레이 당시에는 그저 지나가는 NPC 수준이었지만, 사실 호라존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다만 지면 관계상 간략하게만 알아보겠습니다.

호라존은 비제레이 소속으로 마법단 전쟁의 주축이 되는 인물이었고, 그의 동생인 바르툭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학구적인 욕심에 소환술을 연구했던 그와 달리 바르툭은 악마의 힘에 심취했고, 전쟁터에선 그야말로 악마같은 광기를 보여줬습니다.

이에 호라존은 이대로 비제레이가 전쟁에서 이겨 패권을 잡을 경우, 바르툭이 큰 재앙을 몰고 올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전쟁의 말미에 자신의 손으로 동생을 죽이고 말죠. 이후엔 루트 골레인(당시 비제레이의 요새) 지하에 외부와 차단된 성소를 만들고 마법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그가 성소를 별도로 만든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소환했던 악마들이 온 곳, 즉 지옥의 존재들에게 발견될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


▲ 바르툭과 관련한 아이템이 2편에서 등장하며 1, 2편에선 유니크 몬스터로 나온다


시간이 흘러 대악마들이 지옥에서의 반란으로 성역으로 쫓겨나는 사건이 벌어졌고, 호라존은 이 과정을 자신이 만든 아케인 생츄어리에서 모두 지켜봤습니다. 탈 라샤가 일곱 개의 무덤 중 어디에 봉인되었는지도 말이죠.

다만, 아주 긴 시간이 흘러 디아블로 2편의 모험가가 아케인 생츄어리에 발을 디뎠을 때는 호라존이 죽고 난 뒤였습니다. 대신 1편의 소서러였던 자즈레스가 정신이상이 생긴 상태로 호라존의 연구물들을 탐닉하고 있었죠.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얼음 화살을 날려대는 자즈레스(소환사)를 쓰러뜨리고 '진짜 호라즌'의 일지를 읽게 된 모험가는 탈 라샤의 무덤 표식을 확인한 뒤 마기의 캐니언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 아케인 생츄어리의 소환사가 바로 디아블로 1편의 소서러다


무덤 진입에 앞서 데커드 케인은 한때 위대한 마법사였던 탈 라샤와의 결전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실제론 입장랙을 등에 업은 고통의 군주 두리엘이 모험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확실히 고통스럽긴 했죠. 어둠의 방랑자는 이미 탈 라샤의 무덤에서 바알을 풀어준 뒤, 쌍둥이 바다 너머의 쿠라스트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 공략법은 빠른 로딩 - 고통의 군주 두리엘

▲ 초보 때는 흔들리는 화면 속에서 누가 먼저 템을 줍나 경쟁이 치열했다


본래 탈 라샤의 육체가 묶여 있던 바위에는 대천사 티리엘이 제압된 채로 있었습니다. '디아블로를 막으려고 했지만 잘 안 됐다, 그들은 자카룸 교단의 심장부에서 메피스토를 풀어줄 생각이다.' 라며 모험가에게 그들을 쫓을 것을 주문합니다.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면 자신은 성역에 머무를 에너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변명하는데, 천사를 처음 만나본 모험가는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죠.


▲ 하는 일마다 전부 실패하는 탓에 티리엘 배후설이 떠돌기도 했다



◆ 액트3 : 필멸자는 악마를 이길 수 없다

비록 바알과 디아블로는 놓쳤지만, 아케인 생츄어리를 소탕하고 마기의 캐니언에서 두리엘을 처치했으므로 루트 골레인은 안전해졌습니다. 영주 제린은 이에 감사를 표하며 메쉬프를 통해 동쪽의 쿠라스트로 항해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줍니다.

액트3의 오프닝 영상을 보면, 탈 라샤의 무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마리우스의 회상 장면이 나옵니다. 플레이어가 앞으로 마주할 상황을 예고했던 지난 영상들과는 다르죠. 이유는 화자인 마리우스가 액트2 이후로는 어둠의 방랑자와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바알의 영혼석을 가지고 지옥행 포탈을 타라는 주문을 받았거든요.



※ 영상 출처 : 유튜버 1kangminyoung


액트3에서는 드디어 디아블로 1편부터 이어진 비극의 전말이 드러납니다. 표면적으로는 메피스토와 디아블로, 바알의 재회를 막기 위한 추격전이지만, 사실 대악마가 얼마나 압도적인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과정이기도 하죠. 우선 쿠라스트 이야기의 중심축인 자카룸 교단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이야기를 진행하겠습니다.

약 250년 전,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시안사이라는 섬에서 수행 중이던 '아카라트'라는 사내가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디아블로 3편의 설정에 따르면 '인간이 강력한 빛의 존재가 되어 질서를 바로 잡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이것을 전파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안사이를 떠나 케지스탄의 도시들을 순례하며 깨달음을 전파했습니다.


▲ 3편에서 추가되는 성전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순례가 끝나갈 때쯤에는 그를 따르는 제자와 추종자들의 수가 상당했지만, 아카라트는 교단을 세울 뜻이 없었으므로 충분히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메시지가 전달되었다며 케지스탄의 밀림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이후 아카라트는 세상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의 독실한 추종자들에 의해 '내면의 빛'을 따르는 사람이란 뜻으로 '자카룸'이라는 이름이 사용됐고 곧 교단의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그리고 앞서 액트2 이야기에서 살펴봤듯이, 호라드림이 케지스탄에서 메피스토의 정수를 봉인했을 때, 영혼석의 수호를 자카룸에 일임했죠. 메피스토의 영혼석을 전달받은 자카룸은 쿠라스트 지역의 밀림인 '트라빈컬'에 '빛의 사원'을 짓고, 그곳에 영혼석을 보관하기로 결정합니다. 이곳이 바로 디아블로 2편의 액트3에 등장하는 '증오의 사원'입니다.


▲ 이곳이 본래는 빛의 사원이었다


이후 호라드림에 의해 대악마 삼형제가 모두 봉인되자 성역에는 평화가 찾아왔고, 자카룸은 메피스토의 영혼석이 안치된 트라빈컬을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해나갔습니다. 케지스탄에서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자 교단의 지도자들은 자카룸 내 계급을 나누어 각기 다른 임무를 맡게 하고, 쿠에헤간이라는 교회 최고 권력자를 선출하기에 이릅니다.

아카라트의 가르침을 나누기 위해 모였던 자카룸이 케지스탄의 최상급 정치지배계급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날이 갈 수록 교단의 구조가 체계적으로 바뀌고 교권이 강력해지면서 자카룸의 포교 활동이 서쪽 대륙에까지 미치게 됩니다.


▲ 서쪽 대륙에 관한 세부 설정도 많으므로 다음 기회에 소개하겠다


그러나 서쪽 대륙에서의 포교는 쉽지 않았습니다. 자카룸의 이름으로 파견된 선교사들이 강도나 몬스터들을 만나 살해당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자카룸에서는 선교사들의 보호를 목적으로 성기사단을 육성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자 교단에서는 성기사들에게 악의 세력을 정화하라며 원정 임무를 주었고, 이 과정에서 악마가 아닌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 그리고 교단의 이름으로 무자비한 학살이 행해졌습니다. 성기사단의 살육이 계속되자 일부 성기사들은 교단의 뜻에 의문을 품고 기사단을 이탈하는데, 이들이 바로 2편에서 플레이어가 선택하게 되는 '팔라딘'입니다.


▲ 2편의 팔라딘은 탈영병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때 자카룸 수뇌부는 탈주 성기사들의 직감대로 완전히 타락한 상태였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트라빈컬의 지하 사원에 안치된 메피스토의 영혼석 때문이었죠.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메피스토의 힘이 영혼석 바깥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가장 먼저 악에 물들게 된 트라빈컬 의회의 대주교들이 자카룸을 메피스토의 뜻대로 움직여온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라자루스'가 있습니다. 훗날 레오릭을 이용해 디아블로를 부활시키는 장본인이지요.

라자루스에 의해 부활한 디아블로는 액트2에서 바알을 풀어준 뒤, 함께 바다를 건너 자카룸의 본산지인 트라빈컬에 들어섭니다. 본래대로라면 트라빈컬의 사원을 지키는 수많은 사제, 성기사들과의 격전이 벌어졌어야 했지만, 트라빈컬은 이미 메피스토의 지대한 영향 아래 놓인 상태였기 때문에 사원을 가로질러 들어가는 두 대악마를 막기는 커녕 신도들이 서로 칼부림을 하는 광경이 연출됐습니다.


▲ 자카룸 신도들은 전부 메피스토 광신자로 변질된 상태다


이후 트라빈컬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칸두라스에서부터 디아블로의 뒤를 쫓던 모험가(플레이어)가 목도한 장면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한때 자카룸 교단의 최고의회 구성원이었던 대주교들은 그 누구보다도 타락의 정도가 심해 인간의 모습을 잃어버린 상태였으며, 유일하게 메피스토의 지배에 저항했던 당대 쿠에헤간 칼림은 대주교들에게 살해당해 눈과 뇌, 심장이 뽑혀 쿠라스트 전역에 뿌려져 있었습니다.


▲ 자카룸 최고 의회 3인 중 하나. 가장 추악하게 일그러졌다


메피스토에 의해 변질된 컴펠링 오브를 파괴하고 증오의 사원으로 진입하기 위해 칼림의 신체 부위들을 모아야 했던 퀘스트를 기억하실 겁니다. 퀘스트명이 '칼림의 의지'였죠. 그의 신체 부위로 만든 프레일로 오브를 내려치는 장면은 디아블로 시리즈에서 손에 꼽히는 필멸자의 반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아블로 시리즈의 세계에서 필멸자는 전부 악에 패배합니다. 숭고한 희생 정신으로 몸을 내던졌던 탈 라샤도 종래에는 바알과의 기나긴 싸움에서 패배하고 말았죠. 이는 아이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칼림은 죽어서도 악을 처단하는데 기여하며 고유의 캐릭터를 유지합니다.

한편 증오의 사원 결계를 부수고 난입한 모험가는 지하 3층에서 메피스토를 쓰러뜨리고 그의 영혼석을 손에 넣습니다. 이때에도 역시 메피스토를 통해 "이미 늦었다!"라는 질책을 받게 되지만, 대악마 첫 처치라는 유의미한 결과를 기록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디아블로와 바알이 살아있고, 지옥에서 대대적인 군대 모집을 시도하려고 합니다. 초기 로그 캠프 풍경을 생각하면 모험가를 둘러싼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피로 가득한 사원 지하 가운데 지옥문이 시뻘겋게 타오르고, 그 너머에는 말로만 듣던 지옥이 있다고 합니다.


▲ 이제 지옥으로까지 쫓아가는 모험가



◆ 지옥행 포탈에서부터 성역의 기원 '세계석'까지

지금까지 디아블로 2편의 액트1부터 3까지를 개관했습니다. 보다 더 정확한 세계관 소개를 위해서는 부연해야 할 것이 많기에, 남은 이야기는 3부에서 계속할 예정입니다.

액트4에서는 배신자 이주얼에 의해 영혼석의 정체가 밝혀지고, 액트5에서는 세계석 등장과 함께, 지금까지 살펴봤던 성역 세계가 파괴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또한 '네팔렘'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하죠.

그리고 이 모든 사건들이 일어난 배경에는 죄악의 전쟁과 고대 네팔렘들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시간에는 남은 액트 4, 5의 이야기와 더불어 2부에서 다루지 못한 인게임 시나리오 외적인 요소들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 모든 액트에는 트롤이 하나씩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