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벤에서는 '게임하기의 심리학적 고찰'을 키워드로 한 사회문화심리학자 이장주 박사님의 기고를 소개해드립니다. 이번 기고의 주제는 스키너 박스와 확률형 아이템입니다.

확률형 아이템 이슈는 언제나 게임업계의 뜨거운 감자인데요. 스키너 박스와 확률형 아이템은 어떤 연관이 있는걸까요? 이번 칼럼에서 그 놀라운 공통점을 소개해드립니다.

이장주 박사님은 현재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사회문화심리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시대, 기술을 넘어선 사람의 행복'을 테마로 게임과 e스포츠를 비롯해 디지털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주제로 심리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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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심리학을 현재의 위상으로 높인 심리학자 중 스키너(Skinner)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요량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 대신, 측정될 수 있는 행동만을 다루었기에 행동주의(Behaviorism)학파라고도 불렸다.

그는 스키너 박스라는 실험도구를 만들어 동물들에게 원하는 행동을 어떻게 유발시킬 수 있을지 연구했다. 쥐에게 레버를 누르도록 만드는 것부터, 돌고래가 공중제비를 하고, 코끼리가 공을 굴리게 만드는 것처럼 놀라운 행동들을 척척 가르쳤다. 실험자가 원하는 행동을 했을 때 동물에게 먹이를 상으로 주는 ‘강화(reinforcement)’를 이용해서 말이다.



그리고 급기야 이런 방식은 동물이 아닌 사람에게 적용하기에 이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오래된 책의 제목으로 알려진 방식이다. 일상 생활 속에서 보면, 아이에게 주는 칭찬스티커나 커피쿠폰 혹은 일을 많이 했을 때 받는 인센티브같은 것의 뿌리가 스키너박스에서 나온 유산들이다.

쥐나 비둘기를 대하듯 사람을 관리한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 이런 방식의 관리를 당연시하는 풍조가 있다. 심지어 ‘효율적 인사관리’라거나 ‘선진 인력관리 기법’이라는 이름을 달고 유통된다. 이런 방식의 결정적 문제는 쥐나 비둘기처럼 사람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밖에 보지 않는다. 원하는 행동이 나오면 보상을 주지만, 나이가 들거나 치쳐서 원하는 행동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가차없이 교체해 버린다.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보상도 일정하게 주지 않고 드문드문 주어도 여전히 바라는 행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간헐적 강화’방식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한 학기 16주 동안 4번의 출석을 무작위로 불러서 한번 결석하면 4번 결석으로 쳐서 낙제를 주겠다고 수강생들에게 안내하면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첫주, 둘째주, 셋째주 연속 출석을 부르지 않아도 넷째주 더 열심히 출석을 하는 것이다. 넷째주에도 출석을 부르지 않으면 그 다음주에 더 조바심을 내어 출석을 하게 만든다.

어라 이상하다. 보상을 주어야 원하는 행동이 나온다고 했는데, 보상이 없어도 더 열심히 출석(목적행동)을 하는 기적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간헐적 강화 중 가장 강력하게 행동을 유발하는 강화계획은 도박기계인 슬롯 머신에 적용되는 사례다. 계속 꽝이 나올수록 실망하기 보다는 기대가 커져서 차와 집을 담보로 맡기며 도박을 하게 만드는 강화방식이다. 거기에다 본전이 아까워 포기하기도 어려운 그런 꼬일 대로 꼬인 난해한 상태가 유발된다. 심리학에서 이 방식의 강화계획은 변동비율강화계획(Variable-ratio[VR] schedule)이라고 부른다.

▲ 돈을 계속 투자했는데 원하는 결과물을 얻지 못하면 '손실회피' 심리가 생긴다

장황하게 스키너 박스와 강화계획을 설명한 이유는 지금 많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확률형 아이템이 딱 변동비율강화계획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래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게이머는 쥐나 비둘기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이런 방식은 동물이나 사람을 모두 지치게 만든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자아고갈(ego depletion)’이라고 부른다. 여유가 있고, 기운이 있으면 나름 즐길 만 하지만,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항우장사도 지쳐떨어질 수 밖에 없다. 지친 사람은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적대적으로 만든다.

2010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의 모델이 되었던 미국 올랜도 ‘씨월드(SeaWorld)’에서 범고래가 조련사를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가 사망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넓은 대양에서 살던 고래를 갑갑한 수조속에 넣고 썩은 생선으로 유혹해 쇼를 시키는 것은 칭찬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통제였던 것이다. 요즘 고래쇼를 하는 고래들의 폐사율이 높다는 보도는 이 스트레스의 정도가 극심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참지 못한 고래가 조련사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다. 고래도 이럴 진데 사람은 오죽하랴! 게이머를 지치게 만들고 심지어 적대감을 갖게 만들어서는 미래가 없다.

두번째로 게임의 생명이 공정한 룰에 있는데, 확률형 아이템은 이런 공정성을 무너뜨린다. 1년 동안 차근차근 기다려 모은 아이템과 레벨을 어떤 사람이 돈을 써서 금방 만들어버린다면, 돈을 쓴 사람에게는 보상이 될지 모르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게임을 지속해왔던 유저에게는 좌절이라는 벌을 내리는 것이다.

좌절을 경험 한 사람들은 반격을 준비한다. 반격은 프리서버로 옮겨가거나 게임핵(hack) 같은 불법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 그것도 아니면 게임 내에서 트롤 짓을 하여 분위기를 망치는 것까지 다양하다. 결국 게이머들이 하는 공정치 못한 행동의 발단은 이런 좌절스런 상황이 누적되어 나타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심리학적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방식으로 길들여진 개발사나 퍼블리셔는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기 보다는 돈 덜 들는 익숙한 방식의 양산형 게임 개발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돈을 이렇게 쉽게 벌 수 있는데, 투자를 해서 실패를 할지도 모르는 혁신을 어느 바보가 하겠는가? 결국 현명하고 똑똑한 척하지만 모두 패자가 되는 게임이 지금 진행되는 확률형 아이템 이슈의 핵심이라고 나는 믿는다.

▲ 확률형 아이템의 미래는 정해져있다

사실 게임사로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벌기위해 막대한 돈을 투자해 만든 게임을 그냥 무료로 제공하면 누가 새로운 게임을 만들고, 누가 서비스를 하려고 하겠는가? 맞는 말이다. 게임사는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나 돈을 번 만큼 유저들에게 만족을 제공해야 서비스업으로서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미래 전망도 기대할 수 있다. 소비자의 실망을 돈으로 바꾸는 어리석음은 더 이상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이 참에 게임사들도 끊어야 한다. 확률형 아이템의 중독으로부터 말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거다.

그럼 어떻게 해결책은 없을까? 쉽지는 않겠지만 몇 가지 힌트가 될 만한 것을 정리해봤다. 첫째로 확률형 아이템은 ‘부분 유료화 모델’이 필연적으로 갈수 밖에 없는 막다른 종착지다. 그런데 부분유료화라고도 부르지 않고 ‘무료게임’이라는 카테고리로 명명되다 보니 게임이 무료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절대 무료 아니다. 오히려 돈을 주고 산 게임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쓰거나 마케팅에 소요되는 가외의 노동(예를 들면, 친구초대 등)을 게임사를 위해 해주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살아있는 몹의 역할을 함으로써 상위 레벨들의 재미를 배가시켜주는 희생자 역도 도맡아야 한다. 이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누구나 지쳐 앞서 설명한 자아고갈에 이른다. 그리곤 현질의 유혹을 버티기 어려워 과금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과금도 얼마가지 않아 약발이 떨어지고 다시 더 쎈 유혹의 쳇바퀴를 돌리게 된다.

여기에서 핵심은 ‘무료게임(Free to Play)’이라는 카테고리가 잘못되 기대를 만들어 좌절을 심화시킬 수 있다. 탈러 같은 행동 경제학자가 주장한 ‘거래효용(transaction utility)’의 개념은 이 시점에서 아주 유용하다.

거래효용의 예를 들면, 똑같은 커피도 길거리에서 사마시는 것보다 호텔에서 마시는 경우 커피값이 훨씬 비싸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텔에서 거래되는 커피값이 비싸다 불만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호텔에서 마시는 커피를 마시는 것에 대한 기대가 길거리보다 높기 때문이다. 반대로 부자들이 대형마트에 가는 이유도 바로 거래효용때문이다.

싸도 너무 싸다면 거래효용이 높아져서 만족이 극대화된다. 이것을 작금의 ‘무료게임’에 대입해보면 뭐가 문제인지 보인다. 무료게임이라고 기대를 가지고 있다가 돈을 쓰면 작은 돈도 실망을 불러일으킨다. 심지어 유료 게임보다 더 많은 돈이 드니 불만은 유료게임보다 폭발적으로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런 문제에 대결책으로 명칭을 바꾸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부분 유료’도 정확한 네이밍이 아니다. ‘이기려면 돈이 드는 게임(Pay to Win)’이라고 부르는 것이 비교적 정확할 듯하다.

▲ 지금의 현실에 대입해보면, '부분 유료' 대신 'P2W'이라고 부르는 것이 비교적 정확하다.

두 번째는 아이템의 판매를 2원화 해야 한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확률형 아이템으로만 파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 이것은 게임 유저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측면이 강하다. 예를 들면, 명품 가방이 수백만원 한다고 해서 여기에 불만을 가지는 유저는 없다. 정말 가방이 필요하다면 돈을 모아 사면 된다. 혹시라도 게임퍼블리셔들이 게이머들에게 깜짝 선물을 제공할 요량이라면 럭키백 같은 확률형 아이템을 병행하면 된다. 작은 돈으로 행운을 잡을 것이냐, 큰 돈으로 확실한 물건을 살 것인가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이건 최소한의 상도의자, 고객에 대한 예의다.

셋째로 확률형 아이템 판매의 규모와 시기를 제한해야 한다. 사실 가장 좋기는 게임성을 해치는 아이템은 원천적으로 판매를 하지 않고, 스킨이나 코스튬과 같이 개성을 표현하는 아이템만 판매하면 금상첨화겠지만 이것은 유저가 엄청난 상위 몇몇 게임에나 해당되기에 일괄적으로 이렇게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중소 후발업체들이 생존을 위해 굳이 사용하겠다면 아주 엄격하게 한정된 시기에만 사용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마치 백화점 세일기간을 제한하는 것처럼 말이다.

언제나 세일이란 의미는 아무 때도 세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일들을 정부가 나서서 조정하고, 유예기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논의에 게임산업과 문화의 중요한 주체인 게이머들을 적극개입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불화들이 게이머들의 의견을 듣지 않는데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게이머는 더 이상 어리지도, 멍청하지도 않은 사회의 주역이며, 이 나라의 주권자다. 제발 게이머들 좀 대우해주시라. 그냥 딱 이만치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게임사가 확률형 아이템을 전방위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유저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돈을 주고 게임을 사지 않으니 저런 편법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편법에 대해 욕을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현질’을 해주니 사라지지 않는다.

한번 생각해보자. 극장에 가서 2시간 남짓 노는데 얼마나 소비들 하시나? 영화표와 팝콘 콜라를 합치면 2만원 정도는 예상을 하고 극장에 간다. 그런데 몇 달 혹은 몇 년을 노는데 극장 한번 가는 값도 지불할 의향이 없다면 그건 정상적인 경제 마인드라고 보기 어렵다. 돈 주고 게임하시라. 자본주의에서 공짜란 없다. 요즘 세상에 게임처럼 저렴하게 즐길 것이 무엇이 있는가? 이렇게 저렴한 놀거리를 애써 개발한 개발사와 퍼블리셔에게 정당한 값을 지불해야 한다. 특히 착한 게임, 잘 만든 게임에는 더욱더 말이다. 제 값주고 게임하면 게이머들의 말빨이 산다. 그리고 이런 게이머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는 것이 게임산업과 문화가 정상화되는 지름길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