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현석 에이스프로젝트 팀장]
인벤에서는 게임업계 15년 경력의 베테랑 개발자, 안현석 팀장님의 칼럼을 기고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피쳐폰이 급부상하던 시절부터 게임을 만들기 시작해 엔텔리젼트, 넥슨모바일, 넥슨코리아를 거쳐 현재 에이스프로젝트에서 R&D와 클라이언트 개발팀 디렉터를 맡고 있습니다.

에이스프로젝트는 2010년 7월에 설립된 스포츠 게임 전문 개발사로, 시뮬레이션 엔진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매니지먼트 게임 개발에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대표 게임으로 '컴투스 프로야구 for 매니저', '9이닝스 매니저'가 있으며, 2017년 3월에는 대만 프로야구 리그를 무대로 자체 서비스 게임인 '직봉총교두'를 출시했습니다.

한편, 에이스프로젝트는 2015년에 잡플래닛과 포춘코리아가 주최한 '일하기 좋은 기업'에서 IT/웹 부문 1위에 선정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안현석 팀장님의 칼럼은 '피쳐폰부터 스마트폰까지 모바일 게임 클라이언트의 변천사를 주제로 총 8회가 연재됩니다. 첫 번째 칼럼에서는 '새로운 게임 플랫폼의 탄생, 모바일 게임의 등장'을 다루는데요. 우리 생활 깊숙히 파고든 모바일 게임의 기원과 변화 과정을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본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 게임 개발의 시작은 인터넷 닷컴 기업이 유행처럼 생기던 시절을 지나, 모바일 게임이 태동하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가 2002년도였는데 삼성에서 최초로 256컬러 16화음 폰을 출시하고 컬러 휴대폰 열풍이 불던 시절이었다. 그에 발맞춰 모바일 게임 시장도 성장하려고 꿈틀꿈틀 거리고 있었다. 그 시절 모바일 게임은 다른 플랫폼과는 달리 적은 인원으로 게임 개발이 가능했다. 그러한 장점으로 소규모 모바일 게임 개발사가 많이 등장했다.

그렇게 시작된 피쳐폰 모바일 게임은 휴대폰의 발전과 함께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그 후 성장기를 거쳐 피쳐폰 모바일 게임 개발사가 무려 500여개가 넘어섰던 황금기를 맞이했지만, 2011년 스마트폰 시장이 급성장하며 황혼기를 맞게 된다. 그 후 빠른 속도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화려했다면 화려했던, 피쳐폰 모바일 게임시장에서 게임을 개발했던 한 사람으로서, 그 시절 우리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노력을 했었는지 추억을 되살려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소니 PSP, 닌텐도 3DS도 모바일 게임?

먼저 이번 칼럼에서 모바일 게임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요즘은 “모바일 게임 = 스마트폰 게임” 이렇게 불리지만, 사실은 소니 PSP나 닌텐도 3DS도 모바일 게임에 속한다. 즉, 이동하며 휴대 가능한 기기에서 할 수 있는 게임은 모두 모바일 게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방구에서 팔던 홈런야구놀이나 조그만 흑백 휴대용 게임기들이 모바일 게임의 시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이어질 칼럼에서 모바일 게임을 이렇게 정의하려고 한다.

"휴대폰에서 다운로드 받고, 설치하여 즐길 수 있는 게임"

▲ 홈런 야구놀이 출처: 오픈이슈 갤러리
미니게임기 출처: Miccteo 유튜브 채널



피쳐폰?

피쳐폰이라고 들어본적이 있는가? 사실 피쳐폰이라는 명칭은 원래 있던 말은 아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기존의 저성능 휴대폰과 스마트폰을 구별하기 위해 생겨난 신조어다.

스마트폰은 아니지만 다양한 기능(Feature)이 있는 휴대폰이라는 의미이다. 영어권에서는 스마트하지 않다고 'dumb phone'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이번 칼럼에서는 과거에 우리가 사용했던, 바로 이 피쳐폰에서 즐기던 모바일 게임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 피쳐폰 이미지 출처: D군의 ThisPlay 블로그




응답하라 1999

당시는 스타크래프트 열풍으로 PC방이 여기저기 봇물처럼 생겨나고, 가정에서도 편리하게 초고속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ADSL이 나오면서 온라인 게임 열풍이 시작되던 때였다.

휴대폰 기술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을 했는데, 1993년 삼성이 국내 최초로 휴대폰을 출시하고, 이어 다양한 후발주자가 시장에 뛰어들면서,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빠른속도로 휴대폰 기술이 발전했고, 보급률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던 시기였다.

어느덧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할 수 있을정도로 기술은 발전해 있었고, 무선인터넷 전송규약이였던, WAP(wireless application protocol)을 이용한 텍스트 위주의 정적인 머드게임이 서비스되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바일 게임의 존재는 매우 미약했다.

PC로는 당시 꽤 괜찮은 그래픽에 초고속 인터넷 보급으로 실시간 온라인 게임을 할 수 있는 반면, 모바일 게임은 웹페이지 방식의 정적인 머드게임을 하는 정도의 수준이였기 때문에 사용자가 많지 않았다.

▲ 춘추열국지 출처: 컴투스, Creative Fun Maker 블로그



'다운로드' 게임의 등장

때는 아마도 2000년도였던걸로 기억한다.

휴대폰은 흑백에서 4Gray/16Gray로 LCD기술이 발전하고 있었다. 내장 어플리케이션(app)도 알람과 주소록 정도에서 계산기, 달력, 메모등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지고, 간단한 퍼즐게임이 탑재되기도 했다.

이 때부터 VM이 휴대폰에 탑재 되기 시작했다.

VM(Virtual Machine)은, 특정 응용서비스를 실행하기 위한 하나의 실행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하면 OS위의 또 다른 OS라고 말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java가 VM위에서 돌아간다. 그래서 java로 만든 어플은 어떤 OS상에서도 VM만 설치되어 있으면 실행할 수 있다.

▲ 이미지 출처: J2ME 개발문서


다시 돌아가서, 휴대폰에 VM이 탑재되기 시작하였고, 그로 인하여 단말기 제조사에서만 만들 수 있었던 어플리케이션(app)을, 단말기 제조사가 아니어도 만들고 서비스 할 수 있게 됐다.

모바일 게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웹페이지 방식의 정적인 머드게임만 만들 수 있었던 모바일 게임은 휴대폰에 다운로드 받아서 실행하여 즐길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app) 형태의 동적이고 인터랙티브한 게임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 이미지 출처: GVM 개발문서



모바일 게임 시장의 서막

휴대폰에 VM이 탑재 되면서 어플리케이션(app) 형태의 동적이고 인터랙티브한 모바일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많은 업체들이 모바일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간단한 미니게임과 퍼즐게임 위주로 서비스 했다. 그도 그럴수밖에 없는게 SKT의 GVM의 경우에 흑백/4Gray/16Gray의 경우, 앱용량 제한이 48Kb였고, Color의 경우 128Kb였다.

또한, CPU와 메모리도 성능이 낮고, 이 시절 LCD 리프레시 속도도 빠르지 않아, 초당 5프레임이상 갱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였다. 간단한 미니게임과 퍼즐 이외의 게임을 만들기에는 너무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사용자들은 휴대폰으로 문자나 통화만 하는게 아닌,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끼고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휴대폰은 어딜가나 들고 다녀야 했고, 그러다 보니 모바일 게임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는 휴대성과 이동성이 큰 메리트였다.

휴대폰이 더이상 문자나 통화만 하는 기기가 아닌, 게임을 할 수 있는 기기로 변해가고 있었다.

▲ 붕어빵 타이쿤 이미지 출처: 둥근 둥글 블로그


피쳐폰 시절 모바일 게임은 SKT, KTF, LGT 3개의 이동통신사가 각각 주도하여 서비스했다. 각각의 개발 플랫폼도 달랐고, 마켓도 각각 달랐다. 물론 개발도 따로 해야만 했다. (3개의 이통사에 모두 서비스 하려면 각각의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개발 플랫폼으로 각각 따로 개발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고객수가 많은 이동통신사를 우선적으로 대응하여 서비스를 하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사용자는 원하는 모바일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 이동통신사를 옮기는 경우도 있었다.

▲ 이미지 출처: 나무위키



그 시절 피쳐폰 게임은 '유료'

스마트폰과 다르게 개발 플랫폼도 폐쇄적이었고, 각 이동통신사와 서비스 계약을 해야만 게임을 개발하고 서비스 할 수 있었다. 네트워크 성능도 좋지 않고 데이터 통신 비용도 비싸서 대부분 stand alone 형태의 게임을 만들었다. 또 단말기 내부 접근도 쉽지 않아 불법복제나 해킹이 어려웠던 점도 당시 개발 플랫폼의 폐쇄성에 한 몫 했다.

그런 환경이다 보니, 게임 판매방식은 게임을 다운로드 할때 1500원~3000원의 요금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방식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치면, 유료(Paid)게임과 동일하다.

하지만, 요즘 스마트폰은 어떤가? 불법복제가 너무 심해서 유료(Paid)게임 모델로 출시하면 매출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 무료로 다운로드 하고, 부분유료아이템으로 매출을 올리는 ‘Freemium’모델로 서비스 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 게임성보다는 부분유료아이템 개발에 더 집중하게 되는 부작용이 있다.

그러나 피쳐폰은 위에서 말한 폐쇄성으로 인해, 패키지형태의 게임판매가 통했다. (오히려 이 부분은 예전이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휴대폰 보급률 증가와 모바일 게임 시장의 성장

2000년 말, 휴대폰 보급률은 2,678만명으로 전체 국민의 50%이상이 휴대폰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보급률은 계속 늘어났고, 그 영향으로 모바일 게임 시장도 빠른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모바일 게임은 다른 플랫폼과는 달리 소규모 인원으로 개발이 가능했다. 스토어에 업로드만 하면 배포할 수 있는 유통방식도 PC/콘솔 게임 유통에 비해 훨씬 간단하고 편했다. 다운로드를 통한 결제도 간편했으며, 불법복제 문제도 어느정도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은 소규모 개발사에겐 큰 장점이었다. 이 때문에 모바일 게임 시장에 도전하는 소규모 개발사가 매년 증가하여 이후 500여개가 넘는 개발사가 불꽃튀는 경쟁을 시작했다.

모바일 게임의 등장은 우리 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다. 집이나 PC방에서만 할 수 있었던 게임을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었다. 게임이 우리 일상과 더 밀접하게 연결 된 것이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지하철과 버스에서 휴대폰을 붙잡고 놓지 않는 엄지족이 등장하였고, 수업시간에도 휴대폰을 놓지 않는 학생들 때문에, 압수하는 일도 종종 일어났다.

이렇게 모바일 게임 시장은 태동하였고, 막대한 휴대폰 보급률을 발판삼아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 이미지 출처: xoomclips.com





오늘은 첫 화로 피쳐폰 모바일 게임이 등장하고 태동하던 시기에 대해 이야기 해보았다. 무려 18여 년전의 이야기를 주제로 했다.

필자는 피쳐폰 모바일 게임 시장과 함께 성장해왔다. 물론 이제 피쳐폰 모바일 게임 시장은 사라졌지만 그 시절 우리의 노력과 경험들이 지금의 모바일 게임에 많은 의미를 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칼럼을 준비하게 되었다.

다음 칼럼에서는 “GVM부터 WIPI까지 피쳐폰 개발환경의 변화”라는 주제로 모바일 게임 개발환경의 변천사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